훌륭한 공포 영화, 아니 게임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계의 베테랑인 슈퍼매시브 게임즈가 신작 '쿼리'로 찾아왔습니다. 독창적인 공포 이야기를 그려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은 고전적인 10대 공포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이뤄지죠. 80~90년 대부터 인기를 끌었던 공포 이야기를 다룬 만큼 익숙한 스토리 전개를 만나볼 수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슈퍼매시브 게임즈는 왜 '쿼리'를 기존 작품과 달리 이미 검증된 공포 소재로 써내려갔을까요? 매력적인 이야기 전개가 필수로 여겨지는 인터랙티브 무비에서 익숙하거나 밋밋한 전개는 자칫 독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10일 정식 출시된 '쿼리'는 과연 재밌는 영화, 아니 게임이 될 수 있을지 지금부터 한 번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게임명: 쿼리(The Quarry)
장르명: 호러 인터랙티브 무비
출시일: 2022.06.10
리뷰판: For Reviewer
개발사: 슈퍼매시브 게임즈
서비스: 2K
플랫폼: PC, XBOX, PS, NS
플레이: PC

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클래식하지만 진부하진 않은 10대 공포 이야기

▲ 외부와 소통이 단절된 고립된 지역은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80~90년대 호러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13일의 금요일, 이블 데드 등의 시리즈를 살펴보면 모두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10대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고립된 공간에서 끔찍한 사건을 하룻밤 사이에 당한다는 것이죠. 쿼리는 이러한 클래식 10대 공포 이야기와 비슷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쿼리의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윌 바일스는 13일의 금요일과 같은 영화를 참고했으며, 공포물의 팬이라면 쿼리에서 유명한 공포 수사를 꽤 많이 알아볼 것이라고 답했었죠. 실제로 게임을 하다 보면 10대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와 야심한 밤에 호수에서 수영하는 모습, 하지 말라는 행동을 꼭 하는 사람과 끊임없이 투덜대는 사람 등 외국 공포 영화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 10대들의 풋풋한 사랑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간략한 개요를 설명하자면 게임의 배경은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해킷 채석장의 캠프이며, 여름 캠프의 10대 청소년 캠핑 지도 교사들이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플레이어는 9명의 캠핑 지도원을 돌아가면서 조작하게 되며, 특정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따라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생사와 엔딩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인터랙티브 무비에서 이야기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큽니다.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이고 대부분 이야기가 컷신으로 흘러가기 때문이죠. 결국, 이야기에서 게이머를 사로잡지 못한다면 굉장히 지루하고 뻔한 게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실제 영화처럼 기승전결이 확실하게 이뤄져야 하고 이야기의 텐션을 조절해 유저가 엔딩까지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인터랙티브 무비로서 단순히 영화처럼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은 재미를 선사해야 합니다. 사실 호러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에서 슈퍼매시브 게임즈는 독보적인 위치에 선 개발사입니다. 이미 전작인 언틸 던과 다크 픽쳐스 앤솔로지 등에서 수많은 게이머를 상대로 검증을 받아 왔으니까요. 스토리에서 비평을 받은 적은 있지만 적어도 단순한 조작을 통해 게임 시늉만 내는 시청각 자료로서가 아닌 게임으로서 더욱 확실한 피드백을 선사하는 인터랙티브 무비만의 체계는 이번 쿼리에서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 공포 영화 특, 하지 말라는 행동 꼭 함

다시 이야기로 넘어와서 쿼리의 이야기는 솔직히 말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세부적인 설명은 하지 않겠지만, 디렉터가 언급했던 대로 유명한 공포 수사를 오마주한 장면을 자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기승전결 역시 슈퍼매시즈 게임즈 작품 중에서도 상위권에 들 만큼 깔끔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외국에서 만든 게임이다 보니 한국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코드들이 존재했고 이러한 설정들이 간혹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뭐랄까, 정말 심각한 상황인데 쓸데없는 농담 따먹기를 해서 분위기를 망치는 그런 것 말이죠.

그래도 챕터를 나아갈수록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다양한 떡밥들이 등장했고 이후 떡밥 회수 역시 원활하게 잘 이뤄졌기 때문에 스토리에 있어선 크게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참고로 19세 게임으로서 간혹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니 이 부분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여자 주인공에 정신이 팔렸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힌트 등 다양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유저의 흥미를 자극하고 텐션을 유지하는 다양한 장치

쿼리의 전체적인 진행 방식은 슈퍼매시브 게임즈의 전작들과 비슷합니다. 캐릭터를 조작해서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이후 정해진 컷신을 관람하게 됩니다. 이야기 진행 중에는 때때로 선택지가 등장하며, 어떤 선택지를 골랐는지에 따라 이후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이야기의 지루함을 덜고 유저의 몰입도를 유지하기 위해 컷신마다 특정 조작을 요구하는 장치가 등장하기도 하죠.

이러한 조작은 인터랙티브 무비에서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한 시스템 중 하나입니다. 보통 일반적인 영화는 1시간 30분 정도를 기준으로 만들어집니다. 해당 시간 안에 기승전결을 모두 넣어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하죠. 반면, 게임은 짧게는 1시간부터 많게는 10시간을 넘어서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즐길 수 있도록 기획합니다. 단순히 영상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배경이 되는 세계를 탐험하고 전투를 벌이고 성장을 하는 등의 활동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 주변 인물의 감정 변화, 경로 선택 등의 피드백을 통해 진행 상황을 수시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쿼리는 약 8~10시간 정도의 플레이 타임을 갖고 있는데요. 앞서 언급했듯 인터랙티브 무비는 조작의 비중이 작고 컷신을 관람하는 시간이 길어서 일반적인 게임과 비교한다면 플레이 방식과 만족도에서 많은 차이가 나게 됩니다. 게임과 영화를 비교하기엔 여러 부분에서 달라 적절하지 않지만, 인터랙티브 무비 특성상 직접 플레이보단 보이는 것이 더 많으므로 영화와 꽤 흡사한 전개를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일반적인 영화의 상영 시간과 비교하면 쿼리는 약 6편 정도 되는 영화를 이어서 관람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긴 플레이 타임에 비례해 초반 이야기의 개요와 배경을 알려주는 기승 부분이 긴 편이며, 따라서 이 부분에선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등장인물의 성향과 게임 플레이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지만, 초반 전개는 전체적인 스토리에 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 게임에서 가장 힘든 구간인 셈입니다.

▲ 게임의 텐션과 긴장감을 유지시켜주는 버튼 액션

이처럼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초입부를 원활하게 넘길 수 있도록 슈퍼매시브 게임즈는 컷신마다 경로를 설정할 수 있는 선택지와 수집품, 그리고 튜토리얼 개념의 버튼 액션을 다채롭게 추가해뒀습니다.

수집품을 모으고 이를 살피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게 되며, 버튼 액션을 겪으면서 이후에 나올 다양한 상황에 미리 대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게임 내에 흩어진 다양한 단서와 증거는 이후 결말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세세하게 살펴볼수록 확실히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줬습니다.

▲ 주변 탐색을 통해 다양한 단서와 증거물을 모으는 재미도 충실한 편

또한, 종종 영화적인 연출을 통해 이야기의 긴장감을 끌어 올리기도 했는데요. 가령, 카메라 앵글이 평소에는 캐릭터의 뒤에서 바라보는 방향을 비추는 전형적인 3인칭 시점이었다가 간혹 제삼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바뀌기도 했고 때때로 의미심장한 위치에서 카메라를 비춰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카메라 연출은 자칫 게임의 몰입도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게임으로서 내가 가려는 방향이 아닌 엉뚱한 곳을 계속 비추는 등 게임 진행에 불편함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죠. 시점이 달라지면 그에 따라 조작감에 혼선이 오는 일도 있고요. 다행인 점은 쿼리에서는 카메라 앵글이 달라져도 캐릭터를 중심으로 움직였고 또한 조작 방향 역시 일관성 있게 설계해 불편하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 순간적으로 화면이 전환되긴 해도 조작 뱡향은 그대로 유지돼 불편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미래를 보여주는 타로 카드와 처음 등장한 영화 모드

쿼리의 이야기 전개는 챕터 단위로 이뤄지며, 챕터를 기준으로 이야기의 전개가 달라지는 구조입니다. 하나의 챕터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이후 챕터에도 영향을 주므로 원하는 결말을 보기 위해선 신중하게 선택을 해야 하죠. 다만, 게임 내에는 정말 많은 선택지가 등장하므로 내가 보고 싶은 결말을 무조건 보기란 어려운 편입니다. 모두를 살리고 싶었지만, 상황을 모두를 죽이는 방향으로도 갈 수 있죠.

사실 선택에 따른 결과를 무를 수 없다는 것도 어찌 보면 인터랙티브 무비가 재밌게 느껴지는 주요 장치 중 하나일 것입니다. 만약 인터랙티브 무비에 세이브, 로드가 있다면 매번 선택할 때마다 더 좋은 방향으로 비교하고 선택하게 될 테니 이야기에 흥미가 차츰 떨어질 수 있습니다. 참고로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사망하면 총 3번의 되살릴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허무하게 죽는 걸 방지해주는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입니다.

▲ 단, 딱 세 번의 기회 이후에는 절대 살릴 수 없다

슈퍼매시브 게임즈는 이야기 진행의 아쉬운 점을 보완하기 위해 꽤 재미있는 장치를 추가했습니다. 바로 타로를 통해 미래 일부분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하나의 챕터가 끝나면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전 어떤 수수께끼의 할머니가 등장합니다. 할머니는 챕터를 탐험하면서 얻게 되는 타로 카드로 운세를 봐주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습득한 타로 카드 중 단 하나만 선택해 미래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이러한 타로 카드를 통해 어떤 시련이 닥쳐올지 예상해볼 수 있으며, 이를 피하기 위한 선택지를 생각해서 고르는 것이 가능합니다.

타로 카드는 미래가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야기 전개에 흥미진진함을 더해주는 장치로 쓰이는데요. 가령,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한 명이 어떤 시련을 마주치기 전의 상황만 짧게 보여주는 식입니다. 일단 뭔가 나오는 건 확실한데 디테일한 정보는 알 수 없으니 결과적으로 두근대면서 조심스럽게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죠. 또한, 타로 카드는 주변 환경을 돌아다니면서 찾아야 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맵을 돌아다녀야 하는 또 다른 동기부여를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 타로 카드는 조금만 돌아다녀도 쉽게 얻을 수 있다

만약, 이미 결말을 정하고 이야기만 보고 싶다면 쿼리에서 새롭게 추가된 영화 모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영화 모드는 전원 생존 혹은 전원 사망, 커스텀 설정을 제공하며,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세부적인 성격까지 조절할 수 있는데요. 설정을 모두 끝내면 이후에는 조작과 버튼 액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미 한 번 이상 게임을 플레이해서 엔딩을 봤다면 영화 모드를 통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설정으로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으므로 꽤 괜찮은 시스템이라 생각합니다. 인터랙티브 무비 특성상 조작에 변수가 크게 없는 편이라 한두 번은 긴장감 있게 조작해도 이후에는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거라 간단한 조작조차 귀찮게 느껴질 수 있죠. 반대로 쿼리를 처음 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싱글 플레이를 즐기며 엔딩을 본 이후에 영화 모드로 또 다른 이야기를 감상하길 추천해 드립니다.





▲ 으슥한 밤 분위기가 일품

쿼리는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이야기 전개 방식과 인터랙티브 무비로서의 시스템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잘 만든 게임이었습니다. 모든 선택지와 버튼 액션이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요 선택지 외에 다양한 활동들도 이야기에 조금씩 영향을 미쳤는데요. 이를 통해 게임의 진행을 플레이어가 통제하고 있다는 믿음을 계속 채워줘 선택지를 더욱 신중하게 고를 수 있었습니다. 만약, 선택지를 골라도 이후 진행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인터랙티브 무비만의 차별화를 크게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편, 쿼리를 즐기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출시 후 곧바로 파티 플레이를 즐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슈퍼매시브 게임즈는 쿼리의 강점 중 하나로 파티 플레이를 꼽을 만큼 이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여줬었습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공포 소재로 게임을 만든 이유도 어찌 보면 파티 플레이를 위해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의도로 볼 수 있죠. 로컬 멀티 플레이 외에 최대 8인의 플레이어가 각자의 캐릭터를 조작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온라인 플레이는 전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쿼리만의 차별화 포인트 중 하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온라인 멀티 플레이는 정식 출시 이후 7월쯤 업데이트로 추가가 될 예정입니다.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인데 한 달 정도 텀을 두고 멀티 플레이를 추가한들 큰 의미가 있겠나 싶더군요. 이러한 아쉬움을 뛰어넘을 만큼 멀티 플레이가 큰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는 추후 온라인 플레이를 지원할 때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쿼리의 무서움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로 밤에 불 끄고 이어폰 끼고 게임을 즐겼는데 그렇게 무섭진 않았습니다. 따라서 아마 평소에 공포 영화를 종종 보는 분이라면 큰 부담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날마다 더워지는 날씨에 맞서 잠깐의 서늘함을 느끼고 싶다면 집에서 편하게 쿼리 한 번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 쿼리의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직접 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