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의 클래스는 여전하지만, 여전히 오락실에 갇혀 버린



지금도 떨어지지는 않지만, 한 때 캡콤은 진짜 대단했습니다. 게임 한 번 하려면 어떻게든 백원짜리 동전을 구해 문방구 앞에라도 쭈그려야 했던 시절이 별과 같은 대표작들이 늘어선 지금보다 오히려 더 대단해 보이던 캡콤의 전성기였거든요. 홈 게임 콘솔을 닌텐도와 세가가 양분했다면, 오락실의 지배자는 명실상부 캡콤이었습니다.

'캡콤 아케이드 스타디움'은 이 캡콤의 빛나던 시절을 어떻게 하면 다시 살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결정입니다. 캡콤은 이전부터 '홈 아케이드'와 '레트로 스테이션'을 출시해 구작 아케이드 게임들을 살리고 싶어했으나, 사실상 접근성 좋게 게이머들에게 다가온 것은 이 '아케이드 스타디움'이 출시되면서지요.

캡콤 아케이드 스타디움은 지난해 처음 출시되어 수십 종의 게임을 포팅한 이후, 얼마 전 세컨드 스타디움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수십 종의 게임이 출시되었습니다. 이번 리뷰는 세컨드 스타디움의 출시에 맞춰 준비되었지만, 이전에 다루지 않았던 '캡콤 아케이드 스타디움'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조금씩 꺼내 볼까 합니다.

게임명: 캡콤 아케이드 2nd 스타디움(Capcom Arcade Stadium))
장르명: 아케이드
출시일: 2022. 07. 22(2nd 스타디움 기준).
리뷰판: 출시버전
개발사: 캡콤
서비스: 캡콤
플랫폼: PC / Xbox / PS / Switch
플레이: PC

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일단, 이번 리뷰에서 게임의 게임성이나 완성도, 그래픽, 디자인 등에 대해서는 일절 다루지 않습니다. 출시 이후 이미 30년이 지난 게임들이 즐비한데다, 게임을 개발한 캡콤에서 이미 괜찮다고 생각하는 게임들을 모아둔게 이 '아케이드 스타디움'인데, 굳이 지금 와서 게임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 필요는 없지요.

이번 리뷰에서 중요한 건 이 '아케이드 스타디움'이라는 플랫폼이 면면이 화려한 구작들을 어떻게 모아 두었냐입니다. 캡콤 아케이드 스타디움은 게임계의 양로원입니다. 노인 한 분 한 분보다 양로원 자체가 얼마나 잘 만들어져 있는지를 주로 봐야 한다는 것이죠.

플랫폼은 전체적으로 과거의 '아케이드' 느낌이 물씬 나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한 중간 프로그램이 아닌, 게이머가 가상의 오락실 안에 들어와 게임을 즐기는 경험을 비슷하게 즐길 수 있게 설계되어 있죠.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 화면의 기본 세팅과 기기 변경 시스템입니다.

▲ 아케이드의 모습은 내가 원하는 대로

게임을 시작하면, 게이머는 가상의 오락실에 진입하게 됩니다. 이후 일렬로 늘어선 아케이드 기기 중에서 본인이 할 게임을 고르게 되죠. 하지만, 오락실 세대라면 다들 아시다시피 똑같은 기기가 그림처럼 늘어선 오락실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저런 다른 모양들의 오락기들이 어지럽게 모여 하나의 오락실을 만들어내는데, 아케이드 스타디움 또한 의도적으로 이렇게 보이게끔 기기 변경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변경한 기기는 게임 플레이시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기기를 뭐로 설정했냐에 따라 게임 도중 옆 기기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데, 다른 게임의 데모 플레이가 반복 재생되는 모습을 볼 수 있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돼지저금통 배 좀 째 본 그시절 게이머들이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질 부분들입니다.

▲ 게임 플레이 중 은근히 보이는 옆 기기 데모 화면

게다가, 단순히 그 시절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험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세컨드 스타디움에 이르러 게임 진행을 그대로 뒤로 감아버리는 리와인드 기능이나 플레이 속도 조절 기능, 혼자서만 플레이 가능한 치트 기능들이 들어가 있으며, 대부분의 게임을 처음 접할 요즘 게이머들을 위한 친절한 게임 내 메뉴얼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당시 오락실의 게임들은 직접 하는 것 외엔 게임을 배울 수도 없었고, 인터넷도 그리 자유롭던 시절이 아니었던지라 화면 곳곳에 조작법을 스티커로 붙여둔 매장들이 즐비했는데, 이젠 편하게 조작법을 익힐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보다 경쟁적인 플레이어들을 위한 순위표 등록도 가능합니다.

이렇듯, '캡콤 아케이드 스타디움'은 오락실의 재미와 경험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서른을 넘어 마흔을 향해 가는 와중에 있는 저와 같은 세대의 게이머들은 익숙하면서도 참 오래된 추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나곤 하죠.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리뷰를 끝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 세계 단위 스코어링 시스템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저도 좋은 말만 해 주고 싶지만, '캡콤 아케이드 스타디움'은 올드 게이머로서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단점들이 너무나 쉽게 눈에 띕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과 온라인 적응도입니다. 캡콤 아케이드 스타디움 당시에도 게임 하나 가격에 2,300원은 호불호가 갈리는 가격이었는데, 세컨드 스타디움에 이르러 가격이 무려 두 배가 넘게 올랐습니다. 통합 게임 팩의 가격은 큰 차이가 없지만, 개별 게임을 구매하려면 이제 건 당 4,900원을 지불해야 하죠.

물론 게임 하나에 4,900원이 비싸다 말할 수는 없겠으나, 갑작스럽게 이전 대비 2배가 넘는 가격이 되어버린 건 이상한 일입니다. 그나마 무적치트도 돈 받고 팔던 첫 번째와 달리 이번엔 치트 기능과 기기 프레임을 무료로 제공하긴 합니다만, 조삼모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 갑작스럽게 두 배 이상 비싸진 개별 게임 가격

또한, 온라인 플레이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매우 치명적입니다. 그 옛날 '마메' 에뮬레이터도 VPN 프로그램을 잘만 돌리면 온라인 플레이가 가능했는데, 2020년대에 나온 대기업의 플랫폼이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안 되는게 말이 됩니까? 의자로 머리를 맞지 않고도 마음껏 쌥쌥이를 쓸 수 있는 날을 기대했는데 다 틀렸습니다.

물론, PC나 콘솔에 컨트롤러를 더덕더덕 붙이면 다인 플레이가 가능하긴 합니다만, 오프라인에서 다 모여야 한다는 점까지 오락실과 닮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전 지구를 휩쓰는 역병이 아직도 난리인 마당에 굳이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야 한다니요. 옛날 게임을 하고 싶은거지, 옛날처럼 게임하고 싶은 건 아닌데 말입니다.

▲ 이런 편의는 참 좋은데

게다가 이렇게 모여도 또 문제가 생깁니다. PC 버전 한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컨트롤러의 키 매핑에 문제가 있어 컨트롤러를 연결하고 나서도 드물지 않게 키보드를 만져야 합니다. 제 경우 듀얼센스와 엑스박스 패드, 조이트론의 조이스틱을 모두 연결해봤는데 듀얼센스는 아예 응답이 없고 조이스틱은 몇몇 게임에서 동전을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엑스박스 패드만이 그럭저럭 정상적으로 플레이가 가능했죠. 듀얼센스야 그렇다 쳐도 조이스틱은 아예 전용 옵션까지 있던데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1년 전 출시한 아케이드 스타디움에 추가 게임을 넣은 형태가 아니라 굳이 '세컨드 아케이드'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시한 이유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락실로 치면 기존의 오락실에 새 기판을 가져다 놓은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오락실을 차려 버린 거죠. 보통 오락실에 가면 한 게임만 하는 경우는 없는데, 서로 다른 플랫폼에 게임이 있을 경우 켰다 껐다 하기가 여간 귀찮은게 아닙니다. 도전 과제나 세이브도 다 다르고 말이죠. 설마 진짜 게임을 더 비싸게 팔려고 그런 건 아니겠죠?

▲ 오락실 감성 자체는 참 좋은데 편의 사항도 오락실 수준

정리하자면, '캡콤 아케이드 세컨드 스타디움'은 아케이드만의 감성을 물씬 살려 그 시절의 오락실 경험을 선사하는 플랫폼이지만, 참 요상하게 눈에 밟히는 단점들의 존재로 인해 고오급 에뮬레이터 이상의 무언가가 되지는 못한 플랫폼입니다. 보통 다른 건 잘 만들어놓고 게임이 재미 없어서 혹평받는 경우는 많지만, 이렇게 검증된 명작들을 게임들을 모아 두고도 기타 요소 때문에 점수가 깎이는 경우는 잘 없는데, 캡콤 아케이드 세컨드 스타디움이 딱 이런 케이스죠.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즐길 수 있는 '파티 게임'으로서 캡콤 아케이드 세컨드 스타디움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자질을 갖추고 있기도 합니다. 코어 게이머의 성향에 맞춰 씹고 뜯기는 다소 어렵지만, 다 같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상황에서 내 집안의 작고 소중한 오락실로 기능하기엔 결코 부족함이 없죠. 어린 시절의 친구나 가족과 함께 추억을 살리기엔 참 좋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기엔 참 어려움 게임 묶음. '캡콤 아케이드 세컨드 스타디움'은 딱 그 정도의 게임 플랫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