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게임이지, 무슨 운동이냐? 라는 말을 하더라. 그건 비장애인 시선에서 게임을 보는 거고, 장애인 시선이면 결이 달라진다. 우리로선 아무 데나 갈 수 없고, 할 수 없다. e스포츠는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취미가 될 수 있고 직업이 될 수 있다. 삶의 의욕이 된다. 우리가 비장애인과 달리기로 경쟁할 수는 없어도, 배틀그라운드 안에서 경쟁할 수는 있다. 우리에게 e스포츠는 스포츠다"

광양 장애인e스포츠센터(이하 센터)에서 들은 말이다. "이게 무슨 운동이냐?"라는 말은 지난 8월 5일 센터 개소식 때 비장애인에게서 나왔던 얘기라고 한다. 이 얘기를 들었던 지체장애인 관계자는 화가 났지만, 낼 수 없었다고 한다. 행사를 망칠 수는 없어서다.

취재를 마치고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비장애인과 달리기로 경쟁할 수는 없어도, 배틀그라운드 안에서 경쟁할 수는 있다"라는 말이었다. 언젠가 들은 기억이 나는 논리다. 그런데 장애인 당사자로부터 직접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e스포츠는 지금까지 이룬 것보다 더 큰 가능성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코1%나눔재단'과 '따뜻한동행'이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광양국민체육센터 내에 e스포츠 훈련 시설을 구축했다. 장애인의 e스포츠 활동만을 위한 공간은 광양 장애인e스포츠센터가 처음이다. e스포츠 업계에서 의미 있는 점은 정부와 대한체육회가 지원하는 체육시설 내에 e스포츠 센터가 지어졌다는 점이다. e스포츠가 정통 체육계에 한 발짝 더 다가간 셈이다.

광양 장애인e스포츠 센터는 지역에 지어졌다는 점과 장애인만을 위한 시설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e스포츠 산업이 크게 발전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권과 비장애인 위주로만 성장했단 한계가 있다. 광양 장애인e스포츠센터는 우리나라 e스포츠 산업이 다음 단계로 성공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과제를 남긴다.

왜 광양에 지어졌을까. 광양에는 포스코가 운영하는 제철소가 있다. 포스코는 제철소 운영에 따른 사회공헌 활동 중 하나로 체육을 지원한다. 2020년 기준 포스코는 양궁, 역도 등 13개 종목 개인과 단체에 1억 5천만 원을 후원했다. 장애인 e스포츠는 이번에 포스코가 새롭게 지원하는 분야다. 원래 포스코는 e스포츠 구단 설립에도 관심을 가졌으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장애인 e스포츠 지원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포스코는 포항에 2호 장애인e스포츠센터를 준비하고 있다.

센터 구축은 장애인이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에 초점이 맞춰졌다. 배리어 프리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계단이나 턱 등을 없애는 것이다. 실제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센터에 오갈 때 어려움 없이 쉽게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 휠체어 이용에 어려움이 없도록 신경쓰는 게 배리어 프리다.

센터 내에는 e스포츠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전용 게이밍 컴퓨터 10대가 있었다. 컴퓨터와 게이밍 데스크, 게이밍 의자 등은 포스코 후원금 3,500만 원으로 마련했다. e스포츠 시설인 만큼 컴퓨터에는 게임 외 다른 앱은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이 센터가 사양 좋은 PC방, 컴퓨터 학원처럼 이용되지 않게끔 의도한 사항이다. 컴퓨터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 '피파온라인4', '카트라이더', '배틀그라운드' 정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현재 센터에는 '선수'가 9명 등록되어 있다. 10대는 없었으며 20대와 30대로 구성됐다. 장애는 유형과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 유형의 경우 대표적으로 신체와 정신으로 나뉜다. 정도는 중추신경계 선후천적 손상으로 인한 차이 등이다. 등록된 선수 9명은 다양한 유형과 정도가 함께 있다.

김진욱 광양시장애인체육회 사무국장은 장애인의 새로운 취업 활동을 위해 센터가 필요하다고 소개했다. 장애인의 취업 활동은 비장애인과 다소 차이가 있다. 장애인에겐 여러 현실적이 어려움이 있는 만큼, 체육 활동에서 성과를 내 기업에 취직하기도 한다. 광양시체육회는 기존 체육선수취업에 e스포츠를 더했다. e스포츠에서 성과를 내는 장애인이 있다면, 기업이 새로운 체육선수 고용으로 고려해볼 수 있단 기대다. 아직 시작 단계여서 성과는 없다.

▲ 이러한 대회는 장애인 e스포츠계에 큰 원동력이 된다

일반적으로 e스포츠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수강생의 목표를 프로게이머로 잡을 것이다. 더 높게 본다면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 '롤드컵' 우승일 수 있다. 장애인e스포츠센터는 다소 현실적이다. 포스코 장애인 취업선수가 20여 명이다. 이들은 기존 스포츠에서 능력을 발휘해 기업의 후원을 받았다. 이러한 후원이 e스포츠에도 이어지도록 하는 게 김진욱 국장의 목표다. 김진욱 국장은 "디지털 부문에서 고용 및 위업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도록 운영관리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 김진욱 국장은 센터가 PC방이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밝혔다. 게이밍 컴퓨터 사양이 좋기 때문에 단순히 게임을 하러 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는 "e스포츠와 게임은 프로 의식 차원에서 다르다고 생각한다"라며 "대회 입상을 목표로 훈련하는 곳이기에, PC방이 아닌 스포츠센터로 운영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김진욱 국장은 장애인e스포츠센터에 더 필요한 사항으로 △전용 인터넷망 구축 △프로게임 구단의 지도 지원 △장애인 보조 예산 증액 등을 꼽았다.

훈련을 위해선 지도자가 필요하다. 센터에는 좋은 컴퓨터와 의지가 있는 선수는 있지만, 지도해줄 사람이 없다. 김진욱 사무국장 역시 장애인 e스포츠 선수를 지지해줄 수는 있지만 가르칠 능력은 되지 못한다. 이곳에서 대회 입상을 노리는 지망생이 오더라도 알려줄 사람이 없다.

김진욱 국장은 "광양이라는 지역 문제와 예산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라며 "주위에 우수한 지도자가 없고, 또 서울에 있는 인재를 이곳에 오게끔 채용할 여건도 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바라는 게 있다면 프로게임 구단에서 봉사활동 개념으로 이곳에 와 지망생들에게 게임을 알려주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김진욱 국장 "월 1회라도, 프로게임 구단의 코치를 받을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전용 인터넷망 구축은 기존 스포츠와는 다른 시설 지원이다. 대회 연습 수준으로 게임을 한다면, 속도가 빠른 인터넷망이 필요하다. 센터에 좋은 PC방 수준의 인터넷망을 구축하려면 월 70만 원 정도 비용이 든다. 정부 지원, 후원으로 운영되는 센터 특성을 고려하면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김진욱 국장은 좋은 인터넷망 환경에서 연습한다면 장애인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센터 운영 예산은 전적으로 지원에 의존하게 된다. 센터가 수입을 기대하기는 힘든 구조다. 광양 장애인e스포츠센터 경우 광양시민 체육을 위한 예산, 그중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예산, 그 아래 장애인e스포츠 예산에 의존한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 선수가 다른 지역에 대회를 참가하러 가는 것도 어렵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라면 전용 차량, 보호자 등이 동반되어야 한다. 현재 예산 구조로는 센터에서 연습은 하더라도 대회에 참가하기 힘들다. 김진욱 국장은 기업 후원 또는 정부의 장애인e스포츠 예산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예산 한계로 인해 센터 운영 시간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로 한정됐다. 전용 시설이지만 운영 시간은 4시간뿐이다. 센터 전담 인력을 따로 배정하기 힘들어 발생한 한계다. 현재 센터는 기존 장애인체육센터 근무자가 추가로 관리하는 구조다. 장애인에게 전용 센터가 생긴 것은 반갑지만, 대회 훈련을 목적으로 한다면 운영 시간 4시간은 아쉬운 부분이다. 충분한 운영 시간 확보를 위해서도 예산 추가 지원이 필요해 보였다.

김진욱 국장의 꿈은 이 센터 출신 프로게이머가 탄생해 활약하는 것이다. 결국 e스포츠는 모니터 안에서 선수가 반영된 아바타로 대결이 진행된다. 비록 신체 차이가 있을 수 있어도, 아바타는 모두가 동등하다. 단순히 지원, 후원 개념으로 진행된 이벤트 대회에서 성과를 내는 게 아닌, LCK와 같은 무대에서 장애인 선수가 활약한다면 장애계에 큰 의미가 된다. 김진욱 국장은 "드라마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일반인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장애인이 있고, e스포츠에 강점을 보일 수 있다"라며 "그러한 장애인 프로게이머의 가능성을 살리는 데 센터가 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라고 기대했다.

현재 포스코1%나눔재단은 포항에도 장애인e스포츠센터를 만들고 있다. 시작인 광양 센터 성과가 중요하다. 좋은 결과를 내야 강원도, 충청도 등에도 장애인e스포츠센터 건립에 근거가 되어서다. 이로 인한 김진욱 국장의 부담도 있다. 김진욱 국장은 "우리가 잘 되어서 전국에 있는 장애인이 각 지역 e스포츠 센터에 갈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왼쪽부터) 강희오 지부장, 이예석 선수

이예석 선수는 센터에서 활동한다. 그는 장애인에게 있어 e스포츠에 대해 "할 수 있어서 참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뇌병변장애인 등은 스포츠를 하고 싶어도 신체적 제약이 심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의 폭이 좁다. 이들에게 있어 스포츠는 '잘한다'와 '못한다'가 아닌 '할 수 있나', '없나'로 나뉜다. 적어도 e스포츠는 할 수는 있기에 장애인에게 좋은 스포츠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세금으로 장애인e스포츠센터를 짓는 것, 기업이 장애인e스포츠센터에 후원할만한 일일까. 이에 대해선 강희오 광양시체육회 장애인e스포츠연맹 지부장이 답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집 컴퓨터 사양이 낮다 보니, 원하는 게임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다"라며 "장애인의 경우 PC방에 가기도 쉽지 않으나, 센터가 생기니 충분히 연습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의논도 할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게임을 하는 곳이라면 PC방을 떠올릴 수 있다. 이미 정부 문화체육관광부는 PC방을 e스포츠 시설로 지정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PC방은 장애인이 접근하기 힘들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면 가는 곳의 턱과 계단이 장벽이 된다. 이러한 장애인을 위한 개념이 배리어 프리다. 장애인e스포츠 센터는 만들 때 배리어 프리를 고려하는 게 기본이다. 물리적인 불편함 외에도 시선, 편견도 장벽이 된다. 세금이나 후원으로 별도의 시설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강희오 지부장은 장애인인 부모로서의 입장도 전했다. 그는 "아이와 함께하면 좋은 체육이 있는데, 장애인 부모는 그러기 쉽지 않더라""e스포츠는 아이가 더 좋아하니 같이 하면 뭐랄까... 유대관계가 더 좋아지는 걸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부모 가정에 아이가 있는 분들은 같이 센터에서 e스포츠를 즐기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관련해 현재 장애인e스포츠를 위한 제도적 지원은 미비한 상태다. 그나마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지역연고제 도입과 장애인 게임 접근성 불편 해소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이를 결합해야 지역 장애인e스포츠 지원을 기대해볼 수 있는 정도다. 그러나 취임 100일 이후까지 세부 지침은 나타나지 않았다.

국회에서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장애인 게임접근성 향상법'을 발의했었다. 이 법은 e스포츠를 포함한 게임산업 전체에 장애인 접근성 향상을 도모한다. 그러나 2021년 4월 20일 발의된 이후 현재까지 소관위 심사에 머물러 있다. 아울러 게임산업법 개정이 아닌, e스포츠산업법에 장애인 접근성 향상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국회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은경 한신대학교 교수는 "장애인 e스포츠의 게임 접근성 발전 전략을 위해 누구나 게임 이용이 가능한 환경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설 환경, 그리고 중앙과 지역의 장애인 e스포츠 산업 활성화 지원,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진으로 보는 '광양 장애인e스포츠센터'

▲ 여수보단 가까이 있는 광양으로 가면

▲ 광양서천을 지나 위치한 장애인 전용 체육센터

▲ 체육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소통의 공간"

▲ 광양 장애인e스포츠센터는 단지 내 해솔관에 들어섰다

▲ 광양에 제철소가 있는 포스코가 센터 건립을 지원했다

▲ 휠체어를 이용해도 문제가 없도록 신경 쓴 게 특징이다

▲ '배리어 프리'한 구조가 광양 장애인e스포츠센터의 핵심이다

▲ 센터에 마련된 10대의 게이밍 컴퓨터, e스포츠 훈련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

▲ 키보드, 마우스, 헤드셋 등 게이밍 장비가 마련됐다

▲ PC방처럼 운영되지 않도록, 컴퓨터에는 e스포츠 종목 게임만 설치되어 있었다

▲ 방문 날에는 배틀그라운드를 이용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 e스포츠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 든 건 망치가 아닌 게이트볼 스틱이다

▲ 광양 장애인e스포츠센터의 훈련은 사뭇 진지하게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