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차게 내딛은 리부트의 첫 걸음. 그런데 뭔가 빼먹었다.


'세인츠 로우' 시리즈가 리부트된다는 소식이 퍼졌을 때, 게이머들은 두 가지를 기대했다. 하나는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시리즈만의 정신나간 감성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러면서도 이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속편을 내놓기 민망할 정도로 오랜 기간 후속작 소식이 없었거나, 배가 산으로 가 버린 게임 시리즈에 있어 '리부트'는 흔히 쓰이는 방법이지만, 실상 양날의 검이다. 리부트는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 진보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전보다 부족하다면 뭐하러 리부트까지 했냐는 말이 나올게 뻔하니까. 이전의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전보다 나아야 하고, 시리즈 팬들을 만족시키면서 새로운 팬까지 만들어야 하는 상황.

그 가혹한 시험대를 향해, '세인츠 로우'가 올라섰다.


게임명: 세인츠 로우(Saints Row)
장르명: 오픈월드, 액션
출시일: 2022.08.23
리뷰판: 1.0.0
개발사: 볼리션
서비스: 딥 실버
플랫폼: PC, PS, Xbox
플레이: PC

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세인츠 로우'가 특별했던 이유는 아직 존재하지만...

세인츠 로우가 타 오픈월드 액션 게임과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은 역시 '커스터마이징'이라 할 수 있다. MMORPG에 익숙한 게이머들은 커스터마이징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싱글 플레이 오픈월드 게임 중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하는 게임은 베데스다의 게임들 정도를 빼면 매우 드물다. 당장 생각나는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나 'GTA' 시리즈, '레드 데드 리뎀션' 시리즈도 모두 고정된 주인공이 존재하며, '호라이즌: 제로 던'이나 '세키로'등의 게임들도 마찬가지다.

오픈월드 게임들은 대부분 일직선 진행이 아닌 만큼 탄탄한 서사 구성을 위한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쌔신 크리드의 주인공이 도시 내에서 온갖 살인을 저질러도 합리화되는 이유, GTA의 주인공이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다녀도 위화감 없이 넘길 수 있는 이유를 마련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 '원래 그러려고 왔다', 혹은 '원래 그렇게 살던 사람이다'이다. 쉽게 말해, 도시에서 온갖 깽판을 치고 다니면서도 그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핑계가 필요한 셈이다.

▲ 2편보다 줄어든 느낌이지만 어쨌든 비범한 커스터마이징

때문에, 싱글 플레이 오픈월드 게임에서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한다는 건 두 가지 중 하나가 된다. 베데스다의 게임들처럼 게이머의 모든 행동이 하나의 이야기로 여겨질 만큼 잘 만든 게임이거나, 혹은 서사 따위 개나 주고 게이머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라는 게임인 경우다.

그리고 누가 봐도 명백히 후자인 '세인츠 로우'이기에, 리부트에서도 커스터마이징은 아주 잘 살아 있다. 근육질과 마른 체형, 비만의 삼각형 사이에서 체형 조절이 가능하고, 아예 논란을 피하기 위해 성별에 따른 스탠다드가 전혀 없으며, 의수와 의족은 물론 중요 부위 모자이크(사이버 펑크와 같은 '덜렁'은 없다)까지 조절할 수 있다.

▲ 사이버펑크의 '덜렁'까진 아니어도 꽤 풍성하다

게다가, 이런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옷장이나 성형외과를 방문할 필요도 없이 그냥 핸드폰의 '스타일'앱을 통해 길거리에서도 바로바로 적용할 수 있다. 우람한 근육질과 갈색 피부, 굵은 드레드락 헤어를 자랑하던 보스가 잠깐 딴데 보다가 돌아보면 갑자기 호리호리한 체형에 빛나는 금빛 피부의 대머리가 되어있는 마법 같은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또한, 행동에서의 자유도도 타 오픈월드 게임 대비 꽤 높은 편인데, 사고를 치고 경찰이 와도 어렵지 않게 따돌릴 수 있어 말 그대로 마음껏 사고를 치고 다녀도 불편함이 없다. 다만, 애초에 NPC가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데다가 시스템적으로 이를 지원하는 요소는 그다지 없기에 본인의 재미 외에는 득될 것도 없지만 말이다.

▲ 스피닝 백 너클이 합법인 산토 일레소

하여튼, '스토리야 어떻게 되든 알 것 없고 내가 원하는 캐릭터로 내 맘대로 깽판을 치겠다'라는 기존 세인츠 로우의 특징 자체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교통법규를 안 지켜서 경찰에게 쫓기거나, 버튼을 잘못 눌러 현상 수배가 걸려버리는 다른 오픈월드 게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제한 덕분에 오픈월드 게임이 지니는 샌드박스적 재미에 있어서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형식의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 곧 게임을 잘 만들었다는 말과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브레이크 걸린 광기와 어설프게 구현된 쿨함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부작의 마지막 편에서, 피터 파커는 심비오트에 감염되어 이상하게 흑화되어 버린다. 갑자기 앞머리를 내리고 요란뻑적한 댄스를 추는가 하면, 괜히 길 가는 여성들에게 추파를 날리는데 행동이 너무 어색해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다.

▲ 게임이 전체적으로 이 분이 생각난다

갑자기 왜 이 말을 하는가 하면, '세인츠 로우'라는 게임의 전체적인 감정선이 딱 이 흑화된 피터 파커와 비슷한 선에 있다. 정신이 나가긴 했는데 생각처럼 막 나가진 않고, 마치 나쁜놈처럼 구는데 저 정도로 나쁜놈이라 할 수 있나? 싶고, 쌍욕을 내뱉는데 뭔가 들어도 상처는 안 받을 것 같고... 하여튼 이 애매모호함을 정리할 수 있는 개념을 생각하다 보니 샘 레이미 스파이더맨의 피터 더 라이트닝 댄서'만큼이나 어울리는 비유가 없었다.

청불 등급을 받은 게임인 만큼,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 인물은 욕을 아주 쉴 새 없이 한다. 그런데 욕에 찰짐이 없다. 게임에서 욕을 쓸 때는 정말 상황이 절박하거나, 혹은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상황이어야 어울리는데, 세인츠 로우의 욕은 그냥 욕이다.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딱히 공감이 가지도 않는 비유(문화권의 문제라 봐도 너무 동떨어진)가 가득하다.

▲ 뭔가 욕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기에 짜내는 듯한 세인츠 로우의 욕

▲ 욕 사용의 올바른 사례

비단 욕만이 문제가 아니다. 리부트된 '세인츠 로우'는 전작이 고수하던 코믹 노선을 놓지 않았고, 어떻게든 게이머를 웃기고자 하는 장치들이 게임 내 곳곳에 들어차 있다. 문제는, 이게 전혀 웃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할아버지가 얼떨결에 배워 아무데서나 써먹는 요즘 유행어나, 첫 수업에서 교수님이 유쾌한 이미지를 구축하겠답시고 억지로 구사하는 개그마냥 어색하다.

이런 유행 지난 코믹 요소의 활용은 주 등장 인물의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주인공은 세 명의 동거인과 함께 사는데, 안경 쓴 너드, '아이돌' 출신의 SNS 중독자 근육맨, '판테라스' 출신의 운전 잘하고 비교적 상식적인 여성이다.

▲ 본인들이 매우 쿨하다 생각하는 소시민들

게임을 하다 보면 게임 내 등장 세력과 쉴 새 없이 충돌해야 하는 만큼, 이 과정에서 동거인들이 농담도 하고 충고도 하고 가끔은 질책하기도 하면서 만들어지는 케미가 게임의 주된 재미 요소 중 하나인데, 이 동거인들과의 대화조차 별로 재미가 없다. 마치 20년 전 캠퍼스 시트콤의 대사를 따온 듯 너무나 전형적인 대화들을 주고 받는데, 갓 오브 워에서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의 대화보다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이전작들처럼 막 나가지도 않는 것이, 게임 초반부에 주인공과 일당들은 고금리 금융 회사 하나를 터는데 그 이유가 월세를 낼 돈이 없어서다. 안 그래도 정신나간 컨셉을 지향하는 게임에서 갱단 출신의 인물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 월세 걱정이다. GTA V의 트레버처럼 남의 집을 점령하고 깽판을 치는 것 까지는 아니어도, 돈이 없어서 쓰레기통까지 뒤지는 보스를 보다 보면 이게 내가 알던 세인츠 로우가 맞나 싶다.

▲ 법을 어길 순 없으니 쓰레기통이라도 뒤져야 한다

"이런 거로 건 너무 그렇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문제를 굉장히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기본 가치는 재미이고, 게임마다 추구하는 재미의 지점은 각기 상이하다. 그런데 이 게임은, 노리고 설계한 재미의 지점자 세인츠 로우라는 시리즈의 핵심에 해당했던 광기와 코미디가 전혀 재미를 주지 못한다. 게임을 12시간 정도 플레이하면서 재밌다고 생각한 부분이 단 하나도 없었으면 문제가 있는 거다.

결과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면 할 수록 내가 예상했고, 원했던 세인츠 로우와는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좀 더 미쳐있길 바라는 세계는 생각보다 정의롭고, 법 없는것 처럼 살 것 같았던 주인공은 생각보다 법을 잘 지키고 있었으며, 위트와 참신한 비유로 가득차길 기대했던 대화는 의미없이 뱉는 쌍욕과 억지 인터넷 밈들로 채워져 있었다.

▲ 색다르다기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이루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루함을 만들어내고, 세인츠 로우의 유저 평가가 땅바닥까지 내려온 원인을 만든다. '세인츠 로우'라는 이름에서 기대했을 많은 부분들을 이 게임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세인츠 로우'라는 이름을 떼고 그냥 새로운 IP의 게임으로 나왔다면 조금은 달랐을 지도 모른다. 그래 봐야 조금이겠지만.



기본은 갖췄다. 기본만 갖췄다.

물론, 게임이 완전히 엉망진창은 아닌 만큼 '세인츠 로우'는 오픈월드 게임으로서 갖춰야 할 충분 조건을 갖추고 있다. 넓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참아줄 만한 맵과 꽤 지겹지만 갯수는 채워넣은 사이드 미션, 오픈월드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집 요소와 꽤 괜찮은 수준의 차량 및 무기 커스터마이징까지, 게임의 기본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물론 이 '기본'도 현재 게임에 존재하는 수많은 버그 때문에 좀처럼 빛을 보지 못하기에 수정이 시급하지만 말이다.

▲ 강화된 액션성과

▲ 차량 커스터마이징 등은 나름 좋은 부분

그리고 여기까지가 '세인츠 로우'라는 게임이 보여주는 장점의 전부다. 물론 세상에는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게임들이 차고 넘치기에 좋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인츠 로우'는 여타 다른 게임들과는 조금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두터운 팬층을 보유했던 기존 시리즈의 리부트이기에, 기존 팬층의 만족과 신규 팬의 유입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게임이 되어야 비로소 기본은 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다소 어색한 물리엔진과

▲ 갑자기 내 차를 뺏어 타는 경찰은 고쳐져야 할 부분

그리고 이렇듯 '게임으로서의 기본은 갖췄지만, 세인츠 로우로서는 충분하지 않은' 완성도에 대한 결과는 점수로 잘 드러난다. 현재 '세인츠 로우'의 평가 지표는 평론가 점수 60점 대, 유저 점수는 10점 만점에 2점대에 머물러 있다. 전작과의 연계를 고려하지 않고 평가하자면 독립된 게임으로서의 기본 정도는 갖췄기에 60점 정도는 줄 수 있겠지만, 시리즈 전작의 재미를 원하던 이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이렇듯, 야심찬 새 출발에 나선 '세인츠 로우' 시리즈는 출발과 동시에 위기를 맞이해버렸다. 어디를 가든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는데, 마치 해외로 떠나는 길에 여권을 깜빡하듯 너무나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다. 컨셉도 챙겼고, 게임 기본도 챙겼고, '세인츠 로우'라는 간판까지 챙겼는데 미처 '재미'를 놓고 와 버린 리부트 '세인츠 로우'. 시리즈의 앞날이 어떻게 될 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기껏 들고 온 간판이라도 챙기려면 아마 뼈를 깎는 노력이 더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시리즈의 미래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