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와 담원 기아가 이번 롤드컵 8강에서 만났다. 이번 대회 유일한 내전이다. LCK에서 매번 자웅을 겨루던 두 거인이 롤드컵 4강 진출이라는 같은 목표를 앞두고 다시 만났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많은 이가 뽑는 젠지와 LCK의 오랜 강호 담원 기아의 대결에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선 두 경기 모두 3:0으로 끝나 치열한 접전을 기다렸던 팬들에겐 다소 아쉬운 결과일수도 있는 이번 8강. 어찌 보면 가장 치열할 경기가 이 젠지와 담원 기아의 8강 세 번째 대결이 아닐까 싶다.

일단, 두 팀의 상대 전적을 알아보자. 단순히 LCK 전체만 놓고 보면 담원 기아가 약우위를 점하고 있다. 총 25승 22패다. 하지만 이는 적절한 비교는 아니다. 두 팀이 LCK에서 처음 만난 건 지난 2019년인데 당시 로스터는 지금과 큰 차이를 보인다. 담원 기아는 바텀 듀오가, 젠지는 정글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이 모두 달랐다.

좀 더 정확한 비교는 2022 LCK를 보면 된다. 젠지와 담원 기아 모두 지금과 거의 같은 로스터로 맞붙었다. 이건 젠지가 우위를 점했다. 총 11승 6패를 보였다. 젠지와 담원은 만날 때마다 풀세트 접전을 벌인 끝에 젠지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규 시즌엔 젠지가 항상 2:1 승리를, 포스트 시즌에선 3:2 승리를 거머쥔 바 있다.

두 팀이 이처럼 만날 때마다 치열하게 부딪히는 건 체급이 비슷하기 때문일거다. 양 팀 모두 어느 한 라인이 상대를 크게 앞선다는 느낌을 주진 못한다. 라인전이나 운영, 한타 구도에서 비슷한 결과를 내곤 했다.

이번 롤드컵에서 양 팀 선수들이 기록 중인 데이터도 비슷하다. '도란' 최현준과 '너구리' 장하권의 경우, KDA와 킬 관여율, 15분까지 골드 차이에서만 유의미한 차이를 보일 뿐 다른 지표에서 비슷한 값을 보였다. 이는 '쵸비' 정지훈과 '쇼메이커' 허수의 미드도 마찬가지였다.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 쪽은 정글이었다. '피넛' 한왕호는 극히 적은 평균 데스로 인한 높은 KDA, 낮은 킬 관여율, 높은 초반 경험치 차이를 보였다. 이와 반대로 '캐니언' 김건부는 '피넛'에 비하면 낮은 KDA, 높은 킬 관여율, 낮은 초반 경험치 차이를 기록했다. 바텀 쪽도 '룰러' 박재혁이 '덕담' 서대길보다 괜찮은 지표를 보이고 있다. '덕담'의 지표가 좋지 않은 건 결코 아니지만, '룰러' 쪽에 워낙 빼어나기에 어느 정도 차이를 보였다.


바텀 쪽은 후반 캐리롤 담당인 만큼, 스타일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탑과 미드가 비슷한 성향이기에 정글 쪽에서 승패가 나뉠 확률이 높다. '피넛'과 '캐니언'의 팀 내 영향력은 엄청난 수준이고 실제로 경기 향방을 좌우하는 움직임을 보일 때가 많아 이번에도 정글 쪽을 집중해서 봐야할 것 같다.

'피넛'은 팀의 지휘자, 혹은 야전 사령관 느낌을 물씬 풍기는 정글러다. 라인에 직접 개입한다기보단 폭넓은 움직임과 라이너의 강력함을 활용하는 압박으로 상대팀과의 격차를 크게 벌리는 스타일이다. 오프더레코드를 통해 여러 차례 공개된 것처럼 팀 내 메인오더 역할도 수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상황에 맞는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과 이를 팀에게 전파하는 오더가 일품인 정글러다.

'캐니언'은 좀 더 행동 대장 쪽에 가깝다. 각 라인에 직접 개입해 상대 라이너를 압박해주고 이를 통해 라인 주도권을 팀 쪽으로 끌어당겨 우위를 점하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상대 정글러와의 힘겨루기에서 승리해 직접 경기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한다. 좀 더 본인이 돋보이는 과정 속에서 캐리할 때 빛나는 스타일로 보인다.

만날 때마다 끝장을 봤던 젠지와 담원 기아. 이번 8강에서 또다시 만나 길고 짧음을 확인할 예정이다. 어느 한 쪽이 크게 부족하지 않은 양 팀인 만큼, 결과를 예상하는 게 쉽지 않다. 그나마 스타일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정글러 간 힘싸움의 결과가 양 팀의 승패를 나누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