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전설 여의 궤적(이하 여의 궤적)'을 한마디로 표현했을 때 '팔콤의 이단아'라는 말보다 더 어울리는 말도 없을 겁니다. 그만큼, '여의 궤적'은 여러모로 영웅전설 시리즈는 물론이고 궤적 시리즈를 통틀어서 유독 튀는 게임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일신한 그래픽과 새롭게 갈아엎은 전투 시스템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전투 시스템의 경우 커멘드 배틀과 액션형 필드 배틀을 접목한 게 특징으로 시리즈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궤적 시리즈 특유의 커멘드 배틀이 가지는 전략적인 요소를 유지하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액션을 통해 해소한 겁니다. 영웅전설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었죠.

물론 단순히 '여의 궤적'이 변화만 추구한 건 아니었습니다. 원래부터 OST 맛집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던 영웅전설 시리즈답게 여전히 뛰어난 OST와 스토리를 선보였죠. 커멘드 배틀이 가진 전략적인 요소 역시 놓치지 않았고요. 덕분에 '여의 궤적'은 궤적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키며, 시리즈 팬들로부터 호평이 이어졌습니다.

그랬던 '여의 궤적'의 정식 후속작 '영웅전설 여의 궤적2'가 27일, 마침내 정식 출시됐습니다. 미증유의 위기를 종식시킨 반 아크라이드와 그의 동료들이 모종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모이게 된 거죠. 전작을 만족스럽게 했다면 '여의 궤적2' 역시 여러모로 만족스러울 게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그저 전작을 답습하기만 했다는 건 아닙니다. 더 개선된 부분도 있기 때문이죠. 전작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여의 궤적2'입니다. 지금부터 그 변화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스토리와 관련된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게임명: 영웅전설 여의 궤적2 -CRIMSON SiN-
장르명: 턴제 스토리 RPG
출시일: 2022. 10. 27.
리뷰판: 1.011.000
개발사: 니혼 팔콤
서비스: 클라우디드 레오파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PS4, PS5
플레이: PS5


운명을 바꾸는 타임 리프 시스템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 일레인의 의뢰. 그리고 멈췄던 궤적은 다시금 이어집니다

'여의 궤적2'의 스토리는 큰 줄기에서 보자면 전작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피아 조직 아르마타의 위협이 사라진 결과, 칼바드 공화국은 다시금 평화로운 일상을 구가하게 되죠. 이러한 미증유의 위기를 해결한 주인공과 그의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모두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일상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위협이 싹트고 있었죠. 이러한 위기를 감지한 반 아크라이드와 그의 동료들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모종의 사건의 원인을 찾아 나서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다만, 이 자체로는 딱히 특별할 게 없습니다. 말 그대로 '여의 궤적2'의 스토리라인에 대한 것일 뿐이니까요. 어느 게임이나 저마다 스토리가 있죠. 중요한 건 그 스토리를 어떤 식으로 구성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입니다. '여의 궤적2'는 스토리 측면에서 전작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타임 리프 시스템을 들고 왔습니다. 타임 리프라는 명칭에서 대부분 어떤 시스템인지 예상이 될 겁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특정 분기로 돌아가서 예견된 미래를 바꾸는 그런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죠.

▲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잘못된 선택은 최악의 결과를 불러일으키고

▲ 타임 리프의 힘으로 과거로 돌아가 예정된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는 전작의 성향 시스템이랄 수 있는 L.G.C 얼라인먼트를 좀 더 강화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선택지에 따른 변화를 좀 더 넓은 형태로 확장한 셈이죠. 전작에서는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따라 반의 성향을 비롯해 전황이나 파티 멤버가 달라지곤 했습니다. 선택지가 단순한 지문이 아닌 변화를 안겨주는 요소로서 작용한 셈입니다.

'여의 궤적2'에서 추가된 타임 리프 시스템은 이러한 선택에 따른 변화를 더욱 넓은 범위로 확장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선택지와는 아무래도 결이 좀 다릅니다. 무엇보다 타임 리프의 경우 다소 강제적인 시스템이라고도 할 수 있죠. 타임 리프라고 하니 언제 어느 때고 잘못된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반과 동료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에야 발동하는 게 바로 타임 리프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트리거로 삼아서 새로운 분기를 찾는 그런 시스템, 그게 바로 타임 리프인 거죠.

▲ 아니에스와 르네가 함께함으로써 전과는 다른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다만, 그렇다고 마냥 마냥 스토리를 따라가는 그런 시스템이란 건 아닙니다. 인생에는 무수한 선택과 그에 따른 갈림길이 있다고 한 것처럼, '여의 궤적2'의 분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개의 분기밖에 없기에 타임 리프로 새로운 분기를 찾기가 쉽지만, 게임을 진행하면 할수록 분기 역시 점점 더 늘어나게 됩니다. 정해진 죽음을 피하기 위해선 플레이어가 직접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타임 리프로 인한 분기의 변화는 일종의 나비 효과로 그 결과를 바꾸게 됩니다.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예정된 미래가 바뀌게 되는 셈이죠. 다만,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타임 리프 시스템과 관련된 가장 큰 아쉬움으로는 이러한 변화, 분기에 플레이어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피할 수 없는 그런 죽음을 막기 위해 새로운 분기를 열기 위한 힌트를 찾거나 하는 그런 요소가 없는 건 아닙니다만, 문제는 그런 요소가 적다는 점이죠.

▲ 타임 리프는 흥미로운 설정이지만, 플레이어가 관여하는 부분은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중 대부분의 분기, 타임 리프는 플레이어가 직접 힌트를 모은다거나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게임 스토리상 자연스럽게 아까는 A를 선택했는데 실패했으니까 이번에는 B를 선택해보자 하는 식에 불과합니다. 즉, 타임 리프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저 하나의 스토리를 쭉 진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타임 리프에 좀 더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걸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더욱 발전한 전투 시스템, 아주 조금 더

▲ 전투 시스템을 비롯해 UI, UX 모두 전작과 큰 차이가 없는 모습

스토리의 경우 타임 리프 시스템을 통해 선택지에 따른 변화를 좀 더 확장했다면 전투 시스템은 커맨드 배틀과 액션형 필드 배틀 각각에 새로운 요소를 넣음으로써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서두에 팔콤의 이단아라고 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여의 궤적'은 여러모로 기존의 시리즈와는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무엇보다도 전투 시스템의 변화가 그러했죠. 영웅전설 시리즈, 그리고 궤적 시리즈 모두 기본적으로 커맨드 배틀, 이른바 턴제 방식이었습니다. 그랬던 전투 시스템에 '여의 궤적'은 액션형 필드 배틀 시스템을 도입했죠. 그리고 그 결과, 각각의 전투 시스템이 가지는 단점을 거의 완벽하게 해결했습니다.

▲ 전술, 전략이 특징인 커맨드 배틀 시스템에선 동료와의 연계나 스킬의 범위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커맨드 배틀 시스템은 전술과 전략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여의 궤적' 역시 마찬가지죠. 커맨드 배틀에서는 스킬 범위를 고려해서 캐릭터를 이동시키거나 근처에 있는 다른 캐릭터와의 연계를 고려해야 합니다. 동료들은 함께할 때 더욱 강하니까요. 물론, 모인다고 무조건 좋기만 한 건 아닙니다.

적이 공격하는 것 역시 고려해야 하죠. 자칫 잘못해서 아군의 연계만 우선시해 너무 모였다간 적의 범위 공격에 휩쓸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커맨드 배틀 시스템 자체로도 영웅전설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발전했다고 할 수 있는 '여의 궤적'이지만, 단점이 없던 건 아닙니다. 자칫 전투가 늘어질 수도 있다는 부분입니다. 턴제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라고 할 수도 있죠.

▲ 액션의 호쾌함과 턴제의 전략을 융합한 여의 궤적 시리즈의 전투 시스템

액션형 필드 배틀 시스템은 이러한 태생적인 단점을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커맨드 배틀과 달리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게 특징입니다. 덕분에 턴제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경쾌하면서 호쾌한 액션 감각을 선사합니다. 보스전 등을 제외하면 전투 중 커맨드 배틀과 필드 배틀을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여러모로 높은 평가를 줄 만합니다. 평소에는 필드 배틀로 속도감 있는 액션을 즐기다가 상황을 봐서 커맨드 배틀 시스템으로 전환해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전투를 진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 저스트 회피 시 발동하는 '크로스 차지'

이랬던 '여의 궤적' 특유의 전투 시스템이 '여의 궤적2'에서는 더욱 발전했습니다. 각각의 배틀 시스템에 새로운 요소들이 더해진 거죠. '크로스 차지'는 필드 배틀에 새롭게 추가된 액션 요소입니다. 저스트 회피 시 발동하는데 △ 버튼을 누르면 해당하는 파티 멤버로 조작이 바뀌면서 차지 어택을 날리게 됩니다. 동시에 해당 멤버는 공격력이 강화되기에 필드 액션의 속도감을 한층 끌어올려 줍니다.

커맨드 배틀에 추가된 'EX 체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적이 스턴 상태일 때 발동하는 EX 연출은 S 부스트를 1개 이상 소비해야 쓸 수 있는데 화려한 연출에 더해 강력한 범위 공격을 날립니다. 근처에 파티 멤버가 있다면 연계해서 발동할 수도 있죠. 이러한 두 시스템은 서로 조합했을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크로스 차지를 발동, 강화된 상태에서 적을 스턴 상태로 만든 후 샤드를 전개해 커맨드 배틀로 전환하면 바로 EX 체인을 쓸 수 있어서 강력한 적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 필드 액션 -> 커맨드 배틀 -> EX 체인으로의 자연스러운 연계

이처럼 '여의 궤적2'는 전작과 비교했을 때 전투 시스템과 관련해서 여러모로 선택지가 늘어났습니다. 전작처럼 해도 상관없지만, 새롭게 추가된 요소들 역시 어색하지 않게 녹아들어서 자연스럽게 쓰게 되죠.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투 시스템의 변화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더 발전했지만, 어디까지나 조금 더에 불과하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참작의 여지는 있습니다. 칼바드 공화국을 배경으로 한 여의 궤적 시리즈로서 연속성을 가지기 위해서 큰 변화를 주긴 어려웠을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여의 궤적2' 전투 시스템의 변화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변화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전작의 특징을 계승하면서 그걸 좀 더 확장했다는 의미로 말이죠.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여의 궤적2'는 전작을 훌륭하게 계승한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의미에서 본다면 이전 궤적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전작과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에 더해 새로운 요소들을 통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여의 궤적2'만의 재미를 추구했죠. 이는 분명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가 연결되는 '여의 궤적2'인 만큼, 대부분 전작을 한 게이머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전작의 요소들을 그저 조금 더 확장한 정도에 머물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앞서 언급한 타임 리프, 크로스 차지, EX 체인 정도를 제외하면 큰 변화가 없습니다. 다소 박하게 평가하자면 확장팩에서 새로운 기능이 조금 더 추가된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기에 '여의 궤적2'의 평가는 엇갈릴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전작에서 실망했다면 '여의 궤적2'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보자면 영웅전설, 그리고 궤적 시리즈의 팬이라면 전작을 훌륭하게 계승하고 발전한 '여의 궤적2' 역시 만족할만한 게임임이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