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엔 권장 파워를 빡빡하게 잡는 게 유행이었지만 지금은 절대 불가. 이미지는 3년 전쯤의 내 PC 견적

기계를 구성하는 부품 중 중요성을 따지면 뭘 하랴. 신체 기관 중에 중요하지 않은 장기는 없으며, 어느 한 곳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몸 전체에 이상 신호가 오는 것과 같이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모든 부품이 중요하고, 그들 간의 균형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컴퓨터 부품의 트렌드는 확실히 전력을 더 먹더라도 성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두 부품은 역시 CPU와 그래픽카드. 라인업별로 투자한 만큼 퍼포먼스에 있어 확실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고성능에 따라오는 고전력 부품들의 수요가 늘었고, 그만큼 일명 파워라고 불리는 파워 서플라이의 영향이 대단히 커지고 있다.

컴퓨터의 전력을 담당하여 이른바 심장으로도 불리는 파워 서플라이. 현실은 찬밥 신세다. CPU와 그래픽카드, 하다못해 번쩍번쩍한 LED와 팬으로 PC 맞출 맛 나게 하는 케이스에도 투자를 하는데 파워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디서 권장 파워라도 확인을 하고 구입했으면 좋겠는데, 다른 부품들을 알아보는 데에 지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구입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향후 그래픽카드를 업그레이드 할 계획이 있는 유저라면 예산이 조금 빠듯하더라도 파워를 한 체급 올리는 센스도 필요한데 말이다.

"누군가 많이 추천하고 좋은 파워라고 하니까 이 제품으로 해야지"라기 보다는 이 기사를 통해 파워 서플라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고 더불어 좋고 나쁨의 가벼운 필터링이 될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으면 한다.

▲ 80PLUS 인증 로고

▲ 물론 말이 나온지 한참이 되기도 해서 새로운 인증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웃는건 소비자의 몫

앞서 언급했듯이, 보통 파워 서플라이를 컴퓨터 시스템에서 심장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표현한다. 어떤 중요한 요소나 그 자체를 표현할 때 심장이라는 표현을 자주 활용할만큼 야수의 심장 인체에서도, 빗대는 표현에서도 그 중요성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다. 심장이 튼튼할수록 건강한 것과 같이 컴퓨터에서도 파워가 튼튼하면 보다 안정적인 시스템이 된다. 이런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성하기 위한 첫번째 선택 조건이 바로 80PLUS 인증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80PLUS 인증이 만능키는 아님을 얘기하고 싶다. 인증과 표준이라는 게 원래 독점이 되고 장기화가 되면 뭔가 부족하거나 수상한 게 하나씩 보이기 마련이니까. 다만 이러한 인증 마크가 있다면 적어도 수년 전, 컴퓨터 시장의 게이머를 한창 괴롭혔던 '뻥파워'는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파워 서플라이에 정말 진심이라면 Cybenetics(사이베네틱스)의 ETA & LAMBDA 인증 제도를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80PLUS 인증보다 훨씬 까다롭고 정밀한 검증을 거치는 것으로 현재 업계에서 신뢰도가 높은 인증이다. 또한 2022년에 도입된 ATX 3.0 규격도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핵심만 짚자면 빠르고 정확한 고효율의 출력을 밀어주는 규격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부합하는 제품을 선택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겠다. 앞서 파워의 중요성에 대해 나열했지만, 결국은 모든 부품 간의 밸런스가 가장 중요하고 그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배경은 역시 예산이다. 예산이 충분하다면 더 좋은 파워를 고려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냉랭한 법. 파워에 대해 아예 모르는 소비자 입장에서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가장 대표적이고 오래된 80PLUS 인증 제도를 가져왔다.

80PLUS는 파워 서플라이의 효율이 80% 이상일 때 붙는 인증 로고이며 현존하는 파워 효율에 관한 내용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신뢰도가 높은 인증이다. STANDARD(스탠다드) / BRONZE(브론즈) / SILVER(실버) / GOLD(골드) / PLATINUM(플래티넘) / TITANIUM(티타늄)의 총 6가지 인증이 존재하며, 뒤로 갈수록 효율이 높아지고 고성능을 발휘하는 파워 서플라이로 이해하면 되겠다.

80PLUS는 115V와 230V 두 가지 전압에서의 인증이 존재하며 각각의 전압에서 효율이 달라진다. 국내에서만 사용한다면 효율이 더 높은 230V 인증만 참고해도 좋다. 230V 인증의 경우, 115V 전압 인증에 비해 한 단계 정도 높은 효율을 보이기 때문이다. 효율이 높을수록 더 좋은 성능의 파워 서플라이이고 이는 전기세 절약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 80PLUS 인증 효율표






파워서플라이의 효율이 높을수록 전기세가 줄어든다고?


앞서 파워 서플라이의 인증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높은 인증의 제품이 효율이 높으면서 전기세도 절약을 해 준다고 했는데 과연 정말 그런지, 왜 그런지에 대해 궁금할 수 있겠다.

우선 파워 서플라이의 용량이 높으면 전기세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히 가질 수 밖에 없는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파워 서플라이의 용량과 전기세는 무관하다. 파워 서플라이는 용량에 상관없이 컴퓨터가 필요로 하는 전력만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이는 파워 규격이 1000W든 2000W든 컴퓨터에서 500W가 필요하다면 500W만 공급을 하게 된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거 아니야?"라는 얘기다.

파워 서플라이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교류(AC) 전류를 컴퓨터에 전원을 공급하는 직류(DC) 전류로 변환하는 장치이다. 이렇게 교류로 들어오는 전원을 직류로 변환하면서 전력이 손실 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손실을 퍼센트(%)로 나타내서 표기한 것이 효율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즉, 컴퓨터에서 필요로 하는 전력이 500W라고 가정하고 파워서플라이의 효율이 90%인 115V 골드인증 제품을 사용한다면 변환과정에서 발생하는 10%의 손실로 인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AC는 550W가 된다는 얘기.

동일한 가정 하에 효율이 85%인 브론즈 인증 제품의 파워를 사용한다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AC는 590W가 된다. 550W의 골드, 590W의 브론즈. 골드 등급의 인증을 받은 파워 서플라이와 브론즈 인증의 파워 서플라이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차이는 약 40W 정도가 되며, 이 정도 차이가 컴퓨터 사용시간에 맞물려서 전기세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력 효율이 높은 파워 서플라이 즉 높은 인증의 제품일수록 변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 손실을 줄여서 도리어 전기세를 절약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 중고가형 시스템에서 항상 좋은 선택을 받고 있는 '시소닉 FOCUS 골드 GM-850'





12V 가용력? 그게 뭔데? 중요해?

파워서플라이 선택시 알아두면 좋은 팁 중 12V 가용력이라는 요소도 있다.

12V는 컴퓨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전압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주요 부품에 12V 전압을 사용하게 되는데, 파워 용량 대비 사용할 수 있는 12V의 용량을 12V 가용력이라고 한다. 12V는 출력하는 전압이 높을수록 고사양을 요구로 하는 하드웨어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끔 돕는다.

보통 대부분의 파워 서플라이는 상단이나 측면에 아래와 같은 사양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고, 제품 상세 페이지 등에도 표기를 하기 때문에 12V 가용력도 좋은 파워를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겠다. 아래 예시는 1200W의 플래티넘 인증 제품과 700W의 스탠다드 인증 제품의 제품 사양 이미지를 예시로 가져왔다.

▲ 1200W 플래티넘 인증 제품의 12V 가용력은 1200W로 100%를 다 사용할 수 있고 100A의 높은 전압을 공급

▲ 700W의 스탠다드 인증 제품의 경우, 보장하는 12V는 600W로 12V 가용력은 85.6% 수준이고 50A의 전압을 공급





그래픽카드별 권장파워 선택 방법

앞서 언급한 파워 서플라이의 인증과 효율, 그리고 12V 가용력과 12V 출력 전압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이 됐다면, 가장 궁금할 부분이 남았다. 내가 사용할 그래픽카드는 과연 어느 정도의 파워 용량을 요구하는 걸까?

조금 비난 섞어 얘기하자면, 최근 그래픽카드들은 전기 먹는 하마가 되어가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도 아니고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전력은 감수하라는 얘긴지 그래픽카드의 권장 파워 용량은 날이 갈수록 무자비하게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최근 엔비디아에서 차세대 전력공급을 위한 새로운 커넥터인 12VHPWR를 발표했는데, 16핀 전용 커넥터가 혼용될 예정이라 이 부분도 고려할 수 밖에 없겠다.

▲ 보기만 해도 복잡하다.. 12VHPWR 커넥터 이미지

현재까지 출시된 엔비디아의 지포스 RTX 4090과 RTX 4080, RTX 4070Ti 그리고 라데온의 RX 7900 XTX와 RX 7900 XT 그래픽카드의 파워 서플라이 선택 요령은 다음과 같다.

그래픽카드에는 지포스의 경우 TGP(Total GPU POWER)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래픽카드 단독으로 소모하는 최대 전력량을 말한다. 이러한 TGP는 4070Ti의 경우 285W, 4080은 302W, 4090은 450W이며, 제조사에서 요구하는 권장 파워 용량은 각각 700W, 750W, 850W이다. 즉 12VHPWR 케이블을 지원하는 인증 제품으로 해당 권장 파워 용량에 맞게 구성한다면 무리 없이 그래픽카드를 구동할 수 있게 된다. 다만 현재 12VHPWR 케이블은 적용되어 있는 제품이 많이 없고 그래픽카드 자체에서 변환 젠더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도 있겠다.

라데온 그래픽카드는 지포스의 TGP 대신에 TBP(Typical Board Power)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RX 7900 XTX의 TBP는 355W, RX 7900 XT는 315W로 각각 800W와 750W의 권장 파워 용량을 요구로 한다. 다만 라데온은 지포스의 12VHPWR과 같은 전용 커넥터가 필요하지 않아서 파워 선택에 있어서 만큼은 지포스보다 자유로운 편이다.

보통 파워 서플라이는 시스템이 사용하는 최대 용량 대비 조금 더 넉넉하게 구성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최근 출시되는 CPU들도 전력제한을 해제하게 되면 200W는 우습게 넘어버리기 때문에 부스트 클럭이 터질 시 파워 서플라이가 공급할 수 있는 최대치를 넘어버리게 되면 시스템이 갑자기 꺼지는 셧다운 현상이 발생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최신 그래픽카드와 함께 이전 세대의 낮은 CPU로 구성하는 유저들은 드물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4070 Ti의 경우 700W보다 높은 최소 750W 이상을, 4080의 경우엔 850W, 그리고 4090은 1000W이상을 권장하고 싶다.

파워 서플라이 제조사의 선택은 자유롭게 해도 된다. 하지만 구성하려는 고가의 부품, 특히 많은 전력을 소모하는 그래픽카드를 기반으로 꾸린다면 못해도 골드 인증 이상의 파워를 권장하고 싶다. 시스템 전체를 보다 안정적으로 구축하면서 전기세 절감까지 가능하고 특히나 시스템의 심장이라 얘기할 수 있는 부품이기 때문에 선택의 우선도에 있어 어느 정도 앞쪽에 두는 것이 맞겠다.

▲ RTX 4090의 경우, 높은 전력과 ATX 3.0 규격에 부합하는 '시소닉 VERTEX GX-1200 골드 ATX 3.0'

▲ RTX 4080도 고가의 제품이니 '맥스엘리트 MAXWELL DUKE 1000W 플래티넘 ATX 3.0' 같은 제품을 추천한다





마치며

컴퓨터 각개 부품들의 성능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됨과 비례하여 요구하는 전력 소비량도 늘어났다. 그 지분은 앞서 언급한 CPU와 그래픽카드가 가장 크다. 다만 이를 마냥 원망할 것은 아니기도 하다. CPU와 그래픽카드의 평균 성능이 올라가면서 요즘은 어지간한 게임이 전부 돌아가는 고사양 시스템도 욕심 좀 덜어내면 200만 원 선에서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은 사실이니까.

RTX 40 출시 직전까지만 해도 부품 변경에 대한 수요가 있을 때, 그래픽카드만 바꿔도 어느 정도 해소되는 부분이 있었다. 교체하는 그래픽카드 사양에 비해 전반적인 부품 모두가 낙후된 시스템이었다면 아예 새로 구입하는 것이 확실했지만, 어지간하면 그래픽카드만 바꿔도 될 상황이거나 조금 더 나아가면 CPU 그리고 해당 부품과 호환되는 메인보드까지만 생각했어도 됐었다. 하지만 RTX 40의 출시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요구하는 전력 소비량 자체가 차원이 다르며, RTX 4080부터는 네 자리를 넘어가는 것이 안정적으로 느껴질 정도.

RTX 40 시리즈로의 그래픽카드 교체 계획이 있거나 아예 새로운 PC를 장만할 예정인 게이머께서는 파워 서플라이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실 필요가 있겠다. 특히 PC를 구성하는 부품들 중 가장 바꾸지 않는 것이 파워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PC 하드웨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CPU나 메모리, 그래픽카드나 SSD는 유행과 할인, 신제품 소식에 줄기차게 바꾸면서도 파워는 잘 건들지 않는다. 이왕 사는 김에 권장 규격 보다 한 등급 높게 사는 것도 향후 PC 시스템 계획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겠다.

▲ 요즘 업계에서는 화이트 시스템에 어울리는 흰색 파워 서플라이도 취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