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아블로 4 OBT 플레이 중 측정한 메모리 사용량. 심지어 전투가 아닌, 마을에서 측정했다

가정용 PC의 사양이 점차 상향 평준화가 되고 있는 요즘 사무용은 4GB~8GB, 그리고 게임은 16GB의 메모리 확보가 불문율이었다. 물론 과도기엔 저사양 게임은 좀 더 낮춰도 된다는 관점도 있었으나, 몇 년 전부터는 "그냥 게임은 16GB 해"가 곧 법칙이 되었다. 그거 아낀다고 살림이 나아지지도 않았을뿐더러 보통 게이머들은 게임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닌데? 난 게임만 하는데?". 그럴 리가 없다. 인기 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를 즐기는 게이머도 전적 검색 사이트나 챔피언 분석 혹은 공략은 기본이요, 대기 시간에 짤막하게 즐길 유튜브 창 하나는 열어놓고 시작한다. 내가 무슨 짓을 하지 않더라도 해당 창을 열어 놓는 것만으로도 메모리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외에 부수적으로 설치되어 작동하는 프로그램 또한 메모리 사용량에 영향을 준다.

▲ 최적화 문제로 단정 짓기에 25GB는 너무 많은 사용량이긴 하다

조금 따분한 얘기를 하자면 메모리, 즉 RAM(Random Access Memory)은 컴퓨터를 구성하는 주기억장치 중 하나로 가장 큰 특징은 휘발성이라는 건데, 말 그대로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지워지는 장치다. 이론을 설명하자면 하루 종일 해도 모자랄 테니 앞뒤 자르고 짧게 표현하자면 메모리의 역할은 작업을 수행하는 CPU와 비휘발성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는 SSD 혹은 HDD의 중간자 역할을 수행한다.

CPU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가 있으면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는 SSD나 HDD에서 가져와야 한다.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이 시간은 상대적이다. 1초에 수십억 번의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CPU 입장에선 SSD와의 협업이 시간과 정신의 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 이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바로 메모리의 역할이다.

메모리가 휘발성 장치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왜 큰 공간이 필요한 걸까? 앞서 언급했던, 게임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들에서 상향 평준화됨에 따라 요구하는 데이터 용량이 물리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2인용 식탁에서 구첩반상을 먹는 법, 간단하다. 갈비 한 점, 전 한 장, 국 한 컵 등으로 소량으로 찬을 들고 오면 된다. 그리고 부족한 음식이 있다면 부엌으로 가서 가져오면 된다.

▲ 흔한 게임 플레이 화면. 게임 클라이언트 + 게임 정보 사이트 + 유튜브 + 눈팅하는 사이트가 기본 옵션

▲ 롤은 권장에서 4GB 메모리를 요구하지만, 위 이미지에서의 메모리 사용량은 9.1GB

이는 컴퓨터의 메모리도 마찬가지로, 메모리 용량이 부족하면 직접 저장 공간에 요청하게 된다. 하지만 CPU 입장에서 너무도 느린 속도일뿐더러, 심지어 SSD에서 따로 수행하는 일이 있는데 그걸 처리하지 못하고 과부하가 지속된다면 우리가 싫어하는 그 랙이나 프로그램 튕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부엌으로 음식을 가지러 가다가 넘어질 수도 있고 음식이 쏟아질 수도 있는 거니까. 불편하겠다고? 그럼 메모리의 용량을 늘리면 된다. 2인용 식탁을 4인용으로, 6인용으로 그리고 8인용으로 구매하면 되는 것처럼. 크기가 커질수록 가격의 자릿수가 달라지는 가구와는 다르게 메모리의 가격은 꽤 착한 편이다, 요즘 더 그렇고.

2년 전쯤인가. 타이틀을 밝힐 수 없는 기대작 게임에서 16GB 이상의 권장 메모리를 요구한 적이 있다. 그땐 "정말 이렇게까지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했으나, 이번 디아블로 4 얼리 액세스를 겪으며 이 내용도 슬슬 현실화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물론 디아블로 4의 경우 앞뒤를 살펴보니 최적화로 발생된 이슈가 맞다. 하지만 디아블로 4 하면서 인벤에서 정보 검색을 안 한다고? 유튜브는 어쩌고? 메모리 16GB로 안심하던 좋은 시절은 이제 다 간 것 같다.

▲ 남자라며 멋모르고 질렀던 풀뱅크(메모리 슬롯 모두 사용함을 지칭)가 이렇게 도움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