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업계가 그림 AI(AI Image Generator,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로 연일 화제다. 개인 간 커미션부터 웹소설, 웹툰 등에 그림 AI가 활용된다는 의혹이 발생하면서 홍역을 앓는 모습이다. 그림 AI를 둘러싼 쟁점은 크게 2가지다. 반대 측은 먼저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창작자의 노력, 영감이 들어간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을 들면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불특정 다수의 일러스트로 학습시킨 그림 AI에 키워드를 넣고 만들어 낸 것이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저작권 침해에 대한 얘기 역시 뜨겁다. 그림 AI 대부분은 원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그들의 그림을 학습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행태에 대해 '도둑질'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며, 그림 AI 학습에 이용하는 건 물론이고 그 결과물조차도 저작권 침해에 일조하는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떨까. 실제로도 그림 AI는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을까. 이에 인벤에서는 이철우 변호사와의 문답을 통해 최근 화두에 오른 그림 AI에 대해 묻는 시간을 가졌다. 이철우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 엔터테인먼트 전문분야 등록 변호사로 게임 사건 수행 경력을 기초로 게임, 영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관련하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P2E 게임 허용에 관한 소송', '우마무스메 프리티더비 소비자 집단 소송', '리니지 소비자 집단 소송' 등을 비롯해 약 50건의 게임 관련 사건을 수행한 바 있다.

▲ 이철우 게임·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


화풍도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화풍은 아이디어 영역, 보호 대상 못돼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있어서 화풍은 그 무엇보다 민감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시프트업의 김형태 대표의 경우 이른바 '김형태풍' 일러스트라고 하면 알만한 사람들은 다들 '아, 그 그림체?'라고 떠올릴 정도다. 이러한 화풍은 그들 일러스트레이터가 쌓아 올린 노력, 그리고 영감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화풍을 무단으로 그림 AI에 학습시키는 행위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는 의견도 적지 않다. 비약하자면 그림 AI를 활용한 또 다른 형태의 트레이싱이라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다.

▲ 일러스트레이터 혈라 특유의 화풍을 엿볼 수 있는 캐릭터 디자인

하지만 이철우 변호사는 이러한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화풍'은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인 저작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여기서 말하는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뜻한다. 즉, 인간의 사상 또는 감성에 해당하는 '아이디어'만으로는 저작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구체적인 형태로 외부에 표현되어야만 비로소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게 된다.

"이러한 저작권법상의 법리를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이라고 한다. 즉, 게임의 장르나 문학의 모티브, 미술의 화풍 및 음악적 스타일 등은 아이디어에 속하는 영역으로서 그 자체로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실제 사례도 있다. 의정부지방법원 2021. 1. 14 선고 2019노3415 판결이다. 판결에서는 '제작기법이나 표현 형식, 화풍(畫風)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므로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해 내려오는 제작 기법, 표현 형식이나 화풍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고소인이 독창적으로 표현한 부분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 김형태 대표의 그림을 학습한 그림 AI가 만든 결과물 (출처: 김형태 대표 트위터)

얼핏, 그림 AI에 너무나도 유리해 보이지만, 좀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그림 AI가 만든 그 결과물 역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림 AI가 새로운 화풍을 창조했다고 해도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을뿐더러, 더 나아가 하나의 창작물을 만들었다고 해도 지금의 법으로는 이마저도 저작권법 보호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아직 법원에 의해 정확한 법률해석이 이루어진 바가 없지만, 저작권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창의적으로 표현하여야 발생하는 것이기에, AI가 명령에 따라 스스로 생성한 표현물은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침팬지가 그린 그림이나 고양이가 찍은 사진에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전망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AI를 작업 능률 향상을 위한 도구라는 관점에서 볼 때 독창성이 인정될 정도로 기발하고 자세한 구도를 명령어로 입력했거나, AI가 생성한 그림을 리터칭 또는 배합하는 식으로 창작성을 부가하는 경우라면 저작권이 인정될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경우는 드물 것 같다고 덧붙였다.


비단 일러스트 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AI는 현재 소설부터 음악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영감을 표현하는 창작의 영역 전면에 걸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유명 소설가의 '작법'이나 음악의 '악풍'을 학습하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창작물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화풍과 마찬가지로 저작권법 보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소설의 작법이나 음악의 악풍도 어디까지나 '아이디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제 그림으로 학습시키지 마세요"
현행법상 모호한 침해 판단 여부, 법안 마련 시급


▲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학습 방법 등을 공유할 정도

화풍 등이 저작권법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과 그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들었다. 그렇다면 그 이전 단계인 학습에 쓰이는 건 어떨까.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자신의 저작물이 AI 학습에 쓰이는 경우,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도둑질에 해당할까.

"도의적인 문제를 떠나서 저작물인 그림이나 소설, 음악 그 자체를 무단으로 학습에 이용하는 행위도 저작권법 침해로 직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이철우 변호사는 어느 부분을 침해한 것인지도 불분명할뿐더러 연구 및 학습 등의 저작권 공정이용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어느 부분을 침해했는지 판단하기 불분명한 건 넘어가더라도 뒷부분은 공정이용이라는 미명하에 법망을 교묘하게 피한 모양새다.

무단 학습과 관련해 이를 보호할 명확한 법안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EU의 AI 법(AI Act) 역시 콘텐츠에 AI가 활용됐다면 'Made with AI(AI 작성)'이라는 문구를 넣으라고 하는 정도다. 다만, 법제화만을 기다리면서 마냥 손 놓고 있는 것도 아니다.

▲ 글레이즈는 보호 필터를 씌움으로써 그림 AI의 학습을 막는 형태다

이를 막기 위한 활동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시카고 대학에서 만든 저작권 보호 필터 글레이즈(Glaze)가 대표적이다. 글레이즈는 일러스트에 보이지 않는 특수한 필터를 씌움으로써 그림 AI가 이를 학습, 모방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림 AI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는 가운데 이를 막기 위한 기술 역시 점점 더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술을 기술로써 막는 창과의 방패의 싸움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서 마련되어야 하는 게 있다. 바로 법안에 대한 부분이다. AI 학습의 어디까지가 공정이용에 속하는지 명확히 정의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를 막는 기술만이 유일한 대책일 수밖에 없다. 그림 AI라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는 만큼, 이에 대한 명확한 법안 마련이 시급해 보였다.

▲ 판독 사이트까지 등장했지만, 그림 AI가 발전하면서 판별 역시 부정확해지고 있다


상업적으로까지 쓰이는 그림 AI
유용한 도구 될 수 있지만, 사용했음을 명확히 밝혀야



정리하자면, 현행법상 상업적으로 그림 AI를 쓰는 데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명시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웹소설 표지, 웹툰, 그리고 게임의 원화에 이르기까지 그림 AI를 썼을 경우 이를 명확히 알려야 한다. 앞서 언급한 EU의 AI 법이라거나 일러스트레이터가 직접 그렸다는 의미에서 노력이 들어갔다는 걸 알려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현행법상 '사기'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철우 변호사는 커미션을 예로 들었다.

"A가 B라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커미션을 맡긴다고 해보자. 그림 AI가 쓰일 거라는 걸 모르던 A는 B가 직접 그려줄 것이라 믿고 맡겼을 때 B 역시 그림 AI를 썼다는 사실을 숨긴 채 커미션비를 수령하였다면 사기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

커미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김형태 대표가 자신의 트위터에 AI 그림을 올린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게임 업계에서는 그림 AI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논의가 활발히 오가고 있다. 문제는 이를 명시했는가다. 실제로 일부 사례의 경우 그림 AI 사용 여부를 명시하지 않았다가 들켜서 홍역을 앓은 바 있다. 단순히 유저들의 기대를 배신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커미션 사례와 마찬가지로 잘못하면 사기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레이아크는 '사이터스'에 그림 AI 사용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다만, 그림 AI를 썼다는 사실을 숨겼다고 해서 무조건 사기죄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이철우 변호사는 모 연예인의 '대작 미술품 거래 사건'을 예로 들면서 "대법원이 '피해자들이 미술작품을 조씨의 친작으로 착오한 상태에서 구매한 것이라 단정하기도 어렵다'라 판시하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는 점을 참고해 본다면, '일러스트레이터가 직접 그린 그림이 아니라 AI가 생성한 그림을 받을 줄 알았다면 거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정'이 충분히 입증되어야 사기죄의 유죄판결에 이를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AI와 관련된 저작권법 논쟁은 현재 전 세계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이 새로운 기술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선, 그리고 쓰이기 위해선 이는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문제다. 이에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철우 변호사에게 앞으로 AI와 관련된 저작권법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었다.

"결국 현재 시점에서 AI 생성 표현물과 관련하여 가장 문제가 되는 저작권 쟁점은 'AI가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기존의 저작물을 학습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라 볼 수 있다. 이미 위에서 우리나라의 현행 저작권법을 위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앞으로는 법과 제도가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