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지도자는 선수로 활동한 경험이 꼭 필요할까? 필수는 아니지만 사실상 필수로 여겨지는 게 일반적이다. 스포츠 업계에서 활동하는 코치의 대부분은 선수 출신, 일명 선출이고, 매우 적은 숫자의 비선출 코치가 있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e스포츠도 코치는 대부분 선수로 뛴 경험이 있다.


비선수 출신이 코치가 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꿈을 가진 사람은 적지 않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룬 사람도 몇몇 존재한다. 프로게임단 광동 프릭스의 ‘밀리마스’ 김건우 코치는 선수 출신이 아님에도 프로 무대에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지도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코치가 되기 전 솔로랭크 챌린저 티어를 달성했고, 게임코치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또한, 인벤 리그 오브 레전드 탑 게시판에서 오랜 시간 활동한 유저이기도 하다.

비선출 프로 팀 코치라는 꿈을 이룬 지 반년이 지난 어느 여름,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인 LCK가 열리는 종로 LoL 파크에서 ‘밀리마스’ 김건우 코치를 만났다. 여전히 앳되지만 조금은 통통해진 얼굴로 웃으며 반긴 김건우 코치는 자신이 겪은 프로 무대가 여태 알고 쌓아온 지식을 또 한 번 재정립하게 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프로 씬에 입성할 때만 해도 내 머리가 커졌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막상 프로 무대를 경험해보니 내가 알고 있던 게임들은 사실 내가 모르는 거 라는 걸, 아직도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비선출이라서 드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솔로랭크와 팀 게임은 엄청나게 간격이 크다고 느껴요.”

김건우 코치는 프로 무대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하나씩 전하면서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는 코치로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건, ‘두두’ 이동주의 플레이 스타일을 바꾼 ‘씨맥’ 김대호 감독의 지도 방식이었다.

▲ 가까운 자리에 함께 앉은 '밀리마스' 코치와 '두두'

“두두 선수가 팀에 처음 왔을 때는 팀에서 캐리 롤을 혼자 맡았잖아요. 그래서 무리를 덜 해도 되는 위치에서 무리를 해야지 이길 수 있는 게임을 줄곧 했어요. 저는 그런 마인드셋이나 운영 방식을 고치기가 되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김대호 감독님은 그걸 이틀동안 선수와 이야기하면서 어떤 상황에 잠가야 하는지, 어떤 상황에 무리를 해도 되는지를 세세하게 잡아줬어요.

제 입장에서는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왜냐하면 한 선수가 2년, 3년에 걸쳐서 몸에 배인 습관을 고친다는 건, 알려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카데미 코치를 하면서 누군가의 좋지 않은 습관을 고칠 때는 적어도 한두 달 시간을 두고 수업을 했어요. 그런데 프로 선수인 ‘두두’와 김대호 감독이 대화를 하면서 그걸 이틀만에 해내는 걸 보면서 ‘이게 프로 선수구나’, ‘이게 프로 팀의 감독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하던 거는 새발의 피였던 거죠."

김건우 코치는 새로운 무대에서 더 큰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 무대는 학원이 아니다. 김건우 코치도 팀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광동 프릭스에서 김건우 코치가 맡은 역할을 무엇일까? 김건우 코치는 자신이 해온 일들을 전했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이었다.

“제가 탑 라이너 출신이다보니 초반에는 두두 선수와 1:1을 자주 했어요. 레넥톤, 잭스 구도나 사이온, 제이스 구도라든가, 상대적으로 조작이 간편한 챔피언을 제거하면서 1:1을 했어요. 연습을 하면서 ‘두두’ 이동주라는 선수가 솔로랭크로는 판별할 수 없는 1:1에서의 디테일을 한 판, 한 판 할수록 더 쌓아가는 선수라는 걸 느꼈어요. 처음에는 ‘진짜 레넥톤, 잭스 구도를 해도 되는 게 맞나? 너무 무서운데?’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제가 이겼다면, 판 수가 쌓일수록 저는 상대가 되지 않고 다른 프로 선수들과 해도 이길 정도로 디테일을 쌓아갔어요. 두두라는 선수는 어제보다 오늘 더 잘하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선수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제가 두두 선수가 성장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요. 특히 두두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저에게 1:1을 졌을 때는 자기가 더 하자고 할 정도로 열정이 있어요. 제가 기여를 많이 했다고 말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두두 선수가 좋은 플레이를 할 때면 제가 다 보람차고, 코치로서 프라이드가 생기기도 해요.

하지만 지금은 그 부분이 제 고민이기도 해요. 제가 처음 팀에 들어올 때 가장 자신있었던 게 선수에게 1:1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거였는데, 지금은 제 솔로랭크 티어가 챌린저도 아니고, 두두 선수도 제가 도와줄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다보니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요즘은 1:1 연습보다는 자료 정리나 감독님이 밴픽을 짤 때, 초안을 미리 준비하는 등 약간 사무적인 부분을 위주로 일하고 있어요.”

김건우 코치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대호 감독은 지도자로서 상당히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그의 지도 방식은 다른 감독들과는 다른 스타일로 여러모로 주목을 받는다. 김건우 코치는 김대호 감독 옆에서 그를 배우며 또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대호 감독님께 경기 내용을 피드백하는 방법에 대해 제일 크게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저희 팀도 이제 반년이 넘어가다보니 내용적인 부분에서도 어느 정도 반복적으로 숙달이 되는 과정이에요.

감독님의 가장 큰 장점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이를 전달하는 화법과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 부분은 사람마다 어울리는 방식이 다르니까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겠지요. 김대호 감독님처럼 저도 저만의 피드백 방식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물론, 제 코칭 능력이 어느 정도 올라오더라도 김대호 감독님이 계셔서 직접적인 코칭보다는 서브 코칭 일을 계속하면서 그쪽 능력을 키워나가게 될 것 같아요."

비선출 출신으로 프로 무대의 코치가 되겠다는 꿈을 이룬 ‘밀리마스’ 김건우 코치. 그러나 언제나 꿈과 현실은 괴리가 있다. 꿈이 현실이 되면서 느낀 바는 무엇일까? 김건우 코치는 현재 코치라는 직업에 어느 정도로 만족하고 있을까?

▲ (왼쪽부터) 광동 프릭스 김대호 감독, 밀리마스 코치, '두두' 이동주

“100점 만점에 50점이 넘으니까 만족도는 높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70점 정도인 것 같아요. 코치라는 직업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알려줘야 하는 직업인데, 지금은 제가 많이 부족해서 저 자신에 대한 의구심이나 부족함을 좀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직업 만족도는 높지만, 저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가 조금 떨어져서 70점이라고 생각해요."

광동 프릭스에서 꿈을 이룬 김건우 코치는 이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김건우 코치는 자신의 꿈을 두 가지로 나누어 말했다.

“지금 제가 가진 꿈은 롤드컵 진출이에요. 그리고 두 번째 목표는, 저는 우리 광동 프릭스라는 팀에서 김대호 감독님과 저희 선수들이 롤드컵을 우승할 수 있는 선수들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아요. 광동 프릭스에서 롤드컵을 우승하는 게 두 번째 목표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서머 스플릿에 치르는 한 경기, 한 경기가 정말 중요해요. 우리의 현실적인 목표는 5등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플레이오프를 위해서 오늘 경기가 중요했고, 다음 경기인 디플러스 기아 경기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희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고,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건우 코치는 자신처럼 비선출로 코치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건냈다. 누군가에게 쉽게 조언을 하기 어려운 게 요즘 현실이지만, 꿈을 이룬 사람으로서 다른 누군가의 꿈을 이어갈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말은 울림이 있었다.

“저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비선출로 코치를 꿈꾸시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전 인터뷰에서는 학원 코치로서 그런 분들한테 이야기를 해드렸지만, 이번에는 프로 씬의 코치로서 이야기를 드리네요.

되게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미래가 불확정적이라도, 이 길을 가고 싶다면 꼭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꿈을 이뤘을 때 감정은 지금까지 겪은 고생이 오히려 행운이었다고 느낄 정도로 너무 행복한 삶인 것 같아요.”


[ 내용 수정 : 2023.07.05. 10:08 ] 오타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