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레인',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으로 이름을 알린 프랑스의 게임 개발사 퀀틱 드림이 정말 오랜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엄밀히 따지면 인디 개발사 패러렐 스튜디오의 작품이지만, 퀀틱 드림이 자신들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서사 중심의 인디 게임을 퍼블리싱한다는 점에서 일찍이 눈길이 갔다.

'언더 더 웨이브(Under The Waves)'는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옭아매는 거대한 슬픔과 마주하는 모습을 그려낸 어드벤처 게임이다. 주제만 보면 뭔가 심각하고 어려운 이야기가 게임 전반을 어둡게 채우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이 게임의 정수는 깊은 바닷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며 다양한 수집 요소를 찾는 모험 요소에 있다. 공기통을 메고 바닷속을 자유롭게 누비고,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는 1인용 잠수정을 타고 더 깊은 심해를 탐험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대왕고래와 혹등고래, 돌묵상어와 같은 생소한 바닷속 생물들과 마주하는 경험은 이 게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게임명: 언더 더 웨이브 (Under The Waves)
장르명: 어드벤처
출시일: 2023. 8. 29.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패러랠 스튜디오
서비스: 퀀틱 드림
플랫폼: PC(Steam), XBOX, PS
플레이: PC



넓고, 깊고, 안전하고, 느긋한 바닷속 탐험


언더 더 웨이브는 전문 잠수부 스탠의 삶을 조명하며 천천히 흘러간다. 바닷속 기지의 시설 관리원으로 파견된 스탠은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고, 상부 관리자로부터 내려온 지시를 모니터로 확인한 뒤, 잠수 장비를 갖추고 심해에서의 일과를 시작한다. 주어지는 임무는 관리 상태가 좋지 않은 장비를 점검하거나, 무성하게 자란 해초를 떼어내는 것들처럼 대부분 자잘한 것들이다. 몇 가지 임무를 달성하면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플레이어의 것이며, 그 시간은 온전히 드넓은 바닷속을 마음껏 누비며 탐험하는데 할애할 수 있다.

언더 더 웨이브에서 그려지는 바다는 유럽 대륙 북쪽의 북해 중심부로, 가장 얕은 곳도 수심 1,000m는 거뜬히 넘기는 진짜 심해다. 심해평원이나 해구, 해저화산과 같은 다양한 심해 지형들이 넓은 범위에 걸쳐서 꽤 상세하게 묘사되며, 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수생 생물들이 플레이어를 반겨준다. 다양한 고래와 상어들, 문어, 바다거북과 함께 수영하고,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물고기 떼의 모습에 심취할 수도 있다. 심해 잠수복을 입은 상태로, 또는 심해 탐사 장비인 1인용 잠수정 '문'을 조종하여 깊은 바닷속을 마음껏 유영하는 재미, 이것이 언더 더 웨이브의 가장 특별한 매력이다.

▲ 바닷속 생태계의 모습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감동이 있다

▲ 다양한 수집 요소로 가득한 심해가 게임의 주요 무대가 된다

언더 더 웨이브에서의 바다 속 활동은 생존을 위해 끊임 없이 움직이며 생산 활동을 반복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 '서브노티카'의 바다와 조금 다른 결을 보여준다.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 중에서 플라스틱이나 고철, 기계부품 등을 주워 새로운 장비를 만들거나 장비를 강화할 수 있지만, 생존을 위해 식량을 구하고, 물을 정수하여 식수를 만들거나 보금자리를 개척할 필요는 없다. 게임 속 수집이나 제작 요소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활동일 뿐, 스토리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 요소로 남기 때문이다.

물론 선택을 통해 수집과 제작, 탐사 활동에 힘을 쏟으면 그만큼 게임은 더 풍성한 매력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시가 스탠이 자유시간에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미니 게임들이다. 거칠고 항해가 불편한 것으로 정평이 난 북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언더 더 웨이브의 바닷속에서는 침몰된 배, 비행기, 헬리콥터의 잔재를 꽤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이곳을 탐사하며 획득한 물건들은 스탠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보물이 되어준다. 낡은 기타와 카세트 테이프를 주웠다면 마치 리듬 게임 같은 색다른 재미가 있는 연주 콘텐츠가 해금되고, 오래된 명화나 스노우볼을 주웠다면 바닷속 기지에 장식해서 화려하게 꾸밀 수 있는 식이다.

▲ 음파 탐지기로 바닷속 지형을 살펴보면, 가끔 보물을 발견할 때도 있다

▲ 바다에서 획득한 물건들은 또 하나의 즐길거리가 되어 준다

이러한 게임의 구조는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분명한 호불호 포인트가 된다.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을 감상하고 바닥에 가라앉은 잡동사니를 수집하며 바닷속 생활 그 자체를 여유롭게 즐기는 것이 목적이라면, 언더 더 웨이브의 게임 플레이를 통해 꽤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스토리를 진행하고 이야기의 엔딩을 보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라면, 수집과 제작을 포함한 바닷속에서의 대부분의 활동이 플레이어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텅 비어 있는 콘텐츠로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스토리에서 획득할 수 있는 산소막대만 잘 주웠다면 산소부족으로 게임오버가 될 일도 없고, 제작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결핍으로 인한 불편함을 느낄 일도 없다.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바다를 탐험하다가 가끔 혹등고래나 고래상어 같은 희귀한 수생생물을 만나면 기념으로 사진을 찍기만 해도 충분히 엔딩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열심히 장비를 강화하고 재료를 모았다고 해도 전투 콘텐츠 같은 것에서 이것들을 활용할 일이 없으니, 도전과제나 트로피 달성에 의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스토리 엔딩을 보고 난 뒤에 깊은 허탈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 처음엔 바닷속 모든 상자를 다 열어보겠다는 열정으로 뜨겁게 타오르지만, 이것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 도전과제 달성에 뜻이 없다면, 제작 테이블 역시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담담하게 전하는 상실과 마주하는 방법, 그리고 '환경 보호'


언더 더 웨이브라는 게임이 다루고자 하는 진짜 주제는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주인공 스탠의 모습을 통해 그려진다. 지상과 단절된 세상인 깊은 심해로 몸을 숨긴 스탠은 고립 속에서 잊고 싶었던 상실의 아픔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진정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결정을 내리게 된다.

만약 비슷한 아픔을 겪어본 이들이나 같은 형태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스탠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게임에 더 깊게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이러한 스토리의 흐름이 전부 컷신 형태로 단조롭게 이어지며, 플레이어의 개입이 최소화됐다는 점이다. 절절한 스토리가 이어져도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것은 게임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앞으로 움직이기', '컷신 보기' 정도에 그친다.

위에서 언급했듯 스토리를 제외한 나머지 컨텐츠는 대부분 부가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이를 전부 무시하더라도 엔딩은 볼 수 있게 구성됐다. 엔딩 선택지 역시 앞에서 플레이했던 것들의 영향은 일절 존재하지 않으며, 1 또는 2의 선택지에 따라 갈릴 뿐이다. 채집 요소를 최소화하고 빠르게 플레이할 시 약 다섯 시간 전후로 게임의 엔딩을 보는 것도 가능하다.

▲ 스토리 내내 상실의 아픔을 강조하는 연출이 이어지지만, 대부분 컷신을 감상하는 식이다

이러한 구조상 플레이어가 게임의 스토리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현시점의 언더 더 웨이브는 산재한 버그들이 이를 방해하고 있다. 캐릭터가 벽에 끼어 버리는 문제부터 스토리 진행 시 화면이 뚝뚝 끊기는 프레임 문제, 특정 구간 진입 시 끝없이 땅속으로 빠져버리거나 BGM이 갑자기 멈추는 등 몰입을 방해하는 구간이 여럿 남아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이겨내고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바닷속 탐험과 임무를 반복하며 게임 속 주인공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 충분히 이입할 수 있었다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잔잔한 감동이 전해지는 스토리인 것은 분명하다. 부가적인 요소로 그친 전반부의 게임 플레이에 직접 겪을 수 있는 시련이나 극복 요소를 더 넣고, 게임 속 이야기를 '스탠'이라는 캐릭터의 이야기가 아닌 '플레이어 자신의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게 만들었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 캐릭터 모델링이 투과되어 보인다거나 이상한 빛이 화면을 가리는 것은 귀여운 수준이다

▲ 샤워할 때도 결코 비니를 벗지 않는 주인공에 어떻게든 몰입해야 한다

언더 더 웨이브는 스탠이 마주하고 있는 상실의 아픔 외에도 '환경 보호'라는 또 다른 주제를 함께 이야기한다. 게임 전반에 비영리 환경 단체 '서프라이더 재단(Surfrider Foundation)'이 언급되고 있으며, 바닷속 쓰레기를 주워 재활용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환경 파괴로 고통받는 수생생물들의 모습을 비추며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는 식이다.

스탠이 물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사용하는 산소 막대, 그리고 막힌 문을 열기 위해 사용하는 지뢰 등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 활용하는 모든 아이템이 사용 후 해양 쓰레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히 명시된다. 환경 보호 테마는 게임의 메인 스토리와는 다른 결을 가지는 별개의 이야기로 그려지지만, 언더 더 웨이브는 이를 효과적으로 묘사하며 플레이어에게 분명한 경각심을 주고 있다.

만약 주인공이 겪고 있는 상실의 아픔과 이야기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심해 곳곳에서 발견되는 해양 쓰레기와 이를 통해 오염된 바다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바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언더 더 웨이브는 그것만으로도 분명한 의의가 있는 게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해류와 바람의 영향으로 해양 쓰레기가 한 곳에 응집된 모습도 그려진다. 대부분 생활 쓰레기들이다

▲ 원유 잔여물을 뒤집어쓰고 고통받는 고래를 도와줄 수도 있다



'언더 더 웨이브'는 여러모로 플레이어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품이다. 단순히 공익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서사 중심의 게임에 그치지 않고, 게임으로서의 재미를 위해 여러모로 고민한 흔적도 함께 엿보이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더 많은 이들에게 게임의 매력을 피력하기 위해서는 플레이 과정에서의 불편함을 줄이는, 게임으로서의 완성도 역시 갖춰야 하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언더 더 웨이브는 바닷속 탐험 요소를 더해 약 8시간 정도의 플레이 볼륨을 가지고 있으며, 심해 곳곳을 탐험하며 모든 수집 요소를 다 찾으려고 한다면 10시간 이상의 볼륨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퀀틱 드림이 함께 했다고는 해도, 인디 게임 개발사의 작업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볼륨인 것은 분명하다. 그간의 여러 작업물 중 언더 더 웨이브라는 타이틀 하나를 접해본 것이 전부이지만, 앞으로도 패러렐 스튜디오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이 보여줄 새로운 작품들을 계속 기대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