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회사에 출근하면서 요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리니지에 PK 서버가 열린다는데?"

필자는 내성적인 성격과 얌전한 행동에 어울리지 않게, 그야말로 치열했던 시기의 리니지를 즐겼던 추억이 있습니다. 물론 성격상 스스로 전투의 주축이 되어 선봉에 나서지는 않았으나 함께 게임을 즐겼던 형님들을 지원하기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적들을 괴롭히곤 했습니다.

요리조리 피해다니면서 괴롭히는 제가 미웠는지 접속만 하면 어느 사냥터를 가든 득달같이 뒤를 쫓아 달려올 정도로 많은 분들에게 과분한 관심을 받으면서 즐겁게 리니지를 즐겼으나,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되면서부터 정들었던 캐릭터를 봉인하게 되었습니다.




[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NC 양반. PK 서버라니! ]



추억은 미화되는 것이 보통이라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과연 똑같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제가 재미있게 즐겼던 시절의 리니지는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에 열을 올리지만, 재입대하는 꿈은 최악의 악몽인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그 당시 온라인 게임의 문제점들이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하던 시절이긴 했지만 딱히 이렇다할 제재나 규제도 부족했고, 게임 내의 문화 역시 개발사의 자율이나 유저들의 자정 능력에만 기대는 수준이었습니다. 온라인 게임이 산업으로 발돋움하던 초기였기 때문에 최근에 당연시되는 초보 게이머에 대한 배려나 강제적인 게임 내의 규칙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사 PK 서버가 열린다는 소식에 귀가 펄럭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으면서 끊임없는 이슈를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그만큼 저 스스로도 재미있게 즐겼고, 또 한국의 온라인 게임 역사를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는 없는 기념비적인 게임이 리니지니까요.



어쨌거나 한동안 잊혀져 있던 머릿속의 추억을 끄집어내주는 소식에, 리니지의 전투 특화 서버라는 것이 어떤건지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은 보다 발전된 방향으로 업데이트를 추구하는 것이 보통인데 어찌보면 과거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는 PK 서버를 지금에서야 연다는 것은 업계의 일반적인 성향을 생각해도 쉽지 않은 모험입니다.

리니지의 콘텐츠를 즐기지 않는 분들은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업데이트냐고 주장하실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리니지를 즐겨왔던 대다수의 유저들이 가장 바래왔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레벨 제한이 있었던 시절 긴장감 가득한 리니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업데이트의 당위성은 충분합니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18세, 청소년 이용 불가의 표시입니다. NC소프트는 6월 23일 "이용자간 일방적인 대결이 가능하며, 대결의 결과에 따른 보상이나 손실이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PvP 서버로 청소년 이용 불가 등급을 받았습니다. 현재 리니지의 공식 홈페이지 하단에도 12세, 15세, 18세가 나란히 표시되어 서버별로 새로운 이용 등급이 적용된다는 것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리니지에 등장한 전투 특화 서버, 바포메트 서버는 기존의 서버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49의 레벨 제한과 1일 12시간의 플레이타임 제한입니다. 현재 리니지의 레벨은 99가 끝이지만 사실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게이머들이 혼자만의 힘으로 80이 넘는 레벨을 올리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50레벨부터 레벨업을 할 때 능력치를 1씩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기존서버에서는 장비뿐만 아니라 레벨도 동급으로 갖춰 주어야 그나마 리니지를 "즐길" 수 있습니다.

리니지가 재미없어졌다는 의견이 가장 많이 등장한 시기가 50레벨 제한이 풀리면서 오만의 탑이 등장했던 때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바포메트 서버의 49레벨 제한은 유저들의 요구가 십분 반영된 부분으로 보여집니다. 현재 49에 묶여있는 바포메트 서버의 레벨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해제되긴 하겠지만, 해제되더라도 최대 60 이상은 풀리지 않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 바포메트 서버 풍경 (출처: 리니지 공식 홈페이지) ]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성향에 따른 변경점! 리니지에서 사라졌던 PK 아이템 드랍이 부활하였습니다. 기존 서버에서 선한 성향의 로우풀(Lawful)캐릭터는 죽더라도 100%에 가까운 수치로 아이템이 보호되었으나, 바포메트 서버에서는 로우풀캐릭터라고 해도 PK를 당할 경우 아이템을 떨굴 확률이 생겼습니다.

반대로 악한 성향인 카오틱(Chaotic) 캐릭터는 기존 서버에 비해 아이템을 떨굴 확률이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로우풀 캐릭터에 비하면 여전히 아이템을 떨굴 확률이 높지만, 한번 죽으면 대부분의 아이템이 증발했던 기존 서버에 비해 확실히 확률이 낮아졌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성향에 따른 능력치의 변화도 생겨났습니다. 성향이 강해질수록 로우풀 캐릭터는 방어도와 마법저항, 카오틱 캐릭터는 타격치와 주술력에 보너스를 받게 됩니다. 악 성향의 끝인 -32767 수치에 도달할 경우 타격치에 +5, 주술력에 +3 이라는 막강한 보너스가 붙기 때문에 방어도만 증가하는 로우풀 캐릭터에 비하면 카오틱 캐릭터가 사냥에 훨씬 유리합니다.

카오틱 성향에 따른 게임 내의 불이익도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현재 바포메트 서버의 캐릭터들은 10레벨만 넘어도 악 성향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황당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PK를 할 경우 현실의 시간으로 24시간동안 경비병에게 공격받던 페널티도 사라져서, 심지어 경비병의 앞에서 PK를 하더라도 아무런 페널티가 없습니다. 그리고 PK 횟수가 100회를 넘기면 속죄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강제로 들어가야 했던 지옥 역시 사라졌습니다.

결국 바포메트 서버의 유저들은 전투 특화 서버라는 말처럼 초보만 벗어나면 바로 PK를 겪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리니지의 원조 부제목이었던 Blood Pledge, 혈맹도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리니지의 최종 콘텐츠 중 하나인 공성전을 위해 필수인 혈맹은 인원이 오히려 줄었습니다. 군주의 카리스마 수치에 따라 받아들인 혈맹원이 끝이고, 기존 서버에 있던 혈맹간의 동맹이나 연합은 이제 시스템적으로 지원되지 않습니다.

결국 혈맹은 꼭 필요한 인원들만 검증을 거쳐서 받아들이던 끈끈한 결속력의 시절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공성전에 도전할 수 있는 성 역시 켄트성, 윈다우드 성, 오크 성의 3개뿐이기 때문에 혈맹간의 이합집산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시스템적으로 동맹이 지원되지 않으니 유저들의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는 협력과 배신은 이제 공성전의 필수 요소로 등장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외에도 강화에 사용되는 무기 마법 주문서와 갑옷 마법 주문서가 제한되어 대부분의 상점에서 사라지는 등 경제적인 부분도 수정되었습니다. 눈 비비며 사냥하다 주문서 하나 먹으면 환호를 외쳤던 그때 그 시절로 일정 부분이나마 되돌아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위에 언급한 대부분의 변경점들은 공통적으로 한 곳을 지향합니다.

바로 리니지의 올드 유저들이 바라마지 않았던 추억속의 리니지가 정말로 등장했다는 뜻입니다. 이를 증명하듯 현재 바포메트 서버는 서버 인원 제한을 넘어 접속조차 힘든 상황입니다.

바포메트 서버를 체험해본 올드 유저들은 "이게 진짜 리니지"라는 표현으로 이번 서버의 오픈을 반기고 있습니다. 리니지의 콘텐츠를 즐겨보지 않은 분들이야 왜 고생을 사서 하냐는 의문이 들지 모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추억의 리니지를 떠올리던 게이머들이 대거 귀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심지어 유저들은 어차피 18세 받은 마당에 성인 인증까지 했으니, 도박성 논란으로 삭제되었던 슬라임 경주장이나 개 경주장같은 도박성 콘텐츠들의 부활까지 요청하고 있습니다.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유저들이 가장 바래왔던 추억의 콘텐츠 중 하나가 바로 경주장이니만큼 차후 NC 소프트의 선택이 궁금해집니다.







유저들의 반응을 뒤로 하고, 리니지의 전투 특화 서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먼저 예상해볼 수 있는 것은 NC소프트 역시 금지하고 있는 아이템 현금거래의 문제입니다.

강화 주문서가 소수의 상점 구입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냥으로만 해결되고 캐릭터 레벨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템의 가치는 점점 상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발적인 선택이긴 해도 PK를 강요받는 시스템 하에서 유저들은 끊임없이 현금거래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리니지는 사냥만으로 극복하기 힘든 상황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현금거래를 하지 않고 정상적인 게임 내의 경제만으로도 플레이는 가능하겠지만, 현금거래에 익숙한 리니지의 유저들이 그냥 얌전하게 게임 안의 방법으로만 아이템을 얻거나 복구할 것이란 전망은 탁상공론입니다.


현재 모 아이템거래 사이트의 가격만 비교해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기존 서버 중에서 거래가 활발하고 인기있는 서버의 아데나 거래 가격은 100만 아데나당 약 5,000 ~ 10,000원 정도. 현재 바포메트 서버는 1만 아데나당 2,000 ~ 3,000원, 최저가로 비교해봐도 40배입니다. 신규 서버의 프리미엄이 있긴 하지만, 현재의 인기만 유지하더라도 바포메트 서버가 10배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될 것이란 예상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돈이 있는 곳에 언제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예상해볼 수 있는 것은 과거 리니지가 여러차례 홍역을 겪기도 했었던 집단 PK와 사냥터 통제입니다. 이 문제는 사실 앞서 언급한 현금거래와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이용한 자동사냥이야 OTP 인증과 게임 내 유저들의 자정활동으로 예방한다 쳐도, PK에 대한 페널티가 적은 현재의 상태로는 머지않아 집단 PK와 사냥터 통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전투 특화 서버라는 이름을 내걸었으니 운영자가 통제나 집단 PK에 필요 이상의 제재를 가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10년전의 리니지처럼 "억울하면 강해져라." 혹은 "꼬우면 다른데 가서 놀아." 라는 논란이 벌어질 것이 뻔히 예상됩니다. 바포메트 서버가 그들만의 리그로 남게 될까요? 아니면 추억을 기대하던 유저들의 커뮤니티로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치열했던 리니지를 재현하게 될 분수령이 될까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완벽한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리니지를 게이머가 바랄지라도,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외부의 시선은 게임사에게 그 책임을 묻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처럼 규제와 제재가 없는 상황도 아니고, 특히 게임업계의 선두 기업으로서 이런 부작용이 커질수록 책임은 부메랑이 되어 NC소프트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언제적 리니지냐며 비판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단지 현금거래의 장점만으로 리니지라는 게임이 이렇게 성공적인 서비스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등장한 수많은 온라인게임들과 비교해봐도 리니지 정도의 커뮤니티와 경제 순환 구조를 갖춘 게임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습니다.

리니지는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NC소프트의 간판 게임입니다. 오히려 컬러요금제를 도입하고 게임 내의 콘텐츠를 개편하면서부터는 과거 전성기 시절 못지 않은 동시접속자수를 자랑하면서 아직까지 현역이라는 것을 증명해왔습니다.

리니지를 즐겨왔던 한 사람의 팬으로써, 전투 특화 서버라는 사뭇 도발적인 NC소프트의 도전에는 무엇보다 먼저 우려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리니지의 전성기와 지금은 주변 환경이나 게이머의 수준도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투 특화 서버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온라인게임에는 끝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 이 말을 지켜온 게임은 많지 않습니다. 추억속에 남아있던 그때 그 시절의 리니지가 부활한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반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서비스가 10년을 훌쩍 넘기면서 업계 이슈의 최전방에서는 살짝 비켜선 모양새였지만, 이번 전투 특화 서버를 오픈하면서 리니지는 다시금 전성기 못지않은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과거로의 회귀를 택한 리니지의 전투 특화 서버가 NC소프트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게임업계에는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