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레우스를 떠나보낸 크레토스가 돌아왔습니다. 후속작 얘기가 아닙니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엔딩 직후 후일담을 다루는 '발할라' DLC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번 DLC에서 크레토스는 모종의 편지를 받아 전사들이 영원한 투쟁을 되풀이하고 즐긴다는 발할라로 걸음을 옮깁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로그라이트 콘텐츠로만 생각했습니다. 발할라는 상징하는 영원한 투쟁이라는 요소와 무료 DLC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죠.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로그라이트 콘텐츠로서 전투에 충실할 뿐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내러티브마저도 완벽한 DLC였습니다. 본편의 후일담으로서 여운마저도 완벽한 모습이었죠.


본편과 DLC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발할라' DLC는 로그라이트 요소와 내러티브 크게 2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 리뷰에서는 로그라이트 요소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발할라' DLC를 구성하는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로그라이트 게임을 해봤다면 바로 적응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발할라에 입성한 크레토스는 일종의 제약으로 거의 모든 힘을 잃게 됩니다. 발두르, 토르는 물론이고 오딘까지 꺾으면서 마련한 강력한 방어구와 유물들을 비롯해 룬(스킬)이나 각종 능력치 역시 초기화된 상태로 시련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전부 초기화된 건 아닙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무기 스킬만큼은 전부 해금된 상태이기에 공격력과 방어력이 약해졌다는 느낌은 들지언정 적어도 이 부분에서 답답함을 느낄 여지는 적습니다. 리바이어던 도끼를 비롯해 혼돈의 블레이드,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드라우프니르 창 각각의 무기를 교체하면서 콤보를 이어 나가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죠.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능력치가 그대로라면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적은 점점 강해지는데 크레토스는 그대로이니 말이죠. '발할라' DLC 역시 이 점 역시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보물상자를 열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시련 중 일회성으로 룬이나 유물을 얻거나 능력치를 강화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그럼에도 시련이 끝나면 초기화된다는 게 얼핏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매번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건 생각만큼,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영구적으로 강해지는 방법 역시 존재합니다. 시련을 클리어하거나 희미한 메아리라고 해서 죽으면 사라지는 재화로 영구적인 재화를 사는거죠.

이렇게 얻은 영구적인 재화로는 발할라에 입장하기 전 상형문자라고 하는 '발할라' DLC만의 아이템 슬롯을 늘리거나 능력치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로그라이트로서는 정석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방식들을 통해 '발할라' DLC는 본편과는 사뭇 다른 성장의 재미와 즐길거리를 안겨줍니다.


로그라이트 콘텐츠라는 첫인상으로 인해 간과했었지만, 사실 '발할라' DLC의 진면목은 내러티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본편인 라그나로크의 후일담으로서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내러티브를 보여주죠.

본편에서 오딘의 압제를 종식하고 마침내 평화의 시대를 연 크레토스지만, '발할라' DLC에서는 어딘지 고민이 가득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트레우스가 떠난 빈자리에 마음이 헛헛한 것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프레이야를 비롯한 생존자들이 크레토스에게 새로운 전쟁의 신이 되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본편에서 과거 폭력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던 자신이 평화를 수호하는 전쟁이 신이 될 거라는 예언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진 크레토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전쟁이 신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아레스의 왕좌, 전쟁의 신의 왕좌는 지금도 계속해서 크레토스를 괴롭힌다

그리스 판테온을 손수 참살하는 등 무자비했던 자신이 평화를 수호하는 전쟁의 신이 된다는 게 가당키나 하겠냐는 의문이 계속해서 크레토스를 따라다녔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모든 신성을 거부하던 그에게 있어서 전쟁의 신 자리는 그야말로 더더욱 피하고 싶은 자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조언자 미미르와 프레이야의 계속되는 설득에도 불구하고 크레토스는 자신이 정말 전쟁의 신의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고뇌를 거듭합니다. 그러던 중 받게 된 모종의 편지로 인해 발할라로 향하게 되죠.

그곳에서 크레토스는 자신의 과거를 정면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그를 괴롭히고 있는, 그가 눈 돌리고 싶어 한 그리스의 이야기를 말이죠. 분노로 끓어오르던 그의 일생이지만, 이제는 원숙해진 크레토스의 모습처럼 이 모든 과정을 '발할라' DLC는 그저 담담하게 보여줄 뿐입니다. 크레토스 역시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죠. 묵묵히 받아들입니다.여전히 무게감 있는 모습으로 모든 일들을 마무리 지은 본편의 후일담다운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 발할라에서 크레토스는 계속해서 자신의 과거와 과오를 마주하고 나아간다

정리하자면 '발할라' DLC는 여운마저도 완벽한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뛰어난 완성도에 이게 왜 무료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죠. 이처럼 거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 '발할라' DLC지만, 한 가지 단점 아닌 단점도 있습니다. 사실상의 진엔딩이라는 점입니다. 본편의 종지부를 찍는 동시에 크레토스라는 캐릭터의 서사를 완성하는 DLC로서 시리즈 팬이라면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무료 DLC인 만큼, 심각한 단점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굳이 단점을 거론해야 한다면 이런 부분에서 아쉬울 수도 있다는 정도에 불과하죠. 비슷한 이유로 로그라이트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5개로 난이도를 구분한 만큼, 로그라이트 특유의 반복적인 요소가 싫다면 제일 쉬운 난이도를 선택해서 즐기면 됩니다. 팬들을 위한 '선물'인 만큼, 개발사인 산타모니카가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많은 신경을 썼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팬들에게 있어서 즐거운 연말 선물이 된 '발할라' DLC입니다. 스토리만 즐길 경우 5시간 정도면 충분하고 그러면서도 완성도 높은 서사를 자랑하는 만큼, 아직 해보지 않은 분들이 계신다면 부디 이번 기회에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 본편 못지않은, 어쩌면 본편 이상의 여운을 안겨줄지는 모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