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동네 마블의 영웅들을 데려왔던 '마블 어벤져스'. 배트맨 죽음 이후의 배트맨 패밀리를 주역으로 한 '고담 나이트'. 이들은 모두 코믹스 속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걸 파밍 중심의 라이브 서비스 게임으로 만들고자 했다. 결과는 다 안다. 처절하다 못해 감히 옹호해 줄 말 한마디 남기기 어려울 정도로 폭삭 망해버렸다.

위 두 게임은 저마다 정확한 실패의 원인은 달랐지만, 여럿이 협동하면서 스킨도 팔고, 랜덤 능력치가 달린 장비도 모으는 게임의 시스템이 영 어울리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했다. 그것이 똑같은 공식을 따르는 수어사이드 스쿼드: 킬 더 저스티스(Suicide Squad: Kill The Justice League, 이하 SSKJL)에 걱정의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거기다 실패한 게임의 공통점으로 꼽히는 출시 연기 역시 많았다.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이거 실패할 거라는 예측이 있었다면 반쯤은 믿을 판이었다.

이렇게 SSKJL은 출시 전부터 실패의 플래그를 잔뜩 세웠다. 실제로 사전 공개된 영상에서도 실망의 댓글이 넘쳤다. 우려 속에서 어릴 적부터 '코믹스는 DC보다 마블'을 외치며 DC의 수호자를 자처해온 만큼 '까도 내가 까고, 오해는 직접 푼다'라는 마음으로 얼리 액세스부터 엔드 게임까지 충분히 플레이했다. 그리고 패드를 손에서 놓는 지금. 돌아보면 이 게임에는 재미있는 부분이 많고, 분명 더 재미있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해보면 다르다니까'라고 권하기엔 그 재미를 잡아먹는 결함이 너무 크고, 많고, 또 치명적이다.

◼︎ 스포일러 다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게임명: 수어사이드 스쿼드: 킬 더 저스티스
장르명: 3인칭 슈터
출시일: 2023.2.2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락스테디 스튜디오
서비스: WB 게임즈
플랫폼: PC, PS, Xbox
플레이: PC


그래도 날아다니는 거랑 그래픽은 멋지다고요

장점부터 짚고 넘어가자. 장점은 몇 안 되고, 이것부터 말해야 뒤에 말할 결함의 이유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밝은 곳에서 정부가 처리하기 어려운 일들을 범죄자를 활용해 처리하기 위해 모은 팀이다. DC코믹스에 워낙 기괴하고 정신 나간 빌런들이 즐비하다보니 미치광이라는 표현은 잘 정돈됐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미친ㄴ과 미친ㄴ의 소굴이다. 팀을 이끄는 아르거스의 아만다 월러도 정부 측 인사임에도 더할 나위 없이 폭력적이다. 빌런 척추에 머리가 터지는 폭탄을 설치하고는 여차하면 이걸 터트리고 책임 없음을 시전할 정도니 사실상 빌런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재밌는 건 막상 이런 악당들을 모아두고 이름처럼 죽음을 불사한 일을 시키니 나름의 정의심도 생기고, 서로의 팀워크도 맞아간다는 점이다. 그게 그저 나쁜놈이기만 한 빌런의 캐릭터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거기서 이 시리즈가 원하는 재미가 생긴다. SSKJL은 이런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핵심을 그대로 게임 안에 만들어냈다.

그나마 상식적인 인물인 플로이드 '데드샷'을 제외하면 인간의 상식이 부족해 아이 같은 나나우에 '킹 샤크', 이 구역의 미친자를 자처하는 '할리 퀸'젤, 그리고 그런 할리 퀸이 정상으로 보이는 하크니스 '캡틴 부메랑'의 조합. 작품 내내 이들의 팀 태스크포스X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다. 해결될 만하면 사고를 치는 부메랑에 말이 통하다가도 어린 아이처럼 제멋대로 구는 할리 퀸 탓에 문제는 더 꼬이고 복잡해져 간다.

▲ 제대로 돌아버린 캡틴 부메랑은 웃음벨 그 자체일 정도로 유쾌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적어도 외계에서 온 브레이니악에게 세뇌를 당한 저스티스 리그를 상대하면서 이들에겐 서로를 잇는 전우애 비슷한 게 생긴다. 물론 이것도 단순히 생각하는 군인의 그것과는 좀 다르지만.

할리는 배트맨, 캡틴 부메랑은 플래시라는 전통적인 라이벌 구조에 데드샷도 그린 랜턴에 대한 악한 감정이 작품 내에서 강조된다. 슈퍼맨, 배트맨, 그린랜턴, 플래시 등 저스티스 리그는 상대적으로 한없이 나약한 태스크포스X가 그냥은 상대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분노, 그리고 안 싸우면 윌러의 손에 의해 폭탄이 터져 죽는 상황이 맞물리며 이걸 극복할 수밖에 이들에게 묘한 정의감과 팀워크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개그 코드가 전체에 깔려있어 이쪽 개그가 맞는다면 게임 내내 웃으면서 이벤트 신을 지켜볼 수 있다. DC코믹스를 좋아한다면 사소한 대화에 숨긴 여러 작품 설정 언급, 오마주 등도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이렇게 플레이어가 주인공인 태스크포스X 4명에만 감정 이입한다면 주인공들의 감정적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연출이 굉장히 다양하게 그려진다. 서로를 힐난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의지하면서 조금씩 끈끈해지는, 그런 방식으로 말이다. 익숙하면서도 고전적이다. 이런 이야기 구조가 굉장히 뛰어난 그래픽 연출과 만나 힘을 더했다.

▲ 그래도 팀다운 팀이 되어가는 태스크포스X

스토리 상의 그래픽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가장 큰 강점으로 작용한다. 세밀한 질감이나 인물들의 표정 변화, 대사에 따른 작은 움직임, 비나 모래 같은 요소의 표현, 플래시의 스피드 포스나 그린 랜턴의 에너지 같은 부분의 묘사 등 몰입감을 높이는 것들로 가득하다. 이게 게임 안에서도 제대로 구현은 되어 있다.

이게 플레이 밖에서 게임을 지켜보는 쪽의 특징이라면, 캐릭터의 특징을 살린 이동 연출 쪽은 플레이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을 준다. 게임은 하이스피드 3인칭 슈터면서 많은 적을 뿌려두고 동시 다발적인 공격을 피하고 적을 찾도록 유도한다. 심지어 슈퍼맨의 도시이자 게임의 배경인 메트로폴리스는 절경을 이루는 마천루로 유명하다. 높은 빌딩과 위를 오가는 전투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걸 플레이적으로 해결한 방법은 하늘을 빠르게 이동하는 공중 액션이다. 사실 공중에 떠올라 적을 공격하는 시스템 자체가 특별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간은 개념 자체가 대개 부스터 추진을 받아 공중에 떠 있거나 아예 하늘을 날 수 있는 존재의 활용 정도였다.

SSKJL은 루트 슈터가 가진 한계점인 캐릭터성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깨부쉈다. 일단 DC코믹스 속 전혀 다른 캐릭터라는 점은 둘째 치더라도 이동과 전투에서 핵심이 되는 공중 액션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했다.

▲ 이게 재밌을 줄도, 몇 안 되는 장점일 줄도 출시 전엔 몰랐다

이 게임에서 그냥 나는 법이란 없다. 할리는 공중에 훅을 걸고 웹스윙하듯 공중을 횡단하고 부메랑은 자신의 부메랑을 날려 스피드포스로 빠르게 이동해 잡아채 공중을 순식간에 옮겨 다닌다. 킹 샤크는 바닥을 박차고 높게 날듯 뛰어오르거나 평지에서 뛰어가서 멀리 뛰는 방식으로 공중 이동을 수행한다. 제트팩을 이용한 데드샷 정도가 익숙한 방식으로 하늘을 나는데 그마저도 추진에 제한을 둬 마냥 하늘에 떠있게만 하지는 못하게 만들었다. 나름의 개성도 더하면서 특정 캐릭터가 지나치게 유리한 부분은 지우고, 또 저마다 강점을 살린 방식의 차별점을 만든 셈이다.

출시 전만 해도 굳이 왜 날아다니면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점을 풀긴 어려웠다. 적어도 출시된 게임 안에서는 게임 플레이와 엮어 그걸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는 거다.

또 슈터 자체의 건 액션도 훌륭한데 빠른 스피드에 어울리는 무기 전환과 여러 특수 능력의 조합이 긴박감을 더하도록 했다. 아캄 시리즈의 특징인 콤보 시스템도 더했는데 콤보가 쌓일수록 주는 캐릭터별 특징을 스킬 트리 형태로 구성했다. 빠르게 적을 찾아다니며 콤보를 쌓고, 그걸로 더 강력한 공격과 특수 능력을 사용하며 플레이어 스스로 속도감을 높이는 시스템이다.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밋밋한 타격감도 패드 진동과 함께 적어도 즐길 정도는 만들어졌다. 대신 패드 없이 즐기기에는 여전히 밋밋하니 패드 사용은 필수처럼 느껴진다.



어긋나는 재미 그래프, 재미가 나와야 할 때 단점이 나와버리고

위에서 설명한 부분은 게임의 플레이 중 분명 느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안타깝게도 게임 플레이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점은 아니다. 게임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그걸 느낄 수 있는 구간이 존재하는데 시기에 따라서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된다. 후반에 재미를 주는 요소는 앞에 단점이 커 재미를 붙이기 어렵고, 뒤에 단점이 큰 요소는 그 단점이 너무 커 앞선 기억을 잊게 한다.

이 게임은 협동 구조를 바탕에 둔 루트 중심의 슈터다. 그리고 그걸 위해 장기적으로 싱글 플레이가 아니라 멀티플레이를, 또 한 번 엔딩을 보면 끝나는 일회성 게임보다는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게임의 생명력을 키우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 됐다. 그런데 이 구조가 게임의 거대한 구조와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지를 않는다.

게임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도시 메트로폴리스를 훌륭하게 구현했다. 데일리 플래닛이나 슈퍼맨의 동상 같은 곳도 그려지고 수준 높은 그래픽으로 멀리서 볼 때의 경관도 그럴듯하다. 다만 그 안은 그야말로 공허하다.

▲ 뭔가 많아 보이는 것 같지만 다 그게 그거인 전투 미션에 그친다

멀티플레이를 기반으로 한 라이브 루트 슈터. 결국, 게임은 이 그럴 듯한 메트로폴리스에 이유 없이 반복되는 미션만을 집어던져 놓았다. 엔드 게임으로 가는 길목인 싱글플레이에는 이 이유 없는 반복성 콘텐츠를 녹여내기 위해 기믹을 더했다. 펭귄, 포이즌 아이비, 기즈모 등 태스크포트X를 도와주는 여러 조력자의 임무라는 식으로 거점 지키기, 인명 구조 등으로 이를 비틀었다. 하지만 비틀린 건 게임 방식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참을성이다.

각각의 기믹이 치명타 공격, 혹은 수류탄이나 반격으로만 처치 등 특정 요소만으로 적을 제압하도록 강요한다. 아캄 시리즈처럼 콤보를 빠르게 쌓고, 그걸로 적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호쾌하게 쓸어버려야 하는데 그걸 게임이 스스로 막고 있는 식이다. 한창 재밌어야 할 중후반에 전투가 귀찮아지기 시작하는 거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미션은 메트로폴리스 곳곳에 있지만, 반대로 이런 미션을 빼면 제대로 된 임무라고 할 것도 없다. 장비 개조나 제작에 쓰일 재료를 주는 일일 계약, 게임 후반부에 추가되는 대난동도 그저 의미 없는 적 처치나 행동을 강제하는 무의미한 콘텐츠에 그친다.

여기에 난잡한 UI 역시 하이스피드 슈터가 주는 강점을 찢어버린다. 미션마다 목적이 다른데, 그걸 그저 한 화면 안에 정보 형태로 다 띄워버린다. 정작 화면 가리면 안 되니 그게 또 구석에 조그맣게 몰려있고, HUD를 끄자니 임무 클리어를 위한 위치, 처리 상황까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 이 조악하고 난잡한 HUD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앞서 말했듯 오픈 월드를 이동하는 주인공 각각의 방식은 흥미롭고 실제로도 재미있다. 마블 스파이더맨에서 웹 스윙으로 도심을 이동하는 것과는 색다르지만, 분명 각자의 재미가 있다. 그런데 그저 이동에서의 재미로 끝난다면? 적을 잡을수록 쌓이는 콤보로 속도감 있는 전투를 즐겨야 하는데 일반 도심에서는 적 셋이나 넷 정도가 순찰을 다니는 정도다. 수류탄 하나면 정리된다. 그럼 이제 많은 적을 만나고 싶어 미션에 들어가면 특정 기믹 때문에 맘대로 죽이질 못한다. 다시 적은 적을 만나고 싶고 그럼 밋밋하고, 또 많은 적을 조우하면 귀찮고. 이 반복이다. 아무리 웹 스윙이 재밌어도 전투가 재미없다고 도시 사이만 날아다녔으면 오늘의 마블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었을까?

루트 슈터로서의 또 다른 한계는 캐릭터성의 제약에 있다. 아무리 캐릭터만의 특징을 살린다고 해도 획득하는 총기를 사용한다는 기본 개념은 같다. 결국, 권총, 소총, 미니건 등 몇 가지 총기 종류를 활용하는 건 캐릭터가 달라져도 똑같다.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게 특수 능력인데 이게 주력이 되면 정작 총기 활용은 제약될 터. 캐릭터 간의 밸런스도 유지해야 하니 이걸 마음대로 쓰지 못하도록 어느 정도 쿨타임을 길게 배정해놨다.

▲ 호쾌하게 쓸어버려야 하는데 치명타에만 피해를 입는다니, 얼마나 귀찮은지

인게임에서 이동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전투의 메커니즘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기껏 이동에서 매력을 느끼게 해도 전투 안에서의 불합리함에 지치고, 월드 내에서 의미 없이 반복되는 미션 마크만을 쫓아 움직이게 된다. 그 미션도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퀘스트보다는 모습만 다르지 알맹이는 다를 바 없는 루트 슈터에서의 전투형 반복 임무에 가깝다. 결국, 재미를 느끼던 이동 시스템도 의미 없는 비행에 그치게 된다.

저스티스 리그와의 대결은 그나마 강력한 존재와의 대결이 주는 위압감, 상대적으로 느끼게 되는 불리함을 보여주는 특징을 잡아내긴 했다. 특히 처음 배트맨을 조우할 때는 아캄 트릴로지에서 배트맨을 상대하는 악당이 된 듯한 공포감까지 느끼게 한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다크 나이트가 테이크 다운을 노리고, 심지어 불살주의까지 내버리고 거침없이 살육을 저지르는 배트맨이라 더욱 공포스럽다.

하지만 배트맨과의 최종 대결을 포함해 보스전은 반복과 싱거운 기믹으로 귀결된다. 거대 보스, 그리고 빠른 이동 속도의 패턴도 흡사하다. 난잡한 HUD때문에 거친 총격전보다는 등 뒤에 있는 폭발물을 피하고, 작고 빠른 보스 위치를 찾아 화면을 빠르게 돌리는 게 더 중요해진다. 아이디어에 비하면 꽤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 아래부터는 게임의 핵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이해할 수 없는 [배트맨의 죽음]

그리고 그나마 강점이었던 스토리 연출은 저스티스 리그, 특히 배트맨을 상대하면서 그 연출 이전의 스토리 자체에서 파국을 맞는다.

킬 더 저스티스 리그라는 이름처럼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저스티스 리그를 죽이기 위해 싸운다. 슈퍼 파워가 없는 배트맨은 그렇다 치더라도 데드샷이나 할리 퀸이 슈퍼맨을 죽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저스티스 리그를 상대할 여러 무기와 방법은 렉스 루터의 골드 크립토나이트, 토이맨의 스피드 포스 흡수장치처럼 태스크포스X를 돕는 여러 조력자를 통해 꽤 그럴듯하게 준비됐다.

▲ 어떻게 감히 얘랑 싸울지 감이 안 오지만, 그걸 해내긴 한다

사실 이 부분은 배트맨의 치밀함을 다루는 '타워 오브 바벨'. 그리고 그걸 모티브 삼아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진 '저스티스 리그: 둠'을 통해 잘 알려져있다. 너무나 강력하지만, 적으로 돌아선다면 지구에 최악의 위협이 될 존재들 저스티스 리그. 배트맨은 그들의 약점을 미리 파악하고 정말 그들이 적으로 돌아선다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남긴다. 문제는 SSKJL에서는 배트맨마저도 지구의 적이 되어버렸지만.

배트맨은 바벨 프로토콜이라는 이름으로 문제 해결을 로빈에게 부탁했다. 게임에서는 주인공 4인방이 홀로그램으로 남겨진 배트맨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활용하려고 했다. 물론 진행상 이 정보가 크게 유용하지는 않지만, 저스티스 리그를 상대하는 태스크포스X의 당위성을 한 번 더 끌어올리려고 했다.

그리고 이 게임이 락스테디의 대표작이자 게임 미디어에서 배트맨을 상징하는 아캄 세계관의 한 편으로 나왔다는 점은 이런 노력을 무색하게 한다. '고담 나이트'만 하더라도 WB 몬트리얼 제작, 그리고 아캄버스와는 다른 설정을 따르는 독립 작품이기에 SSKJL, 그리고 개발사 락스테디에 거는 기대감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락스테디는 배트맨을 죽였다. 저스티스 리그의 죽음과는 다르다. 배트맨의 죽음과 과정은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배트맨이 죽는다는 것 그 자체가 DC 팬들에게 의미하는 바다. 배트맨은 스파이더맨과 함께 양대 코믹스 시장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실제로 슈퍼맨이 등장한 뒤 1년 후인 1939년 배트맨이 처음 등장한 디텍티브 코믹스는 오늘날 DC 이름의 기원이 됐다. 그만큼 배트맨이 가지는 상징성은 여전하다. 그리고 그 설정은 여러 슈퍼 히어로들이 다른 성격, 다른 기원으로 리부트되는 과정에서도 크게 바뀌지 않을 정도로 완성된 인물이었다. 그만큼 배트맨은 다른 히어로들이 가지는 슈퍼 파워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는 존재다. 게임 안에서도 플래시나 그린 랜턴과 달리 배트맨만큼은 슈퍼맨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적으로 묘사된다.

그런 배트맨의 어의없는 최후 자체가 팬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실질적으로 DC코믹스를 이끌어가는 최고 인기 캐릭터의 죽음은 메인 세계관과는 다른 게임에서의 죽음까지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 여기에 저스티스 리그의 약점을 미리 찾아두고 로빈에게 알릴 정도로 철저한 인물이 너무나도 쉽게 브레이니악의 세뇌를 당했다는 점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 여러 DC코믹스 히어로 중에서도 배트맨은 그 자체로 프랜차이즈를 이끌 캐릭터로 꼽힌다

물론 그럼에도 배트맨의 죽음 자체를 게임 안에 녹여낼 수는 있다. 이제 두 번째 죽음의 의미가 나온다. 배트맨의 죽음이 의미하는 또 다른 것은 그저 배트맨이 아니라 아캄 시리즈 배트맨의 죽음이라는 점이다.

WB 몬트리올에서 개발한 '아캄 오리진'을 포함해 '아캄 어사일럼' - '아캄 시티' - '아캄 나이트'로 이어지는 3부작은 슈퍼 히어로 게임의 판을 바꿨다. 그저 영화 홍보용 게임도 아니고, 코믹스 팬이 만족할 만한 독자적인 해석이 더해진 세계관도 매력적이었다. 여기에 탐정 모드, 프리 플로우 전투 등 여러 오픈 월드 게임이 벤치마킹한 시스템 요소도 배트맨과 맞아떨어졌다.

즉, 인기 있는 시리즈의 주인공. 그것도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는 주인공을 후속작에서 플레이어의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죽여버리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감정을 이입하는 만큼 주인공의 죽음은 남다른 아픔과 분노를 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의 조엘과도 겹쳐 보인다.

하지만 조엘과 배트맨의 죽음은 분명 다르다. 단순히 첫 편 이후 두 번째 작품에서의 조엘 죽음과 무려 세 편, 또는 네 편을 함께한 배트맨의 죽음이라는 차이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 브루스 웨인이자 배트맨의 죽음으로 마무리된 아캄 나이트
SSKJL에서는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임을 모두가 알고, 적으로 만나고, 죽는다

여기서 SSKJL에서의 배트맨 죽음의 마지막 의미가 나온다. 게임이 내건 주제와도 맞지 않고, 충분히 공감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점 말이다.

조엘은 폐허가 된 세상이라지만 절대적인 도덕적 무결성을 가진 인물은 아니다. 파트2에서의 죽음도 그가 의사를 죽였다는 과거의 죄에서 나온다. 그리고 수많은 인물을 죽인 행적 탓에 조엘은 누군가에게는 복수의 대상이기도 하다.

반면, 배트맨은 사법체제 밖에 존재하는 자경단원이지만, 그 스스로 옳바른 정의관을 가지고 범죄자와 맞선다. 그 존재가 세상에 위협이 되는 인물이라도, 심지어 사랑하는 이를 없앤 자라도 죽이지 않는다.

조엘의 경우만 봐도 주인공의 죽음이 얼마나 큰 반감을 가지는지는 알 수 있다. 최근 다큐멘터리에서 조엘의 성우인 트로이 베이커는 라스트 오브 어스 개발 당시 조엘이 죽는 것이 옳은 결말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런 그마저도 게임을 플레이해보고, 파트2를 개발할 때는 결정된 조엘의 죽음에 감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인물이지만, 거기에 몰입했던 플레이어는 복수의 순환이라는 게임의 주제를 위한 선택이었더라도 주인공의 죽음에 공감하지 못한 셈이다.

도덕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도시의 수호자. 나아가 범죄자의 공포가 되는 주인공의 죽음에는 게임을 관통하는 주제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SSKJL에서 배트맨의 죽음은 순전히 할리의 시점, 그리고 그녀가 가진 그간의 감정과 억압된 상황의 표출로 이루어진다. 배트맨과 대결에서 승리하고 그를 생포하는 과정에서도 그저 빌런이 장난감 가지고 노는 듯한 연출이 계속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음에도 앞선 할리의 감정적 폭발과 어우러져 권총 한 발에 배트맨이 쓰러지고 만다.


이 게임이 아캄버스와 독립된 이야기였다면, 그리고 할리의 심정과 감정적인 변화를 충분히 플레이어에게 이입시켰다면 배트맨의 죽음을 플레이어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할리의 이런 감정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할리 뿐이 아니다. 플래시에게 악감정을 가진 부메랑도 게임을 통해 그 기원을 상세하게 알려주기보다는 이미 코믹스에서 이어진 라이벌리였기에 그저 추측할 뿐이다.

결국, 플레이어는 할리가 왜 마지막 순간 배트맨을 죽였는지 온전하게 이해하지도, 그 감정에 이입하지 못한다. 그저 할리가 조커의 망령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걸 가볍게 지나가는 대사 정도, 그리고 이전 작에서 적으로 조우했던 할리를 떠올리며 억지로 공감하려는 노력해야 할 뿐이다. 사실 그러한 노력을 할 필요도 없겠지만, 하려고 해도 곧장 슈퍼맨과의 대결로 이어지니 온전히 배트맨의 죽음에 신경 쓸 수 없을 뿐이다. 배트맨의 죽음은 그저 의미 없이 소비될 뿐이다.

팬들이 더 화날 부분은 그러면서 게임 엔딩 크레딧 이후, 배트맨의 마지막 이야기를 로이스 레인의 목소리를 빌려 전하는 부분이다. 이번 작품은 그간 오랜 기간 배트맨의 목소리였던 케빈 콘로이의 유작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후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몇 작품 더 그의 연기를 들을 수 있지만, 적어도 게임에서는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런 작품에서 의미 없는 배트맨의 죽음을 다루고, 게임 끝에서야 배트맨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칭송하며 콘로이를 기린다. 그저 이중적인 행태로만 보일 뿐이다.

물론 종반부에는 DC의 평행세계이자 외전 격 멀티버스인 엘스월드 이야기를 주역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일찌감치 죽었던 조커의 다른 세계 버전이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등장한다. 또 엔드 게임 역시 시즌 시작과 함께 이쪽을 주력으로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 출시 전부터 아예 시즌을 통해 신규 캐릭터, 엘스월드 버전의 인물 추가를 예고했다
죽었던 조커가 그 첫 번째였고

이를 통해 다른 세계의 저스티스 리그의 등장 역시 기대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또 게임에 등장한 저스티스 리그가 브레이니악의 복제판, 사이보그라는 말도 나온다. 충분히 아캄버스와는 다른 세계관, 아니면 다른 엘스월드의 저스티스 리그를 다룰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캄버스의 배트맨을 죽인 건 오히려 추후 라이브 서비스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한 극적인 연출 의혹도 가능하다. 배트맨의 죽음을 마케팅 키워드로 삼았던 '고담 나이트'처럼 '죽었던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돌아왔다'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정말 그렇다 하더라도 스토리의 완결성을 그려야 할 싱글플레이에서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고담 나이트'가 그랬듯 그 남은 이야기를 지금의 혹평 속에서 몇 시즌에 걸쳐 온전히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배트맨의 죽음은 인기 캐릭터이자 플레이어의 분신이었던 존재의 사망,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전개를 상징한다. 그저 '배트맨 팬이기에'라는 간단한 말로는 게임에서 생기는 반감을 표현할 수 없다.

▲ 옅은 주제 의식 안에 배트맨을 죽이고, 세상을 떠난 배트맨의 목소리 케빈 콘로이를 기린다




라이브 서비스로 긴 생명을 가지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다. 오히려 비슷한 류의 많은 게임이 이런 구성을 통해 게임의 생명을 길게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OP급 슈퍼 파워를 가진 히어로 대신 제한적인 능력을 지닌 수어사이드 스쿼드로 삼은 점은 짐짓 이해가 가는 판단이다. 하지만 SSKJL은 라이브 서비스 염두에 둔 시스템을 싱글플레이에 억지로 엮어내는 데에서 심각하게 엇나가고 있다.

분명 매력적일 수 있었던 캐릭터, 전투, 이야기는 재미 구간이 서로 삐걱거린다. 초반에는 부족한 기술과 적의 구성에 박진감이 부족하고 중반부터는 캐릭터의 죽음으로 몰입감을 잃는다. 온라인 접속이 필수인 만큼 출시 후 불안정한 서버 상황도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없게 만든다.

결국 남는 건 오랜 팬들이 가끔씩 피식거릴 개그신과 눈호강하는 그럴듯한 때깔 정도뿐이다. 그리고 그걸 끝까지 아캄 유산에 집착하며 같은 세계관 안에 넣으려 했던 락스테디의 오판 역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 게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