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롭.다.


이것 외에 설명할 단어가 또 있을까. 물론 잘 알고 있다. 지금 내가 플레이하고 있는 것이 지스타 때 일반 유저들에게 공개될 시연버전과 같다는 것을. 그래서 1시간이라는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큰 감동을 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구성된 버전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앞서 말한 '경이롭다'는 표현 외에는 설명하기 위한 다른 적합한 단어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 블레이드앤소울의 캐릭터 선택 창, 지스타 시연버전에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이 빠져있었다.




화면 위 남은 시연 시간을 알리는 59분 59초의 문구와 함께 시작되는 오프닝 장면부터가 심상치 않다. 비가 쏟아지는 어두컴컴한 바다. 그 바다의 중앙에는 뱃길을 뚫기 위해 작은 나룻배 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 할아버지가 보인다.


곧 이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마치 정신을 잃은 채 수면으로 떠오르는 주인공. 그 할아버지는 주인공 캐릭터를 구출하고, 그 장면 장면 사이 사이에는 블레이드앤소울 개발진들의 이름이 표시된다. 수많은 개발진을 비롯해 배재현 PD와 김택진 대표의 이름까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주인공(우리의 캐릭터)은 1년전 과거 기억으로 떠나며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다.



▲ 오프닝부터 퀄리티에 자비란 없다.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의 여성 NPC가 주인공을 깨우며, 화면은 칠흙같은 어둠에서 화려한 판타지 세계로 전환되는데 바로 이때부터가 놀라움의 연속이다. 주인공의 잠을 깨운 여성 NPC는 그 동안 컨셉 아트를 통해 자주 접했던 김형태 아트디렉터가 창조한 바로 그 2D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은 듯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튜토리얼 메세지를 따라 집 밖으로 나서게 되는데, 신선이 사는 듯한 계곡과 안개, 울창한 숲이 어우러지며 "동양적인 판타지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정의하는 듯한 퀄리티의 배경이 반겨준다.



▲ 2D에서 3D로의 완벽한 변신에 성공한 김형태 AD의 캐릭터들





▲ 감탄사가 절로 쏟아지는 블레이드앤소울의 배경 그래픽




마우스를 이리 저리 돌리며 환상적인 배경에 심취하는 가운데, 따라오기를 재촉하는 NPC에 끌려 블레이드앤소울의 조작법을 하나 둘씩 배우게 된다. 인물과 배경 그래픽의 퀄리티에 놀라고, 어느 곳 하나 불평할 것이 없는 깔끔한 인터페이스에 한번 더 놀란다.


그런 복합적인 놀라움이 최고조에 도달할 때가 있는데, 바로 블레이드앤소울만의 독특한 시스템인 '경공을 배울 때'다. 전진 키인 "W"를 연속으로 두 번 입력하면 경공을 발동시킬 수 있는데, 한번 발동되면 그 즉시 캐릭터가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고 캐릭터 주위 배경 그래픽이 번지는 특수효과가 경공 특유의 상쾌한 속도감을 잘 전달해 준다.


그 때 만약 점프키인 "스페이스 바"를 누르면 캐릭터는 크게 점프하면서 활공 효과를 얻는데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서 최초로 그리핀을 탑승했을 때와 유사한, 가상 판타지 세계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일탈을 느낄 수 있었다.




▲ 경공의 스피드감을 가공된 스크린샷만으로 다 전달하기는 한참 부족하지만, 일단 이거라도..




튜토리얼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블레이드앤소울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전투 시스템을 체험할 순간이 도래했다. 기자가 선택한 직업은 블레이드앤소울의 전투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권술사, 즉 권법을 주로 사용해 적을 제압하는 직업이다.


전투가 일단 시작되면 캐릭터가 보이는 화면 아래와 좌측의 스킬바가 활성화 된다. 캐릭터의 좌측에 표시되는 스킬들의 단축키는 "R"로 일반적인 평타 공격을 담당한다. 적과 마주치면 일단 "R"을 연타해 평타로 적을 공격하게 되고 평타가 적중할 때마다 투혼이라고 불리는 (일반 MMORPG에서의 마나 혹은 기력과 비슷한) 게이지가 찬다.


이때 우리는 단순히 평타를 연속으로 시전하는 것 외에 한 가지 선택을 더 할 수 있게 된다. 공격을 당하던 적이 정신을 차려 큰 공격을 시도한다는 판단이 서면, 우리는 캐릭터 아래 스킬 바 중에서 "1"번 키를 입력해 반격 모드로 진입할 수 있다.




▲ 블레이드앤소울의 전투 인터페이스와 스킬 사용 시 액션들
양손으로 조작하면서 스크린샷을 찍기가 쉽지 않았다.




만약 우리의 판단이 훌륭해 적이 공격하는 타이밍과 우리가 반격하는 타이밍이 일치했다면 적의 공격은 무효가 되고 반대로 우리가 큰 공격(일정 시전 시간이 필요한 모아치기 스킬, 단축키)을 맘껏 할 수 있는 빈틈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혼란스럽지만 이내 이와 같은 원리를 파악하게 되고, 쉴새 없이 가위바위보를 하는 듯한 긴장감을 주는 블레이드앤소울의 전투에 푹 빠져들게 된다. 평타 공격인 'R'을 마구 누르느라 뻐근해져오는 손가락의 감각은 애써 무시한 채로 말이다.


'블레이드앤소울의 전투가 바로 이런 거구나'를 알게 될때 쯤 튜토리얼의 스토리는 종반부를 향해가고, 사부의 명에 따라 마지막 통과의례를 마치고 동굴에서 다시 나오는 순간 전형적인 무협 영화의 복수극의 시작 지점과 맞딱뜨리게 된다.




▲ 비정한 복수극의 시작, 자세한 스토리는 차후를 위해 남겨 놓겠다.




지금까지 배운 블레이드앤 소울의 전투 시스템(막 치다가 기를 모아, 막고 반격하기)을 복습하는 기회가 제공되면서 그 이후 스토리는 시네마틱 영상이 이끌게 되는데 여기에서 또 한번 감탄이 절로 나온다.


김형태 아트디렉터와 블레이드앤소울 개발팀의 합주로 완성되는 지금까지 좀처럼 보지 못했던 극화의 시연. 등장인물들 각각의 목소리와 행동은 전체적인 스토리에 빠져들게 하고, 튜토리얼이 끝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울컥하며 "진서연, 이 XX"를 외치게 만드는데...


이미 눈치빠른 독자는 알아챘겠지만 스승의 복수를 다짐하며 절벽으로 떨어지는 주인공 캐릭터와 연결되는 장면이 처음 소개했던 폭우 속에서 배를 탄 할아버지가 주인공을 구출하는 장면이다. 이 시점에서 주인공의 튜토리얼은 모두 끝나고 블레이드앤소울 세계로의 본격적인 여정을 비로소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건 특별히 구성된 지스타 체험판이기 때문에 추후 바뀔 여지가 있다.)



▲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는 마을, 인터페이스가 상당히 깔끔하다.




주인공 캐릭터가 두 번째 잠에서 깨어난 마을은 남해함대원대나무 마을 자경대원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격전지다. 주인공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대나무 마을을 위해 '남해함대원'을 무찌르는 퀘스트를 하나 둘씩 수행해 나가야 한다.



▲ 상자를 직접 들어 옮기는 식의, 실제 게임 내 오브젝트를 적극 활용한 퀘스트도 다수.




여기서 튜토리얼에서 배웠던 전투를 확장시킬 수 있는데, 지스타 체험버전인만큼 3레벨인데도 고레벨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잔뜩 지급된다. 블레이드앤소울의 전투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확실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다시 한번 기자의 머릿 속 기억 조각을 토대로 그 당시의 전투를 우리의 상상 속에 실감나게 재연해 보자.


다시 말하지만 기자가 선택한 캐릭터는 권술사로 블레이드앤소울의 다른 직업은 아래에 서술할 전투 체계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기공사는 다른 게임의 마법사에 해당하는데 권술사와는 완전히 다른 플레이를 보여준다고 한다.


거대한 해변가에 적과 우리의 동료 NPC들이 서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적절한 거리에 진입하면 우리의 시야 일직선에 있는 적들이 자동으로 타겟으로 잡힌다. 이것이 엔씨소프트 실적발표 때 깜짝발표되었던 '오토타겟팅 시스템'. 사실 리차드 게리엇의 타뷸라라사에서 이미 한번 선보여졌던 시스템이기도 하다.


암튼, 오토타겟팅을 통해 하나의 타겟을 잡았다면 그 동안 평타였던 'R' 키가 '내려찍기'라는 새로운 스킬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자동 변경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냉큼 눌러보자.


캐릭터는 적을 향해 먼거리를 순간적으로 점프해 날아가 적을 공격하게 된다. 무협영화에서 이연결이 경공으로 순식간에 적을 향해 날아가 '날라차기' 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그 이후 우리는 다시 평타로 바뀐 “R”키를 연타하며 투혼 게이지를 모으며 적의 반격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해야 한다.


나는 충분히 '투혼'이 모이자 3번 키를 눌러 다리 걸기를 시도했고, 그 즉시 적은 다리에 걸려 땅에 넘어진다. 말 그대로 적은 그로기(Groggy)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그 즉시 '탭(Tab)' 키를 눌러 적의 상체 위로 올라타 팔과 다리로 적을 제압, 레슬링에서 상대의 목을 조르는 동작으로 연결된다. 이까지의 과정이 콘솔게임의 그것처럼 매우 깔끔하게 이어진다.


그 순간 캐릭터 아래의 1,2,3,4 스킬들이 모조르기 상태로부터 이어지는 또 다른 스킬들로 자동변경되고, 나는 '허리 꺾기'를 눌러 적에게 가공할만한 피해를 줬다. 연속 공격에 체력의 대부분을 잃은 적은 비틀거리며 힘겹게 일어나게 되는데 그때 평타 몇 방만 날려주면 가볍게 적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게 된다.





▲ 이 모든 전투 동작이 MMORPG의 필드에서 가능하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믿기지 않겠지만 이 모든 전투과정이 다른 유저와, 그리고 다른 오브젝트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할 펼칠 수 있는 MMO 환경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기자들을 위한 사전 시연에서 체험한 것이고, 지스타에서 블레이드앤소울 시연대를 찾는 게이머들도 동일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이모 감독의 영화에서처럼 무림 고수들이 바다 수면을 경공으로 밟아가며 순식간에 이동하는 쾌감을 느껴보는 등 다양한 컨텐츠들을 추가로 경험해 본 후, 일련의 퀘스트들을 마저 다 끝내자 1시간이 최대 플레이 시간인 지스타 체험 버전은 모두 끝이났다.



▲ 경공으로 수면을 밟고 바다 위를 질주하는 장면




사실, 모든 것에 만족했던 것은 아니다. 시연이 모두 끝난 후 저려오는 왼손을 바라보며 블레이드앤소울의 전투 방식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했다. 방금전 오토타게팅으로부터 시작되는 전투에서 갑자기 몬스터 3마리가 동시에 달라붙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걸 언제 다 때리다 걸어서 눕히고 다시 때려서 죽인단 말인가?


1:1이라면 내가 무림고수가 된 듯한 착각과 함께 무아지경에 빠져 들며 전투를 펼치지만 앞서 예를 든 것처럼 1:3 혹은 1:4의 상황이라면 스트레스가 대폭 증가하며, 아예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픈 강한 욕구를 느끼게 된다. 실제 기자도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몹이 3마리 이상, 아니 1마리라도 더 추가되면 도망가는 전략을 택하고 말았다.




▲ 지금 블레이드앤소울의 전투 시스템에서는 '1:1'은 신명나지만 '1: 다수'는 힘겹다.
줄행랑이 오히려 더 나을지도.




쿨타임이 돌아 다시 사용가능해진 스킬들의 파악이 쉽지 않다는 것도 불만 중에 하나였다. 급박하게 펼쳐지는 전투로 인해 쿨타임이 다시 돌아온 것을 확인할 별다른 방법이 없었고, '다리 걸기' 키를 눌렀는데 아직 쿨타임 중이라 스킬이 나가지 않는 상황에서 그냥 평타만 치면서 될 때까지 '다리 걸기'키를 누르는 한심한 플레이가 이어지는 상황이 나오기도 했다.


스킬 키를 입력하는 왼손은 매우 바쁜데 정작 마우스를 쥐고 있는 오른손은 시점 변화의 역할 밖에 하지 않는 미묘한 언밸런스도 지적하고 싶은 부분 중에 하나다.


또 한가지 이번 지스타 체험버전에서 불만사항을 들자면, 기존 엔씨소프트 게임들과의 차별화를 두기 위해 스토리 텔링에 과도하게 집중한 탓인지 전투라는 기본적인 재미를 느끼기 전에 '컷신 등장', 다시 재미를 느끼려고 하면 '컷신 등장'이 반복됨으로써 게임을 통해 얻는 즐거움의 흐름이 자꾸만 끊어지는 현상도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제한된 시간 동안 블레이드앤소울의 매력을 발산해야 하는 특수 상황(지스타 체험버전)인 것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 블레이드앤소울의 소지품 창




그렇다고 해도 이번 지스타 체험버전에서 보여진 블레이드앤소울은 진정으로 대단한 게임이다. 기자는 "경이로움"에 흠뻑 취할 수 밖에 없었다. 클로즈베타조차 한번도 안한 게임이 이 정도의 퀄리티를 낸단 말인가. 게다가, 캐릭터와 배경 그래픽,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유한 동양의 짙은 향기는 한번 더 깊은 감동을 남겼다.


"우리 스타일의 게임을 만들어 보려고 10년 넘게 서양환타지로 경험을 쌓아왔다. 처음으로 도전하는 우리 스타일의 게임이 블소다. 동양의 자부심을 그리고 싶다."라는 트윗터에 남겨진 남긴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의 각오처럼 블레이드앤소울이 대한민국 MMORPG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또 하나의 작품으로 남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엔씨소프트가 블레이드앤소울를 통해 추구하는 전에 없던 과감한 도전이 과연 우리 게이머들에게 통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는 잠시 접어둔 채로 말이다.






▶ 블레이드앤소울 지스타 2010 플레이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