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물론, 이 지구 상에는 세상에 이름을 떨친 스타급 게임개발자들이 적지 않다.


슈퍼마리오와 젤다의 창시자, 게임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 미야모토 시게루를 비롯해 세계 3대 개발자라고 불리는(불렸던) 시드 마이어, 피터 몰리뉴, 리차드 게리엇까지. 어디 그뿐인가 책장에 꽂혀 있는 게임 CD만 둘러봐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한둘이 아니다.


멀리 외국뿐 아니라 국내로 눈을 돌려보아도 송재경, 김학규, 서관희 같은 스타급 개발자들이 아직도 수많은 팬을 보유하며 차기작을 준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그래도, 그래도,.. 기자에게 원하는 인터뷰 대상자를 ‘감히’ 꼽을 선택권을 준다면 이 사람을 가장 먼저 선택했을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특이한 이력과 더불어 게임개발자치고는 때로는 너무 과격한, 때로는 너무 솔직한 태도에 있다. 잘생긴 그의 외모는 덤.



▲ 클리프 블레진스키
에픽게임스를 대표하는 개발자 클리프 블레진스키(Cliff Bleszinski, 클리피 B)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재즈 잭래빗’이라는 게임을 출시해서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가 16세 때의 일이다.


그 이듬해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에픽게임스에 입사, 언리얼 토너먼트 시리즈를 거쳐 XBOX360 독점 대작 슈팅게임인 기어스오브워 시리즈의 디렉터로 활동하며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다. 현재 나이 36세인 그는 무려 20년 동안이나 게임개발을 해 온 셈이다.


동시에, 그는 개인 블로그와 트위터 등을 통해 게임업계뿐 아니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의견들을 쏟아내곤 했다.


하지만 그중에는 ‘겸손’을 하나의 중요한 덕목으로 보는 우리에게는 좀처럼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내용도 종종 있었다. 클리프 블레진스키의 글과 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FXXK”이라는 단어는 그가 얼마나 자유분방한(?) 영혼인지 잘 알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이제서야 본론을 꺼낸다. 인벤에서는 6월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되는 E3 엑스포를 앞두고 에픽게임스의 클리프 블레진스키와의 인터뷰를 전격적으로 성사시켰다. 현재 개발 중인 게임인 ‘기어스오브워 3’에 대한 이야기는 E3로 잠시 미뤄뒀다. 그 대신 평소 몹시 궁금했던 게임 개발자로서의 그의 철학을 들어보며, 최근 국내 게임계에서 이슈가 되었던 ‘청소년 셧다운제도’에 대한 질문도 살짝 던져봤다.


과연, '자신만만 괴짜 개발자' 클리프 블레진스키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 16세에 이미 본격적인 게임 개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그냥... 어느 날 결정했다. 평생 게임을 사랑했다. 그저 신의 소명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에 연기도 조금 했었고, 지금 게임 스튜디오의 수장 노릇도 하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어릴 적 꿈을 둘 다 이룬 셈이다.



=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개발자 중 한 명이다, 이러한 성공에 가장 큰 힘이 된 것이 있다면?

자신의 직감을 믿으면서도 주변의 말에 언제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잘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가 가장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데 모든 것을 걸겠다. 나는 게임을 열심히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균형이 잘 잡힌 개발자란 바로 심신이 건강한 개발자란 뜻이니까.



= 평소 게임 개발을 하는 중에 정말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 편인가?

나는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고 새로운 도전을 했지만, 결국 상업적으로는 실패한 게임들을 좋아한다. 다른 이들의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운 다음 그 교훈을 우리 제품에 적용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기어스오브워의 '엄폐 시스템'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킬스위치'(Killswitch)라는 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 음악이나 영화, TV 드라마 같은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평소 즐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임 이외의 문화적 경험이 게임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

당연히. 초반에 넌지시 말한 그대로다. 사소한 것들, 이를테면 언리얼 토너먼트(Unreal Tournament)의 프로토타입 이름, 온슬로트(Onslaught, 맹공격)는 내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트랜스포머 장난감의 이름을 딴 것이다. '기어스오브워 1'의 '공진기'도 삼류 공포 영화 지옥 인간(From Beyond)에 등장했던 장치 이름이었다. 뭔가가 불확실할 때는 주로 어린 시절로 여행을 떠나 영감을 얻어 돌아오곤 했다.






= 힙합 음악의 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고로 기자도 힙합 음악을 '매우' 좋아한다. ^^;

예스! 힙합 음악의 플로우(Flow)와 리듬을 좋아한다. 오래전 학창시절에 듣던 '스카페이스, 게토 보이, 아이스 티'부터 시작해서 '릴 웨인, T.I.'처럼 요즘 음악들도 좋아한다. 정말 지긋지긋해하는 장르도 있긴 한데, 바로 그런지(Grunge)다. 좋아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좋아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편집자 주: '그런지'는 얼터너티브 록에서 파생된 장르로 대표적인 밴드로 '너바나'가 있다.)



= 유명한 개발자가 되려면 자기 게임을 스스로 마케팅하고 홍보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가끔은 비슷한 혹은 격한 언사 때문에 논쟁에 휘말리곤 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비디오 게임에 대한 비판이 없어지는 날이야 말로, 비디오 게임이 문화적 현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생명력을 잃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 2011년 E3가 얼마 남지 않았다. E3에서 가장 기대되는 게임이나 플랫폼이 있다면?

엘더스크롤 V: 스카이림(Skyrim)이 가장 기대가 된다. 베데스다가 이번에 엄청난 물건을 하나 만들 것 같다.



[ ▲ 베데스다 소프트웍스가 개발 중인 '엘더스크롤 V: 스카이림' ]




= 이번 E3에서 닌텐도의 새로운 콘솔 공개가 유력하고 PS3 또는 XBOX360 등, 현 세대 플랫폼의 교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앞으로의 비디오게임 플랫폼은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나?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예상해 본다면, 차세대 콘솔은 휴대할 수 있는 태블릿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도킹 시스템을 통해 큰 TV에서 플레이하고, 커피숍에도 가지고 나가 계속해서 플레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 기어즈오브워 프랜차이즈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나?

아마도 총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웃음)



= '기어즈오브워 3'의 발매 이후 세우고 있는 가장 큰 목표는?

기존 기어스오브워 시리즈의 팬들을 만족하게 하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기어스오브워를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던 게이머들에게도 기어스오브워의 귀여운 매력에 빠져들게 하고 싶다!



= 한국 게임을 해 본 적이 있나? 있다면 개인적인 평가가 궁금하다.

기회가 있어 넥슨의 카트라이더를 해 봤는데, 꽤 재미있었다.






= 한국의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조언 한마디 부탁한다.

개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묻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는, 그냥 그 시간에 한번 해 보시길 바란다. 요리사가 되려면 그냥 아무거나 붙잡고 요리를 시작해서 경험을 쌓아가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 최근 한국에서 일명 "청소년 심야 셧다운제"라는, 미성년자들이 자정에서부터 아침 여섯 시까지 게임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수많은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반대하는 의견을 냈었는데, 게임 개발자로서 이런 규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아이들이 뭘 하는지 살펴보고 그에 따라 훈육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 ▲ 2011년 9월에 출시될 XBOX360 독점 킬러타이틀 '기어스오브워 3'
벌써 100만 장 이상 예약판매 되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