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콘솔 업계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는 오만에 빠져 쇠퇴했습니다. 한국은 공격적인 도전정신으로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누구나 할 수는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영향력은 달라진다.

나눔이라는 표어처럼 게임 산업의 경험과 노하우를 함께 공유하자는 취지로 올해 5회차를 맞이하여 공개된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 2011) 2일차. 기조 강연에 나선 인물은 캡콤 출신의 유명 개발자이며, 현재는 comcept Inc.라는 회사를 이끌고 있는 이나후네 케이지 대표.

이나후네 케이지 대표는 캡콤의 대표작인 록맨의 캐릭터 디자이너를 시작으로 하여 귀무자, 데드 라이징, 로스트 플래닛 등의 개발에 참여하는 등 화려한 전력을 자랑한다. 특히 캡콤의 개발과 온라인 사업 분야를 총괄하는 본부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 前 캡콤의 개발 총괄 본부장, 현재는 comcept Inc.의 이나후네 케이지 대표 ]




기조 강연의 제목은 '게임의 글로벌 전략 및 아시아 기업의 약진과 미래', 선듯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가지 않지만 왠지 따분할 것만 같은 제목. 그러나 이나후네 대표는 시작부터 일본의 콘솔 게임 업계가 오만에 빠져 쇠퇴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던졌다.

사실 이나후네 케이지 대표는 캡콤에 있던 시절부터 과격한(?) 발언으로 화제가 되었던 인물. 특히 캡콤 재직 당시 "일본 게임 업계는 이미 죽었다."라는 발언으로 일본의 게이머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고, 2010년의 동경 게임쇼에서는 "일본의 게임 산업이 해외에 비해 5년 이상 뒤떨어져 있다."는 날선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런 전력때문인지 강연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것도 이나후데 대표 스스로가 캡콤이라는 거대한 기업을 박차고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과거 누구보다 먼저 일본 게임업계의 위기감을 여러 차례 말해왔으나 이미 안정화된 대기업에서는 위기감도 없을 뿐더러 도전 정신을 고취시키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이나후네 대표가 이렇게 도전 정신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다름아닌 10년전의 한국. 약 10여년 전 일본의 콘솔 게임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 막 게임이 태동하던 한국에 방문해서 느꼈던 것이 바로 한국 개발자들의 도전 정신이었다는 것.

전성기를 구가하던 일본에 비하면 척박한 불모지나 다름없었으나 한국의 개발자들은 반드시 게임 산업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로 가득차 눈빛부터 다르게 느껴졌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한국의 게임업계가 반드시 성장할테니 주의하지 않으면 추월당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그의 주장은 이제 10년 뒤 현실로 드러났다. 일본의 콘솔 게임 산업은 여전히 활발하지만, 전성기를 지나면서 갈라파고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세계의 추세와 동떨어진 시장이 되어 서서히 쇠퇴해가고 있다. 반면 한국은 10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온라인 게임 개발력과 서비스 경험까지 갖춘 국가가 되었다.





[ 이나후네 케이지의 유명한 발언. "무슨 판단이냐? 돈을 시궁창에 버릴 셈인가?" ]





[ 실제 게임에 등장하는 '크리에이터 소드'의 필살기 "무슨 판단이냐 노바" ...합성 아닙니다.]




현재는 10년전 한국에서 느꼈던 바로 그 도전 정신을 중국에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나후네 대표가 중국의 어느 미술 대학에서 강연을 하러 방문한 적이 있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과 질의응답에 위기감까지 느낄 수 밖에 없었다고. 결국 일본의 게임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이런 도전 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 역시 현재 온라인의 최고 자리에 있다고 방심하거나 자만한다면 멀지않아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만함은 인간의 힘을 약하게 만들고, 성공에 안주하여 오만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이미 늦게 된다는 것이다.


이나후네 대표는 또한 다른 개발자들과의 협업을 강조하면서 언어, 문화,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면서 더욱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오늘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의 공개 강연처럼 자신들이 갖고 있는 지식을 함께 나누는 것 역시 혼자만의 오만에 빠지지 않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가 총괄했던 데드 라이징의 경우 1편은 일본에서 제작되었고 2편에서 캐나다의 도움을 받았는데, 캐나다의 개발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몇년이나 걸렸지만 그만큼 좋은 경험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종일 네트워크 게임만 하던 시기에서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는 시기가 되는 등 시대가 바뀌고 있는데, 그렇게 변화의 시기가 되면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만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게 되기가 쉽기 때문에, 결국 많은 국가의 사람들과 새로운 게임들을 제작해보는 경험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나후네 대표는 아직까지 자신은 아마추어에 불과하다면서, 스스로도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소셜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 어떤 것이 재미를 주는지 연구하고 개발하고 앞으로도 공부해나갈 예정이라고. 앞으로도 만화, 음악, 소설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재미를 주는 콘텐츠에 도전할 것이라고 한다.

그가 일본에 실망해 과격한 발언을 하게 된 원인도 바로 이 부분. 일본에서는 시작도 하기 전에 무리라는 판단을 내려 의욕을 꺾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지 말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나후네 대표는 "내가 생각하는 한국은 굉장히 공격적인 도전정신을 갖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이라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인 만큼 앞으로 이런 노력들을 통해 더욱 좋은 게임들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발표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