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온라인 게임이 서비스 된지도 어느새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은 규모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많은 발전을 거두어 한국이 온라인게임 종주국이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로 성장했다. 국내에서 개발하는 기대작은 세계의 기대작이 될 정도로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발전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시장의 밑거름이 된 1세대 온라인 게임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바람의나라', '리니지', '뮤', '미르의전설' 등 1세대 온라인 게임들은 시장도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에 불모지를 일궈 지금의 게임 산업의 기반을 다져왔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 '리니지2', '아이온', '테라' 등 더 높은 퀄리티를 갖춘 게임들이 시장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월드와 실사같은 그래픽, 발전한 기술력 앞에서 이들 1세대 온라인 게임들의 설 곳은 점점 좁아졌다. 국내와 해외에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블록버스터급 게임들 앞에서 이들은 우리의 추억 속으로 잊혀져가는 듯 했다.


하지만 옛 추억에 대한 향수일까? 아니면 최근의 온라인 게임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건재한 모습으로 유저들에게 서비스를 하고있는 1세대 온라인 게임들이 있다. 지난 7월 15주년을 맞이한 '바람의나라'에 이어 올해로 13주년을 맞이하는 '리니지'가 바로 그 게임이다.


리니지에게 있어 '13주년'이라는 숫자는 감회가 새롭다. 같은 1세대 온라인 게임들에 비해 성인 유저층이 두터웠던 리니지는 지난 세월동안 많은 고초를 겪었다. 한국 대표 온라인 게임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수많은 사건들에 이름이 언급되기도 했고 시장을 이끌어가는 선두주자의 입장에서 모든 시험대 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모진 풍파의 세월을 견디고 어느새 13주년째 유저들에게 서비스를 계속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리니지의 지난 13년. 인벤은 리니지의 13주년을 맞아 이쯤에서 리니지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모든 사건들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굵직한 일들을 되짚어보며 리니지가 지나온 길을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 1998년 9월, 리니지 세상에 첫 발을 내딛다.



리니지의 시작은 1998년 9월부터 시작된다. 신일숙 작가의 동명의 만화를 세계관으로 한 리니지는 서버 하나에 에피소드1:말하는섬을 시작으로 상용서비스에 돌입했다. 당시 유저들이 선택할 수 있는 클래스는 요정, 기사, 군주 3가지였고 지역은 말하는 섬 하나 뿐이었다. 지금의 리니지와 비교하면 상당히 작은 규모의 콘텐츠지만 당시 유저들에게는 많은 인기를 얻었고 1998년 9월 27일 동시접속자수 500명을 기록한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11월 에피소드2:글루디오영지가 업데이트 되었다. 이 업데이트 이후 배가 다니면서 유저들은 대륙으로 나갈 수 있었고 글루디오 영지 내에 글루디오 던전이 추가되며 유저들의 사냥터도 늘어났다.


상용화 후 빠른 업데이트로 유저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증가했고 리니지는 점차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동시접속자수 1천명을 돌파한다. 이 기세를 몰아 1998년 게임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까지 맞는다.


리니지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유저수도 그에따라 점차 늘어갔다. 유입되는 유저들의 수가 데포로쥬 서버 하나로는 감당이 되지 않자 NC소프트는 1999년 5월 켄라우헬 서버를 오픈한다. 이는 리니지 최초로 서버를 분리한 것으로 곧이어 질리언과 이실로테 서버도 오픈하였다.


새로운 서버의 오픈과 함께 콘텐츠의 추가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1999년 7월 에피소드3:켄트성이 업데이트되며 리니지에는 공성전 시스템이 도입된다. 리니지의 공성전 도입은 당시 국내 온라인 게임으로는 최초였다. 켄트성을 두고 벌어지는 공성전에는 수많은 유저들이 참여하여 정상적인 게임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였고 두달 후 업데이트된 에피소드4:마법의미스터리에서는 신규 직업 마법사가 추가되었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리니지는 1999년 동시접속자수 1만명을 돌파한다. 1999 하반기 천리안 컨텐츠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누적 회원수도 100만명을 넘었다. 조우, 하딘, 케레니스, 오웬 등 다수의 서버까지 오픈하며 명실공히 국내 대표 온라인 게임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 기사 전성시대의 시작과 리니지 게임 내 폭력성 논란



2000년 1월, 리니지에는 에피소드5:요정의숲이 업데이트된다. 요정의 숲 업데이트로 리니지에 채집과 제작 시스템이 등장하였고 종족 전용 마을 개념도 생겼다. 요정들의 제작 시스템으로 아이템 보급이 많이 이루어져 유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업데이트였다.


요정의숲에 이어 업데이트된 에피소드6:윈다우드에서는 윈다우드성과 사막이 추가되었다. 당시 유저들에게는 거대병정개미가 최고의 적으로 급부상하는데 거대병정개미의 강력함 앞에서 많은 유저들이 무릎을 꿇었었다. 또한 이 업데이트는 마법의 투구와 용기의 물약이 등장하여 바야흐로 기사 전성시대를 연 업데이트로 불리기도 한다. 서버는 크리스터, 아툰, 가드리아, 군터 서버가 추가되어 총 12개의 서버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출시 후 계속 상승세를 달리던 리니지에 제동을 거는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바로 리니지 게임에 대한 폭력성 논란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것이다. 리니지는 이미 1998년 정보통신윤리위로부터 폭력성에 대해 적합 판정을 받았으나 2000년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유해환경 신고를 하며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여기에 게임이 폭력적이고 게임에 등장하는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현금거래가 이루어진다는 민원까지 제기되며 정보통신윤리위는 재심의를 하게된다.


이에 2000년 5월 25일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리니지에 대한 청소년 유해성 여부에 대해 심사를 벌였으나 최초 심의당시보다 폭력적으로 변화된 것이 없다고 보고 적합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게임속에서 다른 플레이어를 죽이는 PK(Player Killer) 행위에 대해서는 게임의 고유기능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변칙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므로 PK 행위자에 대한 이용제한을 강화하는 등 불이익을 증가시키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아이템(무기 등)과 계정 등을 사고 파는 것도 리니지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라인게임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책 마련도 촉구했다. 결론적으로 폭력성은 과거와 동일하게 적합성을 받았으나 리니지 게임내 콘텐츠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사회 부작용에 대해 방안에도 눈을 돌리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 리니지 국내를 넘어 해외로 뻗어나가다.



2000년에서 2001년까지는 리니지의 해외 진출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다. 2000년 8월부터 베타테스트를 시작한 미국에서 2001년 5월 상용화를 시작했고 이어서 6월에는 일본 베타서비스가 진행되었다. 2001년 7월에는 홍콩 서비스도 개시되었다.


일본, 중국, 북미/유럽 등 많은 해외진출을 시도한 리니지지만 가장 눈에 띄는 해외 국가는 바로 대만이다. 2000년 7월 대만에서 첫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누적회원수 600만명, 최대 동시접속자수는 20만명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대만 전체인구가 약 2300만명이라는 것을 볼 때 대만 인구 4명 중 한명은 리니지 회원이라는 것이다.


대만 서비스 시작 12일만에 달성한 최고 동시접속자수 1만명과 회원수 8만명은 한국에 리니지가 서비스된지 14개월이 지나서야 달성했던 수치이다. 2000년 오픈 당시 리니지 때문에 대만 국가 전산망이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하고 마비된 것이나 스타 크루즈에서 개최한 리니지 기자회견을 보기위해 백만명의 인파가 몰려 하루 바닷가 인구 밀도 최고 수치를 기록한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리니지를 대만에 서비스하는 '감마니아'가 리니지 서비스를 위해 대만 게임업계 사상 최초로 데이터센터(서버실)을 구축할 정도로 대만은 전세계에서 한국 못지않게 리니지가 사랑받는 국가로 자리매김하였다.


▲ 대만게임전문미디어 바하무트 게임순위 (12월 8일 기준)




▷ 리니지 저작권을 둘러싼 법정 소송 사건



리니지의 해외진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던 2001년 국내에서는 리니지 저작권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벌어진다. 바로 리니지 원작 사용에 대한 계약 위반을 이유로 리니지 원작자인 신일숙씨가 개발사인 NC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리니지는 개발 중이던 1997년 당시 송재경 NC소프트 부사장이 원작사용에 대한 대가로 1,500만원을 지급한 바 있었다.


하지만 원작자인 신일숙 작가는 NC소프트가 ▲ 원작을 외국어로 번안해 외국에 판매할 때는 원작자와 협희, ▲ 원작을 광고, 홍보, 캐릭터 등에 활용할 때는 원작자와 협의 라는 두가지 조항에 대해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2000년 1월 2일 태평양법무법인을 통해 NC소프트에게 계약파기를 통보했다.


이에 NC소프트 측은 '리니지 게임은 만화에서 영감을 얻었을 뿐, 만화를 재창조해 새로운 저작권이 생성되는 디지털 컨텐츠물이며, 해외수출도 재창조물인 게임이 수출되는 것이므로 계약 위반이 아니다.'라고 주장해 양측의 의견이 엇갈리며 대립 상황에 치닫았다.


당시 소송은 1,000만 회원이 이용하는 리니지 서비스 지속 문제와 더불어 오프라인 컨텐츠를 디지털화한 것에 대해 '새로운 저작권'을 부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결국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못하자 신일숙 작가는 법원에 리니지 원작사용 계약 위반행위 등 중지 가처분 신청을 했으나 2001년 7월 서울지방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기각 이유는 그동안 양측의 협의과정 등 종합적인 정황에 비춰봤을 때 엔씨소프트가 원작사용계약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고 신씨의 요구사항이 리니지의 서비스를 중단할만큼 시급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자 신일숙 작가는 본안소송을 준비하지만 다행히도 법정공방으로 가기 전 양측은 합의를 이뤄낸다. 합의 내용은 NC소프트가 만화 '리니지'에 대한 2차 저작권을 받는 대신 10억원을 지급하고 신일숙 작가를 고문으로 위촉, 매월 100만원 지급과 스톡옵션 1,000주 부여였다. 이번 합의로 인해 신일숙 작가는 NC소프트에 대한 모든 소송을 취하하며 리니지 저작권을 두고 벌어진 소송사건은 이렇게 원만하게 마무리되었다.


▲ 리니지의 원작자 '신일숙' 작가





▷ 2001~2002년, 더욱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가는 리니지



저작권관련 소송으로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리니지는 계속해서 성장해나갔다. 2001년 1월 총 회원수가 1천만명을 돌파하며 게임계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 사이 어레인 서버에서는 '빛'아이디를 사용하는 유저가 최초로 52레벨을 달성하며 많은 유저들을 놀라게 했다.


에피소드8:기란과 에피소드9:하이네가 업데이트되며 수룡 파프리온이 등장하였고 그 덕에 힘입어 리니지는 2001년 12월 단일 게임으로는 최초로 매출 1천억원을 돌파한다. 윈다우드, 기란 서버까지 추가로 오픈되며 동시접속자수 18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2001년은 바야흐로 리니지의 전성기라고 불리운 시기였다.


본격적인 콘텐츠 업데이트가 시작되며 많은 유저들을 무릎꿇게 만들었던 드래곤 몬스터들도 속속 추가된다. 2000년 지룡 안타라스, 2001년 수룡 파프리온에 이어 2002년에는 화룡 발라카스가 추가되며 많은 유저들이 드래곤을 쓰러뜨리기 위한 도전을 감행하지만 수많은 유저들이 달려들어도 드래곤의 강력함 앞에서 번번히 좌절을 맛보았다.


2002년 6월에는 에피소드11:오렌 업데이트로 새로운 마법과 상아탑이 등장했다. 이 때부터 요정 전성시대가 예고되기 시작했다. 8월에는 리니지 월드 챔피언쉽이 개최되는데 새로운 15레벨 퀘스트가 등장함에 따라 마나의 지팡이가 없어졌다.


이 당시 이슈였던 것은 2002년 9월에 개최된 대표적 대학축제 연고전/고연전에 리니지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이다. 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 오프라인 종목만 있던 과거와 달리 변화의 추세에 따라 사이버 종목을 추가하며 리니지가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경기 방식은 5명씩 팀을 구성하여 대전하는 방식으로 양교에서 각각 1팀을 선발하여 대결을 펼쳤다. 고려대가 승리하며 막을 내린 리니지 고연전은 당시 리니지의 사회적 영향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는 사례였다.







▷ 리니지, 영등위 사전심의 통해 18세 이용가 받다.



저작권 분쟁을 해결하고 다시 발전의 길을 가고있던 리니지는 2002년 또 다시 암초에 부딪힌다. 문화관광부가 온라인게임 사전등급 심의제를 시행함에 따라 '리니지'가 앞으로 추가할 패치 뿐 아니라 게임전체에 대해 등급심의를 받아야 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동안 '리니지'는 문화부가 느슨하게 적용한 사전심의를 받지 않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사후심의만 받아왔었다.


당시 에피소드11 업데이트를 앞두고 있던 리니지는 급작스럽게 심의를 다시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또한 기준안에 따르면 폭력성 때문에 문제가 된 ‘PK’(player kill)의 경우 상대방의 동의를 거치면 12세 또는 15세 이용가, 동의를 거치지 않으면 청소년 이용불가인 ‘18세이상 이용가’ 등급이 부여되었기에 이에 따르면 리니지는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없게될 가능성이 컸다.


또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사후 심의를 받은 온라인게임은 문광부의 사전 등급심의를 안받아도 되었지만 패치나 업데이트로 일부 내용을 추가할 경우 문광부의 심의를 다시 받아야한다는 조항 때문에 중복 심사 논란도 일어났다.


이렇게 말 많던 사전심의 시행은 부처간 갈등으로 인해 한차례 유보되었지만 결국 5개월 뒤인 2002년 9월 리니지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사전심의를 받게된다. 당시 NC소프트가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제출한 희망 이용등급은 '12세 이용가'.


하지만 2002년 10월 17일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심의결과 '리니지'에 성인용 등급인 '18세 이용가' 등급을 확정한다. 이 경우 기존 회원들은 모두 성인인증을 거치는 작업을 해야하고 18세 미만 청소년들은 게임을 즐길 수 없게 되는 상황. NC소프트 측은 당시 리니지 회원 중 청소년들의 비중이 40%라고 밝혔었다.


이에 NC소프트는 '영등위의 결정을 승복할 수 없다'며 '12세 이용가 등급으로 재심의를 신청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NC소프트의 김택진 대표 역시 '리니지'가 18세 이용가 등급을 받은 것에 대해 '영등위의 리니지 18세 이용가 결정은 온라인게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이뤄진 것으로 청소년 보호라는 미명 아래 선의의 게이머로부터 즐길 권리를 빼앗은 문화탄압이자 온라인게임이라고 하는 경쟁력 있는 산업의 붕괴를 가져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글을 리니지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와 NC소프트의 갈등이 점차 깊어지는 가운데 NC소프트는 PK 행위에 대해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버전을 추가, 재심의를 요청한다. 하지만 동일한 ID로 두개 게임에 아무런 제한없이 접속할 수 있어 독립된 게임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와 함께 '심의물 불량' 판정을 받게된다.


NC소프트는 이에 다시 심의를 요청하고 3차례에 걸친 노력 끝에 청소년이 즐길 수 있는 등급인 `15세 이용가' 등급을 받게 되었다. PK를 할 수 없는 Non PvP버전은 '12세 이용가 등급'을 받았다. 서비스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일부 사용자들이 기존 버전에서 플레이를 할 수 없게 되어 NC소프트는 만 12세 미만과 만 15세 미만 일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이용요금을 환불해주었다. 당시 사건은 온라인게임 사전심의라는 이슈와 함께 자칫 리니지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중단할 수도 있었던 중대한 사건이었다.


▲ NC소프트 '김택진' 대표





▷ 고난은 끝. 리뉴얼 통해 새롭게 태어난 리니지



저작권 분쟁과 사전심의 등 힘든 난관을 넘긴 리니지는 2003년 8월 새롭게 리뉴얼을 단행한다. 게임 내 콘텐츠 일부가 수정되고 새로운 직업 '다크엘프'가 추가된다. 당시 다크엘프는 상당히 강력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어 유저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비슷한 공격형태를 가지고 있는 기사 클래스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줄어드는 현상도 발생했다.


리뉴얼 후에도 '리니지'에 대한 인기는 여전했다. 2004년 15만명의 동시접속자를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9월에는 누적 매출 5천억원을 넘어섰다. 리니지 유저는 계속 증가해 2005년에는 무려 19만명의 동시접속자를 달성하기도 했다. 또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산업자원부로부터 '수퍼브랜드'를 3년 연속 수상하는 영광도 안았다.


2006년 12월에는 44,45번째 정식 서버까지 오픈하며 점차 규모를 늘려나갔다. 당시 서버 종류는 15세 이용가능한 PvP서버 42개와 12세 이용가능한 Non-PvP서버가 3개였다. PvP, Non-PvP, PC방으로 나뉘어진 3개의 테스트 서버도 있었다.


출시 초창기 많은 난관을 몸으로 부딪히며 버텨서 였을까? 이 시기 리니지는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거듭하며 점차 성숙기에 접어든다. 2007년 에피소드5:라스타바드를 업데이트 하기까지 지속적인 콘텐츠 추가로 유저들의 즐길 거리를 늘려나가는데 힘을 썼다.






▷ 시즌3, 안정적인 서비스를 이어나가다.



2008년 10주년을 맞이한 리니지는 시즌3 '에피소드1:시간의균열'로 다시 한 번 변신을 시도한다. 시즌3 에피소드 1에서는 신규 종족 '용기사'와 '환술사'가 추가되는데 이는 2003년 다크엘프 추가 이후 5년만의 신 종족 추가였다.


이후 스페셜 업데이트를 통해 기존 유저들에게 너무나도 높은 벽이었던 드래곤 몬스터들이 리뉴얼되었다. 본래 리니지에 등장했던 지룡 안타라스와 수룡 파푸리온, 화룡 발라카스는 유저들에게 선보인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지형을 이용한 버그성을 제외하고는 아직 정복당한 일이 없었다. 때문에 몇몇 시간대에만 등장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미 모습을 감춘지 오래. 그런 드래곤들이 새롭게 리뉴얼되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


그 시작은 2009년 10월 지룡 안타라스가 최초로 리뉴얼되어 리니지에 새롭게 선을 보인 것이었다. 기존 방식과는 다르게 독자적인 던전 형태로 바뀌어 정해진 파티원으로만 전투를 벌일 수 있게 변경되었다. 기존 강력함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좀 더 유저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변경되어 리뉴얼된 탓인지 안타라스는 리뉴얼 8시간만에 각 서버에서 공략에 성공했다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뒤이어 2010년 5월 리니지는 과거 리니지의 향수를 내세워 신서버 바포메트 서버를 오픈한다. 기존 서버와 바포메트 서버의 다른 점은 무한 PK가 가능한 PvP서버라는 것이다. 이 점때문에 18세 이상 유저만 플레이가 가능했지만 바포메트 서버는 옛 향수를 그리워한 많은 휴면 유저들의 복귀를 이뤄냈다.


2010년이 끝날 무렵 많은 유저들을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5월 리뉴얼되어 등장한 수룡 파푸리온 공략에 성공한 유저들이 나타난 것이다. 2010년 크리스마스 이브인 23일 아덴서버 '꽃비혈맹'은 전세계에서 최초로 수룡 파푸리온의 공략에 성공한다. 당시 리뉴얼 8시간만에 공략에 성공한 지룡 안타라스와는 달리 수룡 파푸리온은 차원이 다른 강력함으로 공략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많은 준비와 전략을 세운 꽃비 혈맹에 의해 리니지 최대 난제로 불리던 수룡 파푸리온도 결국 정복당하고 말았다.

▶ [뉴스] 전서버 최초 파프리온 공략! 아덴섭 꽃비혈맹 바로가기






▷ 13주년 맞이한 리니지. 최초 85레벨 유저의 등장



이러한 과정을 통해 드디어 리니지는 13번째 생일인 2011년을 맞이했다. 우선 게임 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라스타바드 던전의 리뉴얼. 라스타바드 던전은 리니지 최강 무기로 알려진 집행검의 재료를 얻을 수 있는 사냥터로 작업장이나 대규모 혈맹 등에 의해 통제되어왔던 곳이다. 하지만 이번 리뉴얼로 이런 통제가 무의미해져 많은 유저들이 이 던전을 즐길 수 있게 변경된 것이다.


해당 업데이트는 고레벨 유저들의 전유물이었던 라스타바드 던전을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는 데에서 많은 유저들의 지지를 받았다. 아덴 월드 지역 중 가장 어렵다는 라스타바드를 더욱 쉽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 편의성도 더했다는 평도 받았다.


2011년 8월에는 리니지 전 서버 최초로 85레벨을 달성한 유저가 나타나 화제였다. 그 주인공은 미친박카스 혈맹의 대통령이라는 캐릭터. 전 서버 랭킹 1위를 항상 유지한 대통령 캐릭터는 2004년 11월 최초로 80레벨이 달성된 이후 7년만에 85레벨이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리니지 13년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할만한 큰 사건으로 당시 아프리카TV 2개의 중계방이 생길 정도로 많은 관심을 불러모았다.

▶ [인터뷰] 전섭 최초 85레벨 달성!! - 윈다우드 서버 대통령!! 바로가기




▲ 라스타바드 던전 리뉴얼 당시 유저 반응





▷ 아직 끄떡없다. 13주년에도 현역병으로써 건재한 리니지



2003년 리니지2가 오픈베타를 통해 유저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였고 지난 11월에 열린 지스타2011에서는 리니지 이터널의 영상이 최초로 공개되었다. 후속작들의 출시와 정보 공개가 잇따르고 있지만 시리즈의 맏형 뻘인 리니지는 아직도 현역으로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최초 동시접속자수 10만명 돌파, 국내 최초 100만 회원 돌파, 국내 게임 최초 누적 매출액 1조 돌파 등 많은 화려한 기록을 가지고있는 리니지지만 지난 세월 동안 저작권 소송이나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시선 등 갖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국내 어느 온라인 게임보다도 말많고 탈많았던 과거를 거쳐온 리니지이기에 이 13주년이 더욱 뜻깊을 지도 모르겠다.


1세대 온라인 게임으로써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의 역사와도 함께 해온 '리니지'. 하지만 리니지는 아직도 화룡 발라카스, 풍룡 린드비오르 등의 업데이트를 예정하고 있어 앞으로도 당분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는 국내 온라인 게임을 논하는데 있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리니지, 아직도 현역으로 군림하는 리니지가 앞으로 국내 게임 역사에 어떤 획을 그을지 사뭇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