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기 위에 수북히 쌓여있던 학생들의 책가방. 애타게 차례를 기다리며 쌓아놓았던 동전들. 호주머니는 빈곤했지만 게임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도 뜨거웠던 학생들. 약 20년 전 그 날의 풍경이 기자에게는 '헤어진 첫사랑'과도 같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비단 기자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오락실이 성행하던 시절 아케이드 게임에 열광했던 게이머라면, 지난 90년대를 걸어왔던 올드 게이머라면 누구나 위와 같은 추억을 가지고 있을터. 오늘은 그 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 아케이드 게임 센터에서 게임을 즐겼던 그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돌이켜보면 지난 90년대는 아케이드 대전 게임과 횡스크롤 액션 게임이 주를 이루던 시절이었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슈팅 게임이 아케이드 센터를 장악하는 형국이었으나, 80년대 후반 등장한 '파이널 파이트'와 90년대 초 '스트리트 파이터2'의 선전은 게임업계 트렌드를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이후 게임계의 중심에는 '아케이드 대전 게임'이 있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개발사인 '캡콤'과 '킹 오브 파이터즈'를 출시했던 'SNK'. 양대 산맥이었던 이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명작들이 탄생했고, 이후 '남코'의 철권 시리즈가 후발주자로 가세하며 바야흐로 아케이드 대전게임 전성시대가 오랜시간 지속되었다.




▲ 지난 90년대 최대의 흥행작이었던 '스트리트 파이터2'


비록 PC방의 확산과 더불어 비주류 장르로 물러나게 된 아케이드 게임이지만, 그 시절의 게임들이 유저들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각종 게임센터에는 밤늦은 시간까지 대전게임에 열광하는 게이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인기몰이의 주역이었던 '스트리트 파이터2'와 '사무라이 스피릿츠' 등은 9시 뉴스 단골 소재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을 정도였으니.



한편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고전 '스트리트 파이터'와 '철권'이 설치된 게임센터는 여전히 존재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현재도 그 게임들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있다는 것. 이는 어디까지나 고전 게임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유저들이 아직도 많다는 증거가 아닐까?


오늘 이 시간에는 바로 그 때 그 시절을 풍미하던 인기게임, '추억의 아케이드 대전 게임'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과연 90년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아케이드 대전게임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스트리트 파이터 - 대전 격투 게임의 신화로 남겨진 그 이름



가장 먼저 소개할 작품은 역사상 최고의 대전액션 게임으로 칭송받았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이다. (이하 스파)
훗날 대전액션 게임의 신화로 남겨질 '스파' 첫 시리즈는 지금으로부터 24년전인 1987년 '캡콤'에 의해 제작되었다.


첫 시리즈인 '스파1'은 무명격투가였던 류와 캔이 어떻게 무도가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지, '스파' 세계관의 시초를 알 수 있는 게임. 한편으로는 까마득한 고전 게임의 시초임에도 불구하고 대전게임의 기본 뼈대를 튼실히 갖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지난 80년대 게이머들에게는 게임이 아닌 추억으로 남아있을 '스트리트 파이터' 1편



물론 현재 시각에서 보자면 조작감이 다소 어설프고 게임성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아가 선택 가능한 캐릭터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플레이어의 자유도 또한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스파1'을 언급한 이유는 바로 이것에 있다. 정식 'VS 모드'가 도입되었다는 점, 대전 게임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커맨드 입력'이 뚜렷하게 나타났던 작품이었다는 것.


'스파1'은 훗날 후속 시리즈인 '스파2'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재조명 받게 되는데, 1987년 출시된 게임이 90년대까지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 스트리트 파이터 2 =

'스파 1'이 출시된지 5년 뒤인 1992년. '캡콥'은 마침내 정식 후속작인 '스파 2'를 출시한다. 그 당시 '캡콤'은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훗날 '스파2'가 아케이드 대전게임의 전설적인 신화로 남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만큼 당시 '스파 2' 열풍은 상상을 초월했다. PC방 문화의 확산을 이끌었던 '스타크래프트'와 캐주얼게임의 대명사 '카트라이더'의 인기와도 견줄 수 있을 정도. 지금보다 가난했던 당시의 경제 상황을 감안한다면 '스파2'의 영향력이 오히려 컸다고도 볼 수 있다.



▲ 대전격투 게임 최대의 흥행작이었던 '스트리트 파이터2'


'스파2'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독특한 개성을 지닌 신규 캐릭터의 등장이다. 주인공만 선택할 수 있었던 전작과는 달리, 혼다, 블랑카, 가일 등 개성만점 뉴페이스들이 대거 등장하여 게이머들을 열광케하였다. 이후 확장팩격인 '스파2 대쉬'가 적절한 타이밍에 후속타로 등장, '스파2' 의 인기는 절정에 치닫게 된다.


'스파2 대쉬'의 인기 비결은 보스급 캐릭터들에 있었다. 일명 사천왕으로 불리우며 전작에서는 선택 불가했던 보스급 캐릭터를 직접 플레이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게이머들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천왕의 등장은 그렇게 '스파2'의 인기를 가속화시켰으며, 그 결과로 '스파2'는 지속적인 흥행 신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 게이머들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던 사천왕의 정식 등장


한편 '캡콤'에게 있어 '스파2'는 스스로도 극복해야 할 산이었다. '스파2'의 대성공 이후 밑도 끝도 없는 '버전업' 시리즈가 끝없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사실만 보아도 당시 '캡콤'이 '스파2'에 걸었던 기대감이 얼마나 컸는지를, '스파2'를 능가하는 후속작을 개발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훗날에도 '캡콤'은 '스트리트 파이터'의 수많은 후속 시리즈를 출시했다. 그러나 이후의 시리즈는 '스파2' 시절만큼의 독보적인 인기를 구사하지는 못했다. 결국 '스파2'를 지나치게 우려먹는다는 비판 속에서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2' 를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는 '스파'가 더이상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아랑 전설 - 아케이드 게임계에 도전장을 내던진 SNK !



'스트리트 파이터'의 대성공 이후 아케이드 게임계는 '스파'의 아류작들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SNK의 '아랑전설'이다. 현 시점에서 보자면 역대 베스트 걸작 게임으로 평가받는 '아랑전설'이지만 그 시작은 예상외로 초라했다.


평균 이하의 타격감. 어설픈 공격 판정. 엉망인 캐릭터 밸런스.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재미요소를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던 삼류 게임. '아랑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첫 시리즈는 게이머들에게 혹평을 받으며 게임시장에서 참패를 당했다.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졌으며, 어느 순간 소리소문 없이 아케이드 센터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지금은 명작으로 남아있는 아랑전설 시리즈


▲ 그러나 그 시작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으니...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두 번째 시리즈에서 대박이 터졌다. 전작의 실패요소를 철저히 분석한 SNK가 참신함과 풍부한 재미요소로 무장한 '아랑전설2'를 출시해 설욕전을 펼치기 시작한 것. 그 때부터 '캡콤'과 'SNK'의 불꽃 튀는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두 명의 캐릭터를 선택해 각각 대전을 펼치는 '아랑전설2'의 시스템은 참신했다. 새롭게 등장한 한국인 캐릭터 '김갑환'과 섹시 여성캐릭터 '마이' 또한 게임의 매력 중 하나. 나아가 화려한 이펙트와 화끈한 공격 콤보, 짜릿한 캐릭터별 궁극기는 게이머들의 극찬을 이끌어냈고, 그 결과로 '아랑전설2'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국내 아케이드 게임계에서 대흥행을 거두게 되었다.




▲ 한국인 대표 캐릭터로 큰 인기를 모았던 '아랑전설'의 김갑환


사실 SNK에게 있어서 '아랑전설2'의 성공은 메이저 개발사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SNK는 '아랑전설2'의 흥행을 시작으로 소위 잘 나가는 개발사가 될 수 있었고, '캡콤'의 라이벌로 급부상할 수 있었으니.


한편 이후에도 아랑전설 후속 시리즈는 꾸준히 출시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후속 시리즈는 기대만큼 흥행 성적을 거두지 못했는데, 당시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던 SNK의 재정 상태와 No.1 개발사라는 안일함이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용호의 권 - 방대한 세계관을 선보인 SNK의 야심작



카리스마 넘치는 료 사가자키와 로버트 가르시아의 탄생. SNK 최초의 히트작 중 하나인 '용호의 권'은 아케이드 게임계의 새로운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용호의 권'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독자적인 세계관이 아닐까. 1편에서 무한한 의문(?)을 남긴 채 종결되었던 시나리오가 2편 '기스 하워드'의 등장으로 모든 진실이 풀리는 대목은 가히 압권이었다.


한편으로 캐릭터간 거리에 따라 적재적소의 순간에 시점이 확대 및 축소되는 줌인 / 줌아웃, 대전게임 역사상 최초로 등장했던 '궁극기' 스킬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 짜릿했던 료 사가자키의 필살기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 ◑


SNK는 4년에 걸쳐 '용호의 권', '용호의 권2', '용호의 권 외전', 총 3개의 시리즈를 출시했다. 어린 시절 가장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 중 하나가 '용호의 권'인데, 그만큼 기자의 가슴 속에는 잊지 못할 명작으로 남아있다.





킹 오브 파이터즈 - 꿈에 그리던 드림 매치가 현실이 되다!



'꿈에 그리는 드림 매치' 라는 슬로건으로 아케이드 게임계를 강타한 '킹오브파이터즈'. (이하 킹오파) SNK 가 '스트리트 파이터'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캡콤'과의 격차를 단숨에 좁혀버릴 수 있었던, 아니 오히려 '캡콤'을 능가할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희대의 역작 '킹오브파이터즈'시리즈에 있었다.


당시 '용호의 권' 캐릭터들과 '아랑전설'의 캐릭터들이 서로 대결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기존 인기작 캐릭터들의 드림 매치가 현실로 구현되자 수많은 게이머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시스템 또한 그 동안 늘상 보아오던 1vs1 매치가 아닌, 획기적인 3vs3 팀배틀!



▲ 서바이벌 방식의 3v3 팀배틀을 선보이며 호평받았던 '킹오브파이터즈'


역대 '킹오파' 시리즈 중 최고의 히트작은 꼽으라면? 개인적으로는 '킹오파 95' 시리즈를 꼽고 싶다. 아케이드 게임계에서 '스파2', '철권TT'와 더불어 '킹오파 95'만큼 최고의 열기를 보여주였던 대전게임이 어디 또 있을까? '드림 매치'라는 핵심 컨셉 속에서 자유로운 팀 에디팅, 한국인 취향에 맞는 스피디한 전투, 강력한 한방 콤보 시스템을 선보였던 '킹오파95'는 출시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물론 캐릭터간 밸런스가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단점을 제쳐두고라도 '킹오파 95'가 정말 재미있는 대전게임이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 1995년 전국 각지의 아케이드 센터를 점령했던 '킹오파 95' 시리즈


▲ 새롭게 등장한 '쿄 쿠사나기'의 라이벌 '야가미 이오리'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한편 1996년 당시 아케이드 게임계에는 다양한 이변이 벌어졌다. SNK의 야심작 '용호의 권 : 외전'이 처참한 시장에서 참패했던 것이 그 중 하나. SNK는 '용호의 권 : 외전'이 예상외로 저조한 성적을 거두자 예정일보다 더 빨리 앞당겨 '킹오파 96'를 출시하기에 이른다.


'킹오파96'은 현재의 '킹오파' 스타일의 시초답게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고 덕분에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기존 시스템에서 여러모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게이머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는 양상을 보였다.


전작인 '킹오파95' 의 매력요소였던 짜릿한 타격감이 대폭 감소했고, 커맨드 입력이 까다로워 졌다는 평이 지배적.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쉬웠던 점은 신규 캐릭터들이 하나, 둘 추가되며 '드림 매치'라는 핵심 컨셉이 서서히 퇴보해 갔다는 점이다.




한편 한 시대를 풍미했던 '킹오브파이터즈'는 '97 시리즈'를 시작으로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3D 대전게임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던 90년대 말, No.1 개발사라는 매너리즘에 빠져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SNK의 마인드 때문이었을까. 심각한 회사 경영난에서 비롯된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킹오파 99'를 마지막으로 희대의 드림매치는 아케이드 시장에서 서서히 잊혀져가고 말았다.





사무라이 스피릿츠 - 짜릿한 손맛이 일품이었던 본격 칼부림 대전게임


▲ 역대 최고의 손맛을 자랑하던 추억의 게임 '사무라이 스피릿츠'


본격 칼부림 대전액션게임! 찌르고 베는 손맛이 일품이었던 '사무라이 스피릿츠'는 1993년 출시되었다. 역시나 SNK 개발사의 작품. 상대방을 찌르고 벨 때 시원스럽게(?) 뿜어져 나오던 붉은 선혈은 당시로써는 파격적이었다. 덕분에 폭력적인 게임 1순위로 각종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지만, 적어도 게임 자체는 흠 잡을만한 데가 없었다.


1993년 첫 시리즈를 최근 작품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있다. 이후의 '사무라이 스피릿츠'는 전형적인 SNK 스타일이지만 첫 시리즈만큼은 칼을 이용한 한 방 싸움, 심리전에 초첨이 맞추어져 있었으니. 특히 이런 한 방 대미지가 강력했던 캐릭터가 있었는데 바로 주인공 하오마루이다.


주인공답게 가장 높은 인기를 구사했던 하오마루는 강력한 콤보로 상대방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것이 가능했다. 때문에 '사무라이 스피릿츠'에서만큼은 고수와 초보의 실력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무리 못하는 초보자도 고수를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충분히 존재했고, 이는 신규 유저의 게임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편 1년뒤 출시된 '사무라이 스피릿츠2'는 역대 최고의 명작이다. 전작에 비해 대폭 업그레이드 된 그래픽, 시대적인 흐름에 맞춰 도입된 '궁극기' 시스템은 게임의 재미를 한층 더해주었고 국내에서도 큰 흥행을 거두었다. 일격에 승부를 가르는 검투사들 간의 칼부림! 짜릿한 손맛은 여전했고, 전작에 비해 몰입도가 더욱 높아졌다는 평을 들었다.


한편으로 2편의 가장 큰 특징으로 신규 캐릭터 '겐쥬로'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악인 캐릭터이면서도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유해 유저들에게 높은 인기를 누렸던 '겐쥬로'. 훗날 '킹 오브 파이터즈'의 인기 캐릭터 '야가마 이오리'의 컨셉이 되기도 했던 '겐쥬로'는 주인공 하오마루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게임의 흥미를 한껏 높여주었다.



▲ '스파'의 '류'와 '캔'처럼 '사무라이 스피릿츠'에는 '하오마루'와 '겐쥬로'가 있었다.





버추어 파이터 - 세계 최초의 3D 대전액션 게임이 등장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초의 3D 대전액션 게임 '버추어 파이터'가 출시되자 유저들은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3D 전투, 캐릭터의 리얼한 움직임과 특유의 타격감은 수많은 게이머들을 '버추얼 파이터'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당시 2D 그래픽이 전부였던 아케이드 게임시장에 3D 게임의 등장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단기적인 수익 뽑아내기에 급급해 아류작이 넘쳐흐르던 그 때 그 시절. 게이머들은 세가의 (SEGA) 창의력과 모험 정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한편으로 개발자 '스즈키 유'는 '버추어 파이터'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다.



▲ '버추어 파이터'의 개발을 총괄했던 '스즈키 유'


1편이 유저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첫 시리즈였다면 2편은 '버추어 파이터'의 네임 밸류를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 당시 '버추어 파이터' 개발을 총괄했던 '스즈키 유'는 "버추어 파이터2 에 내 모든 개발 인생을 걸었다. 2편을 즐겨본다면 전작 시리즈는 쳐다보지도 않게 될 것" 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는데, 실제로 2편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3D가 아케이드 게임의 대세로 자리잡게 되었다.


'버추얼 파이터2'는 완성형에 가까운 3D 대전게임으로 재탄생했다. 비록 3D이기는 하나 깔끔하지 못했던 전작의 그래픽적인 오류를 대폭 수정했고 박진감 넘치는 격투의 묘미 또한 잘 살려 유저들에게 호평 받았다. 한국에도 널리 보급되어 사상 최초로 대규모의 팀 배틀이 형성되기도 했으며, 일본은 비롯한 국내에서도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 최초의 3D 대전게임으로 주목받았던 '버추어 파이터'


한편 1990년대 당시 역대 최고 수준의 3D 그래픽 퀄리티를 선보였던 '버추얼 파이터3'는 예상을 뒤엎고 한국에서 큰 흥행을 거두지 못하였다. 어렵고 복잡했던 조작법, 대중성보다는 매니아 스타일의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었을까? 값비싼 게임기기가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버추얼파이터3'의 실패를 기준으로 '남코'의 '철권'시리즈가 새로운 3D 대전게임의 트렌드로 자리잡게 된다.





철권 - 놀라운 진화, 90년대 후반을 풍미한 최고의 인기게임 !


▲ 아케이드 게임 역사를 논하는데 있어서 과연 '철권을 빼놓을 수 있을까?


한국 아케이드 게임의 역사를 논하는데 있어 과연 '철권'을 빼놓을 수 있을까. 단언코 대답은 No 이다. '버추어 파이터'가 어려운 조작법과 값비싼 비용으로 국내 아케이드 센터에 널리 보급되지 못했던 틈을 타 득세했던 게임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남코'의 '철권' 시리즈.


3D 게임의 원투탑이었던 '버추어 파이터'와 '철권'. 당시 게이머들은 '버추어 파이터'와 '철권'을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밖에 없었는데 혹자는 '철권'을 두고 '버추어 파이터'의 아류작이라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철권'은 이런 비판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체적인 독특한 시스템을 선보이며 유저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4개의 버튼을 이용한 조작법과 게임의 백미인 '10단 콤보' 및 '공중 콤보'가 그 일례.



▲ 너클봄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철권'의 '킹'


▲ '철권'하면 카즈야의 아버지인 '헤이아치' 또한 빼놓을 수 없지 않는가!


2편에서는 일부 캐릭터만으로 한정되던 띄우기 이후의 공중 콤보가 보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구사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 철권의 매력이었던 10단 콤보 또한 더욱 강력해졌고, '데빌 카즈야'가 핵심 인물로 부상하며 세계관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역대 '철권 시리즈'의 최대 흥행작이라 한다면? 당연히 '철권 태그 토너먼트'가 아닐까. 스페셜 버전으로 출시된 '철권 태그 토너먼트'는 전작의 캐릭터들을 모두 등장시켜 '드림 매치'를 구현했다. 전투 중 캐릭터를 교체할 수 있는 '태그 시스템'의 도입 또한 재미 요소 중 하나.


태그 시스템을 통해 스피디하고 짜릿한 격투를 즐길 수 있었으며, 화끈한 격투를 선호하는 한국 유저들에게 태그 이후의 공중 콤보는 최고의 재미를 선사하였다.



▲ 현재까지도 아케이드 센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최고의 명작 '철권 태그 토너먼트'


'철권 태그 토너먼트'는 국내 아케이드 센터에서 가장 흥행했던 대전액션 게임이며, 현재까지도 '철권 태그 토너먼트'가 설치된 아케이드 센터가 상당수 존재할만큼 그 인기는 여전하다. '버추어 파이터'가 일본 유저들 취향이었다면, '철권'은 한국인 취향에 잘 맞는 게임이 아니었나 싶다. 때문에 국내 아케이드 시장에서 '버추어 파이터'를 제치고 독보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한편 바로 이 '철권 태그 토너먼트'를 마지막으로 아케이드 게임은 한국의 게임 시장에서 비주류로 밀려나게 된다. (RTS'스타크래프트'의 등장과 PC방의 확산)





모탈 컴뱃 - 북미 최고의 인기를 구사했던 대전액션 게임



마지막으로 소개할 게임은 유일하게 북미에서 제작된 '모탈 컴뱃' 시리즈이다. 기자가 이 게임을 언급한 이유는 바로 최초로 게임상에 '실사' 그래픽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3D 그래픽 기술이 전무하던 1990년대 초, 캐릭터가 리얼한 실사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물론 현재 시각으로 본다면 어설픈 시도일 뿐이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로 본다면 상당히 파격적이였다. 또한 이 게임의 진정한 묘미는 격투가 끝난 뒤 상대방을 향해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Fatality' (마무리 공격)에 있었다. 상대방과의 결투에서 승리한 이후 자신만의 마무리 액션으로 상대방을 쓰러뜨릴 수 있었는데,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잔인함이 압권이었다.



▲ 최초의 실사 그래픽으로 화제가 되었던 '모탈 컴뱃' 시리즈


칼로 상대방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리거나 상대방을 감전시킨 후 사지를 절단내는 행위는 지금 봐도 상당히 잔인하다. 문제는 이런 장면들이 게임상에서 여과없이 흘러나왔다는 것.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대표적인 게임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바로 이것이 '모탈 컴뱃'만의 재미 요소가 아니였나 싶다. 실제로 끝내기 액션에 의미를 두고 '모탈 컴뱃'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이 많았으니.




▲ 잔인함의 대명사 '모탈 컴뱃'


▲ 사실 이 재미로 '모탈 컴뱃'을 즐기는 유저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이후의 시리즈에서는 '마무리 액션'의 잔혹함이 대폭 감소되었고, 그에 따라 국내에서의 인기도 사그라들었다. 한편으로 '모탈 컴뱃'은 첫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국내에는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실사 그래픽을 선보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는 게임이며, 북미 게임차트 상위권에 꾸준히 랭크 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마치며

좋은 영화나 책이 그렇듯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 역시 오랜시간 기억에 남는 법.


과거의 명작 게임들이 세월과 함께 연기처럼 잊혀진다는 사실이 종종 아쉬웠다. 오락실보다는 PC방이 친근하고, 아케이드 게임보다는 MMORPG를 선호하는 오늘날의 유저들에게는 "이 촌스러운 게임은 뭔데?" 라는 반응이 나올런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 시절의 게임이 선사하던 특유의 재미는 오늘날의 게임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었으니...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도록 한다.



"애타게 차례를 기다리며 조이스틱 옆에 한 층 한 층 쌓아놓았던 동전들...."
"저금통을 뜯어 없는 동전 긁어모아 오락실로 향하던 어린 꼬마의 모습...."


기자에게 있어 지난 90년대의 대전게임들은 게임이 아니라 추억이다. 90년대를 걸어왔던 올드 게이머들에게는 잠시나마 향수를 느끼는 시간이었기를, 오늘날의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는 과거의 고전 게임을 가볍게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