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제: 이 바닥은 원래 이렇지 않다!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혹은 타 업계에서 그런 말이 전파되어 적용되는지도 모르겠다.


"이 바닥이 원래 이래"


불합리와 부조리를 당연시하는 이 말투나 행태를 접할 때마다
"저렇게 하고 싶을까?"라는 의문이 머리속에 솟구치곤 한다.


분명히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이 속한 곳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다.
어디 한 구석에 처박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이 아니라면,
그래서 혼자만 몰래 몰래 두고 두고 감상할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다 알려질 터인데
지금 당장의 편리함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을 팽개치는 그 용기가 때로는 신기할 따름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버리지 않고서야
어찌 자신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떡하니 박아놓고
자신이 속한 곳의 로고를 떡하니 삽입하면서 그럴 수 있는가 말이다.


이쯤 되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거나
혹은 편리함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라고도 해야할 터이다.


어차피 같은 게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게 되면, 정보 그 자체의 양상은 비슷해지고
퀘스트나 공략 같은 정보 소개쪽일수록 유사성을 많이 가지게 마련이다.
편집자에 따라 제 아무리 가공과 추가와 서술 방식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근본적으로 게임내에서 제공되는 내용 그 자체는 동일하게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항상 좀 더 빠르고 편리하고 쉬운 길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
그래서 항상 누군가 먼저 해놓은 것을 보고 참조하게 된다.


아니, 참조 그 자체는 좋다.
참조 그 자체는 하나의 벤치마킹이고
나의 것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하나의 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 먼저 해놓은 것을 긍정적으로 이용했을 때에 그렇겠지만,
문제는 그와 반대로 부정적인 욕망에 이끌려 순간 판단력을 상실했을 때이다.


마음속에 있는 천사와 악마, 혹은 처한 상황이나 압력에 의해
어느 순간 부정적 욕망의 파워가 강해지면,
이제 참조가 아니라 모방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벤치마킹이 아니라 최대한 자신의 일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 EQ2 퀘스트 중, 놀이 술을 빚다니!? 관련 화면, 참으로 사연이 많다 ]




복사와 베끼기, 도용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일어난다.
남이 해놓은 수고를 아무런 댓가도 지불하지 않고
드래그와 복사를 통해서, 컨트롤 C 와 컨트롤 V 를 통해서
그대로 사용해서 마치 자기 것인양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정보 하나를 가져왔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정보를 생산해 내기 위해, 그 컨텐츠를 가공하기 위해
그 당사자가 들였을 시간과 노력과 땀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보라고 만든 것이지 가져가라고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고 도움이 되라고 만든 것이지 베껴서 니 가지라고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궁금한 것은,
타인의 것을 몰래 가져가 자기 것인양 하던 사람은
과연 자기가 생산한 것을 도용당했을 때 어떤 심정일까 하는 것이다.


나도 그랬는데 뭐... 당연한 거지... 라고 생각을 할까 ?
아니면, 내가 고생하고 머리 굴려가며 만든 걸 니가 왜 써 ? 라고 할까 ?


무릇 글을 쓰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자신의 업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윤리의식과 자존심을 필요로 한다.


아직 산업의 구조와 패러다임이라는 것이 정착하지 않은 상황,
그러한 상황에서 흠결을 남기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는,
그래서 윤리적으로 부도덕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스스로에 대한 각인과 각오가 필수적이다.


특히 매체라는 특성상 그 의무감은 더하게 마련이다.
키보드의 손놀림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릴 수 있고
상처를 줄 수도, 기쁨을 줄 수도 있게 마련이다.


매체에서 일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게임에 대한 풍부한 플레이 경험이나 해박한 지식보다는
먼저 스스로의 위치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규제하는 윤리의식과 자존심인 것이다.


이 바닥이 원래 이래 .... 라는
한편으로는 자조적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이 말.


이 바닥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는 당신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당신 때문에
이 바닥이 그렇게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편리함에 대한 검은 욕망은 순간이지만,
모든 것은 결과로 남게 마련이고 누군가는 기억하게 마련이다.


언젠가 "이 바닥은 그러면 살아남지 못해"라는 말이
모든 관련자들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때,
누군가의 기억이 되살아나 편리함이 악령으로 돌변할 것이고
불합리한 상식은 상식의 꼬릿표를 떼고 불합리로 남게 될 터이다.


돌이켜보면, 시간은 어느 순간 이미 지나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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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en LuPin - 서명종 기자
(lupin@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