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 집을 찾아가 담소를 나누며 환한 미소를 지어본 기억이 있으시나요. 가족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 바라보며 웃음을 나누던 시간 말이죠. 사는 이야기를 통해 매사를 함께 걱정하고 기뻐해 주던 날들에 대한 추억의 향수가 문득 떠오릅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가족 간의 대화보다 개인의 사생활이 중요해진 지금, 세대 간의 격차로 말미암은 대화의 단절은 가족 관계에 서먹함을 불러왔습니다. 서로 간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일까요.

모든 세대가 함께 온라인상에서 어울리는 그날, 생각만 해도 꿈만 같은 날이죠. 명절날 모여서 아이패드로 윷놀이하고 취미생활로 가족이 게임을 즐기는 날, 밥상에서 아이 어른 구분 없이 웃음꽃 피우며 대화를 할 수 있는,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믿지만, 확신을 할 수 없는 지금 한 가족을 보며 미래를 상상하고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제주도에 거주하시는 송계옥(72세)할머니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과거 2005년 인벤에서 '65세 할머니의 리니지2 도전'이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한 뒤 7년 만에 다시 온라인상에서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7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리니지2'를 하시며 가족들과 웃음꽃을 피우고 계셨는데요. 한글을 모르셔서 아들분과 함께한 따뜻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진만 봐도 행복함이 전해지는 송계옥(72세)할머니의 가족사진]


"어머니는 많이 바쁘십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손녀 3명을 학교에 보내시고 점심에는 형이 운영하시는 카센터 직원들 점심을 챙겨주십니다. 저녁에는 세탁물이 많아서 저녁준비에 세탁까지 하루가 짧을 정도로 아주 바쁘셔요. 그 와중에 틈틈이 '리니지2'를 즐기시며 여가 생활을 보내시고 있는 거죠.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때는 누구보다 좋아하시고 웃음꽃을 피우시며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대화의 첫 시작은 할머니의 일과와 사랑으로 시작했습니다. 게임에 몰입하여 플레이하는 경우 많은 사람이 중독이라는 단어를 쓰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송계옥(72세)할머니는 이제껏 '게임왕'이라는 칭호로 많은 사람의 입가에 오르내리고 있는데요. 할머님의 하루는 지극히 평범한 할머님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있으시는 시간이 많으십니다. 손자들도 학교에 가고 아들들도 일을 하기 때문에 항시 혼자 계시죠. 티브이를 보고 산책을 하는 반복적인 생활보다 많은 사람을 구경하며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있고, 꼭 사람이 사는 세상 같다며 '리니지2'를 여가 생활로 즐겨 하십니다.

처음에는 제가 하던 걸 구경하시곤 했는데, 잠시 자리를 비우면 캐릭터를 움직여 보시면서 접하셨습니다(웃음). 어머니가 흥미를 느끼시는 것 같아 알려 드리기 시작했죠. 어려워 하시는 것 같았지만 조금씩 해보시더니 생각보다 잘하시더라고요(웃음).


[▲인터뷰 도중 많은 질문에 매번 웃음으로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니지2'를 통해 할머니는 많은 것을 받았다고 전하셨습니다. 자신과 닮은 작고 아담한 캐릭터, 많은 사람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가족 간의 행복을 말이죠. 할머니는 게임을 하시며 자연스럽게 아들분들과 이야기가 잦아지셨고 손자들과 작은 부탁으로 시작한 대화는 이제 봄날의 달콤한 꽃향기와 같이 행복이 묻어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좋다고 하시고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저희 아들들도 기쁩니다. 어쩌다 캐릭터가 눕기라도 하시면 일하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슬픈 모습으로 '그남자(캐릭터 이름)' 누웠다고 살려달라고 하십니다(웃음). 그 모습을 보면 정말 귀여우셔요.

저희와 손자들에게 작은 부탁도 하며 웃으시는 어머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합니다. 어려운 부탁이 아니니 항시 들어주며 같이 웃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많은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가족 간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인터뷰 도중 우연히 들리신 미마님은 할머님과 아들분 모두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게임을 통해 가족과 더 가까워지신 할머니, 하지만 한글을 잘 모르셔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대답을 못하시기 때문에 중국 유저로 오인당하는 일도 많으셨는데요. 한번은 가입한 혈맹이 다른 혈맹과의 전투가 벌어지는 도중에 사냥하다 무한 필드 척살 때문에 누운 경우도 상당히 많으셨다고 합니다.

혈맹과의 전투로 캐릭터가 자꾸만 쓰러지니 너무 속상해하셨던 할머니, 그 당시 군주였던 '행운아템'님은 할머니의 캐릭터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그남자님을 죽이지 말고 차라리 나를 죽여라"라며 소리친 일화 외에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젊은사람들 사이에서 한글을 몰라 많이 힘들지만 다양한 일화 속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통해 이를 극복하시며 웃으시는 할머니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에서 캐릭터를 쓰러트리고 아이템을 갈취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한분이 어머니를 연속 2번 정도 눕힌 적이 있었어요. 게시판에 어떤 유저분이 할머니를 눕힌 분에 관한 이야기를 올려서 게시판이 난리가 났었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상대방과 귓말을 해보면 다 괜찮은 분들이더군요. 다들 귓말로 대화할 때는 어머님께 죄송하다고 오래오래 건강하시라는 말을 남깁니다. 게임상에서 악한 행동을 하지만 나쁜 사람들은 아니더라구요. 어머님은 자기 캐릭터가 눕더라도 상대방을 원망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입으로 인사를 하며 웃을 수 있으신거겠죠(웃음)"


[▲인터뷰 중간마다 매번 감사의 말을 전하시는 아들분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할머님과 아들분들은 항상 많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이야기 도중 계속해서 하셨는데요. 한글을 잘 모르시는 할머니를 위해 여러 면에서 성심껏 도와주는 길드 분들과 지나치며 인사해주시는 분들, 버프를 주시며 응원해주시는 분들 등 이제껏 마주친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말을 계속해서 전하셨습니다. 여태껏 게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많은 분의 따뜻한 시선과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씀에서 봄처럼 따뜻하고 아늑한 유저들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임상에서 어머님을 도와주시는 분들께 항상 고맙습니다. 저희 아들들은 어디든 어머님과 함께이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많이 걱정됐었죠. 특히 게임을 처음 시작하시면서 스트레스라도 받으실까 봐 노심초사했습니다.

하지만, 2005년 경 인터뷰를 한 후부터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감사했죠(웃음). 한글을 잘 모르셔서 버프 받는 걸 가장 힘들어 하셨는데, 그 후부터 많은 분이 지나가며 버프도 주시고 인사를 먼저 해주십니다. 마치 가족과 이웃이 생긴 것처럼 말이죠. 아들로서 너무 감사합니다. 많은 분께 계속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해도 모자를 만큼... 너무 감사드립니다."



[▲버프를 받을때 감사의 표현과 장미꽃을 선사하시는 할머니 캐릭터]


오랜 기간 서비스해온 '리니지2'는 축적된 시간만큼 다양한 콘텐츠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드넓은 맵과 다양한 시스템이 존재하죠. 젊은 사람들도 배우기 어려운 게임을 할머니는 수년간 즐기고 계시는데요. 캐릭터의 전직과 다양한 스킬, 레이드, 퀘스트 등 어려울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의 캐릭터가 지금에 도달하기까지 과정에는 바쁜 와중에도 할머니의 웃음을 위해 적극 지원해주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오샐로그로 전직하면서 스킬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어머님께서 스킬 하나하나 이해하고 쓰시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그래서 제가 배치해둔 순서대로 클릭하시며 사냥을 하십니다. 어머님의 즐거움은 게임 스킬에 대한 이해보다 직접 뛰어다니시며 구경하시고 사냥하는데 있기 때문에 많이 도와 드립니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글을 전혀 모르시기 때문에 레이드나 퀘스트는 아들들이 대신 해 드립니다. 혈맹분들이 많이 가자고 하시지만, 어머니께서 민폐 끼치게 될까 봐 안가시려고 하세요. 대신 꼭 필요한 부분은 저희가 가는 거죠(웃음). 이곳 실봉에서는 가끔 어머니가 파티 사냥하시기도 합니다. 버프 주시는 분들이 어머니 모시고 사냥하는 모습도 보이고요(웃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많은 사람이 정성과 노력으로 캐릭터를 키우고 싫증이 나면 다른 게임을 접합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캐릭터는 가족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체였고, 세대 간의 벽을 허물어 주는 든든한 동반자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군가 누워 있으면 도와주지 못해 슬퍼하시는 할머니]


속과 달리 게임왕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칭호로 불리우게 되신 할머니는 최근 이 칭호 때문에 힘든 일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디아블로3' 출시 당일 줄을 서 있는 한 할머니의 사진이 잘못된 보도로 오인 받으며 시작되었고 할머니의 유명세를 이용한 언론의 억측은 가족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하루였습니다. 주위 지인들에게 많은 전화가 왔었고 많이 욕먹었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할머니 대단하시다고 하시던 분들이 하루 만에 바뀌어 아무리 게임을 좋아하신다고 서울까지 올라가서 줄을 서게 하느냐는 말을 잇달아 했습니다. 황당했죠. 정정보도는 했지만, 기자분께 직접 사과는 아직도 못 받았습니다. 아직도 기분이 나쁘네요. 그리고 '디아블로3' 할머니로 금세 퍼지더라고요. 욕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게임을 이해하시면서 혼자 즐기시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많은 사람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가족 간의 행복을 위해 하신 거지 게임을 찾아가며 즐기시지 않습니다."


[▲'디아블로3'와 관련된 잘못된 보도로 많은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게임을 즐기시지만, 자신만의 재미를 위해 빠져 사는 게 아닌 여가 생활의 한 부분으로 즐기신다는 것을 강조하며 잘못된 시선에 아쉬움을 남기셨습니다. 할머니께서 게임을 사랑하는 이유를 많은 분이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길 바란다는 말을 이으셨습니다.

"많은 분의 사랑과 관심으로 저희 어머님은 하루하루가 행복하십니다. 가족 간의 소통과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게임이 자신에게 이렇게 큰 사랑을 주게 할지 몰랐다며, 글도 모르는 이 늙은이를 도와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매번 도와주시고 버프를 주시며 인사하시는 분들께 비록 글을 쓸 줄 몰라 인사말과 감사의 말을 전할 수 없지만, 컴퓨터 앞에서 웃으며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의 인사말을 남기시니 서운해하지 말아주라고 전해 드리라네요. 아들로서도 어머님을 항시 돌봐주고 따뜻하게 감싸안아주는 많은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마지막 기념사진은 아름다운 아덴성 앞에서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