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C 2012 첫 날 오전의 마지막 시간에는 ‘나는 게임 개발자다’ 라는 주제로 넥슨 김지원 팀장의 강연이 있었다. 많은 개발자와 지망생들이 관심을 가진 덕택에 강연장이 꽉 찼고, 바닥에 앉아 강연을 듣는 사람들도 즐비했다.

강연은 게임 개발자를 꿈꾸며 살아온 10년과 게임 개발자로서 살아온 10년을 돌아보며 대한민국에서 게임 개발자로 살아간다는 것과 게임 개발자로 살아갈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한 내용으로, 강연자의 경험과 생각에 대해 얘기하는 형식이었다. 강연 내용은 지금까지 진행했던 프로젝트나 소속했던 단체와 무관하게 진행될 것을 밝혔다.


■ 소년, 게임과 조우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고 만화 드래곤볼이 한참 유행하던 시기, 게임을 좋아하던 아버지로부터 생일 선물로 게임기를 받았다. 처음으로 접한 게임은 내가 직접 조작하면 그게 반영된다는 점이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 뿐이었다.




■ 소년,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하다

내 인생을 바꿔놓은 게임이 등장했다. 파이널 판타지 3. 미려한 그래픽, 웅장한 사운드, 심금을 울리는 시나리오 등 모든 것이 나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잘 만든 게임 한 편은 잘 쓰여진 명작 소설, 평생 기억에 남는 명작 영화와 같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이러한 감동을 전달하고 싶었고, 처음으로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량한 학생들이나 다니는 전자오락실로 대표되던 당시의 게임에 대한 인식은 좋지 못했다. 그러한 인식을 바꾸고 게임을 대중적인 문화 매체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전달하고 싶었다. 내가 느낀 감동, 즐거움, 행복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게임 개발자가 될 수 있을 지 생각했다. 그 시절에는 게임 개발사가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어떻게 해야 입사할 수 있을 지 몰랐다. 그래서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로 했다. - 독서, 게임 플레이, 영화 감상, 만화/애니메이션 감상, TRPG, TCG, 작문, 만화 그리기, 공모전, 게임 공략/비평 등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단지 게임 개발자에게 선택 요소일 뿐, 게임 개발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꿈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말로 하고 싶었고 포기하기 싫었다. 게임 개발자가 되는 것은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일이었다.



■ 소년, 꿈에 그리던 게임 개발자가 되다

처음 이력서를 냈는데 마침 전임 개발자가 퇴사하는 바람에 운이 좋게 개발사에 취직이 됐다. 하지만, 그 동안의 기대와는 달리 실제로 접한 업무에서 나는 전혀 쓸모가 없었고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돈을 받고 직장에서 사회 생활을 하는 것인데 일을 못한다는 것은 나에게 큰 상처로 작용했다. 잘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기에 3번이나 퇴사를 생각할 만큼 힘들었다. 그렇게 1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이 때 즈음 다시 한 번 왜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었나를 생각해봤다. 그것은 내가 느꼈던 즐거움을 전달하고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게임 개발자를 꿈꿀 때, 일을 잘해야겠다, 칭찬을 받아야겠다, 일이 편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노력해보기로 결심했다.

다행히도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좋은 사수도 만났고 하고 싶었던 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과연 그 동안 나에게 간절함이 있었을까 싶었다. 결국, 간절하게 원하고 노력한다면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 뒤로 많은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이러한 다짐들로 버텨낼 수 있었다. 결국, 회사에서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고 최연소 팀장이 되었다.





■ 소년, 게임 개발과 정면으로 마주하다

나에게 게임이란 즐거움이다. 게임을 하는 이유가 그래픽이 좋아서, 시스템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게임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플레이어가 온전히 재미에 집중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내가 생각하는 버그의 정의는 유저가 불편을 느끼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면 버그라고 본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하다 보면 개개인간의 편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문제는 기획의도와 관계없이 버그라고 생각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임이 아닌, 유저가 듣고 싶은 것을 배려해서 전달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감동을 느낄 수 없으면 실패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 과정에서 유저를 배려한 두 가지 사례가 있다. 첫 번째 사례는 경험치 시스템을 기획하는 과정이었다. MMORPG에서 다수가 사냥 시 경험치를 누가 가져가냐 하는 문제였는데, 막타를 친 사람, 혹은 가장 피해를 많이 입힌 사람이 경험치를 획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경우들은 플레이어가 억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생각했고, 결국 몬스터가 죽을 때 경험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몬스터를 때릴 때마다 경험치를 제공하는 형태로 결정되었다. 유저의 모든 정당한 행위에 대해 적절한 리액션과 리워드를 제공하자는 것이 기획 의도였다. 밸런스나 컨텐츠 소모 속도 등을 고려했을 시 위험한 결정일 수도 있었지만, 유저를 위해 그러한 형태로 변경했다.

두 번째 사례는 권장 사양을 최대한 저사양으로 잡는 것이었다. 최신 엔진과 더 좋은 그래픽을 사용하고 싶은 욕심은 있었지만, 더 많은 유저가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게임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성심성의를 다해 즐거움을 제공하자는 목적이었다.

게임 개발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기술적 어려움, 한정된 시간, 과중한 업무, 부정적인 사회 인식, 상대적으로 적은 보상 등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게임 개발에 몰두하는 이유가 있었다. 좋아하니까. 게임을 하는 것, 게임을 만드는 것,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았다.



■ 소년, 세계와 마주하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이 열리던 해에 당시 마지막이란 얘기가 있던 E3에 참가했다. 그 때가 아니면 다시는 참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게임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한 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에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고, 앞으로 게임 시장이 글로벌하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을 받았다. Wii, 플레이스테이션3, 파이널 판타지13, 아이온 등이 처음 공개되어 굉장히 이슈가 많았던 그 해 E3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견문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사건이 있었다. 한 외국인 학생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What can you say about this game?” 그 즉시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이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 게임을 한 마디로 설명할 생각을 하니 매우 복잡해졌다.

여러분은 자신이 만든 게임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유저와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저와의 직접적인 의견 교류는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내가 개발한 게임에 대한 유저들의 생각, 관점, 관심에 대해서 나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면서 개발하고 있다.

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보다 많은 것을 배우며, 보다 많은 것을 추구하자는 다짐을 했다. 더 넓은 세계를 탐방하러 떠나기로 했다. 그 해의 다음 행선지는 도쿄에서 열린 TGS였다. 비디오 게임의 본고장에서 열렸던 그 행사에서, 그들에게 있어 게임이란 여가 활동을 초월한 문화이자 생활 그 자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환경 하에 게임을 개발한다면 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들렀던 나라만 80개국이 넘을 정도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 생활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것을 즐기는 지 알고 싶었다.



■ 소년, 보다 넓은 세계로 나가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면서,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나은 환경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그래서 당시 사장님께 개혁이 필요하다 말씀 드렸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시기와 순서가 있는 법, 필요한 것은 알고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다.

결국,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보람차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직을 결심했다. NHN으로 직장을 옮겼고 그 곳에서 좋은 복지 환경, 체계적인 업무 프로세스, 무엇보다 거시적인 관점이라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서 다시 회사를 옮겨 현재 직장인 넥슨에 들어오게 됐다. 굉장히 만족스럽게 일을 하고 있으며, 나에게 운명적인 게임인 메이플 스토리를 만나게 되었다.



[ ▲ 강연을 진행한 넥슨 메이플스토리 개발팀장 김지원 ]


■ 소년, 꿈을 꾸다

나는 게임 개발자다. 게임 개발자란 꿈을 꾸는 사람들이라 얘기하고 싶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 게임 개발자이다. 큰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게임이 좋아서, 즐거움을 주고 싶어서 이 일을 한다.

게임이란 무엇인가? 즐거움을 주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게임이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그것에 대해 규제한다. 그 이유로 삼는 것이 과몰입이다. 게임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을 과몰입이라 단정한다.

공부, 영화 관람, 독서 등에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 해서 과몰입이라 하지 않는다. 단순히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해서 과몰입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게임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고, 게임을 해서 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손해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하는 것이 다른 활동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게임을 하는 것이 가치 없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게임도 다른 매체와 같이 감동을 전달할 수 있고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좋지 않은 인식이 있는 것은 게임이라는 매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규제나 제도가 제대로 적용되려면 게임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임이 가진 장점에 대해 잘 어필할 수 있어야 하고,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서 알아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게임 개발자란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이것이 오늘 강연의 주제라고 볼 수 있다. 나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꿈꾸는 게임은 모든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고, 그 경험에 대해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게임이다. 끊임없이 이런 꿈을 꾸고 있고, 여러분과 함께 꿈을 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