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탈했다. 이웃 아저씨 같은 느낌으로 미소지으며 인사를 나눈 오주양 상무는 "두서가 없어도 잘 정리해주세요" 라는 말로 인터뷰의 서막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말투는 줄곧 온화했고, 알아듣기 쉬웠다. 기자의 질문이 오히려 두서 없어 부끄러울 만큼, 이야기의 맥을 짚고 풀어나가는 경륜에서 그가 달려온 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뒤편에서 함께 묻어나온 것은 게임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었다.

현재 한국 e스포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게임 '스타크래프트2', 그 초석을 쌓고 기둥을 올린 주역 중 하나가 곰TV의 'GSL'이라는 것에 이견을 붙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백지 상태에서 오픈 시즌을 통해 기준을 만들기 시작한 GSL이 어느새 4년째를 맞이했다. 많은 것들이 꾸준히 다듬어지고, 이제 전세계 팬들이 열광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게 된 4년.

다음 달이면 곰TV의 2막 1장에 조명이 켜진다. 3월 12일에 '스타크래프트2: 군단의 심장'은 e스포츠에 격변을 가져올 전망이다. 같은 시기, 곰TV는 스튜디오를 목동에서 강남으로 이전한다. 인벤에서는 GSL의 4년을 숨가쁜 걸음으로 함께 달려온 곰TV 최고의 전략가, 오주양 상무를 만났다. 그리고 그동안 걸어온 기록과 새 비전을 들어보았다.


한 걸음씩 계단 올라간 GSL의 3년... "수만 명의 함성, 지금도 귓가에 맴돕니다"



상무 승진을 축하드리면서, 곰티비에서 수행하시는 내부 역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먼저 묻고 싶습니다.

그동안 사업본부 이사직을 맡으면서 책임지던 부분은, 대회를 기획해서 운영하고 필요한 방송을 만드는 부분이었어요. 그외 필요한 역할은 유동적이었고요. 이제는 e스포츠 관련해서 사업, 스폰서, 게임사 후원이나 협찬, 컨텐츠 판매, 판권, 홍보 마케팅, 플랫폼 운영과 곰TV.net 사이트 등 방송제작 이스포츠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부분은 모두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나쁜 점은 제가 힘들어졌다는 점이고(웃음), 좋은 점은 부서들 사이 유기적인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을 조율하는 입장이 되어서 지금까지 바랐던 사업 구조를 응집력 있게 진행할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2010년 GSL 오픈 시즌을 시작, 2011년과 2012년을 거쳐 어느새 4년째입니다. 해마다 GSL의 목표는 어떻게 달라졌고,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나요?

2010년에는 일단, 한국e스포츠협회(이하 협회) 등 다른 단체와 교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나름 대회를 꾸려 나가려면 많은 선수들이 '스타크래프트2'에 참여해야 했고, 그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하려면 팀도 필요했죠. 하지만 우리가 직접 팀을 만들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오픈 시즌을 열어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길을 만들어 토대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스타크래프트2'가 출시되고 몇 개월이 지나 2011년을 맞이했죠.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큰 대회가 많이 열릴 시절이 아니었어요. 정기적으로 열리는 큰 대회는 GSL 하나뿐이었고요.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굉장히 많은 선수들이 참여했고, 많은 팀이 생겼어요. 클랜보다 약간 발전한 수준의 크고 작은 팀들로 인해 e스포츠의 토대가 빨리 형성됐죠.

그런데 큰 대회가 별로 없었으니, 그 선수들이 계속 활동하려면 가능한 많은 대회를 열고 상금을 지급해야 했습니다. 보통 다른 대회들은 상징적인 홍보를 위해 우승 상금에 힘을 많이 줬는데, 우리 상금 구조는 달랐어요.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한 선수라면 활동 가능한 수준의 상금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판단에 상금을 골고루 배분하는 구조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선수들이 꾸준히 활동하려면 대회가 많아야 하는데 다른 대회를 통제할 수는 없어서, 우리 스스로 개인리그 종류만 다르게 해서 열 번은 열었어요. 2011년의 목표라면 '선수들이 놀지 않고 대회에 계속 활발히 참여할 환경을 만들자'였죠.

2011년은 사실 우리로서도 무리를 한 거였어요. 지금도 당시 달력 보면 참 무식했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2012년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고, 해외 대회도 많이 생겨서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죠. 선수들도 해외로 많이 진출했고요. 세계적으로 대회가 균형 있게 발전하려면 인기 많은 선수들이 골고루 출전해야 할 상황이었어요. 선수 입장에서도 여러 대회에 나가 커리어를 쌓고 인기를 얻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고 팀과 선수들도 힘을 합쳐 해외와 교류하는 여건을 만든 것이죠. 국내에서 프로리그가 생기고 스타리그로도 스타2가 열린 것 역시 의미가 깊죠. 이 모든 대회 및 단체들과 '조화롭게 교류하고 발전하는 것'이 2012년 목표였습니다.


그렇다면, 해마다 이룬 성과에 만족하시나요?

네, 결국 이 목표들은 대부분 이룬 것 같습니다. 2011년에는 MLG와 선수 교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작년에는 라스베가스에 두 번이나 갔죠. 한편 2011년은 많은 대회를 통해 팀과 선수들이 자리잡고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작년에는 더 많은 선수들이 참여하는 한편 팀도 많이 생겼습니다. 의도하고 목표한 것들이 거의 구현이 됐다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성과인 것 같습니다.


▲ 2012년 12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성황리에 진행된 GSL 4강과 결승 무대


3년 동안 GSL을 이끌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아주 많아요. 가장 좋은 기억이라면 국내에서 핫식스라는 브랜드와 손을 잡게 된 일입니다. 사실 나온 지 오래된 브랜드인데 시장에서 잘 팔리는 편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GSL과 제휴한 시점에서 여러모로 운이 맞았죠. 에너지 드링크가 유행하는 시점이기도 했는데, 우리 대회와 같이 하면서 서로 시너지 효과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GSL 시청층 다수가 학생이나 젊은 직장인이라서 에너지 드링크와 잘 맞은 거죠. 서경환 캐스터가 당시에 핫식스 구호를 크게 외치면서 상품 포장에 큰 역할을 했어요.

현장을 찾은 관객 분들이 핫식스 구호를 같이 외쳐 주시는 모습도 있었고, 2011년에 GSL을 펩시가 후원해주니 해외 팬 수만 명이 펩시 페이스북에 내가 좋아해주는 대회를 후원해주어 고맙다고 감사의 메시지를 계속 보낸 적이 있어요. 그런 무수한 장면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팬들의 열띤 호응이 특히 기쁘셨을 것 같은데, 특히 해외 무대를 열었을 때도 많은 인상을 받으셨겠어요.

해외에서 인상적이었던 기억은 애너하임 블리즈컨 결승에 처음 갔을 때입니다. 라스베가스도 화려하고 상징적이지만, 그래도 처음 간 그 대회가 기억에 남네요. 블리즈컨에 관람 온 거의 모든 사람이 경기를 지켜봤어요. 메인 스테이지 앞 5천 석이 꽉 찼고, 총 2만여 명이 근처 다른 전시장까지 꽉 들어차 영상으로 중계를 지켜봤죠. 문성원 선수가 우승하자 모두 일어나 'MMA!(문성원 선수의 ID)'를 연호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2011년에는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 그리고 2012년에는 라스베가스에서 결승 무대를 치르셨죠. 올해도 해외 결승에서 전세계 팬들의 환호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해외를 무조건 선호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곰TV가 일단은 한국 회사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기회가 되면 해마다 한번쯤은 해외에서 결승 무대를 갖는 것이 우리 대회가 해외팬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의미에서 좋다고 생각해요. 글로벌 리그를 표방하는 만큼, 세계인이 즐기는 컨텐츠를 제공해야 하니까요. 해외 주최자들과도 이것을 위해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올해 역시 개인리그 결승 한 번 정도는 해외로 나갈 생각이 있고요.



"우리는 언제나 경쟁이었어요" 군단의 심장, 새로운 미래를 보다

▲ 2012 지스타 '군단의 심장 인비테이셔널' 현장, 수많은 관중이 몰려와 경기를 지켜봤다.


프랑스에서 진행된 아이언스쿼드2 결승전 오프닝 무대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인상적이었는데, 이런 화려한 무대를 선도한 것이 GSL이기도 하잖아요. 올해 결승에서 이런 요소를 더 사용해볼 계획이 있으신지요?

무대도 크고 조명도 참 멋있게 했더라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의미에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원래 해외 대회는 그런 식이 아니었어요. 개인 방송보다 조금 더 갖춘 정도였지요. 사실 우리는 타 방송사 대회보다 결승 무대는 더 화려합니다. 후발주자기도 하고 제작 등의 면에서 빨리 따라잡아야겠다는 생각도 있어서 강점을 과시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경기 외적으로 공을 굉장히 많이 들였습니다. 인기 가수들이 아이디콜을 녹음한 것도 최초 시도였지요.

다만, 이런 것들이 어떤 면에서는 소모적일 수도 있습니다.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경기가 재미있고 해설 잘 하고 보기 편하면 되는데 무대를 크게 꾸미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퀄리티가 좋다는 평이 해외에 생겼어요. 우리가 부추긴 것이 아닌가 책임감을 느낍니다(웃음). 과열 경쟁이 되다 보면 서로 힘들어지는 상황이 분명 옵니다. 기회가 되면 새로운 시도는 계속 할 마음이 있지만 너무 과열돼서 출혈 경쟁이 되지 않게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하려 합니다.

단순히 멋있다는 이유로 한다기보다는, 의미 있고 e스포츠와 잘 어울리는 컨텐츠라거나 팬들이 이스포츠 관람 외에 만날 수 있는 볼거리가 무엇이 있을지 궁리하고 있습니다. 외적인 과시를 위한 것은 약간 조심스럽게 생각이 드네요. 문화적, 지리적으로 차이가 있으니 우리 상황에 맞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단의 심장'을 맞이하는 지금, 이제 국내에는 GSL 말고도 다른 대회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GSL만의 장점과 특징을 더 부각시킬 방법을 생각하고 계신지요?

GSL이 무엇의 약자인지는 이제 다들 아실 거예요. '글로벌 스타크래프트2 리그'. 그것이 우리 정체성입니다. 처음에는 모두 반신반의했지만 우리는 그 방향으로 진행해 왔죠. 한국만 스타1을 열심히 했던 점이 아쉬웠거든요. e스포츠 인기가 커지고 오래 가려면 세계적으로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한다는 의도로 글로벌이라는 이름을 걸고 시작한 것입니다. 협회 진영이나 온게임넷 '스타크래프트2' 리그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대회가 두 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전세계를 살펴보면 이미 수많은 대회가 있기 때문이죠. 경쟁력을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미 한창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해외 대회에서는 해설이 게임연출(옵저빙)을 직접 하는 관습이 있었어요. 우리는 해설자가 말에 집중할 수 있게 전문적으로 화면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 국내 기준으로 분리를 했죠. 지금 GSL 해외 중계를 하고 있는 칼도어나 울프 같은 해설자를 발굴해서 인지도를 높였고,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부스 네 개를 설치하거나 아이디콜을 넣거나 하는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대회가 하나 더 늘어난다고 해서 우리에게 나쁠 것은 없지요. 협회나 스포TV 같은 단체 및 방송 매체가 스타2에 참여한다면 저변이 더 넓어지게 되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3월 12일, 드디어 모습을 드러낼 '스타크래프트2: 군단의 심장'


'군단의 심장'으로 국내 '스타크래프트2' 열기가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이렇게 대답하면 반칙인데(웃음), 열기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타2가 출시된 지 2년 반이 되었지만, 프로리그도 지난 시즌까지는 스타1과 병행되어서 아직은 비교되는 단계에서 벗어나지 않았어요. 많은 분들이 스타2는 인기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커뮤니티 반응을 민감하게 살펴보면서 힘이 빠질 때가 있는데, 조회수나 생방 동시접속자 수를 보면 계속 늘어나고 있거든요.

플랫폼을 넓힐 때 처음에는 걱정을 했어요. 같은 인터넷 플랫폼끼리 기존 시청자만 왔다갔다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않았어요. 플랫폼을 늘릴수록 보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사업본부를 맡은 후 큰 부담과 스트레스에서 시작했는데, 시즌이 지나다 보니 힘이 납니다. 예전 곰TV MSL이 좋은 사례가 되겠네요. 어차피 티비로 볼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옮겨올 것 같았는데 케이블 티비에서 시청률이 오르는 동시에 인터넷 시청자도 늘었죠. 아직도 많은 분들이 그 시절을 MSL의 전성기로 많이 기억하십니다.

사실, 이번 시즌도 많이 걱정됐어요. 자유의 날개로 대회를 진행한 지도 오래 됐고, 전략이나 맵도 고착된 면이 있긴 하죠. 신제품이 다음 달이면 나오는데, 연초 대회가 관심 떨어지고 김이 새면 어쩌지 하는 고민이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반대로 새 확장팩에 대한 기대 효과나 관심이 팬들 사이에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군단의 심장'에서 크게 치고 올라갈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군단의 심장'이 재미있다는 얘기도 팬들과 관계자 사이에서 많이 나오고요. 자날도 재미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배틀넷 래더 시스템 채널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한 것이죠. 블리자드에서도 팬 의견을 듣고 개선하는 모습이 보여서 반등의 조짐이 보입니다.


곰TV는 자체 플랫폼으로 각종 게임 방송 및 GSL을 송출해 왔습니다. 그러다 작년 GSL 해운대 결승부터 아프리카TV나 트위치TV등 인터넷 스트리밍으로도 동시 송출하게 되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공교롭게도 작년 해운대가 기점이었던 것으로 비쳤지만 사실 그 이전에도 시도했습니다. 2011년 블리자드 컵 경기가 트위치로 방송된 적이 있지요.

자체 플랫폼을 갖추면서 첫 목표는 팬들에게 '곰TV.net에 가면 GSL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커뮤니티를 다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습관이 제일 중요하지요. 팬들은 본능적으로 가던 사이트에 가게 됩니다. 동영상도 마찬가지예요. 곰TV 플랫폼을 가진 사업자이기 때문에 우리 플랫폼이 갖는 힘도 필요했습니다. "GSL을 한다고 하던데 어디서 보는 거야?" 같은 말이 나오면 안 되잖아요. 대회와 플랫폼이 서로 시너지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유료 모델도 부분적으로 실행하는 실험 과정 끝에 GSL이 지금의 형태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스타2와 GSL을 사랑하는 마니아들을 위한 틀은 어느 정도 만들었다 싶어서 다음 구상에 들어갔습니다. 많은 곳에서 컨텐츠를 접하게 하려는 전략 변화를 꾀한 것이죠. 게임을 좋아하고 틈나면 영상도 보지만 아직 곰TV.net에 오는 버릇이 들지 않은 분들이나, GSL을 꾸준히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분들을 위해 트위치나 아프리카TV 서비스를 통해 저변 확대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제 곰티비가 e스포츠를 한다는 것을 알렸으니, 작년부터는 여러 플랫폼과 협의해서 열린 플랫폼 정책으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e스포츠 연맹, 당연히 있어야 했던 것들을 갖추겠습니다"

▲ 2013년 상반기 연맹 소양교육에 참여한 오주양 상무


작년에 곰TV에서 e스포츠연맹 회장사를 맡겠다는 결정을 내렸지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협회 선수들도 GSL에 많이 나오지만,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거의 교류가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이제 막 생긴 연맹팀들은 재정 기반이 취약했습니다. 그만큼 구심점이 필요했고, 새로 창단된 스타2 팀끼리라도 공통된 규칙과 공감대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뭔가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팀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처음에는 협의체를 구성할까 했는데, 그것은 구속력이 없으니 팀들이 모여 연맹을 만들겠다고 했어요. 환영할 일이죠. 하지만 여건상 체계화된 구조를 갖기 힘들었어요. 감독들이 스스로 후원하고, 관리하고, 선수들 경기장 보내고, 연습 상대 찾고, 전략까지 돌봐야 하는 환경이었죠. 연맹 일에 온전히 힘을 쏟을 사람이 없으니 버거워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선수들이 많이 참여해서 우리가 자리를 잡았으니 우리라도 도와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계속 있었어요. 게임단에서도 우리가 맡아줬으면 한다고 말을 했고요. 이 판이 생긴 이래 꾸준히 계속 이야기가 된 부분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들어온 제안이었군요. 그렇다면 최근에 수락하시게 된 배경이 따로 있나요?

우리도 e스포츠 사업을 크게 벌인 탓에 초창기에는 자리를 잡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게다가 처음에는 독점 사업자로 발표가 됐는데, 연맹까지 맡아서 한다 하면 곰TV가 이권을 위해 개입한다는 여론이 나올 수도 있었겠죠.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게 한다고 얻을 것은 없는데(웃음) 오해할 소지가 있어 조심스러웠습니다.

작년부터 협회와 협의가 돼서 협회와 연맹 선수들이 서로 상대 대회에 자유롭게 나가며 교류하게 되었고, 이제 우리가 독점한다는 인식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연맹 쪽에 몇몇 힘든 사건도 있었고요. 이제는 우리가 나서서 해도 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싶어 내부 상의 끝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연맹 회장사의 일이 여러모로 어려울 것 같네요. 업무량도 상당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협회도 그렇지만, 모든 스포츠 종목 단체를 보면 칭찬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선수 영입이나 FA등 여러 제도가 실행되면서 잡음이 생길 때마다 협회나 연맹이 욕을 먹게 마련입니다. 축구로 비유하면 골키퍼 같다고나 할까요. 잘해도 표가 나기 힘든데 뭔가 잘못되면 책임을 져야 해서 우리 입장에서도 큰맘 먹고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사업자로서 대회를 통해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입장이라 조심스럽지만, 어려운 결정이었다는 것을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연맹 자체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연맹 회장사로서 올해 구체적인 운영 방침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연맹 일은 채정원 본부장을 중심으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연맹 사무국을 꾸리고 직원을 뽑고 유지하는 부담을 갖고 있는데, 생각처럼 눈에 띄는 화제를 뿌릴 일은 많지 않겠지요. 연맹이라는 단체의 성격을 고려하면 화제에 집착하는 일은 부적합하니까요. 일단 사단법인을 설립하고 선수들과 팀을 계약하고 표준계약서를 만드는 일이 시급합니다. 선수 소양교육 역시 빠질 수 없고요. 당연히 있었어야 할 틀을 갖추는 작업을 차분히 해나갈 예정입니다.



새로운 스튜디오, 그리고 새로운 도전

▲ 강남에 새로 자리잡게 될 곰TV 스튜디오 건물


이제 3월이면 곰TV 스튜디오가 강남으로 이전을 합니다. 장소가 결정된 과정이 궁금하네요.

강남만 고집한 것은 아니었어요. 목동 스튜디오는 학교 건물에 위치하다 보니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었지요. 더군다나 처음 스튜디오를 꾸릴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도 많았고요. 해외 영어 중계를 별도로 진행하고 있는데, 그 비중이 이렇게 커질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당시에는 욕심내지 말고 게임대회 하나 할 정도 공간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해외중계나 해외 화면 송출, 여러 명이 나오는 대회 부스, HD 중계 등 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금씩 보수하고 변혁을 해나갔죠.

그러다 보니 제작 효율도 원활하지 못한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었어요. 더군다나 곰TV 본사는 대치동, 스튜디오는 목동이라 직원들의 동선이 효율적이지 못했어요. 목동에 가서 생방송이나 녹화를 하고 나면 다시 회사 돌아와서 편집을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니 효율이 떨어졌죠. 그래서 스튜디오를 옮기기로 결정을 내렸죠.

부동산은 발품을 파는 것이 가장 좋아서, 작년 여름부터 반 년 동안 제가 직접 돌아다녔어요. 교통이 좋은 곳이 절대적인 요건이었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곳은 다 알아봤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촌, 홍대, 신도림, 강동, 관악, 동작 등 2호선 라인을 중심으로 전부 살핀 끝에 유력한 곳은 신도림과 강남으로 압축됐어요. 넓어야 하고, 기둥이 없어야 하고, 천장이 8미터 이상 높아야 했죠. 같이 근무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했고요.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공간을 찾는 것이 힘들었어요.

결국 결정한 곳은 96년에 동아TV 스튜디오로 쓰려고 만들었던 곳입니다. 위에 말씀드린 조건을 충족하려면 애초에 스튜디오 용도로 건설하지 않으면 힘들어요. 예전부터 동아TV가 주인이 바뀐 뒤 스튜디오를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마침 우리가 쓸 수 있겠다는 것이 확인됐죠. 결정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얻은 것도 있어요.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몇 초 안에 모든 판단을 끝내는 능력이죠(웃음).


GSL 이전에도 곰TV에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아레나, 카트라이더 등 다른 게임 대회를 진행했지요. 작년에도 LOL IPL 대표선발전이나 프리스타일 같은 경기를 다뤘고요. 2013년에는 어떤 종목으로 게임 방송 다양화를 시도하실 계획인가요?

다양화라고 하기엔 좀 부끄럽습니다. 거의 단발성이었거든요. 정기적으로는 WOW 대회를 두세 시즌 치른 정도? 나머지는 대표선발전이나 한 시즌으로 끝난 대회라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물론 스타2 대회만 해서는 우리 입장에서 건강한 구조가 아니죠. 그래서 올해는 종목을 다양화하고 기회를 넓히려 애쓰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GSL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진행하는 종목이 몇 가지 더 생길 것 같습니다. 우선 최근에 발표한 것으로 월드오브탱크 리그가 있는데요. 스튜디오 이전 후 장기적으로 꾸준히 시즌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다른 몇 종목 역시 내부적으로 개발과 조율 중에 있습니다. 종목의 다양화는 올해 큰 사업 목표 중 하나입니다.


▲ 곰TV의 2013년 첫 번째 신병기, 월드 오브 탱크


3월부터 월드오브탱크 코리안 리그를 곰TV에서 주관한다고 발표하셨는데, 국내 e스포츠 성공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스포츠로서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 기준이 보는 사람마다 다를 텐데, 만일 GSL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분들 기준으로 살펴보면 바둑도 실패겠죠. 바둑도 저변이 넓지만 폭발적이지 않고, 사이트에도 소수의 애호가가 찾아오지만 아주 높은 충성도를 가지고 큰 대회도 매번 열립니다.

월드오브탱크 역시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국내에 퍼지는 모습을 보니 거기에 더해 예상보다 더 저변이 넓어질 수 있겠다고 느꼈어요. 우리 생각보다 편하게 접근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기존의 격렬하고 템포가 빠르고 욕도 많이 하는 게임들을 즐기시던 분들 중에 더 여유롭고 재미있게 즐기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느낍니다.


역시 월드오브탱크가 요즘 기대감이 높네요. 대회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그래서 공을 많이 들이고 있지요. 준비 중에 가장 큰 것은 경기장이겠죠? 기존 목동 스튜디오는 4부스 체제였는데 대회 기본 룰이 7:7 싸움이라서, 새로 이전할 스튜디오에서는 14인 경기가 가능하도록 꾸미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탱크 분위기에 맞는 중계 환경을 재미있게 꾸밀 생각이에요. 재미있게 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중계진 역시 지금 구성 중에 있습니다.


2013년의 포부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목표가 있으시다면?

사업을 좀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형태로 다듬어서 의미 있는 것을 만들고 싶습니다. GSL의 목표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어요. 오픈 시즌을 준비할 때만 해도 "언젠가는 우리가 라스베가스에서 대회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누가 말하면 에이,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네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2년만에 이루어졌어요. 굉장히 보람 있는 일이고, 성과를 내고 있다고 판단이 됩니다.

이제 해외와 국내에서 사업이 모양을 갖췄다고 회사 안팎에서 평가를 내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은 그다지 연비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생각보다 인력도 많이 들고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제 위치가 바뀌고 나니 책임감도 생기고, 열정을 가진 것을 뛰어넘어 좀더 잘 하고 멋있게 하고 싶어집니다.

곰TV를 좋아해주시는 팬들에게도 재미있는 대회를 보여드리고 선수들도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지키려면 우리가 더 사업성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겠죠. 개인적으로 옛날에 하던 일들이 더 재미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제는 재미있게 하던 예전 일을 뛰어넘어서, 책임감을 가지고 기반을 만드는 일에 힘쓰는 것이 개인적 목표입니다.



"악플도 환영, 언제나 e스포츠 팬과 호흡하겠습니다"

▲ 더 빛나는 곰TV의 발전을 기대합니다!


오주양 상무님이 생각하는, e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은?

사실, e스포츠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용어를 바꾸려고 애를 쓰진 않지만, 이스포츠라는 말은 스포츠의 아류나 변형된 형태의 느낌이 납니다. 크게 봤을 때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를 포함한 다른 문화 장르에 비해 가장 가까이서 호흡할 수 있는 장르지요.

저는 축구와 야구를 모두 좋아합니다. 하지만 보는 것을 좋아하고 직접 나가서 하기는 힘들어요. 축구를 하고 싶으면 축구 동호회나 조기축구회에 시간을 맞춰 나가야 하죠. 게임은 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집에서 해도 되고 PC방에서 해도 됩니다. 야구를 아무리 해도 박진만같은 유격수 수비를 할 수는 없고, 축구를 열심히 해도 메시 같은 플레이를 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게임은 열심히 하면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습니다. 프로들만의 선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가장 가까이에서 따라할 수 있는 것이죠. 게다가 저렴하기도 해서 쉽게 접할 수 있고요.

즐기는 게임과 좋아하는 장르가 달라도 게임팬들끼리만 공감할 수 있는 영역과 대화가 있죠. 선수들과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인벤 독자 여러분에게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커뮤니티 구성원 및 팬 여러분과 호흡할 수 있는 기회를 올해부터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곳보다도 e스포츠에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만든다고 자부합니다. 그것을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적극적으로 의견 주시면 좋겠습니다. 욕도 좋습니다. 리액션과 반응을 주시면 언제나 받아들이고 수정하고 있습니다. 단순 시청이나 관람을 넘어 서로 소통할 요소가 많은 것이 바로 게임 아닐까요. 앞으로도 우리가 서로 그것을 많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