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게임 리뷰라면, 독자들에게 이 게임의 재미를 최대한 알리는 게 주목적이다. 지금까지 써 왔던 것도 그랬다. "오, 이거 재미있겠는데? 기자 믿고 한번 깔아 보겠어"와 같은 반응이 글쓴이의 처지에서 가장 뿌듯한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웨이킹 마스(Waking mars)'는 조금 다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게임은 플레이어에 따라 아예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뭐 다른 게임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게임은 특히 그렇다.

'웨이킹 마스', 한글로 쭉쭉 번역하면 '깨어있는 화성' 정도? 스팀에 적힌 이 게임의 장르는 '플랫포머 액션 어드벤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실제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난 후에는 장르명이 정확히 들어맞는지에 물음표가 생긴다. 개인적으로는 이 게임의 장르를 '생태학 탐사 어드벤처'라 부르고 싶다.






▲ '웨이킹 마스' 플레이 영상


서기 2,097년, 화성에서 생명체가 발견됐다. 플레이어는 관련 분야 전문가 리앙(Liang)으로, 화성에 파견되어 미지의 생명체들과의 조우를 준비한다. 하지만 이게 웬일,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밀려온 지각변동 덕분에 그만 동굴에 갇혀버리는 꼴이 됐다. 어쩔 수 없다. 당신은 이 괴상한 생명체들의 생체 데이터를 모으면서 칙칙한 이곳을 빠져나갈 준비도 함께 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약하다. 크로우바 하나로 행성을 파괴하는 인간병기 고든 프리맨이 아니다. 고든은 MIT 출신 연구원의 탈을 쓴 폭력의 화신이었지만, 리앙은 뼛속까지 연구원이자 과학자다. 그는 등 뒤에 짊어진 제트팩 외에 어떠한 장비도 무기도 없다. 아니, 겨우 이 정도 장비로 미지의 생명체에 맞서라니? 극악 난이도가 콘셉트? 아니면, 인디게임 답게 어느 정도의 불친절은 감수하란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둘 다 아니다. '웨이킹 마스'에 등장하는 현지 동물, 혹은 식물들은 하나같이 인류 최대의 주적 같은 비주얼을 뿜어내나, 성격 하나만큼은 골든 리트리버다. 물론, 알 수 없는 매력에 이끌려 리앙의 엉덩이를 깨물어 보는 육식성 식물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다. 생명체들의 인공지능이 상당히 낮기에 '적'이라고 인지할 만한 수준이 못 된다.

즉, 요약하자면 플레이어는 무기가 없다. 그리고 화성 생명체들 역시 플레이어를 공격할 의지가 없다.

▲ (우) 뼛속까지 연구원인 주인공 '리앙(Liang)'

▲ 생긴 것은 저래도 모두 리앙에게 도움을 주는 생물들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리앙의 애초 목적은 생명체 탐사였다.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 덕에 이 목표는 '생존'으로 변경된다. 그리고 게임의 중반쯤부터 '생태계 발전'에 더 큰 무게가 실린다. ESC 키를 누르면 탐사일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 지금까지 리앙이 마주한 생명체들의 특성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확인하지 못한 특성은 기록되지 않는다. 결국, 철저하게 플레이어의 경험에 기댄 시스템으로 풀이된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 내 감정 이입을 강화시켜주는 촉매 역할을 해주는 것.

이러한 구조는 여타 게임에서도 한 번쯤 등장했다. 아니, 어드벤처라는 장르명을 딴 게임이라면 기본에 가깝다. 하지만 '웨이킹 마스'가 특별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기존 작품들과 판이하기 때문이다.

스크린 샷만 봐도 대충 감이 오겠지만, 화성에 서식하는 생명체들은 매우 기괴하게 생겼다. 지구에서 살았다간 세스코 아저씨 연봉을 서너 배까지 훌쩍 올려 줄 만 한 불쾌충들로 가득하다. 짧아야 할 것은 길고, 적어야 할 것은 많이 달렸다. 움직임이며 소리, 껑충껑충 뛰는 것까지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더 불쾌해할까?' 같이 심술 맞은 고심을 한 개발자들 모습이 비치기까지 한다. 여타 게임에 등장하더라도 최소 총알 한두 방에는 죽지 않을 디자인이랄까.

하지만 이곳은 화성이다. 지구인으로서의 편견을 한꺼풀 벗어야 녀석들의 본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생긴 것은 도저히 적응되지 않지만, 화성 생물들 역시 나름의 먹이사슬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식물은 씨앗을 품고, 동물은 알을 낳는다. 서로 간의 상호작용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플레이어의 시점이 그들의 외형을 떠나 생명의 탄생 자체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이끼 덤불에 씨앗을 심어 식물을 키우고, 다 큰 식물에서는 씨앗을 채취해 다른 종의 식물에 영향을 주거나 동물들의 먹이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웨이킹 마스'의 게임플레이는 두 가지 메시지를 던져준다.

첫 번째. 게임을 하는 동안만큼은 외형에 대한 편견을 없애준다는 것. 처음에는 왜 굳이 이런 끔찍한 생물들을 키워내야 하나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웨이킹 마스'는 존(zone) 클리어 방식을 채택해 생명체 배양을 의무로써 규정해뒀고, 이는 첫 플레이 때 느꼈던 불쾌감이 서서히 익숙함으로 변해가도록 유도한다. 이는 무척 중요하다. 이것 때문에 그저 그런 찝찝한 게임으로 기억될 만한 '웨이킹 마스'가 신선도 높은 게임으로 진화했으니까. 한마디로 이 게임은 극단으로 갈린 시각 요소와 게임플레이 요소로 시너지를 끌어낸 드문 사례를 보여줬다.

두 번째 메시지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연구원'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 연구원과 같이 화성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르쳐준다는 게 아니다. 현직 연구원이라면 꼭 갖춰야 할 소양인 '호기심'과 '탐구 자세'를 제법 그럴듯하게 이끌어 낸다는 게 포인트.

'웨이킹 마스'에서 등장하는 생물들은 각자 적게는 5개, 많게는 8개의 연구 자료를 지녔다. 이 연구 자료는 앞서 말했듯 플레이어의 경험을 토대로 하나씩 기록된다.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생명체와 마주하게 되는데, 이 녀석이 어떤 특성을 띄는지 알기 전까지는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 자신을 볼 수 있다. 주머니 속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씨앗을 꺼내 하나씩 던져보고, 물도 뿌려 보고 나서야 '아, 이 녀석이 이런 특징이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후 녀석을 만날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며, 번식 방법은 무엇인지 머릿속에 그려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실제 생물학 연구원이 하는 일과 100% 일치할 리는 없다. 하지만, 플레이어에게 나름 학습효과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약간이기는 하나 어느 정도 기능성도 갖춘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 각 생물들의 반응은 이렇게 데이터 형식으로 기록된다

▲ 미지의 생명체와 조우하면 긴장감과 호기심이 동시에 든다





마무리를 지어 보자. '웨이킹 마스'는 서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이 게임, 괜찮으니까 스팀 설치하고 결제하고 한 번 해보시죠' 이런 말 절대 하지 않겠다. 행여 '그래도 리뷰까지 썼는데 할 만하겠지!' 하고 사 봤다가, 재미가 없어 기자를 욕하더라도 할 말은 없다. 솔직히 기자도 재미있지는 않았으니까. 체험 영상을 함께 올렸으니 게임의 대략적인 느낌을 잡는 데 이용하길 바란다.

그럼에도 이 게임의 평가를 작성한 이유는 '웨이킹 마스'가 갖는 교육성과 기능성, 그리고 비주얼과 상반되는 비폭력적 분위기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굿게임쇼 2013'이 개최됐다. 기자 역시 취재를 위해 현장에 방문했다. 하루 종일 둘러봤지만, '오? 이거!' 라는 감탄사를 짜낼 기능성 게임은 없었다.

게임으로 전문 기능을 완벽하게 학습시키는 걸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란투리스모'와 같이 실제 레이서도 배출시키는 사례가 있기는 하나, 아직은 소규모 시장인 국내에서 그러한 작품이 나오리라고 기대하진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기능성 작품이 유소년층을 겨냥했다는 사실에 한 번, 게임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도 빈약한 시스템에 두 번 고개를 떨궜다. 무엇을 가르치거나 치료하는 게 목적이라는 것은 잘 보였다. 하지만 그 과정이 단순 번호 맞추기나, 퀴즈 풀이 정도로 끝난다는 게 아쉬웠다.

'웨이킹 마스'가 기능성 게임의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게임을 기능성 게임으로 연결짓기에는 허점이 너무 많다. 하지만 양질의 콘텐츠와 안정된 조작감, 그리고 몰입도를 높여주는 성우들의 연기가 갖춰진 이 작품을 통해, 기자 마음속에도 편견에 관한 인식이 깨어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애초 '웨이킹 마스'의 개발진이 이러한 것을 느끼게끔 장치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원래 게임이라는 것은 즐기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내용도 다르니까.

이 게임? 선정적인 캐릭터 없다. 폭력성도 없다. 폭발적인 흡입력이나 중독성도 없다. 한마디로 여가부가 싫어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플레이어의 경험과 제트팩 하나 턱 걸쳐 메고 유유히 화성을 떠다니며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그런 게임이다. 기능성이 주목적이 아니었음에도 그런 부분이 은은하게 우러났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바라본 '웨이킹 마스'. 게임의 순기능인 재미 외 부분에서도 참 많은 것을 보여준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 주요 구간은 맵에서 클릭만 하면 바로 이동 가능

▲ 게임을 마치면, 가장 사랑스러운 생물이 이 녀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