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카드 게임 전성 시대다.

일본발 카드 게임인 확산성 밀리언 아서(이하 확밀아) 히트 이후, 모바일 게임 시장은 “가차”로 요약할 수 있는 수집형 카드 게임(Collectable Card Game)이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종류의 카드 게임이 나왔고, 또 앞으로 나올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PAX East에서는 블리자드의 신작 게임인 하스스톤 : 워크래프트의 영웅들(이하 하스스톤)이 공개되었다.

▲ 블리자드의 카드 게임 하스스톤 : 워크래프트의 영웅들


그동안 블리자드는 디아블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 등 패키지나 월 단위 결제의 규모 큰 게임을 제작해왔는데, 부분 유료의 캐주얼한 게임 ― 그것도 2012년부터 모바일 시장에 쏟아지기 시작한 수집형 카드 게임을 만든다는 소식은 유저들로 하여금 기대보다는 우려를 하게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하스스톤에 대한 정보와 영상이 하나 둘 공개되면서 “생각보다 괜찮은데?”, “카드 배틀 게임은 어려워서 안하는데 이건 쉬워 보인다”등 긍정적인 평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드디어 지난 17일 북미 비공개 베타 테스트를 시작했다.

▲ "저도 블리자드 게임 참 좋아하는데요, 한 번 플레이 해보겠습니다!"



▣ 익히기는 쉽다, 하지만 단순하지만은 않다!

처음 하스스톤을 설치 후 접속을 한 느낌은 일단 “쉽다”라는 점이다.

매직 더 개더링(이하 MTG)으로 대표되는 전략 카드 게임에 익숙한 유저라면 항상 카드 아래쪽에 빽빽하게 적힌 텍스트 때문에 해석이 엇갈려 게임이 진행되지 않는다거나, 몬스터 카드를 여러 장 소환하면 내가 이 카드를 플레이 했나 플레이 하지 않았나 헷갈렸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스스톤에서는 주요 효과는 간단한 형태의 단어로 축약되어 있어서 기본 룰만 익히면 빽빽한 텍스트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플레이 가능한 카드나 지정 가능한 대상은 따로 하이라이트 되는 등 상당히 간략화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조금만 플레이 해봐도 게임 룰을 쉽게 익힐 수 있다.


▲ 덱 구성을 할 수 있는 카드 목록. 전체적인 UI가 직관적이고 간소하다.


물론 기본적인 용어나 효과는 직접 익혀야 하지만, 게임을 시작하면 무조건 하게 되는 튜토리얼을 통해 기본적인 전투, 비용인 마나의 개념, 강화 효과, 카드의 능력 등을 체험해볼 수 있어서 튜토리얼을 끝내고 AI를 상대로 몇 번 연습을 하다 보니 금방 게임에 적응할 수 있었다.

또한 하스스톤에서는 “수비턴”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상대의 행동에 맞춰서 마법, 함정 카드를 사용하거나 그 함정 카드를 또 다른 함정 카드로 맞받아친다거나 하는 식의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물론 함정 카드 개념인 비밀(Secret) 효과가 있긴 하지만,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발동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조건만 맞으면 무조건 발동하는 효과이기 때문에 일단 자신의 턴이 끝나면 상대방의 행동을 느긋하게, 혹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면서 자신의 다음 행동을 준비하면 된다.

▲ "나의 함정 카드에 걸렸구나!". 비밀 카드가 있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이는 전략적인 다양성에 있어서는 다소 선택지가 줄어들 수 있지만, 자신의 행동 턴에 오히려 상대가 더 많은 행동을 하는 유희왕식 함정카드 공방전이 없다는 점과 자신의 행동 턴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보자들이 익히기 쉬운 게임 특성이다.

또한, 어느 정도 게임에 익숙해지면 자신의 마나를 다 소비하는 데 급급한 플레이에서 상대가 가지고 있는 카드의 숫자나 게임판 위에 깔린 카드 숫자를 고려해 전략적으로 마나를 쓰지 않고 턴을 넘기는 플레이도 필요하기 때문에 블리자드 특유의 “익히긴 쉽지만 고수가 되기 어려운” 느낌을 잘 살린 편이다.

▲ 이런 상황에서도 카드 조합에 따라 갑작스러운 역전이 나온다.



▣ 손맛 있는 전투와 오프라인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온 플레이

여타 카드 게임과 하스스톤이 가장 차별되는 항목 중 하나가 바로 플레이의 “손맛”이다.

필드에 소환된 하수인들은 자신의 공격력에 따라서 상대를 때렸을 때의 흔들림이 다른데, 10 이상의 공격력을 가진 하수인이 적 영웅을 공격하면 필드가 흔들리고 소환된 하수인들이 들썩거리는 등 짜릿한 손맛을 보여주기도 한다.

단순히 직접 전투 외에도 마법사의 “신비한 화살”, “신비한 폭발” 같은 주문 카드는 사용하면 WOW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효과를 보여주며, 드루이드의 “휘둘러치기”는 발톱으로 휙휙 그어대는 효과를 보여줘 단순히 카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WOW에서의 PVP 같은 박진감을 준다.

▲ "신화뿅뿅뿅!" WOW의 기술을 그대로 가져 온 것 같은 주문 효과


유저 대전시에는 이러한 느낌이 더 살아나는데, 상대가 자기 카드나 필드에 있는 카드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마우스를 가져가면 그 카드가 강조된다거나, 공격이나 주문을 시전하기 전에 방향을 지정하는 것 등이 표시되기 때문에 손에 가지고 있는 패 중에서 어떤 걸 쓸지 고민한다거나, 공격을 할지 말지 머뭇거리는 움직임 같은 것을 잘 살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카드가 플레이되는 화면 외에도 상대의 반응까지 즐길 수 있어서, 오프라인에서 상대를 앞에 두고 카드 배틀을 벌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 상대가 내 카드 중 뭘 노리는지 조마조마하게 보는 것도 재미!



▣ 돈이면 다 된다? 그런 거 없다!

MTG의 경우 “매직 더 거덜링” 혹은 “매직 더 개털링”이라고 부를 정도로 플레이를 위한 비용이 장난 아니었다.

일단 자신의 덱을 꾸리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 비용도 기본 비용이지만, 범용적으로 유용한 카드나 승리를 위한 키 카드를 얻기 위해서는 열심히 카드 팩을 뜯거나 ― 원하는 카드가 나올 확률은 수 천 분의 1이지만 ― 트레이드를 통해 비싸게 구입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확밀아 등 모바일 카드 게임 역시 대부분 과금을 할수록 승률이 올라가는 구조(Pay-to-Win)이기 때문에 여유 있게 플레이를 하려면 짧게는 주 단위, 길게는 한 달 정도 간격으로 과금이 필요한 상황이 되곤 한다.

물론 하스스톤도 테스트 종료가 되면 배틀코인, 봉인된 카드팩으로 환불해주는 형태로 베타 단계에서도 결제를 해서 카드 팩을 뜯을 수 있고, 실제로 일반/랭크 게임을 돌려보면 영웅/전설 등급의 비싼 카드로 채워진 덱을 들고 나오는 북미 유저들을 만나기도 했다.

▲ 과금 유저 보상인 땜장이왕 멕카토크 황금 카드


하지만 직업별로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카드들의 밸런스가 상당히 좋은 편이기 때문에 높은 등급의 카드를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손도 못쓰고 패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 중에서 필요 없는 것들을 “신비한 가루”로 만들어 원하는 카드를 만들 수도 있고, 매일 주어지는 퀘스트나 각종 업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을 통해 골드나 좋은 카드를 충분히 얻을 수 있어서 과금을 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플레이하다보면 자신이 원하는 덱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 원하는 카드를 신비한 가루로 추출하거나 제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Pay-to-Win을 막는 특징적인 요소라면 “투기장 모드”이다.

투기장은 일정 금액(1.99달러 혹은 150골드)을 지불하고 입장하여 무작위로 주어지는 3개의 영웅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마찬가지로 무작위로 제시되는 3장의 카드를 하나씩 뽑아가면서 자신의 덱을 만들어 전투를 벌이는 모드이다.

입장을 할 때 외에는 덱 구성이나 전투에 있어서 과금이 영향을 주는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순수하게 덱을 구성하는 센스와 실력에 의해 플레이가 가능하며, 3번 패배할 때 까지 승수를 쌓아 카드 팩, 희귀한 카드, 골드, 신비한 가루 등을 얻는다.

보통 1승만 해도 카드 팩 1개 정도는 얻을 수 있어서 큰 손해를 보지 않고, 최고 등급인 9승 이상을 하면 입장에 들었던 골드의 1.5배에 카드팩, 상당히 많은 신비한 가루를 보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실력이 좋은 유저라면 아레나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보상을 계속 쌓아나갈 수 있다.

▲ 투기장에서는 순수하게 플레이어의 임기응변과 실력, 그리고 약간의 운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 투기장 보상으로 골드, 신비한 가루, 카드 팩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좋은 카드를 보다 빨리 얻기 위해서는 과금을 많이 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꾸준한 플레이를 통해 카드 팩 하나 하나를 뜯는 재미가 쏠쏠하다보니 과금에 얽매이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 하스스톤, 블리자드의 새로운 희망이 될까?

최근 온라인 게임을 보면 채팅을 통한 욕설이나 비매너가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하스스톤에서는 상대와의 채팅을 금지하고 몇 가지 대화 샘플만으로 의사 표현을 하도록 되어 있다.

심지어는 “도발”을 하더라도 각 영웅의 특징에 맞는 형태의 대사를 읊기 때문에 별로 화가 나지 않는 등 비매너 유저로 인한 문제는 발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정령이 당신을 파괴할 것이오" 공손한 스랄의 도발은 별로 화도 안난다.


또 플레이 내내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여기서는 이 카드를 쓰는 게 낫지 않나?”, “아이고, 저걸 공격하면 안 되죠!”하면서 장기나 체스처럼 훈수를 두거나 플레이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차후 e스포츠 등 “보는 게임”으로서의 가능성도 충분히 보여주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잦은 서버 문제와 패치로 실망감을 줬던 디아블로 3, 전작에 비해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던 스타크래프트 2 등으로 “이제 블리자드도 한 물 간 거 아냐?”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지금, 하스스톤은 새로운 분위기 반전의 게임이 될 수 있을까?

그 답은 정식 서비스가 이뤄진 이후에 나오겠지만, 지금 단계에서 베타 테스트 버전만으로도 이렇게 얘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Blizzard, Shut up and Take my Money!!”


▲ 왠지 카드팩을 뜯기 위해 두둑하게 실탄을 준비하는 기자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