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이자 헬리온인 자


SP1의 거스, 록 두 서버는 전쟁서버다. 많은 헬리온들과 그만큼 많은 체이서들이 돌아다니며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곳. 유혈이 낭자한 그 공간에서는 상대를 죽이고 아이템을 집는 행위가 실시간으로 일어난다. 헬리온들과 체이서들이 경쟁적으로 마라톤하는 그 곳. (죽이고 죽고, 바인드에서 부활하고, 숨고, 들키고, 죽이고 죽고 하는 일련의 단계를 일컬어 마라톤이라 칭한다) 그 곳에는 빠른 공격속도와 빠른 이동속도의 몽크들과 디텍터들이 주로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기자가 접속해서 들어갔을 때, 그는 눈 앞에 있었다. 헬리온이자 킬러다.



어두운 전쟁서버의 뒷골목



헬리온도 인터뷰는 가능하다


처음엔 옷 입은 모습이 하도 변변찮아서 기자 수준의 저레벨 유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등줄기에 일렁이는 붉은 헬리온크로스가 영 심상찮아 보였다. 어중간한 헬리온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감이 들었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의외로 그는 선선이 받아들였다. 뭔가 이상한 생각을 했는지, 처음 헬리온은 인터뷰도 못하는거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 기자를 당황시켰다.


전쟁서버의 킬러라니. 흥미로왔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의 제목만 살짝 봐도 디텍터와 몽크는 이미 대세를 넘어선 수준이거늘, 그는 킬러다. 어쌔신도 아닌 킬러다. 일단 사진찍기 좋은 공간인 구스펠트 종합병원 앞 육교로 데리고 가서 몇마디 질문을 던져 보았다.



헬리온이라도 인터뷰는 할 수 있습니다



킬러 헬리온, 안냐세연


먼저 만나서 반갑다. 현재 레벨은 얼마인가?


안냐세연 : 지금 42레벨의 킬러이고, 풀 헬리온인 상태다.



킬러이자 헬리온, 안냐세연 - 42레벨



언제부터 헬리온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는가? 그 동기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는가?


안냐세연 : 레벨 40을 달성하고 나서 바로 헬리온으로 돌아섰다. 동기라고 할 만한 별 특별한 것은 없었는데, 하여간 그 때 불혹의 레벨을 넘기고 나니 바로 방황의 시기가 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다른 유저를 죽이고 나서 원한의 민인피 먹은 일이 동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습게도 그 유저는 헬리온이었다. 하여간 그때는 처음 했던 PK여서 헬리온을 오랫동안 달고 있기가 너무 무서워 바로 풀어버렸었다. 그렇게 두어번 풀고 죽이고 풀고 하다가, 나중에 풀헬리온의 길로 나섰다.



방황의 시기에서 선택했다



디텍터와 몽크 이외의 다른 직업은 헬리온으로 살기가 어렵다는 소문이 진하게 돌고 있다. 사실이라고 생각하는가? 주로 쓰는 스킬은 무엇인가?


안냐세연 :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다고 생각하므로 동의하지 않겠다. 디텍터는 다른 서버에서 이미 키워보았기 때문에 아무리 좋다고 해도 굳이 다시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전직할 때 래피드 핸드와 어쌔신 사이에서 어쌔신을 택한 것을 후회않으며, 공속과 이속이 빠르다고 해도 굳이 다시 디텍터를 키워보고 싶지는 않다. 디텍으로 살 때 옆에 있던 킬러들이 타격감도 좋고 데미지도 정말 멋져 보였다. 그래서 킬러의 길을 택했다. 킬러 헬리온도 생각보다 괜찮다. 뭐든지 결국 자기가 좋은 캐릭터가 제일 좋은 거다.





킬러 헬리온으로서 PK를 실행할 때 주로 사용하는 스킬은 무엇인가?


안냐세연 : 주로 쓰는 스킬이라.....캡쳐라는 스킬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게 일종의 거미줄이다. 캐스팅 시간만 재주껏 벌 수 있다면 대단히 유용하다. 일단 걸리게 되면 이동은 물론이고 방향전환도 안되기 때문에 강력한 킬러의 데미지를 몸으로 다 받아야 한다. 킬러 헬리온의 밥줄이자 끝이라고 보면 된다.


킬러 헬리온으로 살다가 가장 난감할 때는 언제인가? 그리고 가장 만나기 껄끄러운 상대는 누구인가?


안냐세연 : 가장 난감할 때는 2명 이상의 체이서를 만날 때다. 껄끄러운 클라스라면 뭐니뭐니해도 오라클이 가장 껄끄럽다. 이건 굳이 킬러아니라 누구라도 헬리온이라면 난감하다. 무적인가 하는 스킬이 있는데 그걸 쓰고 다가와서 재워버린다. 이게 미치고 팔짝 뛰도록 오래간다. 정신들어 깨어나보면 주변에 체이서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있다. 어이가 없어지는 사태가 벌어지는 거다. 최악 속에서 헬리온 죽이는데에는 오라클 만한 캐릭터가 없다.



세상에서 다구리가 제일 무섭다



이제 헬리온도 그 수가 꽤 되므로 뭉쳐다닐 수 있지 않는가? 안전하고, 벌이도 더 훌륭할텐데. 상대인 체이서들은 뭉쳐다니지 않나.


안냐세연 : 물론 나도 헬리온끼리 뭉쳐다니고 싶다. 죽고, 부활해서 숨다가 다시 죽는 것도 힘들긴 하다. 하지만 체이서들도 뭉쳐다니지 않는다. 개별적으로 다니다가 오라클이 헬리온 하나 재운 후 공챗으로 소리지르면 벌떼같이 몰려드는 거다. 하이에나 vs 늑대의 구도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의 기본구도는 헬리온들이 따로 떨어져 돌아다니는 체이서를 하나하나 찾아 죽이는 구도지만, 반대로 걸리면 헬리온이 위의 최악의 경우 속에서 죽어버린다. 하지만 퀸즈나 마스나 재건지역, 스테인가 사유지에서는 뭉쳐다니는 것이 기본이다.


타격감에 반하고 데미지에 반해서 킬러를 택했다고 했는데, 몬스터가 아니라 유저를 상대로 캐스팅 타임을 버는데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개그 치고는 무진장 썰렁했다



처음 PK를 하고 원한의 민인피니티를 먹은 대상이 헬리온이었다고 들었다. 여지껏 죽은 일은 헤아릴 수도 없겠지만, 템을 떨군 것은 몇번이나 되는가? 가장 가슴 저린 아이템을 드랍한 기억이 있는가?


안냐세연 : 10번까지 세다가 포기했다. 그런거 기억하면 헬리온 못한다. 내가 먹은 만큼 드랍하는거다. 풀헬리온이 될 때까지, 2번 죽으면 1번은 드랍한 것 같다. 가장 가슴아픈 아이템 따위, 당연히 기억하지 않는다. 돈? 당연히 떨군다.


지금 입은 아이템이 허름해 보인다. 보여줄 수 있는가?


안냐세연 : 물론이다. 좋은 아이템을 입고 다니는 헬리온 본 적이 있는가? 제정신이면 못 그런다. 떨굴까봐 다 금고에 보관 중이다. 몇개 떨군 후 다시 복구하기 귀찮아서 그냥 안끼고 다니고 있다.



이 허름한 아이템들. 죽을 뻔 했는데 이런거 득템하면 오히려 화가 날지도?



많은 유저들이 헬리온은 벌이가 좋다고 알고 있다. 사실인가?


안냐세연 : 돈은 잘 벌린다. 돈가지고 아쉬워본 일은 없다. 사방에 널린 것들이 돈 아닌가.


친구가 킬러직업을 가지고 헬리온의 길을 가고 싶다면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은가?


안냐세연 : 킬러를 했다면 일단 만레벨을 달성하길 바란다. 50레벨을 만든 후 마음먹고 헬리온으로 전향하라. 일단 발을 디디면 이건 풀기도 힘들다. 아이템은 먹은 만큼 뱉는다고 여겨야 할 수 있는게 헬리온이다. 아이템에 욕심내면 오히려 못하기 마련이다.



일단 만레벨 먼저 찍고 시작하길 추천한다



돌아서는 킬러의 뒷모습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두말없이 몸을 돌렸다. 잘 가라는 인사도, 인터뷰에 협조해 주어 고맙다는 소리도 못했다.
뭐 말 붙일 계제도 없이 사라져 버려서 처음엔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그는 돈과 아이템은 먹은 만큼 "당연히" 뱉는다고 알고 있다. 힘들기로 소문난 킬러, 그 중에서도 헬리온. 그러고도 헬리온 택한 데 대해서 후회가 없다고 한다. 힘들 거 알면서도 하고 싶어서 했다고 한다. 그는 체이서들, 일반유저들과의 숨바꼭질도 게임의 일부분임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전쟁서버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인식인, "돌아보지 않기"를 철저히 실행하는 그. 기자는 어깨 위에서 불타오르는 붉은 헬리온의 불꽃이 그 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그래도 표정만 보면 아무 생각 없어보이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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