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그 게임이 망한 이유는 뭘까?


김정주 노리아 대표는 게임사의 조직을 보면 게임의 성공과 실패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국제게임컨퍼런스 2009(이하 KGC2009)'의 마지막 날. 모든 강연 중 가장 도발적인 ‘망하는 게임의 조직도’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김정주 대표는 한 해에만 수백 개의 새로운 게임이 쏟아지는 우리나라에서 조직과 사람의 문제로 실패한 게임의 사례를 들면서, 거꾸로 게임의 성공을 위해서는 조직과 사람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보통 우리나라 게임사의 조직은 디자인, 프로그램, 아트의 세 부분의 합으로 이루어져있으며 각각 '시스템기획'과 '설정기획', '서버'와 '클라이언트', '2D컨셉'과 '3D그래픽'의 세분화된 조직을 갖고 있다. 결국 대부분의 게임사는 조직도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


그런데 왜 어떤 게임사는 성공하고 어떤 게임사는 실패하는 것일까.


김정주 대표는 각 파트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 다른 파트의 업무를 이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 한국 게임사들의 모습을 예로 든다.


“간혹 이런 풍경을 봅니다. 아트팀이 프로그램팀에게 폴리곤을 더 쓰게 해주세요. 서버팀은 디자인팀에게 한 지역에 너무 많은 유저가 몰리지 않게 해주세요. 클라이언트팀은 용량이 너무 크니까 줄여주세요. 각각의 요구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속한 파트가 게임의 성공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읽힌다는 뜻이다.”





그럼 세계적으로 성공한 게임사로 손꼽히는 블리자드는 어떨까.


“예를 들어 디아블로3 배경디자이너인 제프 강씨는 한 강연에서 눈에 거슬리는 맵 소스가 플레이를 하는 게이머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개발기간이 길어지는 것도 감수하고 모든 소스를 수작업으로 사진과 똑같이 그리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블리자드는 모든 판단의 기준이 ‘게임플레이’ 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파트에 손해가 있더라도 감수하겠다는 거예요.”


서로 다른 업무에 대한 이해는 디렉터의 중요한 역할. 하지만 김정주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다른 파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개발자는 찾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소수정예로 다양한 파트를 함께 경험하는 패키지 게임 제작 경험이 짧은 데서 찾는다. 분업화된 온라인 게임 제작 시스템에서는 ‘너는 몬스터’, ‘너는 개발툴’ 같은 식으로 일이 진행되어 전체적인 개발상황을 보고 익히기 힘들다는 것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제너럴리스트와 한 가지 분야를 깊이 연구한 스페셜리스트에 대한 구분이 불명확한 국내 상황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스페셜리스트가 제너럴리스트의 업무를 맡거나 제너럴리스트가 스페셜리스트의 업무를 맡게 되면서 조직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한 개발사의 흥망성쇠를 예로 들어볼게요. 소수정예가 회사를 설립합니다. 다행히 게임이 성공해요. 더 많은 돈을 벌면서 새로운 사업을 하거나 새로운 팀원을 뽑게 되죠. 그러면서 처음 회사를 설립할 때의 리더들이 실무가 아닌 관리업무를 하게 됩니다. 잘 되지 않죠. 내가 하면 10분이면 되는데 업무 지시하고 감독하고 결과체크해서 수정하고. 팀원은 맘에 안 들고. 허점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회사는 PM이나 관리부서를 투입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가 결국 관리에 특화된 인물을 위에 앉히게 되요. 그러면 실무를 하면서 회사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멤버는 소외감을 느끼면서 회사를 떠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됩니다. 비전을 가진 핵심인력이 이런 식으로 이탈하면 후속작이 실패하면서 회사가 기울게 되죠. 그러면 회사를 나간 사람들이 ‘회사나 하나 차릴까’ 하면서 이 과정이 반복되요.”


흔히 볼 수 있는 또 다른 조직의 문제는 한 파트의 부재. 사업 영역을 포함해 어느 핵심 파트가 부족한 상태에서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면 유관 부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넣게 되고 그렇게 만든 게임은 결국 완성도가 낮아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 우선은 사람을 늘립니다. 그러면 양은 많아지지만 질은 그대로거든요. 그래서 에이스를 뽑습니다. 그러면서 ‘그 쪽을 조금만 수정해주면 좋겠다’고 해요. 하지만 에이스는 말하죠. ‘이대로는 안 돼요. 게임 엎어야 합니다.’ 에이스를 데려오면 항상 발생하는 문제에요. 그런데 그 말이 맞거든요? 나중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다시 개발해야 합니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개발기간이 길어집니다. 그러면 자금이 부족해져요. 결국 지분을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자금을 모으게 됩니다. 나중에 어떻게 꾸역꾸역 성공하게 되도 고생은 자기가 하고 돈은 다른 사람이 벌어가는 걸 지켜봐야하죠.”


부족한 파트가 어디냐에 따라 나타나는 문제점도 제각각이다.


2D컨셉 파트의 역량이 부족하면 상용엔진의 실사급 비주얼이나 귀여운 SD그래픽, 동화적 색감으로 약점을 극복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 짐은 클라이언트로 넘어가 개발 초기에 개발이 중단되곤 한다고. 3D그래픽 역량이 부족할 때는 원활하게 시작하지만 프로토타입을 개발할 때 클라이언트의 도움으로 단점을 덮게 된다. 그리고 개발이 대규모가 되어갈수록 문제가 커져 중반기에 개발이 중단되는 일이 많다.


클라이언트 파트의 역량이 부족할 때는, 상용 엔진으로 이를 극복하게 되는데 추가적인 기능이 늘어날수록 문제가 커진다. 결국 개발비는 많이 들였지만 퀄리티가 낮은 문제가 발생한다. 서버 파트의 역량은 게임이 런칭될 때 드러난다. 런칭 직전까지 잘 되던 게임이 런칭 후 렉과 서버다운 현상을 겪게 된다. 게다가 클라이언트 의존도가 높다보니 해킹이나 어뷰즈, 불법 프로그램에 취약한 면모를 보이면서 서비스 도중 게임의 쇠퇴하곤 한다.


시스템 기획 파트는 특히 '어정쩡한 에이스'가 가장 위험하다고. 처음에는 좋아보였던 기획이 런칭 후 밸런스 문제나 커뮤니티 문제, 경제 문제 발생의 원인이 되는데, 조금만 더 하면 성공할 것 같아 마케팅과 업데이트로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어져 "가장 크게 망하는 케이스".





설정 기획은 명작이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중요한 파트. 하지만 이 부분의 역량이 부족하면 양으로 승부하게 되고 시스템과 설정이 결국 따로 놀게 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게임의 대세에는 큰 영향이 없다"고.


의사결정권자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도 게임의 성패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보통 의사결정권자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파트에 가장 중요한 자원을 투자하기 마련인데, 그렇기 때문에 결정권자의 경력에 비춰 이전 게임에서 다뤄보지 않았거나 취약한 부분이 반복해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웹젠은 그래픽이 늘 센세이셔널합니다. 엔씨는 영화 같은 광활한 필드와 서구적인 캐릭터. 소프트맥스는 꽉 짜인 시나리오와 비장한 반전. 이런 것들이 게임사의 의사결정권자의 방향성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게임사의 아이덴티티죠. PD도 마찬가지입니다. MMOFPS 장르가 각광을 받을 때의 헉슬리, 헬게이트, 타뷸라라사는 각 게임의 PD가 이전에 어떤 게임을 개발해 성공시켰는지가 게임의 방향성을 결정지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성공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취약한 조직도에 핵심인력을 배치하고 책임과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 김정주 대표는 결국 게임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 꾸려진 핵심 파트와 그 파트를 맡고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