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유저 입장에서라면... 무리한 캐쉬 유도는 좀 없었으면 좋겠어요. 유저 위하는 이벤트 많이 열어서 하나의 놀이 문화로 정착되는 게 최고이고요."

이름만 보고는 탁 기억해내기 어렵지만, 목소리를 듣는다면 '아!' 탄성이 나오는 그 성우. 스타리그 결승에 오른 선수들을 소개하며 한가득 비장감을 조성했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 오늘의 인터뷰이는 시영준 성우입니다.

워낙 특색있는 목소리기에 배역을 맡을 때마다 괴물 혹은 최종보스만 담당한다고 볼멘 소리를 내던 그였습니다. 또 소녀팬을 이끌지 못해 아쉽다고 토로하는 시영준 성우였지만, 그 굵은 음성 속에는 자신의 주특기에 대한 깊은 자부심이 섞였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인터뷰 중간중간 '성우 전용' 목소리 스킬을 시전했는데 그건 자신감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거니까요.

방송 나레이션,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 중이지만, 게임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감추지 않은 시영준 성우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공개합니다.





이름보다 목소리로 유명한 성우시잖아요. 지금까지 어떤 게임에 참여했는지 대략적인 커리어를 먼저 묻고 싶어요.

제 목소리를 들으면 알겠지만,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기 어려워요. 대마왕 정도는 나와 줘야 들을 수 있겠죠. 그래서인지 주로 남성적인 캐릭터가 많은 게임에 참여를 많이 했어요. 음... 게임이라면 국산 게임보다는 블리자드 게임에 많이 참여했던 것 같습니다.

'디아블로3'의 야만용사나 '스타크래프트2'에 나오는 집정관도 제가 연기했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언데드도 제 목소리예요. 네오위즈게임즈에서 서비스했던 '에이지 오브 코난'에서 코난 목소리도 담당했어요. 코난이 국내에서는 생소한 소재라서 처음에는 '이게 뭔 게임이냐...'물었는데 주인공이래요. 아, 제 목소리갖고 게임 주인공이라는데 안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흐뭇했죠. 그리고... 흠. 옛날에 '용기전승'이나 '창세기전'에도 참여했던 것 같고.



엄청 많이 하셨네요. 게임 쪽에서.

많이 했죠. '길티기어', '삼국무쌍', '블레이드앤소울', '아이온'도 그렇고 많이 했어요. 대부분 악당이나 괴물 목소리라서 그렇지.

대형 게임사 작품 위주로 참여하신 것 같아요.

대형 '괴물'을 많이 했죠.(웃음) 사실 대형 게임사든 작은 게임사든 평등하게 했어요. 지금 딱히 떠오르지 않을 뿐이지. 국내 게임사도 똑같은 열정으로 대하려고 합니다. 아, 그러고보니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볼리베어도 녹음했어요.

기분 좋으셨겠네요. 볼리베어 인기 많잖아요.

지금은 그냥 그래요. 인기 죽었어요. 옛날에 확 떴는데 다 떨어졌어요.(웃음)



게임 이야기로 넘어가보죠. 오늘 '코어 마스터즈' 성우로써 인터뷰하게 된 거잖아요. 어떤 캐릭터 담당하셨어요?

'나오자드'라는 나무 캐릭터, '로드 카토시'라고, 근접 공격하는 검사 맡았어요. '로드 카토시'는 타 게임에서 볼 수 있는 데미지 딜링 캐릭터예요. 은신, 순간이동 같은 기술이 있어서 꽤 다양하게 사용될 것 같더라고요. '나오자드'는 생긴 걸 보면 딱 나무 탱커같이 생겼거든요. 그런데 막상 사용하는 스킬들은 전기 마법이예요. 스킬들이 개성이 강해서 실제 해 보면 재미있을 겁니다.

시영준 성우님 목소리가 담긴 캐릭터니 어느 정도 짐작은 갑니다. 그런데 워낙 남성적인 목소리시다보니 음...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아요. 여성 캐릭터 좋아하는 남자들이 의외로 되게 많거든요.

저도 여러가지 고민 중이예요. 보스, 대마왕, 악의 대명사, 전사, 오크... 아니면 골렘. 저는 캐릭터 색깔이 정해져 있어요. 그게 트레이드 마크고 자랑스럽긴 하죠. 그런데 이게 너무 오래 됐어요. '아~' 이 정도로 넘어가게 됩니다. 진부해진다고 할까.

뭐, 이러면 결국 제 입지가 줄어들게 되잖아요. 그래서 같은 캐릭터를 맡더라도 다양한 색깔을 주려고 노력 중이예요. 갑자기 귀여운 느낌을 넣는다던가, 독특한 호흡이나 뭐 이런거요. 그 있잖아요. 한 유닛 딱딱 계속 클릭하면 특별한 대사 나오는 경우 있잖아요. 그럴 때는 원래 제 목소리가 아닌 귀여운 목소리로 유저 놀라게 해 준다거나 하는 거죠.

반응은 어땠어요?

좋...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변태로 오인받았어요.(웃음) 하지만 전 포기 안할 겁니다. 꼭 한 번 귀여움을 폭발시켜서 여성 유저들의 닫힌 마음을 열 거예요. 남성 유저들은...이미 돌아선 것 같고.

그럼 코어 마스터즈는 해 보셨나요?

1차 때는 음성 자체가 안 들어갔고... 2차 때는 음성이 들어가긴 했는데, 전 그 전에 녹음해서 아직 해보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네오위즈 측에서 게임에 대해 상세하게 정보를 제공해서 분위기 느끼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어요. 영상도 다 봤고요.

▲ 위 - 나오자드, 아래 - 로드 카토시


동 장르 다른 게임도 많이 해 보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느끼셨어요?

사실 '리그 오브 레전드'나 '도타2'도 조금 해 봤는데 저한테는 너무 어렵더라고요. 튜토리얼 같은 게 어려운 게 아니라 게임 진행 상황이 제가 어렵게 느끼도록 흘러가요.

사실 북미 시절 때부터 '리그 오브 레전드'는 쭉 지켜봤어요. 블리자드 능가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 때만 해도 '에이, 이게 한국에서 먹히겠어?' 했는데... 이게 진짜 먹히더라고요. 제가 온게임넷 측에서 일하면서 '리그 오브 레전드'가 국내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쭉 지켜봤어요. 하는 대회마다 계속 성황리에 끝나는 것 보고 이거 오래가겠다고 생각했죠. 그 때 당분간 대항마가 없을 것 같다고 느꼈고요.

아무튼 이 장르는 제가 어려워서 잘 못하긴 하는데, '코어 마스터즈'는 엄청 쉽게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가능성을 두고 있어요. 재밌게 잘 만든 게임은 많은데 쉬운 게임은 별로 없었잖아요.

그 외 '코어 마스터즈'에게 바라는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순수하게 유저 입장에서 부탁하자면, 무리한 캐쉬 유도가 적은 게임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유저를 위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꾸준히 열어서 하나의 놀이 문화로 정착되었으면 바랄게 없습니다. 그리고... '리그 오브 레전드' 하면서 느낀 게, 유저들 간 대화가 너무 거칠다는 점이었거든요. 청소년들이 게임하다가 격해지지 않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끔 시스템이 갖춰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 판 당 소비시간도 짧막하게 조절해서 유저들 스스로 어느정도 관리할 수 있게끔 만들면 좋고.

게임 기획자 같으세요.(웃음)

워낙 게임을 좋아하다보니 분석하는 게 버릇이 됐어요. 왜 단타 아이템 구상한 뒤 모바일로 뛰어드는 사람들 많잖아요. 게임 만들려는 열정이야 대단하죠. 하지만 빤히 보여요. 이 게임 성공 여부가. 개발자 스스로 정말 최고의 게임을 만들겠다, 누구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든다는 생각 있으면 그 게임은 잘 돼요. 하지만 돈벌이 수단이 군데군데 끼어 있으면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면에서 '코어 마스터즈'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욕도 거의 없고, 무리하게 역할이 분할된 것도 아니라서 자기 하고싶은 것 하더라도 크게 팀에 민폐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누구라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갖춰졌어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완전히 눌러버리는 것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예요. 그건 그것대로 문화를 갖고 우리나라 게임은 우리나라 게임만의 문화 공간을 형성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유저들의 선택 폭이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게임업계 생각하는 게 진심으로 느껴지네요.

저보다 게임 더 좋아하고 게임문화 더 잘 아는 성우 분 많아요. 하는 게임마다 최고 레벨 찍고 게임과 한 평생 같이 살아가는 성우 분들도 주변에 잔뜩 있어요. 게임업계 생각하는 성우가 저 뿐만은 아니예요.

평소에 게임 많이 하세요?

예전에는 온라인 게임 많이 했는데 요즘은 바빠서 잘 못해요. 한 번 빠지면 정신없이 하거든요. 결혼 전까지는 스스로 자제하려 노력한거고, 이후 아이가 태어나니까 자동으로 게임을 잘 못하게 되더라고요. 유부남이라면 제 심정 이해할 겁니다.

처음에 워크래프트 시리즈 나올 때도 정말 숨도 안쉬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낮밤 구별도 안되더라고요. 식사하러 밖에 나갔다 오니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고 그랬어요.

▲ 게이머이기에 게임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성우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음... 일단 성우가 참여하는 장르가 여러가지잖아요. 뭐 애니메이션이나 방송, 영화 라디오 등등 있잖습니까. 전 그런 쪽에는 쉽게 다가가기 힘든 목소리예요. 제가 사실 애니메이션 성우 출신인데 청소년 애니메이션 방영 시간 때 제 목소리 나오면 막 질타받고 그랬어요. 시간대랑 안어울린다고.

그런데 오히려 게임업계에서는 제 목소리를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격투 게임이나 괴물 나오는 게임이라면 제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그러더군요. 일반인들이 '이건 너무 센 목소리 아닌가' 생각하는 제 목소리가 게임계에서는 통한 겁니다. 그래서 게임 장르가 저한테는 엄청 편해요. 개인적으로 애정을 쏟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전 우리나라 게임업계가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예요. 언젠가 우리나라 게임이 세계 중심에 설 것이라는 바람도 있고. 그래서 게임 관련해서 연기할 때는 특별히 더 신경씁니다.

아, 꽃미남 캐릭터 막 돌아다니는 그런 게임은 제 집이 아닙니다. 오크가 활개치고 다 썰어넘기는 그런 게임이라면 너무너무 편안합니다. 좀비 100만 명 쯤 죽어나는 그런 게임이 저한테 딱이예요. 제 안정적인 베이스 음색을 그대로 보여줄 수도 있고요.


게임 쪽 말고 방송이나 애니메이션에서도 일하셨잖아요. 지금까지 일하신 것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음... 그래도 역시 게임 쪽인데. '스타 크래프트' 결승전 무대에서 선수들 호명하던 순간이 최고였던 것 같아요. 기로로 성우, K-1 성우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스타크 성우'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승전 때가 제일 기억에 남았던 이유도 있었고요.

어떤 이유였는데요?

왜 당시 '스타 크래프트'인기는 진짜 장난 아니었잖아요. 사람들이 경기장 앞에 쫙 줄 서 있는 것 보고 제가 엄청 놀랐어요. 게임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느낀 시점이었고, 그때부터 게임 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전 원래 어디 앞에 나서는 편은 아닌데, 그 때는... 되게 흥분됐다고 해야 하나. 부각시키는 제작진의 노력도 있었지만, 참여하는 관객들의 기쁨이 저한테 그대로 전달되는 거예요. 그 때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 "e-스포츠 결승전 무대는 잊을 수가 없어요"


이제 인터뷰도 거의 마지막입니다. 성우로써, 혹은 개인적인 바람 같은 게 있을 듯 한데요.

앞서 말했지만 저는 사실 그리 나서는 사람이 아니예요. 그런데 여러 정황이 겹쳐 몇 차례 실제 나서긴 했는데, 사실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제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소녀떼를 몰고 다니는 그런 목소리 아니잖아요. 공포 유발하는 목소리라면 모를까. 그래서 제가 익명성을 사랑합니다.(웃음)

사실 같이 연기하는 선후배 성우들 중 그런 부분을 껄끄러워 하는 분이 꽤 됩니다. 성우라는 직업 특성 상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불편해보일 수 있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제 연기에 부족함이 많이 느껴져서 부담스럽기도 하고... 외향적인 성우분들도 분명 있긴 하지만 전 안 그렇다는 거죠.



스스로 연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신다고요?

제 경력이 아주 짧은 것은 아니지만 음색의 개성 덕분에 알려진거라 생각해요. 연기력이 좋아서 떠오른 성우는 아니라는 거죠. 이제는 제 연기에 책임을 져야 할 시기인데... 아직 그러지는 못한 것 같아요. 괴물 뒤에서 목소리로만 알려지는 게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연기로 찾아뵈야 할 때죠.

그럼 다시요. 성우로써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요?

와 연기 잘한다 이런 말 듣는 거죠. 성우라면 대부분 그럴 거고, 저는 '소리보다도 일단 시영준 성우는 연기를 잘해'라는 말 들어보는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괴물 호흡소리에 사람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정도?(웃음)

네. 물론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은 저도 알아요. 하지만 이정도가 되야만 제가 성우라고 자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악역 많이 맡아요. 그럼 정말 악역답게, 죽는 것도 시원스럽게 죽는 그런 연기 할 거예요. 제가 연기한 악당을 해치움으로써 플레이어가 '아, 드디어 이 나쁜 놈을 무찔렀구나'이런 생각이 들었기를 바랍니다. 악역이 빛날 때 선역도 빛나는 법 아닐까요?

오늘 인터뷰 재미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벤 가족 분들에게 영상 메세지를 부탁해도 될까요.

아, 물론이죠.

[▲볼륨을 조금 높인 뒤 청취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