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인디 게임 개발 붐이라 할 만하다.

스팀과 같은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에서는 수많은 인디 게임을 접할 수 있고, 모바일 디바이스가 확산되면서 1인 개발사를 비롯한 스타트업 개발사도 많아졌다. 풀이 커지다보니 소위 '대박'이라 불리는 성공신화도 종종 접하게 되고, 반대로 실패를 겪고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버디게임즈에서 서버 프로그래머로 일했으며, 마이에트 엔터테인먼트 선임연구원으로 '건즈2'와 '레이더즈'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력을 거쳐 인디게임 영역에 몸담고 있는 원창현 개발자는 '인디게임 프로젝트,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준비했다.

그는 인디게임 개발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 또 무슨 이유로 중도에 포기하게 되며, 중도에 포기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신경써야하는지를 자신의 경험담에 비추어 자세하게 소개했다.

▲ 인디게임 프로젝트를 주제로 강연을 준비한 원창현 개발자


■ 인디게임, 왜 이리 많은가?

개발자들은 왜 인디게임의 길을 선택하는가? 원창현 개발자는 게임 제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인디게임 개발에 나서는 이유를 몇 가지로 추려서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 즉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고자 하는 이유가 큽니다. 또, 게임 안에 어떤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려 하거나 단순한 개발 연습, 또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분명 있습니다.

사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게임을 개발한다'고 하면 뭔가 거창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실상은 비주얼 스튜디오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새 프로젝트 만들기'만 클릭해도 인디게임 프로젝트는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완성한 프로젝트보다 중단한 프로젝트가 훨씬 많게 마련.

"프로젝트를 포기하게 만드는 문제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시간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으며, 자신의 의지나 자금 사정이 문제가 될 수도 있죠. 이 강연에서는 제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중도 포기의 원인들과 예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 인디 개발을 시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 비주얼 스튜디오에서 새 프로젝트 만들기를 클릭하면... 개발 시작


▲ 완성한 프로젝트보다 중단한 사례가 훨씬 많은 것이 사실


▲ 그는 이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 인디게임 프로젝트, '원대한 꿈'은 잠시 접어둘 것

통상적으로 인디 개발자들은 뭔가 원대한 아이디어를 품고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큰 꿈을 안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 게임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설파하며 동의를 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 대작이면 대작일수록 만들어야 할 것은 많은 법. 그러다보니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다. 시간에 쫓겨 몇 차례 지지부진을 겪다보면 의욕이 꺾이는 경우가 생기고, 그렇게 스스로 먼저 마음을 접고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원창현 개발자는 이에 대해 "대작병을 극복해야한다"고 말한다.

"게임 개발이란 어찌됐든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생산 프로젝트입니다. 원대한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하는 이유는 일명 '대작병(Masterpiece Syndrome)'이라 불리는 대작에의 욕심 때문인데요. 자기 혼자, 또는 팀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기술로 커버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실용 서적들이나 포스트모템 사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세 가지 교훈을 제시했다. '핵심에 집중할 것', '작게 시작할 것', 그리고 '잘라낼 것'이다.







▲ 대작병을 극복하라




▲ 대작 욕심이 과하면 스스로를 위안 삼으며 또 하나의 '포기' 사례를 남기기 쉽다


대작병은 전세계 게임업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다. 이 중에서 앞서 말한 교훈을 받아들여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는 케이스도 종종 있다.

보통은 만들기 쉬워 보이는 잘 알려진 게임을 모방해 토대를 마련하고 거기에 무언가를 추가함으로써 차별화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전세계적으로 이미 엄청나게 나와있는 총알 피하기나 테트리스 등등의 게임이 자꾸 늘어나는 것은 이런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이런 게임들을 늘리는데 일조했고요."



▲ 수많은 똑같은 게임을 하나 더 만드는 결과가...







■ 작은 프로젝트는 실패하지 않을까? No!

아이디어가 너무 앞서가는 현상을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중도에 포기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스스로 의욕이 꺾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중단하는 이유는 대개 '이걸 내가 왜 만들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는 개발을 동결하더라도 스스로 많은 걸 배웠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게 마련이죠."

원창현 개발자는 "'작은 프로젝트'의 가장 좋은 사례는 만들고 싶은 게임을 작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말 주관적인 얘기이니 참고만 해달라"며 "몇 차례의 '삽질'을 통해 정리해본 프로젝트 시작 가이드"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먼저, 게임을 구성하는 메카닉스(Mechanics, 시스템으로서의 게임을 설명하는 공식적 규칙과 개념들)를 구체화할 수 있을 정도로 디자인해야 합니다.

만약 게임의 볼륨이 크다면 복합장르일 가능성이 크고, 복합장르 게임이라면 핵심 메카닉스가 여러 개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지난 달에 출시된 '스타크래프트2: 군단의 심장'이 복합장르의 대표적인 예가 되겠네요."


▲ "이걸 왜 만들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면


▲ '많은 걸 배웠다'고 긍정하기에도 의문이 남는다


▲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삽질을 통해 정리해본 프로젝트 시작 가이드'




▲ 이런 기본적 구조들이 바로 메카닉스의 예


▲ 복합장르의 경우 게임 볼륨이 크고, 그만큼 핵심 메카닉스의 수도 많다


▲ RTS인 스타크래프트2의 경우 다양한 메카닉스를 가진 사례


원창현 개발자는 이런 다양한 메카닉스 중 하나만 선택해 목표로 삼고, 그 하나의 메카닉스로 만들어진 것들 중 참조할 만한 게임이 뭐가 있는지를 찾아보라고 말했다. 단, 그것이 '카피할 게임'을 찾으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원창현 개발자는 덧붙였다.

"저는 '유닛 특성을 살린 전략적 전투'라는 메카닉스를 선택했습니다. 그에 해당하는 고전게임을 찾아보니 장기와 체스가 있더군요. 이 게임들 위에 먼저 선택하지 않았던 여러 메카닉스들을 더해나가면 스타크래프트2와 같은 복합장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생김새는 크게 다르겠지만요.

즉, 하나의 메카닉스로부터 출발하게 되면 '작은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작업이 '만들고 싶은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원창현 개발자의 말이다.



▲ 유닛 특성을 살린 전략적 전투의 예, 장기와 체스


▲ 간단한 게임이라도, 다른 메카닉스를 구상해 더해가면 복합장르 못지 않은 볼륨을 갖출 수 있다


▲ 즉, 이 과정을 거치면 작은 프로젝트가 만들고 싶은 프로젝트가 될 수도!



■ '즉흥적인 프로젝트'는 위험하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알고 게임 제작에 필요한 엔진 등을 갖췄다. 그러고 나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매력적인 플레이 장면들을 구상하면서 의욕적으로 창작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게 된다.

이후, 구상했던 장면의 핵심 기능을 완성하기까지는 무난하게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쯤 되면 거의 다 만든 것 같은 기분에 들뜨게 마련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함정. 실제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게임 개발에 있어 그리 큰 부분이 아니다. 겨우 절반, 혹은 그에 못 미치는 시점임을 깨닫게 되고 다시 개발을 진행하다보면 수많은 의문에 부딪치게 되면서 게임을 난도질하기에 이른다.

"추가하고 고치고 빼는 과정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하다보면 시간도 훌쩍 지나가게 되고, 그러다보면 프로젝트 초기의 방향성은 희미해지게 됩니다. 결국 또다시 포기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많죠. 끝까지 완성한다 해도 시간 제한이나 고득점 경쟁, 오래 버티기 등 매우 익숙한 메카닉스로 마무리하는 사례도 많고요.

▲ 준비가 갖춰지고 나면 의욕이 샘솟기 마련


▲ 매력적 장면을 구상하고, 이 장면의 핵심 기능까지는 보통 성공적으로 진행한다


▲ 하지만 시스템 개발은 전체 과정에서 보면 이 정도 위치




▲ 수많은 의문과 함께


▲ 더하고 빼는 과정이 반복된다


▲ 이 과정이 무한정 이어지다보면


▲ 시간도 시간이지만 프로젝트의 초기 방향성 자체가 희미해진다


▲ 그렇게 또 긍정


즉흥적 프로젝트의 맹점은 매력적인 장면을 중심으로 놓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픽과 사운드, 역동적 연출로 포장한 장면들을 막상 만들어놓고 보면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희미해지기 쉽다는 것. 멋진 장면은 게임 전체로 보면 일부분의 연출일 뿐, 게임의 핵심이 되어야할 메카닉스의 정의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즉흥적으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원창현 개발자는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을 제시하고,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심시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스톤 리브랜드(Stone Librande)가 언급했던 페이퍼 시뮬레이션(Paper Simulation)을 언급했다.

"디지털 게임을 종이 위에 구현해보면 즉흥적 프로젝트의 근본적 원인이 되는 화려한 연출이 모두 사라지게 되고 그 게임의 핵심인 미학과 메카닉스만 남게 됩니다. 또, 페이퍼로 시뮬레이션해보면 게임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플레이해볼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전체적인 디자인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반드시 발견하게 되죠."

▲ 프로토타이핑의 중요성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 현실은......


▲ 이렇게!


▲ 이렇게!


▲ 이렇게 유용한데 말이죠.


▲ 그래서 제안하는 방법이 이거!


▲ 디지털 게임의 화려한 연출들을 모두 제거하면


▲ 원초적인 미학과 메카닉스만 남게 된다


▲ 이런 작업이 가능해진다는 것


▲ 이런 부분은 유의할 것


시각이나 청각적 요소에 대한 프로토타이핑은 어떻게 하는가? 원창현 개발자는 비슷한 미학인 담긴 그림이나 음악을 활용할 것을 권했다. 컴포넌트를 만들 때 그림을 출력해서 활용하거나, 테스트 플레이할 때 BGM이나 사운드 이펙트로 활용한다는 것.

"FPS와 같이 실시간 처리를 필요로 하는 게임의 프로토타입도 물론 할 수 있습니다. 메트로놈을 활용하면 가능하거든요. 물론 직접 해보는 것이 제일 확실하긴 하지만요."

가장 좋은 자세는 '테마파크의 놀이기구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개발에 임하는 것'. 놀이기구와 게임은 이용자에게 좋은 경험을 전달해주고자 하는 엔터테인먼트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이런 게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개발자들이 인디게임을 만들기 시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게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인디게임이 갖는 커다란 매력 중 하나는 자유롭게 창의적인 발상을 실체화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방향성 검증과 메카닉스 정의가 만족스럽게 나왔고, 프로토타이핑으로 게임의 전체 진행도 검증됐다. 경력 빵빵한 팀원들도 모집됐고, 역할도 잘 나눠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프로젝트가 난항에 부딪칠 수도 있다고 원창현 개발자는 설명했다.

이른바 '성향' 문제. 즉, 본인이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 작업을 반복하다보면 의욕이 꺾이기 쉽다는 것.

그래서 원창현 개발자는 게임 디자인도 괜찮고, 어느 정도 개발 능력도 보유했다면 자신의 제작 성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프로젝트 제작 과정에 대한 현실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작년 NDC에서 이은석 디렉터가 진행했던 화이트데이 포스트모템 강연을 들었습니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따라해봤는데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으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더라고요."

▲ 이것이 인디게임의 매력


▲ 하지만 충분한 능력자들이 모이고


▲ 분업이 잘 이루어져도


▲ 이런 상황은 어쩔 수 없다


▲ 작업에 대한 개인의 성향이 안맞았기 때문!


▲ 현실과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는 강연에서 느낀 바를 토대로 다시 프로젝트를 진행해봤고, '아기 고양이의 실종'이라는 게임을 빠르게 완성하는 경험을 해봤다고 말했다. 이어서 진행했던 '마녀가 사는 마을'은 "언젠가 한 번 마녀 컨셉의 게임을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해서 시작됐다. 설계도를 그리고 캐릭터를 그려봤는데, 웨이브를 만드는 과정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고.

그래서 보스 AI를 먼저 만들자는 생각이 들어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게 생각 외로 너무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게임의 메카닉스를 전체적으로 수정해 개발 과정 자체를 바꾸게 됐다.

"메카닉스를 전체적으로 수정한다고 해도 최대한 미학은 유지하면서 수정해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먼저 재미없다고 느꼈던 웨이브 관련 모듈들을 제거했습니다. 적 NPC 타입과 AI 타입을 추가하고 아군 NPC의 AI를 다채롭게 보강하는 식으로 제가 재미있게 느끼는 작업을 많이 배치했죠."

만들기 괴로운 작업을 제거하고 재미있는 작업을 추가함으로써 디자인을 바꾸고, 빠르게 프로토타이핑을 진행했더니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불과 2주 만에 게임을 완성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제작 과정이 자신의 성향에 맞지 않는다면 동료를 영입하거나 디자인을 수정하거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 반면에, "이 게임의 개발자"라는 명함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나의 성향과 잘 맞는지 궁합을 확인해 개발 과정이 재미있도록 해야 완성까지 갈 수 있다는 것.

▲ 이은석 디렉터의 포스트모템 강연을 듣고


▲ 성향에 맞춰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니




▲ 순식간에 완성했다고


▲ 마녀를 소재로 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


▲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 재미도 없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결과를 초래...


▲ 그래서 방향을 살짝 선회해봤는데








▲ 재미있는 작업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돌려 다시 프로토타이핑


▲ 2주만에 완성했다고




▲ 중요한 건 재미!


"이 게임의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것은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은 길고 험난한 길이다. 제법 긴 강연이었지만, 그 길을 완주하기 위한 방법으로 원창현 개발자가 제시한 것은 명확하다.

핵심 메카닉스를 찾아 작게 시작하고, 시작부터 끝까지 충분히 프로토타이핑을 거치며, 개발 과정 자체가 나의 성향과 잘 맞는지를 확인하라는 것.

모든 인디 개발자들이 즐겁게 게임을 만드는데 자신의 이야기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원창현 개발자는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