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서버 카인은 2003년 7월의 리니지2 오픈베타의 시작당시 생성되었던 초기의 서버로써,
특히, 뛰어난 레이드 진행 및 공략속도로 뭇 리니지2 유저들에게 명망높은 서버이다.


허나, 리니지2를 언급하면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얘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전쟁.


3섭 카인 역시,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 파란만장한 전쟁의 역사를 겪어온 서버이기에,
이 자리를 빌어 그 지나온 길을 되짚어보는 기회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분쟁기


리니지2 오픈베타와 함께 그 생명을 시작했던 카인서버의 초기에는,
크게 두 개의 혈맹이 서버의 주도권을 양분하고 있었다.
그 이름은 천의혈맹과 인사이드(K2)혈맹.



클로즈베타때부터 리니지2를 해온 사람은 천의혈맹의 이름이 익숙할 터인데,
천의혈맹은 클로즈베타 당시 Dragon Knights, 제네시스, 신의기사단과 함께 DK동맹의 소속으로
DK동맹의 타 혈맹들이 1섭 바츠를 택하고, 적이었던 Legend of Knights는 2섭 지그하르츠를 택하는 동안
3섭 카인을 선택한 혈맹이다.



천의와 인사이드(K2)의 두 혈맹은 세력의 크기와 구성인원의 실력이 서로 대등했기에
3서버의 패권을 두고서 계속적인 교전을 펼쳤음에도 쉽사리 자웅을 가리지 못했다.



이렇게 2개 혈맹이 세력구도를 양분. 처절한 패권다툼을 계속했던 이 시기는
약 2년에 가까울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었다.




[ 용호상박 - 서로의 실력이 비슷할수록 싸움은 더 처절해지기 마련 ]





통합기


무엇이든 오랫동안 되풀이하다보면 그 목적의식을 잃게 되는 법.
이는 천의 VS 인사이드(K2)의 패권다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2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끊임 없이 지속된 양 세력간의 전쟁은 어느덧 구성원들에게
"저들과 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그토록 오래 지속한 전쟁을 이제와 서둘러 매듭짓기에는
그간 서로간에 쌓인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 쉬이 메울 수가 없었다.




[ 서로에 대한 견제도 제 3의 세력이 등장하면 풀어지게 된다. ]




이렇게 양대 세력의 전쟁이 목적의식을 잃고서 서로의 역량을 소모하던 시점에,
두 혈맹을 제외한 3세력에서 시즈 연합이라는 초거대 세력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시즈연합의 규모는 양측 혈맹의 그것을 압도하는 수준이었으며,
그 구성원들의 역량 또한 양측 혈맹의 수준에 비해 부족하지 않았기에
양측 혈맹은 더이상 시즈연합을 무시하고서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시점에서 시즈연합이 오랜시간 반목했던 양측에 중재를 제안한다.
천의혈맹과 인사이드(K2)혈맹 양측의 적대감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시즈연합의 중재안은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그들에게도 매력적일수 밖에 없었다.



양측의 중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시즈연합 및 천의혈맹, 인사이드는 세력을 통합,
LK(PK)라는 초거대 동맹을 결성하게 되고, 카인섭 유일 세력으로 군림하기에 이른다.




독재기


2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분쟁이 있어왔던 서버에서
초거대동맹의 탄생으로 인해 모든 분쟁이 일거에 종식되었기 때문일까.



LK동맹에 의해 하나로 통일된 카인서버는 PVE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서
전 서버 최초로 바이움 한 팟 레이드에 성공하는 등, PVE 컨텐츠의 황금기를 맞는다.



모든 상위 컨텐츠는 LK가 독식, 체계적인 지휘하에 빠른 성장을 보였고
LK란 이름은 서버 내의 모든 유저가 가지길 원하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허나 이 이상향은, 영원히 지속되지 못했다.




[ 아주 잠깐 찾아왔던 번영과 평화 ]




전쟁의 종식이 가져온 것이 평화만은 아니었다.
다년간의 전쟁에 길들여진 유저들에게 무기한의 평화가 찾아왔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더 이상 승부와 전쟁을 통한 짜릿함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LK의 주축을 이루는 골수 쟁혈유저들의 불만이 차오르던 이 시기.
서버 내에선 사라져버린 적을 억지로라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을까?
LK는 독재치하의 카인서버에 대해 사냥터의 통제 및 척살을 선포한다.



LK는 작업장 세력과 연계해 상위 레이드 및 사냥터를 독식, 뭇 유저의 원성을 사지만
이미 공룡처럼 커져버린 LK를 상대로 전쟁을 시도할 무모한 세력은 없었기 때문에
견디지 못한 유저들이 차츰 서버를 이탈하기에 이른다.





격변기


LK의 집권과 함께 일방적인 독재가 진행되던 시기
LK는 서버이전 서비스를 통해 13서버로 침공세력을 보낸다.



표면상의 이유는 해당 서버의 정벌이었으나,
당시 가장 아덴시세가 비쌌던 축섭 중 하나였던 아이린 서버에
LK와 연계했던 작업장 세력이 작업장번식을 위해 침공했다는 의견이
현재 가장 설득력이 높은 의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3서버로 침공했던 LK 및 그 동맹세력은 13서버 수비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부딫혀
침공군의 패배로 종결, 해당 침공세력들이 원래 서버로 귀환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 원정의 패배는 역침공을 부른다. ]




해당 전쟁 패배 이후, 13서버의 연합세력에게 3서버가 역으로 침공받는데,
2009년 10월 경을 시작으로 6개월 이상 지속된 이 서버대전을 흔히 카인섭 대전이라 부른다.



이렇게, 13서버의 NS혈맹을 주축으로 하는 에이스 연합과
LK를 주축으로 하는 리더스 연합이 3서버 카인에서 격돌한 카인섭대전은
전쟁 초기 수비군인 LK의 우세도 잠시, 원정군 NS측의 우세로 그 추가 기운다.



전쟁의 초기, 해당 서버의 상황에 익숙한 수비군이 이러한 지리적인 이점을 틈타
전쟁에서의 우위를 점해 유리한 국면을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인데 반해
양 측의 전쟁경험 차이는 그러한 지리적인 이점을 뒤집을 정도였던 것.



오랫동안 독재를 통해 적이 사라져서 스스로를 단련할 필요가 없었던 LK측과
서버통일 전쟁 내도록 끊임없이 계속된 전투를 통해 단련을 거듭한 NS측의 격돌은
개전 후 급격히 NS측으로 그 우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 당시의 기록들은 아직 서버게시판에 남아 있다. ]




이 시기, 모든 서버의 리니지2 유저들의 시선이 카인에 집중된 가운데
연일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전쟁상황의 실시간 방송이 이어지곤 했으나,
현재 정확한 대전사에 대한 정보는 게시판에 개략적인 형태로만 남아 있으며,
자세한 정보는 3서버 전쟁 경험자의 제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후 서버이전을 통해 양측 세력의 연합군이 속속 3섭 카인에 도착하면서
양측의 우세를 쉬이 점칠 수 없는 혼전의 양상이 거듭되는 시기가 있었으나,
결국, NS측의 우세로 전쟁은 기울고 LK측은 잠수/게릴라의 전략을 택한다.



그렇게 패배/항복선언 없이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흐르던 2010년 4월 경,
NS 및 에이스연합이 일방적인 승리 선언 이후 원래의 서버로 회군함으로써



리니지2에서 최초로 발생한 "서버를 초월한 대회전"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작업장들의 연계와 확장이 부른 "쩐의 전쟁"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는
카인섭 대전의 막이 내리게 된다.




[ 최초의 대회전 VS 쩐의 전쟁 - 상반된 평가가 공존하는 카인섭 대전 ]





쇠퇴기


카인섭 대전이 장기화됨에 따라, 전쟁은 무분별하게 필드까지 확산되기 시작하고
이 때문에 피해를 입은 유저들은 카인을 떠나 다른 서버로 둥지를 옮기기에 이른다.



LK의 길었던 독재에도 불구하고 '혼잡서버'의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던 카인서버는
카인섭 대전으로 인해서 '원활서버'의 불명예를 안게 된다.



비공식적인 집계에 따르면,
카인섭 대전의 시작부터 종료까지 서버를 이탈한 캐릭터의 숫자는 1800여개에 이르고
전쟁이 종료되었음에도 이 숫자의 대부분은 카인서버로 되돌아오지 않았다고 전한다.



전쟁이 종료된 이후 LK측은 잠수를 풀고서 다시금 카인서버를 재집권하지만,
전쟁기간동안, 지도력의 부재 및 작업장과의 연계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유저들의 민심이 LK에게 등을 돌린 현재, 카인섭의 분위기는 어둡다.




[ 2010년 5월 6일 서버이전에는 700명이 넘는 유저가 카인서버를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