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글로벌 전쟁시대입니다. 중국에서는 가격대비 풍부한 물량을 갖춘 게임이 쏟아져 들어오고 북미나 유럽에서는 그들만의 스타일을 갖춘 게임들이 속속 들어오면서 게이머들의 취향마저 변화시키는 중이죠. 그래서 2011년은 국내 게임업체 입장에서 그 어떤 때보다 힘든 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최소 중박을 치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할 작품들이 해외 신작들과 싸움에서 밀리거나 다른 이슈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던 게임들이 많았으니까요. 인벤에서는 연말 결산의 의미로 2011년 출시된 게임 중 게임성은 인정받았지만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게임 4종을 선발해 봤습니다.



1. 앨리샤: 말과 나의 이야기, 아이유는 축복인가요. 저주인가요?

▶개발사: 엔트리브 소프트
▶장르: 액션 라이딩
▶서비스: 2011년 2월 24일 오픈베타 ~ (서비스 중)



모두가 성공 아니 대박 칠 것이라고 봤습니다. 분위기가 그랬죠. 당시 앨리샤 성공에 의문을 품는 것은 ‘대세’ 아이유에 대한 모독이나 마찬가지였고 우스갯소리로 이런 불신론자들에게는 국가적 차원에서라도 능지처참을 고려해야 할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애초 기자들의 생각도 성공이냐 아니냐의 관점이 아니었습니다. 과연 국민게임 ‘카트라이더’를 꺾느냐 였죠.

기대치가 높았던 것도 나름 이유가 있었습니다. 팡야를 성공시킨 1세대 게임개발자 서관희 이사의 프로젝트였고 온라인 레이싱게임으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5년짜리 장기 개발 작품이었으며 무엇보다 말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공개테스트때부터 ‘재미’있다는 평가를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홍보모델로 아이유를 더해 화룡점정한 것도 주요한 포인트였죠. 딱히 성공할 이유가 있다고 하기보다는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앨리샤는 흥행 면에서 기대치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회원수 54만 명에 최고 동시접속자 2만 5천까지 끌어올렸지만, 아이유의 3단 고음과 같은 부스터가 터져주질 않았죠. 라이딩 액션은 재미있었지만 말과의 교감 콘텐츠가 부족했다는 의견도 있었고 잘 차려진 식탁 위에 분위기를 돋울 데코레이션이 지나치게 부각됐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앨리샤는 아이유라는 이슈 코드를 벗겨 내더라도 충분히 평가받을 수작임은 분명합니다. 일단 재미있었으니까요.

용의 눈동자까지 그렸지만 승천하지 못한 게임. 앨리샤를 올해의 아까운 수작 첫 번째에 거론한 이유입니다.



2. 솔저오브포춘 온라인, 총싸움 '간지' 완성! 그러나 뻔했다

▶개발사: 드래곤플라이
▶장르: 1인칭 총싸움게임(FPS)
▶서비스: 2011년 4월 30일 오픈베타 ~ (서비스 중)



'스페셜포스2'가 FPS의 명가 드래곤플라이의 준비된 대작이었다고 한다면 '솔저오브포춘 온라인'은 기대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준 수작이었습니다. 기존 FPS가 상대방을 더 빨리 효율적으로 죽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솔저오브포춘’은 여기에 죽이는 맛을 더해 대검을 던지고 날라차기로 상대방을 쓰러트리는, 총싸움게임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간지’를 완성했죠.

원래 남자가 수트를 입을 나이가 되면 처음엔 클래식한 미국식 수트의 정직함에 끌리게 되지만, 멋을 알수록 격식을 조롱할 줄 아는 유럽신사의 스타일에 반하게 됩니다. 정통은 정직하지만 답답함이 묻어나죠. 그런 의미에서 솔저오브포춘온라인은 피 튀기는 하드코어함을 유지하면서 위트를 더해 마치 스포츠를 즐기는 듯한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만하면 제법 그럴싸한 게임입니다.

다만, 아쉬웠던 부분은 맵이나 모드 등 너무나 뻔한 FPS 룰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입니다. 마음먹고 일탈을 감행했다면 미친 척하고 신도림역에서 스트립쇼를 췄어야 했는데 또 지긋지긋한 회사에 출근해 버렸습니다. 그는 착한 김 대리였습니다.

'억울한 무기 밸런스'도 게임의 이미지를 탈색하는데 한몫했습니다. 솔저오브포춘 온라인은 총의 밸런스에 구애받지 않고 순간의 판단력에 따라 승부가 좌우되는 게임입니다. 상대방이 소총을 들었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서는 나의 권총이나 대검, 심지어 날라차기가 더 강력할 수 있죠.

하지만, 일반 FPS에 길들어진 유저들은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대검은 총알이 떨어졌을때나 쓰는 보조무기인줄 알았는데 여기선 총보다 더 유용하게 쓰이니까요. 나의 리드미컬한 M16 총놀림이 적의 아스트랄한 발차기에 무너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솔저오브포춘 온라인에서는 정말로. 실제로. 명명백백하게. 가능합니다. 굳이 책임 소재를 따지자면 이런 시스템을 이해시키지 못한 개발사의 탓이 크지만 국내 FPS시장이 지나치게 관성에 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모처럼 젊은 게임이 나왔는데 시장이 늙어버린 탓일까요.



3. 테라,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한 까닭

▶개발사: 블루홀 스튜디오
▶장르: MMORPG
▶서비스: 2011년 1월 11일 오픈베타 ~ (서비스 중)



일찌감치 ‘블레이드앤소울’, ‘아키에이지’와 더불어 BIG3 반열에 올라섰던 ‘테라’는 오픈초기 36개 서버 20만 가량의 동시접속자를 확보하며 NHN의 그토록 바랬던 ‘대작’ 타이틀 성공의 꿈을 이뤄줬습니다. 그러나 Success is never final, 제2차 세계대전을 끝장낸 윈스턴 처칠이 말했듯 성공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죠.

오로지 성공을 위해 달려왔던 ‘테라’는 그 결과를 얻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유지하는데 미숙했습니다. 논타겟팅 전투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며 게임의 뼈대는 멋지게 완성시켰지만 뜯어먹을 만한 살이 없는 게 흠이었습니다. 뼈해장국에 뼈가 있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뼈만 있으면 큰일입니다. 곧 살이 붙을 거라고 사장님께서 그러셨지만 울버린도 아닌데 살이 바로 붙을 순 없죠. 당장 배가 고픈 사람들은 떠나기 마련입니다.

할 것도 없는데 할 말 없게 만드는 운영도 역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이 재래시장가서 국밥 한 그릇 말아먹는다고 해결된다면 저도 대통령 했겠죠. 마찬가지로 온라인게임에서 소통 역시 패치노트나 인터뷰 몇 번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 우리 이렇게 개발하고 있으니 좀더 기다려줬으면 좋겠어'식의 해답은 10년 전엔 정답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죠.

성공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테라. 이런 양립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 재주도 대단하다면 대단합니다.

신나게 털긴 했지만 '테라'는 분명 2008년 아이온 등장 이후 가장 잘 만든 국산 MMORPG임은 분명합니다. 지긋지긋하고 구태의연한 한국형 MMORPG의 틀을 깬 것도 칭찬받아 마땅하죠. 문제 되었던 소통도 초반엔 제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애초에 기획 의도에도 없던 '점프'가 추가된 것도 이에 대한 반증입니다. 게이머 입장에서야 캐릭터가 단지 지면에서 떨어지는 패치일지 몰라도 개발자들은 라꾸라꾸가 안방 침대처럼 느껴지는 피드백일테죠. 아쉽다는 것은 초기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하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점입니다.

충분히 더 잘 될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해 안타까운 게임. '테라'를 2011년 아쉬운 수작 4선에 포함시킨 이유입니다.



4. 와일드플래닛, 폭풍에 묻힌 아까운 수작

▶개발사: 액토즈 소프트
▶장르: 건슈팅 MMORPG
▶서비스: 2011년 1월 6일 ~ 2011년 6월 22일(서비스 종료)



프레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대중을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 BIG3 역시 미디어가 만들어낸 대작 홍보용 프레임 중 하나죠. 일단 이 프레임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게임플레이에 대한 우선순위를 잡아주면서 오픈베타가 시작되면 으레 해봐야 할 것 같은 게임으로 만들어줍니다.

이런 BIG3 프레임의 대표적인 희생양이 바로 ‘와일드플래닛’입니다. 1월 6일 오픈베타를 시작한 ‘와일드플래닛’은 반짝 빛을 보긴 했지만 일주일 후 실시한 대작들의 오픈베타 폭풍에 휩쓸려 이슈가 되지 못했습니다. 게임완성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건슈팅 MMORPG를 표방한 게임 중 이 정도 참신한 게임성을 보여준 게임도 드물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망할 게임은 아니었단 말이죠.

하지만, 망했습니다. 상용화도 못해보고 제대로 망했죠. 오픈베타 단계에서 최적화나 버그 문제가 이슈가 되는 것은 어떤 게임이든 있는 현상입니다. 와일드플래닛도 마찬가지의 이슈를 겪었고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습니다. 일주일 후 다른 대작들이 런칭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와일드플래닛은 그런 폭풍을 이겨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올바른 피드백을 받을만한 여건이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상용화를 못했으니 개발비는 물론 마케팅비도 회수하지 못했고 이는 개발사가 감내하기 힘든 리스크로 다가왔습니다. 액토즈소프트가 라테일을 제외한 온라인 개발팀을 모두 해체시키고 모바일 쪽으로 체질 개선한 것도 와일드플래닛의 영향이 컸겠죠.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중국에서 완성도 높은 MMORPG가 수입되고 있는 이때 국산 MMORPG 중 이 정도 퀄리티의 게임이 서비스 종료한다는 것은 무척 슬픈 일입니다. 100억대 국산 프로젝트는 망하고 10~50억대 해외게임들이 국내에서 성과를 보인다는 것은 특히 돈의 논리에 민감한 시장에 의미하는 바가 크죠. 내년에는 부디 이런 아까운 수작들이 묻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