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스타크래프트2 종목에겐 고난의 해였다. 블리자드가 WCS 체제 출범을 선언한 이후 각 주최사들이 의기투합하며 각오를 다졌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적지않은 문제들이 있었다. 시즌 초기 각 선수들은 지역 선택에 골머리를 앓았고, 개인리그는 1년에 불과 3번밖에 열리지 못했다. 또한 시즌2가 끝나고 온게임넷은 스타2의 비중을 줄이고 있다.

결국 블리자드는 2014 WCS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그간 야기되었던 문제점들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WCS 통합 초기에 일었던 지역 선택 문제부터 상금 논란, 대회의 축소, 그리고 그 결과까지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WCS 통합 체제의 원년 2013년에는 과연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

목차
① 2013 WCS의 주안점 - 세계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
② 시작부터 야기된 혼란 - 선수들의 '지역 선택' 문제
③ 모두를 위한 상금 제도 - 그러나 힘을 받지 못했다
④ 연 3회로 줄어든 개인리그 - 군소 대회는 이를 보완하지 못했다
⑤ 시간이 지날 수록 커진 불협화음 - 블리자드의 소통 부족
⑥ 수요에 따라 변하는 공급, 줄어드는 게임단… 2014 WCS에서는?


■ 2013 WCS의 주안점 - 세계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

▲ 블리자드 e스포츠 매니저 '킴 판'


블리자드는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렸던 블리즈컨 2013 패널 토론을 통해 블리자드가 어떤 이유로 2013 WCS를 기획했는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e스포츠 매니저 '킴 판'이 밝힌 올해의 WCS 개편안의 취지를 요약하자면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WCS를 만들고자 한 것이 주요 골자였다.

2012년 WCS에서는 지역별 예선을 거친 선수들이 그랜드 파이널에 올라 경기를 치르는 단기전 방식이었다. 여기서 팬들은 자신의 출신 지역 선수가 아니면 무관심한 현상이 빚어졌고, 블리자드는 이를 개선하길 원했다. 그래서 탄생한 방식이 2013 WCS다. 전 세계를 북미와 유럽, 한국 지역으로 통합한 뒤 기존에 진행되던 국가별 대회를 WCS 시스템에 흡수시키고, 시즌 파이널과 글로벌 파이널을 통해 범세계적인 대결 구도를 만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그리고 4월 3일,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CEO는 한국에 내한해 WCS 계획을 발표했다. 골자는 GSL과 스타리그가 통합되어 번갈아 진행되며, 시즌1 파이널은 온게임넷의 주관으로 한국에서 열리게 됐다고 발표했다. 각 협력사가 별도로 진행하던 스타2 리그를 WCS 체제로 편입하기까지 많은 진통이 있었지만, 각 주체들이 스타2 리그의 미래를 위해 의기투합하여 첫 삽을 뜬 것은 좋았다. 하지만 곧바로 문제가 터져나왔다.


■ 시작부터 야기된 혼란 - 선수들의 '지역 선택' 문제

▲ '지역 선택' 기준이 오락가락해서 선수들에게 큰 혼란이 있었다


각 지역이 북미, 유럽, 한국의 세 지역으로 나뉨에 따라 스타2 선수들은 자신이 어느 지역에 출전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해야하는 상황에 빠졌다. 선수 자신의 거주지와 국적에 따라 지역을 선택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스타2의 경우 이미 국적을 초월해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는 선수가 다수 존재하고 있었고, 이러한 선수들은 WCS 대회를 양자택일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WCS 통합 이전에는 각 선수들은 자신의 일정이 허락하는 선에서 해외의 다양한 리그에 진출할 수 있었다. 스타2 종목 군소대회를 운영하는 각 주체들은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상금 외에도 체류비를 지원하는 등 선수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다. 선수들 역시 상금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스타2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한국 선수들, 특히 상금에 대부분의 수입을 의존해야 하는 e스포츠연맹(이하 연맹) 소속 선수들이 해외 활동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었다.

블리자드는 이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해외 대회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한국 선수들이 블리자드의 예상보다 훨씬 많았고, 결국 경쟁이 치열한 한국 지역보다 북미나 유럽 지역을 선택하는 한국 선수들이 급증하면서 모양새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지역 선택에 대한 정책이 블리자드 내부에서도 오락가락 했고, 결국 선수들의 선택을 막지 않는 쪽으로 결론내면서 각 선수들은 소속팀의 입장과 자신의 기호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지역 선택을 마쳤다.

애당초 세계 최고 수준의 스타2 선수들이 경쟁을 펼치는 GSL과 그보다는 경쟁이 덜한 북미, 유럽의 WCS가 동급 대회로 취급되는 것이 무리였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GSL보다 여유롭게 같은 액수의 상금 기회가 열려있는 북미와 유럽은 한국보다 훨씬 매력적인 대회였다. 결국 지역 분할이 무색할 만큼 전 지역 모두 한국 선수들이 장악했고, WCS에 배정된 대부분의 상금을 한국 선수들이 획득하는 '당연한 결과'로 나타났다.


■ 모두를 위한 상금 제도 - 그러나 힘을 받지 못했다

▲ 우승 상금은 줄이고 4강 이하 상금은 늘었다. 줄어든 상금은 시즌 파이널에서 보충 가능


WCS 개편안 발표 직후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상금'이다. 앞서 잠깐 언급되었지만 스타2 선수들 중에는 상금을 대부분의 수익으로 삼아 생활하는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대회 본선 무대에서 얼마의 상금을 수령할 수 있느냐가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짓기도 한다.

단편적으로 보면 GSL 우승시 얻을 수 있는 상금 5천만원에 비해 프리미어리그 우승시 획득하는 2만 5천 달러(한화 약 2,650 만원)는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인다. 하지만 줄어든 우승 상금은 시즌 파이널 무대에서 회복할 수 있고, 그만큼 4강 이하 상금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본선 무대에 꾸준히 오르는 선수들에게는 유리한 구조로 개편된 셈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북미와 유럽 지역과 같은 상금을 배분하면서 대다수의 한국 선수들이 외국 지역을 선택하는 결과를 만들어버렸다. 해외 지역을 선택한 선수들은 한국보다 훨씬 수월한 경쟁을 펼치고도 많은 상금을 가져갔기 때문에 한국 지역을 선택한 선수들의 역차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부분은 2014 WCS에서 GSL만 우승상금이 7천만원으로 개선됐다.

상금은 분명 많은 선수들에게 유리하게 변화 되었다. 그러나 대회의 수가 크게 감소하면서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는 힘을 받지 못했다. 대회 한 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상금은 늘었다고 해도, 결국 대회의 수 자체가 줄었기 때문에 선수들의 기대 상금 역시 크게 줄었다. 고정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라면 큰 상관이 없을 문제지만, 상금을 주 수입으로 삼는 선수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 연 3회로 줄어든 개인리그 - 군소 대회는 이를 보완하지 못했다

▲ 개인리그가 연 3회로 줄어들어 선수들의 상금 획득 기회는 크게 줄었다


한국 지역에서 꾸준히 열리던 개인리그는 평균 1년에 5~7회 열려왔지만 통합 이후 3회로 고정되면서 상금을 얻을 기회 자체가 절반으로 줄어버렸다. 또한 군소 대회의 상금 역시 블리자드가 제시한 기준만 충족하려는 양상이 나타나 많은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줄어든 대회만큼 선수들은 다른 대회가 절실했다. 하지만 지역 선택을 마친 이상 타 지역 WCS 대회 출전은 불가능하고, 티어1, 티어2 대회에 WCS 포인트가 배분되면서 군소리그 주최사들이 상금을 늘리지 않게 되었다. 결국 선수들의 어려움만 가중된 셈이다.

글로벌 파이널에 진출하기 원하는 선수라면 상금이 얼마가 되었던 간에 티어1, 티어2 대회에 최대한 많이 출전하는 것이 유리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각 리그의 주최사들은 선수들에게 배정된 상금과 체류비 지원등의 혜택을 줄였다. 상금과 관계 없이 자신의 대회에 선수들이 찾아오는 상황이 되었으니 이는 당연한 결과다. 티어1,2 리그의 상금 규모가 엇비슷한 규모로 진행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블리자드는 줄어든 대회만큼 티어1, 티어2 대회가 더욱 활발하게 열리길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티어1, 티어2 대회의 상금은 오히려 줄어들었고, 이를 보완할 새로운 대회가 생기지도 않았다. 결국 선수들은 WCS만 바라보면서 무조건 '시즌 파이널'에는 진출해야 안정적인 상금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 불협화음 - 블리자드의 소통 부족

▲ 리플레이 공개가 게임단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주장하는 김광복 감독의 SNS(일부)


일이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일부 관계자들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특히 상금과 대회의 감소 부분에서는 많은 게임단 관계자들의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WCS의 북미와 유럽, 한국의 대회는 서로 동급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이대로 강행이 됐다.

이는 현재 한국의 스타2 e스포츠 시장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후에도 블리자드의 불통은 계속됐다. 시즌2가 끝난 이후 게임단의 동의 없이 리플레이 팩이 공개되었고, 의견 수렴의 절차가 있었긴 하나 형식적이었음이 드러났다. 블리자드의 일방적인 노선은 WCS 출범 초기 그렇게 굳건했던 주최사들의 연대에 금이 가는 현상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시즌2 글로벌 파이널 중계를 온게임넷이 하지 않기로 방침이 정해졌었다. 시즌2 파이널은 스타리그의 연장선상에 있는 리그로서 온게임넷이 중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으로 온게임넷과 블리자드의 연대에 위기가 온 것 아니냐는 설이 고개를 들었고, 결국 프로리그도 스포TV가 독점 중계하면서 온게임넷이 스타2 방송에 미련을 접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비록 온게임넷이 하스스톤과 같은 타 장르 게임으로 블리자드와의 파트너십을 이어나간다고 하더라도 그간 쌓아왔던 온게임넷의 방송 노하우가 담긴 스타2 리그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은 많은 스타2 팬들에게는 아쉬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채정원 곰TV 본부장은 방송 중에 "다음 시즌은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우리 마음대로 할 거다"라며 언급한 바 있다. 블리자드는 계속 소통을 강조하며 여러 주최사들과 최적의 결과를 내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더 노력해야 한다.


■ 수요에 따라 변하는 공급, 줄어드는 게임단… 2014 WCS에서는?

▲ 2013년 들어서 선수들을 책임지는 팀이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 협력사들은 스타2의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다. 선수들을 소비하는 대회 자체가 크게 줄었으니 공급 역시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편성 시간의 부족, 게임단 운영의 어려움, 타 종목으로의 대세 전환 등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결국 선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필연적인 일들이라 할 수 있다.

방송사야 그렇다 쳐도 리그의 구심점이 되는 선수층이 극도로 얇아지는 것은 큰 문제다. 특히 상금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연맹 진영은 눈에 보일정도로 급속히 와해가 진행되고 있다. 일부 팀은 연맹을 떠나 협회에 보금자리를 틀었고, 기존에 운영되던 팀들도 각자의 사정으로 해단을 선언하는 일이 급증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현상이 2013년의 WCS 체제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선수 없이는 리그도 성공할 수 없다. 또한 리그를 만들고 중계하는 방송사가 없었다면 지금의 시장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e스포츠가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선수와 게임단, 방송사와 협회가 합심해서 지금의 시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리그를 만들고 이끌어가던 구성원들이 스타2를 빠르게 외면하고 있다. 두려운 현실이고, 애석한 일이다.

이영호 선수는 인벤과의 인터뷰에서 "판이 어려운 것 누가 모르나요? 하지만 노력하고 있는데 주위에서 어렵다는 이야기를 계속 하면 힘빠진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주위의 상황과 상관없이 리그의 근간을 이루는 선수들은 오늘도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리그 관계사들의 의무이지 않을까?

현재 발표된 2014 WCS 개편안은 다소 나아지기는 했지만, 이 같은 문제를 전부 해결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GSL의 우승 상금이 대폭 늘고, 한국 선수들의 북미, 유럽 선택이 힘들어진 것을 제외하면 큰 변화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는 1년에 3회 열리는 리그 운영 구조가 변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스타2 선수들이 내년에도 고행길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티어1, 티어2 대회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선수들의 안정에 최우선으로 나선다면 2014년에는 다른 결과가 만들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블리자드는 군소대회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진행할 것임을 표방하고 있고, 곧 개막할 프로리그도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면서 팬들을 향해 다시금 다가설 준비를 마쳤다. 2014년 갑오년에는 부디 스타2가 다시금 비상할 수 있는 원년의 해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