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경기마다 승패가 나뉘는 e스포츠에서 결과는 딱 두 가지다. 이기거나, 혹은 지거나. 하지만 그에 도달하는 과정은 다양하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는 스타2 무대에서 특이한 캐릭터를 갖고 있는 선수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야기 할 신동원 역시 그러한 선수들 중 한 명이다.

신동원은 신기하게 20분 최강 저그, 신데렐라 저그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20분이 넘어가기 전까지는 최강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면 반드시 진다는 이상한 법칙을 가졌다. 단순한 징크스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지난 GSL 32강 D조 경기에서 신동원의 단점이 명백히 드러나 버렸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일부 챔피언이 '유통기한'을 가졌다고는 들어봤지만, 선수에게 '유통기한'이 있다니...

대체 신동원의 경기력에 무엇이 있기에 20분만 넘어가면 다 이긴 경기조차 승기를 잡지 못하고 맥없이 패배해버린단 말인가? 지켜보는 팬들 역시 답답하긴 매한가지겠지만,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이기지 못해서 가장 속상한 것은 본인 자신일 것이다.


■ 프로리그 1라운드 5전 전패… 유리한 상황을 살리지 못했다



멋져 보이지만 알고 보면 슬픈 '20분 최강 저그'라는 별명이 신동원에게 붙은 것은 프로리그 1라운드부터다. 당시 5번의 출전 기회를 가졌던 신동원은 모든 경기를 패하고 말았다. 그것도 유리한 상황을 살리지 못하고 역전패를 당했다. 상대했던 선수들은 김대엽(KT), 김기현(삼성), 하재상(진에어), 송현덕(팀리퀴드), 김도우(SK텔레콤)였다. 프로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었던 선수들에게 주도권을 잡는 초반을 풀어내고도 졌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3연패쯤 기록한 이후 코칭스태프들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선수의 성적에 강한 신뢰가 없으면 네 번째, 다섯 번째 출전은 아무래도 망설여진다. 하지만 연패에 빠진 와중에도 신동원의 기용은 계속 됐고, 이는 코칭 스테프의 믿음이 두터웠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달리 신동원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신동원은 2라운드부터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병렬(진에어)을 꺾고 시즌 첫 승을 올린 것. 이후 최용화(IM)를 잡아내면서 2연승을 기록한 신동원은 김민철(SK텔레콤), 박수호(MVP)에게 패배하고 조중혁(MVP)에게는 승리하며 CJ의 주전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3라운드에서도 장현우(프라임)를 잡아내면서 활약을 펼쳤지만 이영호(KT), 정윤종(SK텔레콤)에게 패하는 등 대체로 굵직한 선수들에게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 집중력 부족했던 GSL D조 최종전… 단점 극명히 드러나

더 큰 문제는 GSL이었다.

지난 2012 핫식스 GSL 시즌2 32강 D조 경기에 나선 신동원의 경기력은 좋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나쁘다고는 볼 수 없는 경기력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최종전의 경기 내용 때문에 '신동원의 경기력이 나쁘다'라는 낙인이 찍혔다. 김도우(SK텔레콤)와의 최종전 3세트 경기에서는 신동원이 상당히 유리한 국면으로 경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포인트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신동원은 번번이 아쉬운 판단을 선보이면서 스스로를 자승자박하고야 말았다.

▲ '아이고, 이 저글링들은 무엇이란 말이오!' 프로토스 망했어요

자, 지금 이 상황은 프로토스 유저라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만한 상황이다. '내가 대체 왜 관문을 늦게 지으면서 배짱을 부렸을까'라며 뒤늦게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그만큼 신동원이 좋았던 상황이다. 광전사가 탐사정들 사이에 숨어 머리만 내밀고 있는 상황이기에 신동원은 저글링을 돌려주기만 해도 그만이었다. 굳이 탐사정을 무리해서 잡으려고 하지 않아도 연결체를 노크하듯 두들기면 탐사정은 생업을 포기하고 뛰쳐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광전사가 없는 반대쪽으로 이동해서 탐사정을 노렸어도 좋은 선택이 된다.

하지만 신동원은 광전사를 노리는 선택을 했다. 깜짝 놀란 김도우는 탐사정을 동원해 저글링을 공격했고,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피해를 받았다. 그런데 알고보면 신동원의 저글링이 넷으로 줄어든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이제 본진 실랑이를 통해 더 이상 프로토스를 긴장시킬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8기의 저글링과 4기의 저글링은 산술적인 수치로 봐도 화력이 절반 밖에 안 된다. 연결체를 두들겨도 탐사정들이 콧방귀도 뀌지 않을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도 이런 상황은 게임을 하다보면 자주 있을 법한 상황이다.


▲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어? 잠깐만요!

신동원은 경기 중반까지 상당히 노련하게 경기를 이끌어갔다. 히드라리스크를 소수만 보여주고 거신 체제를 강제한 이후에 많은 가스를 모아 기습적인 뮤탈리스크 체제로 김도우를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다. 그리고 뜻대로 잘 됐다. 문제는 김도우가 놀라기만 했지 신동원의 뮤탈리스크 때문에 피해를 입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자원을 소모하면서 준비한 뮤탈리스크가 실패하자 신동원은 마음이 급해졌다. 타락귀 다수를 갖추며 대공 유닛을 준비했지만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야 만다. 바로 거신 두 기를 잡겠다고 자신의 타락귀 수십 기를 사지로 밀어넣은 것. 결국 이득보다 훨씬 큰 손해를 본 신동원은 초반부터 열심히 벌어두었던 모든 이득을 반납하고 말았다.

판단력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큰 이득을 본 김도우는 공허 포격기 다수를 이용한 치고 빠지기에 나섰고 모선핵을 대동한 러시로 신동원의 군락을 파괴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외에도 신동원의 잔실수가 두드러지는 장면이 한 둘이 아니지만, 더 이상 서술하지 않기로 한다.

이 경기에서 신동원의 운영이나 판짜기는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몇 가지 사소한 판단 미스가 나비효과처럼 큰 영향을 주는 변수로 작용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 미흡한 후반 운영의 '필연'과 20분의 '우연'이 겹친 결과



CJ 엔투스의 권수현 코치는 신동원에 대해 "평소 내부 연습은 잘한다. 상위권을 유지하니까 경기에 나가는 것이고, 이와는 별개로 방송 경기에서 문제점이 드러난 것은 문제점이 있으니까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신동원이 후반 운영이 약한 단점에 대해서는 "동원이가 내 옆자리다. 게임을 항상 보는데 초중반이 워낙 뛰어나다보니까 쉽게 이기는 경우가 많고, 초반 이득을 가지고 후반으로 가거나 아예 후반을 안 가는 경기도 많았다."면서 이유를 꼽았다.

권 코치는 추가로 "예전 같은 경우에는 후반전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히 컸다. 프로리그 1라운드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거뒀지만, 지금은 후반전 운영을 봐도 충분히 잘한다고 생각한다. 저그란 종족이 후반이 쉽지 않다보니 후반을 잘하는 저그 선수 또한 많지 않다. 신동원이 예전부터 활약하던 이름 값이 있어서 이런 부분이 더 크게 부각된 것 같다. 후반 가서 이긴 경기도 꽤 있다."라고 밝히면서 "이런 점은 빨리 보완해야할 부분"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GSL 경기에서 집중력 부족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권 코치는 "당시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았다. 게임할 때 손도 잘 안 움직이고 대체로 안 풀린다라고 말하더라. 마지막에는 집중력이 많이 흐트러졌다. 선수가 관리를 못한 것이 잘못이지만 경기가 이미 많이 말렸고 그 부분이 영향이 컸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신동원이 '신데렐라 저그'란 별명을 얻게 된 정황에 대해서는 "해설자분들도 중계를 그렇게 해서 이미지가 그렇게 박힌 것 같다. 코치인 내가 봐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 나는 선수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점을 알고 있었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지 않나. 컨디션 관리를 못한 본인이 잘못했고, 코치인 내가 잘못 관리했다. 감독님도 경기 결과는 잊으라고 했다. 잘못된 부분을 잘 파악하고 그 경기는 생각할수록 본인만 힘드니까 잊자고 얘기했다."라고 밝혔다.

권 코치는 신동원의 연습 스타일에 대해 "신동원은 평소에도 연습 때 상대를 적극적으로 분석하면서 열심히 준비하는 편이다. 지고 나서도 VOD를 본다. 보면서 생각은 늘 하지만 습관이 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스타1때부터 오랜 경력을 가진 선수라 한 번에 바뀌기가 힘들다. 이번에 안 좋게 지긴 했지만 큰 문제가 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완벽할 순 없지 않은가. 정상급 저그라도 쉽게 질 때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권 코치는 "팬 여러분은 신동원의 경기력이 답답하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시고 믿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본인도 자신의 단점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너그럽게 지켜봐주시면 분명히 좋은 경기력으로 보답할 것"이라며 따뜻한 응원을 당부했다.


■ 상대가 작정하고 수비하면 갈팡질팡,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영리하게 바꿔주기'

▲ 신노열 대 강동현의 2013 핫식스 GSL 결승 당시의 모습. 병력 순환이 중요하다

신동원의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경기들을 분석해보자면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상대들이 작정하고 수비에 들어가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자신이 해야할 일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의미없는 견제를 펼치다 되려 병력 손해를 입거나 상대가 불리한 상황을 만회할 시간을 주고야 만다. 신동원의 20분 법칙에는 이러한 단점이 극명히 드러난다.

김민철이나 어윤수(SK텔레콤), 자유의 날개 시절의 신노열(삼성)이나 훨씬 이전의 임재덕(무소속), 이승현(스타테일)의 플레이를 보면 중반 타이밍의 인구수 비우기 플레이가 탁월했다. 체제를 변환하면서 병력을 쏟아붓고 난 뒤 신속히 추가 병력을 준비하거나 상위 테크를 가져간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효율적인 인구수 비우기다. 유닛을 바꿔주는 과정에서 이득을 어떻게 가져가고 얼마나 시간을 벌었느냐가 저그의 승리를 결정지었다.

하지만 이 효율적인 인구수 비우기, 유닛 바꿔주기 플레이는 익히기가 매우 힘들다. 무조건 연습량을 늘린다고 가능한 일도 아니다. 경험도 많이 필요하지만 특히 '감'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신동원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 후반 운영도 중요하겠지만 오히려 끝낼 수 있을 때 끝내는 공격력을 기르는 것이 오히려 20분 법칙을 부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신노열 식의 소수 병력 돌리기를 통해 상대에게 시간을 내주지 않는 자신만의 방법을 연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지면 가장 속상한 것은 선수 본인이다. 결국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해서 극복해야할 선수 본인의 당면 과제인 셈이다. 권 코치의 말대로 지나간 과거는 빨리 잊고 유리한 상황일 수록 더욱 집중하고 시의적절한 상황 판단 능력을 기르는 것이 신동원에게 주어진 급선무다.

인벤팀은 앞으로도 신동원의 활약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현재의 신동원을 상징하는 그림을 한 장 준비했다. 다음 시즌에는 장기전에도 능한 신동원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 '시간은 금이라네, 친구!'


* 일러스트 - 석준규 기자 (lass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