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놀라웠다. 아니, 놀랍다 못해 경이로운 경지였다. 데뷔 전부터 이미 배틀넷 래더에서는 최고의 저그로 유명세를 떨쳤던 이승현. 첫 GSL 무대에서 당시 최고의 선수였던 정종현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남들과는 다른 스타일과 움직임으로 저그 팬들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군단의 심장 이후 예전보다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고, 예전에 비하면 슬럼프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승현은 최근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고 있다. 2015 시즌 GSL과 네이버 스타리그에 진출한 20명의 양대리거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1인이되었다.

그리고 26일 펼쳐졌던 네이버 스타리그 8강 경기에서는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받던 프로토스에서 최근 트렌드인 군단 숙주 위주의 장기전 운영과는 정반대의 스타일로 백동준을 3:1로 잡고 4강에 진출하며 결승 진출에 더 가까워졌다.

특히 백동준과 8강 4세트에서 보여줬던 몰래 히드라리스크와 여왕 땅굴망 러시는 다른 저그 선수들에게 "저그도 연구가 필요하다"고 일침을 가하는 것 같은 신선한 전략으로 승리를 거뒀다.

▲ 대군주의 점막을 활용한 몰래 히드라리스크 동굴


저그가 프로토스를 상대할 때 제 2확장에 부화장을 짓고 시작하는 건 '말하지 않아도 라면은 김치, 짜장면은 단무지와 먹는 것' 정도의 당연함이다. 이승현은 백동준과 대결에서 이전 1, 2, 3세트 역시 모두 제 2확장에 부화장을 빠르게 건설하고 출발했다.

그러나 4세트는 달랐다. 이승현은 방송 경기에서 저그가 2부화장 테크를 시도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에 빠른 번식지를 보여줬고, 11시 지역 앞마당에 대군주의 점막을 활용해서 몰래 히드라리스크 동굴을 건설했다.

▲ 선 불사조를 선택한 백동준


반면, 백동준은 선 연결체를 가져가면서 가장 무난한 출발인 우주 관문을 건설하며 불사조를 생산했다. 불사조 체제의 가장 큰 장점은 수월한 정찰에 있다. 이승현이 제2 확장에 부화장을 가져가지 않자 백동준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그래서 보고 맞춰가기 위한 불사조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불사조를 통해 얻어낸 정보라고는 다수의 여왕, 생산되기 시작한 히드라리스크가 전부였다. 일찌감치 히드라리스크 동굴이나 땅굴망을 발견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경로를 차단하는 여왕의 위치, 몰래 건설한 히드라리스크 동굴의 위치가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 가랏!


▲ 백동준의 시야


저그의 빌드를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한 백동준은 제 2확장을 가져가기 용이한 데드윙이라는 점을 맹신하고 무난히 확장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승현은 프로토스 제 2확장 연결체 밑 구석에 몰래 땅굴 벌레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했다. 분명 연결체의 시야에 보일법했지만 백동준의 시야에서는 가까스로 땅굴 벌레가 보이지 않았고, 땅굴 벌레가 소환될 때 괴성은 이승현의 승리를 울부짖는 함성이었다.

▲ 승리를 확정짓는 순간


4세트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도, 기자들도, 심지어 해설자도 이승현이 땅굴망을 건설하기 전까지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지 예측하지 못했다. 정석화되어가고 있는 요즘 추세에서 그것도 저그로 새로운 전략을 짜오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승현은 해냈다. 왜 이승현이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저그인지 보여주는 경기였다.

자유의 날개 시절 땅굴망 히드라리스크 올인이라는 빌드가 존재하긴 했지만 엄연히 달랐다. 초반 심리전부터 히드라리스크 동굴의 건설 위치 등 짜임새 있는 전략을 준비해온 것이다. 지금 이런 기세라면 이승현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현재 GSL 8강, 스타리그 4강에 올라 있는 이승현. 양대리그 동시 석권이라는 대기록이 이승현에게는 어느새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진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