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들 중에서도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선수가 종목마다 몇 명씩은 있다.

살아 숨쉬는 2인자인 홍진호, 조지명식 때마다 도발을 아끼지 않는 '프통령' 장민철, 화제를 몰고 다니는 '갱맘' 이창석처럼 캐릭터성 있는 선수가 많을수록 팬들 입장에서는 경기 외적으로도 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도타2에서도 이런 쪽으로 독보적인 선수가 한 명 있으니, 바로 C9의 '이터널엔비'다.

아이디의 약자를 따서 'EE'라고도 불리는 '이터널엔비'는 도타2에서도 참 특이한 선수다. 방송 중에 다른 사람의 머리에 물을 들이붓는 기행으로 화제를 일으킨 적도 있고, 경기 내에서는 C9 특유의 '쫄깃한' 경기를 주도하기도 하면서 팬들의 애증을 한몸에 받고 있다.

도타2 아시아 챔피언쉽(이하 DAC)에서도 LGD의 영웅 5명을 상대로 홀로 기지 바꾸기를 시도해 기적적인 승리를 따내기도 한 반면, 팀 시크릿과의 경기에서 포탈이 없어 거의 다 이긴 경기를 패배하기도 했다. C9의 팬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경기력 때문에 '이터널엔비가 팬들을 조련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팬을 그만두지 못한다.

인벤은 오랫동안 연락을 시도한 끝에 힘겹게 '이터널엔비'와 인터뷰를 해볼 수 있었다. '예, 아니오'식 단답만 받을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이터널엔비'는 매우 유쾌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이하는 C9의 '이터널엔비'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사진 출처 : www.gamer.no


■ 1위를 기대했던 DAC... 너무나 아쉬웠던 팀 시크릿과의 경기



Q. 안녕하세요! 한국의 팬분들께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한국 팬 여러분! C9의 '이터널엔비'에요!


Q. DAC에서 5-6위를 차지했어요. 처음엔 몇 위 정도 할거라고 생각했나요? 본인들의 성적에 대한 솔직한 심정은?

저는 상위 3팀 내에는 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마음 속으론 팀원 모두 1위를 기대하고 있었죠. 하지만 우리가 던진 게임들이 너무 많았어요.


Q. LGD와의 경기에서 희대의 명장면을 만들어냈어요. 5 vs 1 엘리전이었는데 본인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나요?

제가 LGD의 병영으로 달렸을 때는 상대가 포탈을 타고 귀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곧바로 우리 본진으로 뛰더라고요. 엘리전에서 확신이 들진 않았어요. 본진 체력이 3분의 2쯤 남았을 때는 그냥 "내가 더 빨라! 내가 더 빨라!"하고 자기최면을 거는 상태였죠. 심판도를 사느라 시간을 써서 철거 속도가 약간 지체되긴 했지만 어쨌든 이겼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요?

▲ DAC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로 꼽히는 C9과 LGD의 엘리전

Q. 팀 시크릿과의 경기가 정말 아쉬울 것 같아요. 그 때 경기에 대한 평가를 해 주실 수 있을까요?

팀 시크릿과의 경기는 정말 아쉬운 점들이 많아요. 우리가 그냥 미드로 달렸으면 이겼을텐데, 상대가 격차를 따라잡는 동안 제대로 하는 것 없이 멍하니 플레이를 했거든요. 상대 팀 4명의 영웅이 의미 없이 죽어서 골드 부활이 없는 상태였는데도요.

우리가 마지막에 무리한 플레이를 했을 때는 상대방이 골드 부활까지 1분 남은 상황이었어요. 그 전에 경기를 끝내고 싶었죠. 그런데 이미 2세트에서 진 뒤에 멘탈에 금이 간 상태라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하지 못했죠. 개인적으로 ESL 프랑크푸르트에서의 패배 이후 제일 아쉬운 경기였어요.


Q. 언급하신 2세트도 이길 수 있던 상황에서 '아티지'의 랫도타에 당해 졌어요. 그 때 아무도 포탈이 없었는데 팀원들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나요?

전혀 몰랐어요. 우리 팀 짐꾼도 죽은 상황이었고 더 이상 기지로 돌아갈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인벤토리에 포탈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짐꾼이 부활했을 때는 우리가 푸쉬를 하러 가던 중이었죠. 저는 그 때 저만 빼고 나머지 선수들은 다 포탈이 있는 줄 알았어요.


■ 선수마다 어울리는 팀이 있다... 멤버 교체 후에는 남 탓이 줄어


Q. 한 때 팀원이었던 'Aui_2000'이 EG로 가고나서 우승을 했어요. 부럽다거나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진 않았나요?

아니요. 로스터 변경을 한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어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한 선수의 능력치가 팀에 온전히 더해진다고만 생각해요. 실제로는 팀에 내는 시너지가 있기도 한 반면, 오히려 제 실력이 안 나오는 경우도 있죠. 'Aui_2000'도 C9에 있을 때는 10점 만점에 9점 급 선수라 보기 힘들었지만 EG에서는 9점 급 선수잖아요. 그런 평가를 만드는 요인은 정말 많아요.

너무 오랜 기간 동안 변화가 없는 시점에서 새로운 동료와 게임을 함으로써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Aui'가 C9에 계속 있었다고 해도 EG에서 보여준 것 같은 활약을 펼치긴 힘들었을 거라고 봐요.

▲ 최근 C9에 합류한 'BigDaddyN0tail'과 'MISERY'

Q. '노테일'과 '미저리'가 팀에 온 후 팀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생겼다면 뭐가 바뀌었는지 궁금하네요.

멤버들이 자기 기분이 다운되어 있다고 해서 대회 도중에 다른 팀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짓을 하지 않게 됐죠. 여전히 힘든 상황에 처할 때도 있지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스스로의 잘못이지 팀원의 잘못이 아니란 걸 알게 됐어요.


Q. 옛날 트위치tv 방송할 때 '한국인이 오면 우린 다 끝이야'란 말을 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나요?

사실 그 말을 진담으로 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한국이 도타2에 온 힘을 집중한다면 몇 년 내에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게임을 하는데 '캐릭터'도 중요하다고 봐요. 한국은 엄청난 게임 문화 덕분에 많은 '캐릭터'를 가진 스타 플레이어들을 배출했죠.

일찍부터 게임을 시작한다는 것도 이런 종류의 게임을 할 때 굉장한 플러스 요소가 되기 때문에 한국이 빨리 힘을 집중할수록 그런 날도 빨리 오겠죠.


■ 남의 시선은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아이디를 자주 바꾸는 건 기분전환을 위해


Q. 많은 대회에서 아이디를 애니메이션 캐릭터명으로 바꾸고 경기를 치르는데, 이유가 있나요?

그냥 기분전환 겸 하는 거예요. 종종 컨디션이 안 좋아서 게임을 하기가 싫을 때 제 아이디를 애니메이션 캐릭터명으로 바꾸곤 하죠. 한 캐릭터의 성격에 몰입되면 상당히 즐겁게 게임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히나타 쇼유'라고 생각하고 게임하면 상대가 강할수록 무섭다기 보다는 오히려 즐겁더라고요. 가끔씩 특정 캐릭터로 이름을 바꿀 때도 있는데 그건 그냥 제가 그 캐릭터를 정말 좋아해서 바꾸는 거예요.


Q. 그럼 그 중에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누구죠?!

아이사카 타이가!

▲ 그렇다고 하는군요.

Q. 여러 의미로 도타2 프로계의 아이콘 같은 존재에요. 본인도 그런걸 즐기는지?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이 익숙해질 수록 더 많은 걸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스트리밍을 했을 때는 시청자가 100명만 돼도 정말 기뻐했겠지만, 지금 와서 시청자가 100명이라면 굉장히 슬퍼지는 것처럼 말이죠. 사실 그런 것에 신경을 안 쓰려고 해요. 저는 그냥 저니까요.


Q.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께 작별 인사를 해주세요!

한국은 정말 굉장한 나라에요. 만약 한국의 스타크래프트1 문화가 없었다면 제가 게임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예요(웃음). 이게 다 이제동 선수 덕분이에요. 만일 언젠가 한국에서 대규모 리그가 열리게 된다면 저도 꼭 가서 팬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 팬보이 특집 시리즈

팬보이 특집 1화 : [팬보이 특집①] 차세대 도타2를 이끌 에이스! 팀 시크릿의 '아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