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를 차지한 팀에서 가장 잘한 선수는 누구일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히 그 경기의 MVP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MVP를 받은 선수를 중심으로 그날 경기를 기억한다.

하지만 한 선수만 활약한다고 5:5 팀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승리를 차지할 수는 없다. 게임 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정보에 대해 서로 '콜'을 해주는 프로게이머 간의 경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나머지 팀원 중 MVP를 받을 뻔했던 선수의 관점에서 경기를 지켜보면 어떤 모습일까?


MVP를 받을 뻔한 선수의 입장에서 지난 경기를 분석해보는 '뻔한 이야기.'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나진 e엠파이어(이하 나진)의 '퓨어' 김진선이다. 지난 25일 열린 2015 스베누 LoL 챔피언스 코리아 섬머 시즌 2라운드 16일 차 1경기 나진과 KOO 타이거즈의 2세트를, 김진선의 시점에서 분석해봤다.


■ 초반 설계와 상황에 맞는 플레이로 주도권을 가져오다

1세트 패배를 겪은 나진은 '퓨어' 김진선에게 알리스타를 쥐여 줬다. 이번 시즌 알리스타로 좋은 활약을 보여줬기에 빠르게 선택할 수 있었다. 또한, 상대 서포터가 브라움을 먼저 선택했으므로 알리스타의 유일한 약점인 라인전 단계에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김진선의 알리스타는 시작부터 좋은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경기 시작 2분경, 봇 라인에 홀로 도착한 '프레이' 김종인의 코르키에게 달려가 '점화'까지 활용해 상대 '회복' 사용을 강제했다. 이 때문에, 코르키는 미니언이 도착한 타이밍임에도 어쩔 수 없이 귀환해야 했고, 봇 라인전은 나진 쪽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 '봇 라인전 주도권은 우리 것이다!'

탑 라인에서도 나진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듀크' 이호성의 올라프가 '와치' 조재걸의 도움을 받아 더블 킬을 기록한 것. 이미 봇 라인전 상황을 좋게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 탑 라인까지 풀리자, 김진선의 발이 가벼워졌다. 또한, 상대가 단체로 탑 라인에 로밍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자, 빠르게 봇 라인 주변에 와드를 설치하며 다음 전략을 성공시킬 준비를 마쳤다.

▲ 탑 라인에서의 더블 킬로 김진선의 발이 풀렸다


'오뀨' 오규민의 시비르가 초반 설계와 봇 라인 주변 시야 장악으로 쉽게 성장을 거둘 기반을 마련하자, 김진선은 다음 전략에 돌입했다. 경기 시작 10분 10초에 탑 라인 다이브 로밍을 시도했고, 이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이 덕분에 탑 라인의 균형을 완벽하게 나진 쪽으로 흘러갔고, 상대는 탑 라인과 봇 라인을 동시에 신경 쓸 것인지, 아니면 미드 라인을 집중 공략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 정확했던 탑 라인 로밍 판단


■ 한타 상황마다 드러난 알리스타의 위압감

미드 라인에서도 '꿍' 유병준의 아지르가 잘 성장해 나진의 모든 라인이 유리했던 12분 40초경. 김진선의 알리스타가 자신들의 정글 지역에 난입한 '호진' 이호진의 그라가스를 공중에 띄우며 첫 번째 한타를 열었다. 한타가 시작되려 하자, 김진선은 곧장 앞 점멸까지 활용하며 상대 딜러 라인 쪽으로 돌격해 상대를 아군 쪽으로 밀어내려 했다. 그러자 KOO 타이거즈는 '이퀄라이저 미사일'만 바닥에 깔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 상대를 후퇴시키는 알리스타의 위치 선정

시간은 흘러 18분 48초가 됐고, 두 번째 한타가 시작됐다. 조재걸의 렉사이가 상대 블루 버프를 빼앗는 과정에서, 상대 브라움이 과감하게 앞으로 뛰어들었다. 이때, 김진선의 알리스타는 오히려 앞쪽으로 뛰어가 상대가 브라움에게 호응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아군이 브라움을 쓰러뜨리자 재빨리 상대 코르키를 덮쳐 또 한 번의 킬을 만들어냈다.

▲ '넌 호응할 수 없다!'

나진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가운데, 22분 20초에 세 번째 한타가 열렸다. 올라프가 상대 진영 뒤쪽에서 달려들었고, 알리스타가 곧장 호응했지만, 상대 '이퀄라이저 미사일'에 막히며 별다른 이득을 취하지 못했다. 그러자 약 22초 뒤에 아지르가 과감한 돌파로 또 한 번의 한타 시작을 알렸다.

이 한타에서 김진선의 위치 선정이 대단했다. 한타가 열리자마자, 곧장 상대 럼블 쪽으로 달려가 공중에 띄웠다. 아군의 지원이 빨라 럼블이 곧 쓰러질 것은 직감한 김진선의 알리스타는 상대 코르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곧 알리스타의 스킬 재사용 대기시간이 돌아오면 자신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판단한 코르키는 후퇴했고, 이는 곧 KOO 타이거즈의 엄청난 딜 로스로 이어졌다. 알리스타의 과감한 돌파 한 번이 한타 대승에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

▲ 럼블을 물고

▲ 빠르게 코르키 쪽으로 달려 딜 로스를 유발했다


■ 당연했지만 완벽했던 시야 장악과 '끊어먹기'

연이은 한타 대승으로 격차를 벌린 나진은 바론 쪽 시야 장악에 힘썼다. 김진선의 알리스타와 조재걸의 렉사이가 함께 움직이며, 상대 정글 깊숙한 지역까지 와드를 설치했다. 바론까지 빼앗기면 완벽하게 승기를 내줄 상황에 부닥친 KOO 타이거즈는 어쩔 수 없이 바론 지역 쪽으로 이동했다.

▲ 승리를 위한 다음 순서, 바론 지역 시야 장악

하지만 이는 나진의 노림수였다. 25분 37초에 한 번, 52초에 또 한 번. 김진선의 알리스타가 시야 장악을 토대로 한 매복 작전을 완수하며 승기를 굳혔다. 상대 그라가스를 먼저 쓰러뜨린 나진은, 브라움과 제이스까지 제압하며 바론 버프를 몸에 둘렀다. 그리고 이 두 번의 매복 작전 모두, 알리스타의 칼 같은 스킬 활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그라가스에게 놀이기구 맛을 보여주고

▲ 전광석화처럼 브라움과 제이스를 물었다

나진은 경기를 끝내기 위해 상대 봇 라인을 압박했다. 이미 격차가 많이 벌어졌음을 느낀 KOO 타이거즈는 마지막 한타를 열었다. 여기서도 김진선의 알리스타는 곧장 상대 딜러 라인 쪽으로 달려갔다. 이미 알리스타의 날카로움을 여러 차례 목격한 KOO 타이거즈의 딜러 라인은 그라가스에 제대로 된 호응을 보여줄 수 없었다. 결국, 이 한타를 끝으로 나진이 2세트 승리를 차지했다.

▲ '넌 호응할 수 없다!' 시즌 2



※ '퓨어' 김진선의 알리스타, 무엇을 잘했나

1. 정확한 타이밍에 탑 라인 로밍을 시도해 성공했다. 이미 탑 라인 주도권을 올라프가 쥐고 있었고, 봇 라인에서도 초반 설계를 잘 마무리한 나진 쪽이 유리했다. 조합상 올라프의 라인전이 중요했던 나진이었기에 탑 라인에 더욱 힘을 실어야 했다. 게다가 김진선은 타워 다이브에 특화된 알리스타로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2. 안전하지만 절묘한 타이밍에만 시야 장악을 했다. 아무 때나 상대 정글로 들어가서 와드를 설치하다가는 허무하게 끊겨 분위기를 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진선은 그러지 않았다. 상대의 탑 라인 로밍이 예상됐을 때, 한타에서 여러 번 승리한 후에. 김진선은 상대의 움직임을 잘 예측하며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3. 한타에서 상대 딜 로스를 거의 혼자서 유발했다. 일단 상대 챔피언 조합상 아군 딜러를 물러 들어올 챔피언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알리스타가 할 일은? 당연히 상대 쪽으로 들어가 압박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궁극기를 켠 상태로 앞으로 달려가기만 해도 상대는 후퇴해야 한다는 것을, 김진선은 잘 알고 있었다.


확실히 이 경기에서 김진선의 알리스타는 화려함보다 묵묵함을 추구했다. 화려한 스킬 콤보가 없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경기 내내 김진선의 알리스타는 조용히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화려한 이니시에이팅 없이도 어떻게 하면 팀원들을 도울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뻔한 이야기'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었다.


- 경기 화면 출처 : OGN 방송 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