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선수들의 뛰어난 피지컬과 화려한 스킬 연계로 이뤄지는 한타 싸움이다. 그러나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잘하느냐 못하냐에 따라서 피지컬 차이와 글로벌 골드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밴픽 전략과 운영 방법이다.

핑크와드 코너는 2015 스베누 LoL 롤챔스 코리아 섬머에서 치열함이 느껴지는 명승부 혹은 밴픽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경기를 선정하여 보이진 않지만, 게임 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밴픽 전략, 전술과 운영에 대해서 다룬다.

오늘 선정한 경기는 나진 e엠파이어(이하 나진)와 쿠 타이거즈(이하 쿠)의 플레이오프 진출이 걸린 와일드카드전의 2세트다. 나진 e엠파이어의 노림수는 좋았으나, 쿠 타이거즈는 그 수를 읽고 다음 카드를 꺼내든 수 싸움이 인상적인 경기였다. 프로 간의 경기에서 1차원적인 밴픽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준 좋은 예가 되는 경기다.


■ 나진의 노림수. '쿠로' 이서행의 빅토르를 풀어주다

나진이 '쿠로' 이서행의 주력 카드인 빅토르를 풀었다. 그것도 '꿍' 유병준이 이서행에 비해 훨씬 승률이 높은 아지르를 금지하면서 말이다. 많은 사람의 의문을 불러온 밴이었다. 케넨까지는 '고릴라' 강범현을 의식한 밴이거나, 자신들의 조합에 방해되는 픽이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지르를 밴하다니 이상했다. 나진은 왜 아지르를 밴 했을까?


나진도 아무 생각 없이 아지르를 밴한 것이 아니다. 쿠 타이거즈를 상대로 충분히 승산 있는 카드의 첫 포석을 깐 것이다. 빅토르를 주고, 준비한 카드로 팀을 승리로 이끌려고 했다. 나진의 노림수는 트위스티드 페이트. 빅토르와의 라인전에서는 주도권이 없다. 하지만 다른 이점이 그 단점을 채우고도 남는다. 그리고 그 장점은 최근 '갱맘' 이창석과 '코코' 신진영이 보여줬다.

궁극기인 '운명'을 통해 나진의 주력 캐리 라인인 탑과 봇에 힘을 실어준 뒤 순간이동으로 라인에 복귀해 미드 타워를 지키는 운영을 말이다. 하지만 나진은 간과한 것이 있었다. 프로 간의 경기에선 자신들의 수에만 몰두한다면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 상대의 수를 예측해 다음에 나올 카드도 예상해야 했다. 나진이 놓친 것을 쿠는 제대로 보여줬다.


■ 쿠 타이거즈의 한수 위의 밴픽 전략

나진이 빅토르를 풀어주고 엘리스를 가져갔을 때 쿠는 느꼈을 것이다. 나진의 밴은 노골적이었다. 자신들의 주력 카드인 아지르를 밴했다는 것에서 이미 쿠에게 실마리를 제공했다. 쿠는 베스트 픽인 빅토르와 '오뀨' 오규민의 주력 챔피언인 루시안을 뺏었다.

이어서 나진이 가져간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봤을 때, 아니 그전에 이미 알았을 것이다. 나올만한 챔피언은 트위스티드 페이트와 제드와 카시오페아뿐이라는 것. 그리고 전자인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훨씬 나진의 팀 성향에 적합하다는 건 밴픽 전략이 뛰어난 쿠의 코치진이 모를 리 없다.

그리고 쿠 타이거즈가 나진의 노림수를 비웃듯 말파이트를 꺼냈다. 말파이트의 등장으로 나진의 조합은 애매해졌다. 왜 말파이트의 등장으로 나진의 조합이 애매해졌을까? 나진의 조합의 핵심 운영은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초중반 로밍에 달려 있다. 6레벨을 찍고 궁극기를 사용해 탑이나 봇 라인을 풀어줘야 했다. 그렇게 스노우 볼을 굴려 조합의 힘이 빠지기 전 격차를 내야 했다. 그러나 말파이트의 존재가 유병준을 망설이게 하였다.


말파이트는 나르와 마오카이, 쉔과 같은 기존의 주류 탑 라이너들과 다른 압박감을 트위스티드 페이트에게 준다. 혹여 상대가 조금만 시간을 끌어 말파이트가 도착한다면, '멈출 수 없는 힘'에 의해 전황은 순식간에 뒤집힌다. 폭발력이 여타 챔피언과 다르다. 1초 안에 모든 스킬을 적중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스킬들이 가진 슬로우와 공격 속도 저하는 상대의 대미지 계산을 완전히 무너트린다.

말파이트의 폭발력을 의식한 유병준은 말파이트가 도착하기 전에 잡는 확실한 각이 아니고선 궁극기 사용 하지 못했다. 역으로 게임이 터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확실한 타이밍만 노려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이점을 많이 놓쳤다.

10분 53초에 이뤄진 첫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로밍. 6분 18초에 궁극기를 배운 것치고 너무 늦었다. 미드에선 빅토르가 안정적인 성장을 이뤘다. 말파이트도 cs 차이는 났지만, 폭발력이 부족한 나진의 조합으로 경기를 터트리기엔 이미 쿠는 몇 번의 킬로 무너지지 않을 단단함을 갖췄다. 쿠는 3분 만에 그것을 증명해 보였다. 13분 52초에 쿠의 뒤를 쫓는 나진을 말파이트가 붕괴시켜버렸다.


이후엔 트위스티드 페이트로 대세를 흔들기에는 늦어버렸다. 쿠는 조합의 자신감을 얻었다. 반면 나진은 "만약 말파이트가 오면 어떻게 되지?"라는 의구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진은 어떻게든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이용해 끊어먹기를 하려 했지만, 말파이트의 합류에 꼬리를 자르고 도망을 가야 했다.

쿠의 유리함은 밴픽 단계에서 이미 절반 이상 이뤄졌다. 프로팀은 항상 생각해야 한다. 자신들의 필승 카드도 상대의 예측 범주 안에 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수를 둬야 한다. 나진은 그 점을 놓쳐 노골적인 수를 펼쳤고, 쿠는 나진의 노림수를 잡아채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경기 화면 출처 : OGN 방송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