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의 큰 인기 게임 하스스톤이 정식 출시된 지 어느덧 2년을 향해 달려간다.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2개의 추가 확장팩, 3개의 모험모드가 출시됐고 그동안 여러 덱이 뜨고 지기를 반복했다.

하스스톤 월드 챔피언십의 종료와 함께 찾아온 모험모드 탐험가 연맹 출시에 맞춰 인벤에서는 현 환경에서 각 직업들이 어떤 덱을 주로 쓰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유저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지는지 하나하나 탐구하며 알아보고자 한다. 그 이름 하여 돌스커버리!

네 번째는 살아있는 어그로 덱의 화신이자 하스스톤 유저들에게도 항상 어그로를 끌고 있는 자. 상대 명치 하나만 보고 게임을 하는 사냥꾼, 렉사르다.

▲ 하스스톤은 명치를 치는 게임입니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몰라요


렉사르가 명치를 선명하게 핥고 있었다.


▲ 해외에서는 Hunter(사냥꾼)와 Retard(저능아)의 합성어 Huntard로 알려져 있다.
(출처 : 밀레니엄 하스스톤 덱 소개글)

⊙상태 : 네놈을 ⊙파워 :추격해 ⊙특징 :주마

어그로. 사냥꾼을 상징하는 단어 그 자체다.

사냥꾼은 영웅 능력부터가 어그로 덱을 위해 존재한다. 매 턴 방어 불가능한 2대미지를 상대 명치에 확실하게 꽂아줄 수 있고, 각종 번 카드도 보유하고 있는 사냥꾼이기에 이들이 어그로 덱을 택하는 것은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던 일일지도 모른다.

하스스톤 정식 출시 이후로 사냥꾼은 정상을 경험한 적은 있어도 바닥을 경험한 적은 없는 매우 이기적인 직업 중 하나다. 사냥꾼이 더욱 뻔뻔한 점은, 상대를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패다가 상대가 간신히 버티고 주먹질을 할만하면 "잘 싸웠어. 항복하겠네"라며 약 올리듯 도망간다는 것이다. 얻어맞던 입장에서는 이겼는데 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물론이다.

사냥꾼은 '너 따위가 뭘 하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한 플레이 스타일, 일방적으로 자기만 폭행을 일삼다가 심판의 시간이 다가오면 냅다 도망가는 등 사람들의 미움을 사기 딱 좋은 직업이지만 의외로 무과금 유저들의 친구이기도 하다. 돌진 사냥꾼 덱의 경우 필요한 전설은 기껏해야 리로이 젠킨스 정도이고 그나마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수준이다. 심지어 영웅 등급의 카드조차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아주 저렴한 값에 완성시킬 수 있는 완성형 덱인 것이다.

▲ 어그로 덱 꿈의 콤보, '쏘오기- 쏘오기-'... 이게 게임이야?

플레이 스타일도 초보 유저에게 권하기 적당하다. 돌진 사냥꾼 역시 나름대로의 운영 방법이 있지만, 초보 유저들이 플레이하는 구간에서는 뭔지 모르겠으면 일단 명치부터 치고 보면 되는 덱이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간편하다. 스스로를 '돌알못' 혹은 '아만보'로 칭하는 동료 기자는 "돌진 사냥꾼으로 아무 생각 없이 명치만 쳐도 5급까지는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1번 돌냥'이라 불리는 돌진 사냥꾼은 그야말로 돌진 옵션만 달렸다면 어떤 하수인이든 채용해 무조건 상대 명치만을 공격한다. 돌진 사냥꾼에게 하수인이란 그저 한 대 치고 죽으면 할 일을 다한 소모품 정도이며, 덫 역시 폭발의 덫 2장만 채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푸른아가미 전사, 늑대기수, 비전골렘 등 온갖 돌진 하수인들로 상대 명치만을 공격하며 수리검포나 독수리뿔 장궁 등의 무기, 그리고 영웅 능력까지 더해 사정없이 상대 체력을 깎는다. 돌진 사냥꾼이 득세할 때는 상대가 무슨 짓을 할지 뻔히 보이는데도 내 패가 잘 붙지 않으면 눈 뜨고 당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현재 우서와 비슷한 정도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연히 돌진 사냥꾼에게도 약점은 있다. 방밀 전사나 얼방 법사, 힐기사 등 버티기가 주 목적인 덱들에겐 효과가 크지 않고, 미래가 없는 덱의 표본이기 때문에 한 번 킬각을 놓치면 영원히 킬각을 잡을 수 없게 되는 일도 잦다. 특히 거의 모든 하수인의 체력이 2 이하이기 때문에 휘둘러치기, 신성화 등의 광역기에 극도로 취약하고, 패가 잘 풀린 템포 법사가 불꽃꼬리 전사와 주문들을 연계하기 시작하면 돌진 사냥꾼의 하수인들은 추풍낙엽처럼 스러진다.

탐험가 연맹에서 리노 잭슨이 등장하면서 하스스톤의 템포가 전체적으로 느려진 것도 돌진 사냥꾼의 힘을 빼는 데 한몫하고 있다. 드로우 수단도, 뒷심있는 무거운 하수인도 없는 돌진 사냥꾼으로서는 상대가 리노 잭슨을 내는 순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항복 버튼을 누르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진 사냥꾼은 덱을 짜는 데 드는 비용이 저렴하다는 점, 그리고 게임 시간이 길지 않다는 점 때문에 많은 유저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 적어도 하스스톤의 영웅 최대 체력이 늘어나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은 말이다.



'크아앙' 엄청 센 사바나 사자가 울부짖었다.



사자 중에서도 최강의 사바나 사자가 울부짖었다. 사바나 사자는 엄청 세서 사자 중에 최강이었다.

사냥꾼의 덱 컨셉은 거의 모두 어그로 덱을 기본 골자로 하지만 그렇다고 '1번 돌냥'처럼 명치 가격에 영혼을 판 수준의 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규 확장팩이나 모험모드가 나오고 메타가 변할수록 사냥꾼 역시 덱에 변화를 주었다. 늑대기수, 비전골렘 등의 극 어그로덱 하수인을 빼고 사냥개조련사, 로데브, 박사 붐 등 중후반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하수인들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냥꾼에게 주어진 진정한 단 하나의 전설 카드라 불리는 사바나 사자까지.

그렇게 탄생한 미드레인지 사냥꾼은 돌진 사냥꾼과는 또다른 방법으로 상대를 요리했다. 미드레인지 사냥꾼이라 하더라도 오염된 노움, 단검 곡예사 등은 충분히 덱에 넣을 수 있는 카드이므로 상대는 이것만 보고는 사냥꾼이 '1번 돌냥'인지 미드레인지 사냥꾼인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돌진 사냥꾼이라 생각해 초반 하수인 정리에 사활을 걸었다가 나중에 사바나 사자나 박사 붐 등이 나오면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상대는 사냥꾼을 본 순간부터 심리전을 강요당한다.

▲ 뱀 덫? 빙결의 덫? 곰 덫? 쓰는 덫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사냥꾼은 전설 카드의 코스트가 너무 무겁거나, 본인 직업에서 써먹기 힘든 카드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실용성 있는 직업 전설 카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듯 전설 카드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냥꾼의 설움은 사바나 사자가 해결해주고 있다. 일단 야수 속성의 카드이기 때문에 다른 사냥꾼 카드들과의 시너지도 훌륭하고, 주문으로 사바나 사자를 제거하려고 해도 체력이 5나 되는 사바나 사자를 주문 한 방으로 제거하긴 힘들다. 사바나 사자를 없애더라도, 2/2 스탯의 야수 속성 하수인 하이에나가 둘이나 나타나기 때문에 사실상 사바나 사자를 완벽하게 정리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침묵을 걸어 하이에나 소환을 막아도 6이나 되는 공격력으로 공격을 시작하면 상대의 명치는 거덜나고, 그냥 잡아버리면 또 처리해야 할 하수인이 필드에 등장한다는 점 때문에 사바나 사자는 미드레인지 사냥꾼을 상대할 때 가장 까다로운 하수인으로 취급받는다. 공격력이 6이라서 '나 이런 사냥꾼이야'를 절묘하게 피하는 것은 덤. 오죽하면 '빈 필드 사바나'는 미드레인지 사냥꾼의 필승 공식 중 하나로 통할 정도다.

미드레인지 사냥꾼은 초반 공격력도 화끈하고 중반에는 더 강력한 하수인들을 꺼내 필드를 장악하기 때문에 뚜렷한 약점이 없는 덱처럼 보이지만, 비밀 성기사처럼 필드 싸움에서의 힘이 더 강한 직업을 만나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기도 하고, 섬광을 넣지 않았다면 냉기 마법사와도 힘든 싸움을 펼쳐야 한다. 섬광만 있다면 한 방에 냉기 마법사를 뒤틀린 황천으로 보내버릴 수도 있지만 섬광이란 카드를 넣는 것은 사냥꾼도 큰 위험부담을 안는 셈이다.

▲ 이런 카드들이 있다 해도 힘든 직업 상대로는 힘들다

물론 이런 미드레인지 사냥꾼이라 해도 직업의 기본 골격이 어그로 덱을 권장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어그로 덱의 성향을 띠고 있다. 사냥꾼을 싫어하는 이들은 돌진 사냥꾼이나 미드레인지 사냥꾼, 혹은 둘을 적당히 섞은 하이브리드 사냥꾼은 다 거기서 거기라며 이들을 '2번 돌냥', '3번 돌냥'이라며 비꼬기도 한다.

미드레인지 사냥꾼 역시 리노 잭슨의 등장으로 인해 어느정도 타격을 받았고, 비밀 성기사와 얼방 법사가 날뛰는 현 등급전에서는 예전만큼의 위용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돌진 사냥꾼이나 미드레인지 사냥꾼 모두 '약해서'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상성이 안 좋아서' 나타나지 않고 있는 만큼, 이후 패치나 신규 확장팩 등을 통해 메타가 바뀌면 언제 또 이들의 세상이 와서 '네놈을 추격해주마'란 말이 울려 퍼질지 모르는 일이다.



존재 자체만으로 유저들의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무과금 유저에게는 가장 쉽게 덱을 제공해주는, 무과금 유저의 친구가 되기도 하는 렉사르. 한때는 렉사르가 패배하면 모두가 기뻐했지만 이제는 섬광으로 우서의 비밀을 5개씩 날려버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정의의 사도로 추앙받기도 한다.

▲ 이 저렴한 제작 단가를 보라! (출처 : HCC '따효니' 돌진 사냥꾼 덱)

렉사르는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다. 그는 늘 한결같았고, 메타가 어떻게 변하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명치를 때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똑같은 모습의 렉사르를 보고도 어떨 때는 혐오감에 휩싸여 손가락질을 하다가, 이제 와서 우서의 비밀을 날려버리는 모습을 보고 환호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메타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그렇게 손가락질하던 렉사르를 이제서야 정의의 사도로 떠받들고, 2년 내내 계속된 핍박을 견디다 못한 스랄이 어그로 덱이라는 이름의 산적으로 변하자마자 비난을 퍼붓는 우리야말로 진정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비밀 성기사가 사라진다면, 아마 우리는 늘 한결같았던 렉사르를 보고 또다시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평범한 이는 현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제는 우리 모두 기억하자. 렉사르는 언제나 명치만을 바라볼 줄 아는 한결같은 소나무, 스스로를 희생해 무과금 유저들에게 희망을 주는 하스스톤계의 진정한 '다크나이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