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르는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태생이 비둘기인 아지르는 몸속에 남아있는 '버그'들을 아무리 털어내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세월의 풍파와 함께 수많은 너프에 휩쓸리다 보니 이제 얇은 두 다리까지 휘청거린다. 저질 체력에 걸음걸이마저 둔해지며 먹잇감 후보 1순위로 등극했다. 솔로 랭크에서는 저조한 승률을 기록하며 이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롤챔스 2016 스프링 시즌 2라운드에서 새로운 주인을 만나 다시 비상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CJ 엔투스의 신예인 '비디디' 곽보성이 모두에게 잊혀가는 아지르를 데리고 나온 것이다. 요즘 대세로 인정받는 미드 챔피언을 우월한 사거리를 활용해 쉴 새 없이 쪼아댔다. 교전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나가며 롤챔스에 다시 둥지를 튼 아지르에 대해 알아보자.





■ 철새는 아니지만... 아지르 새 시즌에서 살아남는 법은?



아지르는 지금보다도 더 강력한 사막의 맹습(Q)으로 상대를 압박했다. 멀리서 일방적으로 상대 챔피언을 공격하면서 라인전을 쉽게 주도했고 어떤 챔피언도 쉽게 버티지 못했다. 이후, 매서운 연속 너프로 사막의 맹습(Q)의 사거리와 대미지가 줄었다. 라인전 딜 교환에서 이득을 챙기지 못한 유저들은 아지르의 장점이 사라졌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아지르는 새로운 시즌에 맞게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찾아냈다. 멀리서 마나를 모두 소비해가며 비효율적으로 공격하기보다 '3타'에 최적화된 공격 방식을 찾았다. 특성인 '천둥 군주의 호령'이 터질 때마다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CJ 엔투스의 '비디디' 곽보성은 아지르로 칼 같은 딜 교환을 선보였다. 1레벨 후반부터 상대에게 다가가 모래 병사로 1타를 적중한 뒤, 2레벨을 달성하자마자 사막의 맹습(Q)으로 2타-모래 병사로 3타를 치는 것이다. 자신의 2레벨 타이밍만 정확히 안다면, CS를 습득하기 바쁜 상대에게 예상 밖의 대미지를 줄 수 있다. 아지르는 정면 맞대결에 약하지만, 미리 상대의 체력을 깎는 방식으로 확실히 라인전부터 우위에 설 수 있다. 롤챔스에서 '비디디'의 아지르는 리산드라-바루스에게 딜 교환에서 압도하며 상대를 우물로 보내버렸다.

▲ 초반부터 사정없이 찌르는 '비디디' 아지르




■ '크레이머 일병' 구하기? 아군을 살리기 위한 아지르의 위험한 곡예



많은 유저들이 아지르를 활용할 때 어려움을 겪는 스킬이 바로 황제의 진영(R)이다. 잘쓰면 위기에 빠진 아군을 살려내고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세울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최상의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는 락스 타이거즈의 '쿠로' 이서행과 '페이커' 이상혁 역시 지난 2015 시즌에 아지르로 파고들어 궁극기를 쓰려다가 흑역사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정교하게 황제의 진영을 사용한다면 다양한 역할을 해낼 수 있다. CJ 엔투스는 콩두 몬스터와 경기에서 상대의 빠른 합류와 교전에 후퇴해야 하는 상황. 먼저 후퇴한 '비디디'는 위험에 빠진 '크레이머' 하종훈을 발견했다. 과감히 파고들어 하종훈의 이즈리얼을 추격하는 상대를 밀쳐내고 자신은 유유히 점멸로 빠져나오는 깔끔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단 한 명이라도 황제의 진영에서 빠져나와 공격했다면 아지르 역시 위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침착한 비행과 궁극기 활용으로 위기의 순간에서 오히려 킬까지 기록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황제의 진영은 공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점멸이나 '존야의 모래시계'가 있다면, 상대에게 먼저 파고들어 화끈하게 이니시를 열 수 있는 몇 안 되는 마법사다. '황제훈'으로 불리며 아지르의 대명사와 같았던 이지훈은 좁은 지형에서 상대의 퇴로를 완벽히 차단해버렸다. '코코' 신진영 역시 작년까지 신들린 듯한 아지르의 움직임으로 교전 승리의 주역이 됐던 경우가 많다. '순간 이동'을 활용해 갑자기 나타나 진영을 붕괴해 상대를 당황하게 했다.

아지르는 유리 몸으로 확실히 먼저 파고들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었을 땐 그만큼 값진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매력적인 챔피언이다.





■ 시대에 걸맞은 딜러? 새 시즌 아지르의 가능성



주문력을 주로 활용하는 마법사들은 대부분 순간적인 화력이 강력하다. 주문력의 힘으로 상대를 순식간에 끊어내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반대로 말하면 순간 화력은 강력하지만, 지속 딜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전투가 지속될 수록 원거리 딜러들보다 딜량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지르는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지속 딜이 강력하다. 전투를 지속된다면 누구보다 강력한 AP 화력을 발휘한다.

지속 딜은 최근 다시 등장하고 있는 탱커들에게도 치명적이다. 탑 라인에서 다시 노틸러스-뽀삐-트런들-람머스 등이 등장하고 있고, 트런들-알리스타가 대표적인 탱커형 서포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탱커를 제압하기에 지속 딜이 가능한 아지르가 유리하다. 빠른 공격 속도와 마법 관통력을 갖췄다면 다수의 모래 병사로 탱커들을 제압할 수 있다. 방어력 관련 아이템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법 저항력 아이템이 부족해 탱커 입장에서 아지르의 후반 딜을 받아내기 쉽지 않다.

게다가 원거리 딜러보다 긴 사거리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딜 교환이 가능하다. 상대의 원거리 딜러가 접근해 공격을 시도하기 전에 선공을 날려 후퇴하게 만들 수 있다. 아지르는 자신의 신변만 보호된다면 충분히 강력한 딜을 발휘한다. 과감하게 상대가 아지르에게 다가와도 황제의 진영(R)으로 밀쳐내면 그만이다. 생존이 1순위 과제인 아지르는 안정적인 위치에 자리 잡는다면 누구보다 무서운 딜러로 거듭날 수 있다.

한동안 아지르는 어려운 조작법과 아쉬운 생존력으로 많은 유저들에게 외면받았다. 날카롭게 파고드는 리신-말파이트와 같은 상대에게 영락없는 비둘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새 시즌 자신만의 생존법과 가능성을 갖고 리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지르가 노쇠한 비둘기에서 다시 한 번 황제의 자리에 도전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