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조금 불안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지만, e스포츠의 '스포츠'로서의 지위는 이제 암묵적으로나마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짧은 역사'는 부정할 수 없다. e스포츠 이어져 온 기간은 과장을 조금 섞어야 20년이 될까 말까다. 하지만 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들은 이미 반백 년, 길게는 백 년에 이르는 역사를 가진 경우도 있다.

여기서 e스포츠와 다른 구기 스포츠 사이의 간격이 생긴다. 기존의 스포츠는 긴 세월 동안 이어져 오며 쌓인 '데이터'가 있다. 어느 팀이 승리했고, 어떤 선수들이 활동했으며, 어떤 전술을 써왔는지 등등, 스포츠에 대한 데이터화가 시작된 이후 모든 종목들의 정보가 착실히 쌓여 왔다. 그리고 이 정보들은, 그대로 응용되어 팬덤의 성장과 경제적 가치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독일에 위치한 '도조 매드니스'는 e스포츠 관련 정보의 분석과 이를 기반으로 한 코칭 및 트레이닝 등등을 지원하는 회사다. 이들은 '롤스모'라는 '리그오브레전드' 관련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게이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도조 매드니스'의 조사 담당관 '루카스 N.P 에거'가 GDC2016에 온 이유는 단순히 '롤스모'라는 어플리케이션을 홍보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e스포츠를 데이터화하고, 수집한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통해 유의미한 정보를 창출하는 작업을 맡고 있다. 단순히 어플리케이션의 홍보보다 더 큰 대의를 짊어지고 강단에 섰을 터였다.


루카스는 어떤 통로를 통해 정보가 모이고, 또 이걸 분석함으로써 어떤 효과들을 얻을 수 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쌓인 정보를 통해 우리는 스포츠 팀들의 실력을 수치화할수 있다. 어떤 팀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지 판단하는 과정은 굉장히 주관적이지만, 이 주관적 평가가 어마어마하게 쌓이면 이는 '대중이 생각하는 객관적 수치'로 변모한다.

흔히 나오는 '메타크리틱 스코어'또한 마찬가지다. 메타크리틱 점수를 등재하는 매체는 굉장히 많고, 몇몇 미디어의 경우 편향적 시각을 보여주곤 하지만, 결국 이 수치가 모두 쌓이면 객관적인 지표가 나온다. 그리고 그 객관적인 지표는 대부분의 경우에 신뢰할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구단주나 감독은 팀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팀의 모든 전력이 수치화된다는 것은 곧 팀의 약점이 파악된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당연히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파악하기 쉬워진다.

나아가 오랜 기간 쌓인 데이터는 이 종목에 대한 '스토리'를 창출하게 된다. 몇 년간의 고통을 벗고 화려하게 재기한 팀에 대한 이야기,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다가 최근 기량이 저하된 선수의 기록 등, 저장된 모든 정보들은 그 종목의 역사가 되고, 나아가 이야기가 되어준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효과는 '팬덤'의 성장이다. 대부분의 스포츠 팬들은 종목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아가 그 종목에 얽힌 이야기들과 그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 및 라이벌 관계 등의 가십거리를 즐긴다. 드라마틱한 일화들이 많아질수록 팬덤은 성장하고, 이는 나아가 경제적 부가효과를 불러온다.


문제는 e스포츠라는 종목이 아직까지 이렇다 할 공식적인 데이터 수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액티비전'의 CEO인 에릭 허쉬버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게임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비공식' 스포츠 리그가 되었다."

e스포츠 시장은 매년 34%의 경제적 성장률을 보이고 있고, e스포츠를 관람하는 인원 역시 매년 20%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정보의 축적을 시작하기에는 더없이 적당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루카스는 '도조 매드니스'가 주로 취급하는 '리그오브레전드'를 예로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리그오브레전드를 플레이하는 게이머의 수는 하루에 약 3천만 명에 달한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 50Mb에서 150Mb에 이르는 데이터를 쏟아낸다.

기존의 구기 종목과 같이 데이터화할 수치가 많지 않은 것도 아니다. 게임에는 수없이 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그만큼 많은 영역의 데이터가 존재한다. 첫 구매 아이템, 챔피언별 픽률, 첫 킬이 나오는 평균 시간 등 한판의 게임에서 수치화할 수 있는 데이터만 해도 수천 가지가 나온다.

여기서 '도조 매드니스'는 학습형 AI, 즉 '머신 러닝'을 생각해냈다.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AI. '도조 매드니스'가 도입한 AI는 하루에 약 5백만 건의 경기를 분석해냈고, 이를 통해 승리에 최적화된 빌드를 구축해냈다.


바로 며칠 전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九단과의 경기에서 4:1로 승리를 거둔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또한 '머신 러닝'을 기반으로 끝없이 성장하는 AI다.

나아가 '도조 매드니스'는 이를 개개인의 게이머에 맞추었다. 각 플레이어의 과거 랭킹과 플레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현재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상태를 점검한다. 그리고 쌓인 데이터를 수치화해 게임에 맞추고, 이 데이터를 게이머 개인에게 제공해 게이머들이 스스로 보완할 점을 찾도록 만들었다.

물론 이러한 '빅 데이터'의 분석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게임'은 다른 구기 종목에 비해 '데이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같은 수준의 데이터 싸움에서는 반응속도와 피지컬을 갖춘 쪽이 승리하지만, 구기 종목에 비하면 유의미한 데이터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는 뜻이다.

때문에 완전히 오픈된 정보는 오히려 게임을 지나치게 불공정한 종목으로 만들 수도 있다. 모든 이들이 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에 '빅 데이터'를 분석해 산출된, 최소한의 피지컬로도 활용이 가능한 '승리 공식'이 있다면 게임 자체가 망가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강연의 본질은, 앞서 말했듯 '빅 데이터'를 이용한 어플리케이션이 있으니 이걸 사용해서 승리를 맛보라는 것이 아니다. 그가 제시한 '도조 매드니스'의 실적과 사례들은 e스포츠 업계에서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고,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e스포츠는 점점 커지고,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성장세는 당분간 주춤하는 일 없이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게임'을 위한 플랫폼은 꾸준히 개발되고 있으며, 더 멋지고 나은 게임들 또한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고 있는 요즘이니 말이다.

하지만 e스포츠가 '공식'적인 스포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아직 밟아나가야 할 스텝이 많이 남아있다. 루카스 에거는 연단에서 그 과정 중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어느 회사에 근무하고, 어떤 업무를 맡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그 또한 e스포츠 업계에 종사하는 '업계인'이고, e스포츠판의 성장은 모든 업계인들이 바라 마지않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