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2014년 말, 블리즈컨 현장에서 공개된 이후, 오버워치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가 되었고, 지금 역시 그렇다. 호불호에 관련 없이 국내 게이머들에게 가장 익숙한 해외 개발사인 '블리자드'의 신규 IP인 것도 그렇고, 블리자드가 그간 만들어온 롤플레잉이나 전략 시뮬레이션, 혹은 그 아종이 아닌, 팀 단위 슈팅 게임이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현재 오버워치에 대한 평가는 꽤 다양하게 갈리는 편이다. 블리자드 특유의 강력한 캐릭터성(+엉덩이)을 잘 살려서 좋다는 평이 있는가 하면, 타 게임과 디자인 측면에서 너무 유사한 점이 많다고 혹평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물론 유저 평을 통틀어보면 '일단 게임이나 좀 시켜줘라'는 의견이 가장 많지만 말이다. (기자 역시 새로운 영웅이 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오버워치'에 대한 평가를 정리하지 못했다. 아니, 어렴풋이 머릿속으로 오버워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두긴 했지만, 정식 릴리즈가 되기 전까지는 딱히 뭐라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오버워치를 플레이하면서 놀라웠던 점들은 마음속에 착실히 쌓아두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시스템은 바로 '효과음'이었다.

'오버워치'의 효과음은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효율적이고, 직관적이다. 지형에 통달해 있다면 눈을 감고도 어느 정도 전장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적이 어느 방향으로 접근하는지, 전투 상황이 유리한지, 혹은 불리한지, 어떤 적이 우리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지 등, 두 귀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게임 내 정보의 양이 다른 게임과 비교해 봐도 상당한 편이다.



GDC2016의 마지막 날, 블리자드의 시니어 사운드 디자이너인 '스캇 로러(Scott Lawlor)'와 '토마스 뉴먼(Tomas Neumann)'을 만날 수 있었다. 'Play by Sound'라는 이름으로 열린 강연, 그들은 오버워치의 효과음을 디자인한 과정과 중요 포인트들을 말하기 위해 연단에 섰다. 이 강연은 단순히 기술적 내용을 나열하는 강연이 아니었다. 청각을 이용하고 본능을 자극해 작용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효과음'을 과학적으로 풀이해주는 시간이었다.

▲ '스캇 로러(Scott Lawlor, 좌)'와 '토마스 뉴먼(Tomas Neumann, 우)'

"우리가 게임을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게임의 장르나 시스템, 혹은 게임에 얽힌 다양하고도 복잡한 비즈니스적인 무언가가 아니에요. 우리가 가장 신경 쓰는 건 바로 '소리를 통해 게임을 하는 순간(Game play)'을 더 풍요롭고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이죠."

스캇 로러가 말했다. 그는 오버워치의 효과음을 디자인하면서 플레이어가 소리를 통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끔 하고 싶었으며, 그 와중에 어떤 교란도 없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점들을 충족할 수 있는 음향이야말로 플레이어가 게임에 더 몰입하고, 게임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한 '게임을 하는 순간'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의 하나로 그는 '효과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어 그는 오버워치의 사운드 팀이 개발 과정에서 주안을 둔 다섯 가지 포인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한 다섯 가지 주안점은 다음과 같다.


1. 또렷한 믹스(Clear Mix)

2. 정확한 조향(Pinpoint Accuracy)

3. 게임플레이 정보(Gameplay Information)

4. 정보를 담은 영웅의 대사(Information Hero VO)

5. 파블로프 반응(Pavlovian Response)



또렷한 믹스 - 너는 위험에 처해 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토마스 뉴먼은 오버워치의 효과음 작업 주안점 중 첫 단계인 '또렷한 믹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또렷함'은 플레이어에게 가장 중요한, 혹은 중요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개념이었다.

▲ 게이머에게 어떤 정보가 가장 중요한가?

보통 슈팅 게임은 타 장르보다 소리에 민감한 편이다. 다른 장르의 게임에서도 소리는 분명히 중요하지만, 슈팅 게임에서의 소리는 정보 제공량에서 그 차원을 달리한다. 괜히 '사운드 플레이'라는 단어가 생기고, 슈팅 게임 전용 헤드셋이 나오고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은, 슈팅 게임을 플레이할 때 듣는 소리가 그만큼 많다는 뜻과도 상통한다. 슈팅 게임 중 가장 많은 종류를 차지하는 밀리터리 슈팅을 예로 들면, 전투 내내 적의 발걸음과 수류탄 투척 경고, 총기 격발음과 피격 사운드 등을 듣게 된다. 사운드 배분이 잘 안 된 슈팅의 경우 주변의 총기 소음에 묻혀 나에게 가해지는 총격을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토마스 뉴먼이 말하는 '또렷한 믹스'는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단계였다. 토마스는 오버워치에서 자주 발생하는 '중요한 정보'를 몇 가지 설명했다. '누가 가장 큰 위협인가?', '내가 보는 적은 누구인가', '나를 보고 있는 적은 누구인가', '누가 나랑 가깝고, 누가 내 가까이서 총을 쏘고 있는가' 등등이 '중요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이 정보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상황에 따른 순위 외에도 '영웅'에 따른 우선순위 또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주 공격수 중 하나인 '파라'는 다른 공격수와 비교할 때 훨씬 강력한 한 방을 보유한 영웅이다. 때문에 '적 파라'의 효과음 우선권은 굉장히 높다. 파라가 섞여 있는 다중 전투 상황에 유독 로켓 소리가 크게 들리는 건 의도된 바다.

▲ 전장의 형세에 주는 영향력에 따라 우선 순위가 달라진다.



정확한 조향 - 어디서 위협이 오고 있는가?


마이크는 다시 스캇 로러에게 넘어왔다. 이들의 강연은 간단한 전투 상황을 상정해 단계에 맞춰 진행하는 식이었는데, '정확한 조향'은 앞 단계인 '또렷한 믹스'에서 '가장 위험한 적'이 누군지를 파악한 이후의 이야기를 하는 단계였다.

스캇은 시각으로 상대를 분별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두 가지 음향인 '옵스트럭션(Obstruction)'과 '오클루젼(Occlusion)'에 대해 설명하면서 '정확한 조향'을 말하기 시작했다.

▲ '옵스트럭션'과 '오클루젼'

'오클루젼'은 소리가 나는 진원지와 나 사이가 완전히 막혀 있는 경우를 뜻한다. 이런 경우 상대가 나에게 해를 가할 방법이 없으므로 윗 단계인 '또렷한 믹스' 단계에서 이미 우선순위가 내려가 버린다. 이런 경우 거리를 가늠하기 쉽지 않고, 소리가 '나느냐 안 나느냐'의 정도밖에 조절할 수 없다. (물론 벽을 무시하는 '한조'의 궁극기는 전부 다 또렷하게 들린다.)

반면 '옵스트럭션'의 경우 상대와 나 사이의 시야는 막혀 있지만, 공간은 이어져 있는 경우를 뜻한다. 이런 경우엔 벽이나 오브젝트에 튕기는 반향음, 그리고 소리의 크기 등을 통해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물론 전투 상황에 따라 두드러지는 전달 방식은 매번 다르다. 음향 팀에게 주어진 숙제는 이 제한적인 두 방식 안에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느냐였다.

▲ 적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슈팅 게임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스캇은 이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섯 가지 방법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일단 소리에 '층'을 넣어 하나의 웨이브가 아닌, 다각적 음향을 만들었고, 적과 내가 실내에 있는가, 혹은 실외에 있는가에 따라 효과음을 다르게 만들었다. 거리에 따른 음량의 조절은 당연한 순서. 더불어 한 점으로 모이는 소리와 넓게 퍼지는 소리를 각각 만들고, 이를 섞음으로써 보다 입체적인 소리를 만들어냈다.

여기서 오버워치 팀의 사운드팀은 다소 흥미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다.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사선을 그리는 네 방향 (좌전, 좌후, 우전, 우후)을 기준으로 반향음을 도입하되, 이 반향음 사이에 약간의 지연을 넣어 음향의 입체감을 높이는 방법이다.



게임플레이 정보 - 그래서 그 위협이 누구냐면...


이후 마이크는 다시 토마스 뉴먼에게 넘어갔다. 토마스 뉴먼은 앞선 단계보다 한 단계 더 깊이 있는 정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바로 전투 상황에 대한 '전반적 정보'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본능적인 선에서 이뤄지긴 하지만, 오버워치를 플레이하게 되면,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가령 나에게 접근하는 적이 있다고 했을 때, 그 적이 누구냐에 따라 대응 방법이 판이하게 갈린다. 내가 '한조'를 플레이하고 있을 때 적 '솔져 76'이 다가온다고 예를 들어 보자. 만약 내 활 솜씨가 좋은 편이라면 난 '다발 화살'을 직격시켜 한 방에 제압하려 할 것이다. 만약 '리퍼'가 다가오는데 다발 화살이 쿨다운 상태라면? 주저 없이 도주를 선택할 거다.

▲ 적의 신원, 상태, 위협도... 모두 중요한 정보다

하지만 그전에,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나에게 다가오는 적이 '솔져 76'이냐, '리퍼'냐를 분간하는 일이다. 오버워치의 영웅들은 비슷해 보여도 모두 다른 발소리를 갖고 있다. 땅을 육중하게 울리는 '라인하르트'나 절름발이인 '정크랫'은 당연하고, 특색 없어 보이는 맥크리나 한조도 자세히 들어보면 다들 다르다. 숙련된 플레이어의 경우 발소리만 듣고도 누군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여기에 몇 가지 양념이 더 들어간다. 캐릭터마다 발소리가 퍼지는 영역도 다르며, 전투 흐름에 따라 우선순위가 변경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방어진을 펼쳐두고 적을 기다리는 상황이라면 적 탱커의 접근을 좀 더 쉽게 알 수 있으며, 난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광역 공격기(맥크리나 파라의 궁극기)의 발동음이 더욱 또렷하게 들린다. 보통 아군의 궁극기 발동음은 적보다 작게 들림에도 적군과 아군 양쪽에 중요한 '루시우'의 궁극기는 양쪽 모두 같게 들리는 것 또한 이런 차원에서 마련된 장치다.



정보를 담은 영웅의 대사 - 위협을 혼자만 알고 있을 거야?


이어 스캇과 토마스는 C 키로 빠르게 발동시킬 수 있는 '간이 음성 채팅'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오버워치의 간이 음성 채팅은 굉장히 직관적이고 쉽게 구성되어 있는데, C 키를 눌러 메뉴를 불러와 사용할 수도 있지만, 중요하고 자주 사용하는 대화(치료 요청이나 오브젝트 지정)의 경우는 별개의 단축키가 지정되어 있다.

▲ '간이 음성 채팅'은 생각보다 쓸만하고 중요하다.

또한, 단순히 '오브젝트'를 지정해 말한다 해도 플레이어의 상황(공격인가 수비인가, 점령인가 운송인가?)에 따라 다른 대사를 해 더욱 직관적으로 팀원들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스캇은 이 간이 음성 채팅에 대해 '별도의 음성 채팅 없이도 빠르게 게임의 상황을 파악하거나,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라 설명했다. 실제로 오버워치는 게임 안에 음성 채팅 기능을 내장해 두었지만, 모든 플레이어가 음성 채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어도 말없이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가 대부분이며, 이들은 간이 음성 채팅을 통해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곤 한다.



파블로프 반응 - 본능적으로 느낄 수도 있지.


'파블로프의 개'는 굉장히 유명한 '고전적 조건형성'에 대한 실험이다. 슈팅 장르의 게임들은 비교적 장르 내 작품들의 유사성이 높은 편이라 자주 하는 게이머들은 일정한 패턴이 생긴다. 예를 들어 수류탄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면 빠르게 그 지역을 이탈한다든가, 피격음이 들리는 순간 몸을 낮춘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 '본능'을 돕는 요소

오버워치는 이런 조건에 따른 반사적 행동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들어 두었다. 가령 '라인하르트'의 경우 총 2000의 대미지를 견딜 수 있는 방패를 전방에 전개하는데, 이는 아군이 쉽게 전선을 밀고 진입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준다. 그래서 게이머들은 '라인하르트'의 방패 내구도가 얼마나 남았느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데, '바스티온'과 같이 어마어마한 DPS를 뿜어내는 영웅에게 노출당하면 금방 방패가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이때 만약 방패가 깨지는 소리를 단순 효과음으로 구현해 두었다면, 다른 효과음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게임에선, '라인하르트'가 직접 말한다. "방벽이 오래 버티지 못할걸세!"하고 말이다.

▲ 라인하르트가 말한다. "방벽이 곧 깨질걸세!"

그래서 게이머들은 보다 직관적인 정보 습득이 가능하다. 적 저격수(한조 혹은 위도우메이커)가 공격을 가하고 있다면 각 캐릭터는 각자의 목소리로 저격수를 발견했다고 외친다. 그럼 자연스럽게 게이머들은 개활지를 피하고 몸을 숨기게 된다. '시메트라'의 순간 이동기나 '토르비욘'의 포탑을 발견했을 때 역시 마찬가지다.

'조건'의 강화다. 일정 조건이 형성될 때 본능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조건 반사'에서 조건을 더욱 강화해놓은 것이 바로 이 시스템이다. 게다가 이를 통해 다양한 캐릭터의 대사가 드러나게 되고, 덕분에 오버워치의 장점 중 하나인 풍부한 캐릭터성이 더욱 드러난다. 좋을 수밖에 없다.



한 시간의 강연은 빛살같이 흘러갔다. 물론 오버워치에 담긴 모든 개발 노하우와 철학이 이 한 시간 안에 모두 설명될 수는 없을 것이다. 때문에 스캇 로러와 토마스 뉴먼은 오버워치 사운드 시스템의 핵심만 끄집어내 청중에게 전달했고, 청중은 이에 박수로 화답했다.

강연의 끝에서, 스캇 로러는 오버워치의 다음 단계를 제시했다. 그는 더욱 입체적이고 공간감을 느끼게 해주는 사운드 시스템인 '돌비 앳모스(Dolby Atmos)'를 조만간 도입할 예정이며, 나아가 더 나은 효과음을 들려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며 마이크를 내렸다.

▲ 오버워치의 효과음은 점점 더 발전할 전망

이후 질문과 답변 시간이 이어졌고, 토마스 뉴먼은 오버워치 개발팀의 모든 이들에게 오늘의 강연을 이루게 해줘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로, 오버워치의 모든 개발진이 모두 모여 찍은 사진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PPT의 끝을 장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