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으로 대결을 펼치는 수많은 스포츠 종목에서 ‘강팀’으로 불리는 특정 팀에는 언제나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가진 스타 플레이어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스타 플레이어들의 존재만으로 강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합에서 '누가 싸우느냐'만큼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싸우느냐'이기에, 강팀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걸출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이는 e스포츠도 마찬가지이다. SKT T1은 2013년부터 '페이커' 이상혁이라는 독보적인 실력의 미드라이너를 필두로 다른 라인에도 세계 수준의 선수들을 배치함으로써 자타공인 최강의 LoL 프로팀이라는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올해 SKT T1은 다르다.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4강 진출에 성공한 그들이지만, 여느 때보다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롤드컵 무대에서 전략의 한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 SKT T1의 소년만화 주인공 메타와 한계점

이번 롤드컵에서 SKT T1은 한결같은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초중반 '페이커'의 플레이메이킹을 통한 스노우볼링을 베이스로, 상대가 '페이커'를 집중 견제해 스노우볼링이 어려워진 경우엔 최소한의 손해만 보며 게임을 끌다가 후반 한타를 통해 게임을 뒤집는 것. '피넛' 한왕호와 '블랭크' 강선구는 탑이나 봇에 관여해 경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보다 미드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운영을 택한다.

물론 이 전략이 나쁜 것은 아니다. '페이커'의 기량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후니' 허승훈은 탑에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으며 성장한 '뱅' 배준식이 보여주는 한타 포지셔닝과 화력도 굉장하다. 하지만, 문제는 뚜렷한 약점이다. 챔피언 상성이나 정글러 개입 등으로 초중반 '페이커'의 발이 묶여버리면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내주게 된다. 여기서 후반 한타까지 버티기에 성공한다면 SKT T1의 승산이 높아지지만, 상대가 템포를 올려 차이를 벌리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이 문제점은 8강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미스핏츠는 SKT T1을 상대로 기동력과 CC기를 바탕으로 한 속도전을 준비해왔다. 예상치 못한 조커픽도 준비해왔고, 무리하게 페이커를 압박하기보다 봇 라인 공략에 힘을 실어 빠르게 스노우볼을 굴렸다.


무난한 픽으로 1세트를 대패한 미스핏츠는 2세트 밴픽 단계부터 본격적인 전략을 꺼내 들었다. 생존기가 있는 원딜 챔피언들을 밴하여 '뱅'의 선택을 제한한 후 '이그나' 이동근이 블리츠크랭크를 픽했다. '파워오브이블'이 '페이커'를 상대로 버티는 동안 미스핏츠는 '이그나'를 필두로 SKT T1을 위아래로 끝없이 두들겼다. 주도권을 놓치지 않은 미스핏츠가 26분만에 승리를 거뒀다.

미스핏츠의 선전이 이어졌다. 3세트에서는 준비해온 아이번과 레오나를 꺼냈다. 밴픽은 또다시 '뱅'을 틀어막았고, 레오나는 점화-전투의 열광을 선택했다. '뱅'과 '울프' 이재완이 1레벨에 더블킬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미스핏츠의 스노우볼링이 시작됐다. 난타전 중 SKT T1이 몇 차례 슈퍼 플레이를 보이며 경기를 후반까지 끌었지만, 크게 성장한 트리스타나의 화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넥서스를 파괴당했다.

미스핏츠의 4세트 전략도 속도전이었다. 하드 CC기를 지닌 초가스-세주아니-알리스타가 카르마-시비르의 이동 속도 버프를 받으며 SKT T1을 몰아쳤다. 자주 그래왔듯이 SKT T1이 역전승을 만들어냈으나 앞 두 세트의 결과로 경기 내용은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5세트는 미스핏츠가 초반 주도권을 잡는 데 실패하며 결국 패배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접전을 펼치며 SKT T1을 위협했다.

▲ 끝까지 SKT T1을 위협한 미스핏츠였지만 결국 역전을 허용했다

반대로 SKT T1은 서폿 트런들, 탐 켄치나 원딜 베인과 같이 신선한 픽을 선보이긴 했지만 전략의 전체적인 기조는 5세트 내내 비슷했다. 이와 반대로 매 세트 유연한 전략을 선보였던 삼성 갤럭시의 8강전을 살펴보자. 1세트는 케넨을 기용해 '칸' 김동하의 잭스를 막아낸 후 단단한 중후반 운영으로 승리를 거뒀고, 2세트에서는 기존의 삼성 갤럭시 스타일과 달리 쉔-세주아니-탈리야를 기용해 발 빠른 운영으로 롱주 게이밍에게 악몽을 선사했다. 3세트에서 롱주 게이밍이 탈리야를 가져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리산드라를 픽하며 압승을 거뒀다.


◆ 롤드컵에 등장한 맞춤형 전략들, SKT T1은...?

위와 같이 미스핏츠와 삼성 갤럭시는 롤드컵 8강전을 대비해 준비해온 자기만의 전략이 있었고, 그것들을 경기에서 여실히 보여줬다. RNG는 '우지 키우기'의 핵심인 룰루-잔나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소라카를 꺼내들기도 했다. 반면 이번 롤드컵에서 SKT T1의 조합과 운영을 보고 있자면 계속해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딱히 준비한 전략 없이 탱커-향로 메타에 애매하게 순응하며 SKT T1만의 색깔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느낌이다.

SKT T1은 후반 한타를 통한 승리도 곧잘 해내지만, 더욱 잘하는 것은 주도권을 쥐었을 때 상대를 끝까지 압박해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2016년 말 '후니'와 '피넛'을 영입한 SKT T1은 2017 LCK 스프링 시즌에서 적극적인 운영을 바탕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어진 서머 시즌에서는 준우승에 그쳤지만, 3세트에서 롱주 게이밍을 쉴새 없이 몰아치며 SKT T1이 왜 강팀인지 똑똑히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롤드컵에서 치른 대부분 경기에서 SKT T1은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밴픽 단계부터 그저 그때그때 필요한 챔피언을 가져오는 느낌이다. 물론 이것이 올해 롤드컵에 참여한 많은 팀이 선택한 방법이긴 하지만, 경기가 진행될수록 강세를 보이는 것은 준비된 전략이다. 8강 마지막 경기, C9이 2, 3세트에서 신지드라는 조커픽으로 승리를 거두자 WE는 부랴부랴 신지드를 밴하고 남은 세트에서 승리했다. 만약 C9에게 또 다른 전략이 준비돼 있었다면 4강 대진은 바뀌었을 것이다.

▲ 준비해온 신지드를 운영에 적극 활용하며 승리를 거둔 C9

SKT T1의 롤드컵 4강전 상대는 RNG이다. 보란 듯이 '우지 키우기' 전략을 사용하는 RNG 앞에서 SKT T1은 소년만화 주인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우지'의 성장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빠른 템포의 운영이다. 이에 초중반 운영을 '페이커'의 플레이메이킹에 전적으로 기대기보다 새로운 전략과 밴픽으로 경기에 임해야 할 것이다. '후니'와 ‘피넛’이 자랑하는 공격적인 움직임과 '페이커'의 넓은 챔피언 폭을 SKT T1만의 강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여기에 '뱅'’-'울프'가 RNG의 봇 듀오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다.

SKT T1은 롤드컵 4회 우승 및 3회 연속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기까지 단 두 경기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모습에서 예전과 같은 최종 보스의 느낌은 찾아보기 어렵다. 후회 없는 2017년을 만들 수 있도록, SKT T1은 많은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