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T1은 지난해 최악의 한해를 보냈다. LCK에서는 물론이고, MSI와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등 주요 국제 무대는 아예 밟지도 못했다. 이에 SKT T1은 '페이커' 이상혁을 제외한 모든 주전 로스터를 교체하는 대규모 리빌딩을 단행하며 2019 시즌을 맞이했다.

그렇게 '칸' 김동하-'클리드' 김태민-'페이커' 이상혁-'테디' 박진성-'마타' 조세형으로 이뤄진 '드림팀'이 탄생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한가지 약점으로 지목됐던 '팀 호흡'은 생각보다 빠르게 제 궤도에 올랐고, 곧바로 LCK 스프링 스플릿을 우승하며 SKT T1 왕조의 부활을 알렸다.

하지만, LCK 우승만으로는 명가의 재건을 완성했다고 보기 이르다. 명성에 걸맞은 국제 대회의 우승컵이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이번 2019 MSI는 SKT T1에게 두 번째 시험대라고 볼 수 있다. 과연 SKT T1은 각 지역 최고의 팀만이 참가하는 MSI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왕의 재림'을 증명할 수 있을까.


초반 이끄는 '클리드' + 후반 보증 수표 '테디'
LCK 스프링 스플릿 우승의 주역들

이번 LCK 스프링에서 '클리드'의 활약은 말 그대로 눈부셨다. 시즌 초반, 리빌딩을 거친 대부분의 팀들이 '팀워크' 문제로 흔들릴 때 SKT T1이 많은 승수를 쌓아올릴 수 있었던 건 '클리드'의 공이 굉장히 컸다. 당시 '클리드'는 상체의 부진을 오롯이 개인의 능력치로 메웠고, 그리핀의 '타잔' 이승용과 함께 LCK 정글러 쌍두마차로 떠올랐다.

▲ 완벽한 '클리드'의 리신(출처 : LCK 유튜브)

'클리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챔피언은 리 신이다. 리 신으로 할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격적인 갱킹으로 초반 분위기를 주도하는가하면, 한타 페이즈에서는 완벽한 스킬 분배로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클리드'의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피지컬 위에 영리함까지 더해진다는 점이다. 덕분에 리 신 뿐만 아니라 어떤 정글 챔피언을 해도 항상 빛날 수 있었다.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선수는 '테디'다. 진에어 그린윙스 시절, 넥서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빼어난 실력을 발휘했던 그는 SKT T1에 와서 말 그대로 물만난 물고기가 됐다. 팀이 힘들 때는 후반 보증 수표로, 기세를 탔을 때는 주축 딜러진으로 맹활약했다. 뿐만 아니라 시그니처 픽인 이즈리얼을 포함해 14개의 다양한 챔피언을 선보이며 전천후 원거리딜러임을 증명했다.

'테디'의 경기력은 가장 중요한 무대인 포스트 시즌, 특히 결승전에서도 눈부셨다. 그리핀의 탈리야-판테온 조합을 상대할 때 보여준 아슬아슬한 거리재기는 일품이었다. 봇에서부터 스노우볼을 굴려야 했던 그리핀에게 '테디'의 이즈리얼은 말그대로 지옥과 같았다. 또한, 상대의 기습적인 이니시에이팅과 연이은 스킬을 모조리 흡수하면서 살아남는 모습 역시 에이스의 품격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 '테디'의 끈질긴 생존력(출처 : LCK 유튜브)

팀을 묶어주는 중심축 역할을 하는 서포터 '마타'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눈에 띄는 스킬 실수가 종종 보이긴 했지만, 전체적인 판을 읽는 능력에는 변함없었다. '클리드'와 함께 운영의 핵심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와 더불어 '테디'를 완벽하게 보좌하며 캐리할 수 있는 길을 닦아줬다. 또, 라인전이 약하다던 예전의 평가는 이제 한물 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감 있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완벽한 '한 팀'
폼 되찾은 상체, 그리고 완성된 팀워크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난만큼 개성 넘치는 선수들이 과연 얼마나 빠르게 한 팀으로 호흡을 맞출 수 있을까. 이는 시즌 시작 전 SKT T1에 대해 분석할 때마다 관계자뿐만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까지 가장 많이 언급된 문제다. 실제로 정규 시즌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팀적인 움직임보다 개인 기량으로 승리하는 경기가 다수였다.

팀워크만큼이나 문제로 떠오른 건 '칸'의 부진이었다. 최상급 탑솔러라는 수식어와 그만큼 컸던 기대감이 무색하게 '칸'이 활약하는 그림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솔로 킬을 허용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아트록스나 우르곳 같은 주류 픽을 완벽히 소화하지 못하며 챔피언 풀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냈다. 팀의 에이스일 줄 알았던 그가 약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2라운드 들어 탑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공격적인 챔피언이 주류가 되기 시작하자 우리가 알던 '칸'의 모습이 나오는 빈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2라운드 2경기 젠지 e스포츠와의 경기를 기점으로 완전히 제 궤도에 올랐다. 이는 경기 지표에서도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전까지 '칸'의 KDA는 3.1에 불과했지만, 젠지 e스포츠전 이후로는 무려 5.3을 기록했다.

이번 스플릿서 딱 세 번 선보인 리븐은 정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비록 패하긴 했지만, 정규 시즌 2라운드 그리핀전 2세트에서는 매우 불리한 경기를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끌고 가는 모습을 보였다. 솔로 킬은 물론이고, 절체절명의 위기마다 슈퍼플레이를 선보이는 등 예전의 '칸'이 돌아왔음을 확실하게 알린 경기였다.

올해부터 주장 완장을 단 '페이커' 이상혁 역시 후반으로 갈수록 기량이 오르는 모습이었다. 큰 무대에서 더욱 강하다는 패시브가 플레이오프와 결승전서 또다시 발휘되면서 왜 자신이 왜 e스포츠 최고의 스타인지를 몸소 보여줬다. 전패 카드 사일러스, 자주 보여주지 않았던 아칼리 등을 완벽하게 활용하며 상대를 더욱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 LCK 결승전 '페이커'와 '쵸비'의 KDA 및 킬 관여율 비교

특히, 정규 시즌 내내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MVP를 꿰찬 '쵸비' 정지훈과의 결승 맞대결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더 큰 존재감을 발휘했다. 2세트 아지르로 '쵸비'의 리산드라를 모든 면에서 압도하며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갔고, 스프링 스플릿서 처음으로 쓴 맛은 보게 된 '쵸비'는 멘탈이 무너진듯한 모습을 연출해 지켜보는 모든 이를 놀라게 했다.

모두의 기량이 고점으로 향하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따라온 건 바로 팀워크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팀적인 호흡이 오르는 건 당연한 현상인데, SKT T1의 경우에는 개개인의 경기력 상승이 더해져 더 큰 시너지를 낳았다. 불안한 운영이나 따로 노는 듯한 플레이가 사라지면서 이제는 진짜 약점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예전의 SKT T1을 떠오르게 했다.

2016, 2017 MSI를 연달아 우승하며 최고의 커리어를 쌓았던 SKT T1. 이제는 2018년 중국의 RNG에게 내줬던 트로피를 다시 빼앗아 올 차례다. '드림팀' SKT T1은 그들의 세번째 우승을 향한 여정에서 과연 어떤 스토리를 써내려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