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원 게이밍(이하 담원)은 올해 정말 놀라운 행보를 보여왔다. 이름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선수들, 고생만 겪어 본 선수들이 작년 롤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코치를 만나 규합하고, 정돈되며 결국에는 롤드컵에서 이름을 떨쳤다. 변변한 시설을 자랑하지도 못하고 그저 신인의 패기와 '싸움 DNA'로 무장한 이들의 진격은, 다른 팀들에겐 흡사 '공포의 외인구단'과도 같이 보였을 것이었다.

'롤드컵 청부사' 김정수 코치는 지난 해 iG의 우승을 이끌고, 자신의 새로운 도전을 이 자그마한 담원에서 시작했다. 어떤 기분이었을지는 잘 상상되지 않는다. 신인들을 키우는 재미일까? '안될 것 같을 것을 성공시키는 것'에서 오는 희열을 수집하는 것일까? 어떤 마음이건, 결과로 말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김정수 코치는 '옳은 판단'을 이번에도 해낸 것으로 보인다. 참 신기한 사람이다.

8강에서의 아쉬운 패배를 뒤로 하고, 하루 남은 일정 동안 휴식을 취하고 있는 김정수 코치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쉬움과 선수들에 대한 대견함이 골고루 섞였을 김정수 코치는 평온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김정수 코치가 본 롤드컵과, 담원의 올해 행보, 내년의 목표를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보자.




플레이인부터 시작한 긴 여정, 고생 많으셨다. 담원이 롤드컵에 처음 진출한만큼 탈락도 처음인데, 선수들은 지금 좀 기분이 어떤가? 걱정이 된다.

분위기는 생각보다 밝다. 어제도 회식을 하고 왔다. 경기 진 직후에는 다들 우울해했지만, 그래도 다들 신인들이라 그런지 그렇게까지 좌절감에 빠지진 않더라. 나쁘진 않은 분위기다. 밥 먹을 땐 모두 밝았다.


그래도 적잖이 아쉬울텐데, 특별히 감정이 동요한 선수가 있었나?

경기 직후엔 모두 다 그랬다. '캐니언'은 경기 끝나고 회식 자리에서 '나는 괜찮다' 라고 했지만, 도무지 입을 안 떼더라. 캐니언이 생각보다 자신의 플레이가 안 나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너구리'도 힘들어했다. '뉴클리어'는 당시에 좀 그랬고, 이후에는 잘 회복했다.


그래도 출국 전에 안정을 좀 취한다고 했으니, 다들 좀 괜찮아지려나?

나쁘지 않다. 한국행 비행기 표가 당장 없어 어쩔 수 없이 하루 더 묵게 되었다. 호텔에만 있으면 우울하니, 원하는 선수들을 데리고 밖에 나갔다 올 예정이다.


유럽에 있는 동안 생활은 좀 어땠나?

유럽 음식이 잘 맞진 않아서, 한식이나 일식을 많이 찾았고 라면과 밥을 먹으며 버텼다.


그렇겠다. 선수들도 한식파 아닌가.

한두 명 빼곤 그렇다. 의외로 너구리는 룸서비스 음식이 입에 맞는다고 했다. 코치진들은 다 유럽식을 잘 못 먹었다. 그래도 팬분들의 도움을 받아 한식을 꾸준히 먹을 수 있었다.


길었던 여정. 돌아보면 어떤 점이 가장 아쉬웠나?

스크림에서 보여줬던 실력이 무대에서 잘 나오지 않은 게 아쉽다. 스크림이 그렇다고 또 엄청 뛰어난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스크림은 유럽 팀들 상대론 좋았고, 한국이나 중국 팀에겐 반반을 가거나 그 이하이기도 했다.


스크림에서 유럽 팀 상대로 성적이 좋았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지금 이 결과가 더 의외일 것 같다.

의외다. G2와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다. G2가 대회에서 보여준 픽들은 우리에게 의외가 아니었다. 우리도 우리가 준비한 걸 스크림에서 다 보여줬고, G2도 모든 카드를 꺼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상대가 어떤 챔피언을 고를 줄 서로 알아서 그에 맞춰 픽을 했었다. 그렇다보니 만일 스크림에서의 실력이 무대에서 그대로 나왔다면 3:0이나 3:1의 승리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선수들이 한 경기만 져도 멘탈이 나가곤 했다.


스크림은 스크림일 뿐인 것 같다.

그렇다. 스크림을 잘 하는 팀은 얼마든지 많다. 작년만 해도 iG가 우승하기 전에 스크림 성적은 안 좋았다. 지금은 얘기해도 되겠다. 당시에 iG는 LCK팀 상대로 스크림 승률이 20%도 안 됐다. 다른 리그 팀 상대로도 반반 정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안 좋은 스크림 성적으로도 결국엔 우승을 했지 않나. 스크림은 스크림일 뿐이다. 그것보다는 많은 관중들 앞에서 롤드컵을 치른다는 그 압박감을 견뎌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보면 아직 담원 선수들이 견디기엔 다소 큰 무대였지 않을까 한다.


그럴 것도 같다. 아직 어린 선수들에겐 말이다.

어려도 잘 적응하는 선수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그러는 건 아니니까. 마음 편하게 경기했으면 더 좋은 경기력이 나왔을 것이다.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더라. 힘싸움에선 담원이 질 이유가 딱히 없는데, 확실히 무대 부담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더라.

게임이 초반 5분 정도만에 터진 경우가 많았다. 원래는 우리가 스크림에서 G2보다도 더욱 적극적이었다. 다이브도 먼저 하고, 그걸 스노우볼로 잘 굴리고 말이다. 그런데 지난 경기에서 보이스를 들어보면 다들 흥분하고 긴장했고, 스킬샷조차 못 맞히더라. 심지어 와드가 있고 CC기에 상대가 걸렸는데도 스킬을 못 맞히는 건... 그렇게 극심하게 긴장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여러모로 선수들도 이번 기회에 많이 배웠을 듯 하다.

그렇다. 그리고 G2가 스노우볼을 정말 잘 굴리더라. 그것도 역시 배울 점이다.


그래도 담원이 1년이 안 되었는데, 결과적으론 많은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선수 중에선 누가 경기 내외로 발전을 많이 한 것 같나?

1등으로 치면 '쇼메이커', 2등은 캐니언이다. 나머지는 골고루 성장했다. 쇼메이커는 스폰지 같다. 피드백을 하면 다 받아들인다. 코치가 원하는 플레이 구도를 게임 안에서 완벽히 실현해준다. 물론 아직까지 특정 챔피언에 승률이 몰려있는 건 아쉽긴 한데... 다른 챔피언도 잘 하는데 대회에선 그 실력이 잘 나오진 않더라. 그리고 쇼메이커의 챔프폭이 좁다기보단, 쇼메이커가 다른 챔피언을 했을 때 팀원들이 운영을 잘 맞춰주진 못한다. 예를 들어 쇼메이커가 한타형 챔피언을 하면 누군가는 스플릿푸쉬 위주 챔피언을 해줘야 하는데, 그런 다양한 경우를 다 맞추기엔 팀원들의 게임 이해도가 그렇게 높진 않다.

캐니언은 정말 신인이었다. 정글 동선도 모르고, 프로게이머들 이름도 잘 모를 정도로 순백의 이미지였다. 말도 못하고, 대회장에서도 멍해지고 말이다. 그래서 난 스프링에선 '담원이 플레이오프만 가도 감지덕지'라 생각했었다. 그랬던 캐니언이 이제는 사람들에게 이름도 이렇게 잘 알려졌다. 캐니언은 잠재력이 터졌다고 생각한다. 참 많이 발전했다. 원래도 피지컬이 좋았던 선수인데, 이제는 미드와의 호흡도 맞추게 되며 담원의 미드-정글이 어디에 내놓아도 잘 하는 듀오가 되었다.


그렇다면 코치 본인은 어떤 성장이 있었던 것 같나?

담원은 챌린져스에서 올라온 팀이고, 그래서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소위 말해 우승권, '잘 나가는' 팀에 있었다. 하지만 여긴 LCK에서도 뛰어본 적이 없는 신인 선수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내 마인드를 이해시키고 관철시키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 선수들을 이끌어가는 게 쉽진 않았다. 한계에 부딪혀본 적도 있다. 코치들이 있다 해도, 솔직히 내가 코치들을 가르치는 부분도 많았다.

그러면서 한편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팀을 데리고 롤드컵까지 간다면, 정말 재미있겠다'. 그래서 나도 정말 열심히 했다. 지금까지 겪어 온 다른 팀들과는 달랐다. 새로운 도전이었고, 나 스스로도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담원이 처음에 롤드컵 진출한다고 했을 때, 어디까지 올라갈 거라 내심 기대했나?

목표는 4강이었다. 솔직히 우리가 우승권 전력까진 아닐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무대에서 긴장하는 상황이 올 것도 다 예상했다. 물론 예상은 했지만 아쉽다. 4강에 올라가서 SKT와도 재밌게 싸워보고 하면 경험도 되고 미련도 없을텐데 말이다.

가끔 많은 감독들이나 관계자들이 이런 말을 해준다. '담원으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었다'고 말이다. 우리는 투자를 거의 안 한 팀이다. 캐니언도 많은 다른 LCK 정글러들 몸값에 비교하면 정말로 적을 거고, 어지간한 우리를 상대하는 팀들의 몸값은 우리와 비교가 안 되게 높을 것이다. 그런 팀들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올라온 선수들도 정말 '대박' 인 것 같다. 아주 재미있고, 만족한다.

롤드컵은 결국 아쉽게 되었지만, 스프링에서 플레이오프 진출도 힘겨웠던 팀이 이렇게까지 성장하고, 리프트 라이벌즈도 가고 롤드컵도 경험하는 걸 보면... 일년 내내 경기 일정을 꽉 채운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어떤 의미로 보면 나는 지난 롤드컵에서 우승과 준우승도 해봤지만, 그것만큼이나 특별한 경험을 담원과 함께 한 기분이다.


현재 진행형이지만, 지금까지도 그런 부분에서 정말 보람이 있을 것 같다. 이제 유럽에서의 계획은 또 있나?

따로 있진 않다. 저녁에 선수들이 배고프다면 같이 밥이나 먹을 거다. 곧 한국에 가니까 스페인 음식을 먹어야겠다. 독일 음식은 입에 영 안 맞았는데, 스페인 음식은 맞는 듯 하다.


이번 롤드컵 여정을 통해, 앞으로 선수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긴장 같은 부분은 여러 선수들을 봤지만 세 달 만에 극복하는 선수도 있고, 3년이 걸려도 안 되는 선수도 있다. 담원 선수들은 내년엔 이렇게 긴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긴장에 대해선 코치인 내가 할 수 있는게 많지는 않다. 게임하는 멘탈을 잡을 순 있어도 긴장하는 마음까지 100% 다 잡아줄 순 없다. 선수들이 어느정도 스스로 깨고 나가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담원은 내년에 정말 더 잘할 것이다. 확신한다. 일년 동안 어찌보면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 아닌가. 정규 시즌부터 리프트 라이벌즈, 롤드컵까지 중요 대회들을 경험했으니까 말이다. 이걸 밑바탕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대회를 질 때 많은 것을 배운다. 올해 담원은 롤드컵에서도 져 봤다. 그 패배에서 G2가 어떻게 스노우볼을 굴렸고 팀적으로 움직였는지를 봤다. 담원은 그런 걸 잘 못 한다. 아무리 피드백을 하고 G2의 경기를 분석했다 해도, 몸으로 부딪혀 보기 전엔 그걸 알 수 없다. 부딪혀 본 경험을 계기로 내년에 리그에서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였으면 한다. 라인전을 이기는 것보단 이기고나서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이 말이다. 내년에도 담원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볼 것이다.


좋은 말 감사하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과, 담원이 뇌리에 박히게 된 해외 팬들에게도 한마디 해달라.

담원이 이렇게 8강이라는 문턱에서 떨어졌는데, 아쉽다면 아쉽지만 나는 다 지난 일이니 선수들에게 비난이나 비판을 하지 않았다. 나도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일년 내내 달려왔고, 여기서도 24시간 LoL만 생각하고 순수하게 연습에 몰두했던 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내달라.

화끈하고 적극적인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 컬러는 내년에도 유지될 것이다. 팬 분들의 많은 관심 바라며, 사랑을 보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