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의 인기가 나날이 커지면서 e스포츠 업계에서 직업을 구하는 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e스포츠 분야에서 일을 찾다 보면, 어디서부터 그리고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업계의 성장에 따라 다양한 능력의 사람들을 원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은 편입니다.

인벤은 e스포츠 업계에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려는 이들을 위해 e스포츠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직업을 설명해주는 기획 기사를 준비해봤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직업을 찾았고, 직업을 얻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일하면서 느낀 보람과 고충을 들어 봤습니다. e스포츠 업계에서 종사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엿볼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섯 번째로 탐방해 볼 직업은 캐스터입니다. 캐스터는 각종 중계방송에서 진행을 맡는 아나운서입니다. 캐스터는 해설 간의 호흡을 조절하고 진행을 매끄럽게 이끌어가는 역할을 합니다. 대부분 화면의 중앙에서 해설을 진행하여 부담감이 큰 직업이기도 합니다. 이번 직업에 대해 소개해 줄 이는 LCK 챌린저스를 맡고 있는 이동진 캐스터입니다.

▲ 이동진 캐스터 (사진출처: KPLGT)

Q. 먼저 이 글을 읽는 독자를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배우이자 e스포츠 캐스터로 활동하고 있는 이동진입니다. LCK 챌린저스 리그 캐스터를 맡고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종목을 진행했습니다. 2000년 초반부터 지금까지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Q. 지금까지 몇 가지 종목을 맡았는지 궁금합니다.

메인 종목 캐스터를 맡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분도 많고, 정말 다양한 종목을 많이 했습니다. 대중적인 종목으로는 카트 라이더,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 그라운드, 크레이지 아케이드 정도가 있었고, 왕자영요, 크로스파이어, 월드오브탱크, 서든어택, 마구마구, 판타지 오브 마스터즈 택틱스, 팡야 등 50종목 정도 진행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되는 리그를 자주 하다 보니 다양한 종목을 맡았네요. 그래서 종목에 대한 공부를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합니다.


Q. 게임 방송에서 게임 캐스터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개인적으로 게임 캐스터의 역할이 많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MC 혹은 진행자의 역할이지만, 현재는 경기 사이의 공백을 메워주는 전문 방송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게임에 보다 특화되어 있는 게 게임 캐스터인거죠.


Q. 다양한 종목에 캐스터가 있는데, e스포츠 종목에서 캐스터 일을 맡게 된 계기가 있나요?

우연히 OGN에서 MC로 발탁되어 일을 하게 됐습니다. 연기를 병행하다 보니 발음 부분은 훈련이 되어 있었고, 당시 알고 지내던 PD가 전문 캐스터를 제의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캐스터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Q. 게임을 많이 좋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농담이지만, 스타크래프트나 포트리스가 없었다면 저는 서울대를 갈 수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게임에 대한 재능은 없는데 정말 좋아했습니다. 배틀넷 아이디를 두 개 합쳐서 25,000승 정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는 15시간 정도 게임을 했습니다.

OGN이 개국하고 나서 6개월 정도는 OGN을 항상 봤습니다. 당시에 길수연, 송지영 등 1세대 게임 자키를 좋아했는데, 송지영 님이 저희 대학교 선배였습니다. 덕분에 친분이 생겨서 OGN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게임 업계 일만 했던 건 아닙니다. 게임 캐스터 일을 하다가 '이러다가는 좋은 연기자가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년 정도 게임 캐스터를 포기하고 대학로에서 영화와 연극을 했습니다. 그러다 영화를 찍던 도중에 촬영이 연기되면서 돈이 필요한 상황이 됐고, 다시 OGN의 연락을 받아 게임 캐스터로 복귀했습니다. 이후로는 지금까지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네요.


Q. 게임 캐스터보다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더 있었나요?

20대 초반에는 확실히 그랬습니다. 게임 캐스터 일은 원하지 않았는데 계속 잘 됐습니다. 재미있게 말을 잘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방송 일도 계속 늘었습니다. 반면에 연기 쪽 일은 쉽게 늘지 않더군요.

고민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게임 캐스터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거다. 나는 원래 연기자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5년, 6년을 하다 보니 제가 양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게임 방송을 오래 하면서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게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내 일은 행복한 일인데, 그 행복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부터는 게임 캐스터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당시에는 정일훈, 전용준이라는 기라성 같은 걸출한 선배 캐스터가 많았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너무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게임 캐스터 일을 계속 하니 이런 저런 방송을 하면서 칭찬을 듣기도 하고, 여러 일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런 게 쌓이면서 자리를 잡은 듯합니다.


Q. 게임 캐스터는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나요? 섭외가 됐을 때부터 경기 중계까지 어떤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섭외가 되면, 게임을 어느 정도 공부하게 됩니다. 캐스터는 대부분 굉장히 전문성이 있어서 대부분 어떤 게임이라도 대부분 진행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깊이를 가지려면 캐스터도 게임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본 명칭이나 규칙은 대부분 공부합니다. 때로는 해설이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요. 기본적으로 진행에 무리가 없을 만큼 공부를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게임을 해보는 편입니다. 하루에 7시간, 8시간씩 몇 주 동안 꾸준하게 해보고 나서 공부를 하는 편입니다.


Q. 게임 캐스터로서 소양을 늘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진행하는 능력이나 임기응변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사실 그런 부분은 타고 난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캐스터는 재능이 가장 중요한 분야입니다. 중계 중에 어떤 사고가 났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거나 순발력이 떨어지면 다음부터는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방송은 흔히 농익는다고 합니다. 사고 대처나 임기응변은 연습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발성이나 발음은 학원에서 배우거나 전문 과정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그리고 여러 방송을 통해서 생방송에 대한 경험을 쌓기도 합니다.

▲ DRX '피치'를 웃게 한 이동진 캐스터의 초월 통역

Q. 게임 캐스터 일을 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끼나요?

100% 팬입니다. 팬들이 즐거워하고 좋아할 때가 가장 보람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PD나 작가의 칭찬이 좋았는데, 지금은 팬들이 좋아해 주는 걸 보면 그게 가장 뿌듯합니다.

LCK 챌린저스 리그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걸 느끼기도 했습니다. 주목을 받지 못하거나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과 함께 하면서 선수들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걸 보면 정말 뿌듯합니다. 지난 스프링 시즌에는 코로나 때문에 2군 선수 몇몇이 콜업되어 LCK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 자식을 보는 듯한 감정이 들어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Q. 캐스팅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나 방송이 있었나요?

챌린저스 리그 선수가 LCK에 갔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2군 선수가 LCK에서 뛸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기회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왔습니다. 그게 굉장히 충격적으로 느껴졌습니다.

2013년 MLG 방송도 기억에 남네요. 해외대회인데, 체감 상 네 시간 정도 경기가 연기됐습니다. 사실 국내 방송이라면 딜레이가 두 시간이 넘어갈 때 무슨 대책이든 냈을 겁니다. 그런데 해외대회는 언제 경기가 시작될 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경기가 딜레이 될 때는 정말 무아지경이 됩니다. 무엇이든 말해야 하는 상황이고, 게임 관련 이야기로만 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네 시간 동안 별의별 이야기를 다했던 거로 기억합니다. 대회가 끝나고 나서는 완전히 탈진했고요.

에이펙스 레전드 대회도 기억에 납니다. 12시간이 넘게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옆에 있던 해설의 수염이 자라서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Q. 게임 캐스터 일을 하면서 방송을 이끄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억텐(억지 텐션,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손가락 질을 받더라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무난하게 흘러가는 경기는 작은 부분이라도 찾아내야 합니다. 저의 목소리 톤이 내려가면 해설진도 함께 내려가게 됩니다. 게임 분위기가 쳐지지 않게 계속 여러 요소를 찾아서 방송의 긴장감을 끌어 올려야 합니다. 대결 포인트를 찾아 스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Q. 캐스터는 어떤 적성이나 성격을 가져야 하나요?

기본으로 언변이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낯을 가리면 안됩니다.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리더쉽이 있어야 하고, 방송 전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해설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도 필요합니다.

사교적인 성격이 유리합니다. 작가가 준비하는 것 외에 선수들에게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해설과도 호흡을 맞춰야 하니 사교성이 필수입니다.


Q. 캐스터 직업을 갖고 싶다면, 어떤 부분을 준비해야 하나요?

일단 적성에 맞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대부분은 발성이나 정확한 발음에만 집중합니다. 그리고 딕션이 좋으면, 준비를 잘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게 방송 진행 능력입니다.

계속 준비하면서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방송 진행 능력은 타고 나는 부분이지만, 경험을 통해 길러지기도 하니까요. '캐스터는 짬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여러 캐스터의 진행을 보면서 각자의 장점이 무엇인지 느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Q. 캐스터는 어떻게 채용이 되나요?

예전에는 공개 콘테스트가 있었습니다. 그 출신이 MBC 게임의 박상현 캐스터입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다른 방송에서 끌어오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여러 방송에서 조금씩 눈에 띄면서 올라오는 경우입니다. 신지수 캐스터처럼 개인방송을 보고 추천을 받아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캐스터를 꿈꾸는 이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게임을 좋아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재능과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키워가다 보면, 누군가는 그 노력을 알아줄 겁니다. 소중한 기회를 계속 잡고 이어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