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의 경기력이 완전히 살아났다. LCK 스프링 스플릿 전승 우승 달성 당시와 비슷하다는 평가가 많다. 소위 구멍이 없고 모든 라인에서 번갈아 슈퍼 플레이를 해주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

이번엔 탑 라인에 집중해볼까 한다. '제우스' 최우제가 버티고 있는 T1의 탑 라인은 언제나 상수 역할을 했다. 이 말이 무조건 '제우스'는 초반 라인전부터 상대를 박살내고 경기 내내 맹활약한다는 뜻은 아니다. 말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초반에 말리더라도 중반부턴 제역할을 잘해줬다. 당연히 초반부터 날아다니면 경기 끝까지 천상계에서 놀았다.

지금까지 T1은 항상 '신'인 '제우스'와 함께 롤드컵을 치르고 있다.

'제우스'가 초반부터 잘 풀린 경기는 이번 롤드컵에도 있었다. 그룹 스테이지 EDG전 피오라를 했을 때 그랬다. 당시 상대 탑 라인 챔피언은 오른. 초반만 무난히 넘기면 갈수록 피오라가 활약할 여지가 있는 매치업이었다. 다만, 오른도 무난히 성장하면 한타에서 피오라보다 좋을 가능성이 높았다.

보통 탱커와 브루저의 초반 라인전은 생각보다 반반 싸움일 때가 많다. 브루저는 아이템이 갖춰질수록 강해지니까. 하지만 이 경기에서 '제우스'의 피오라는 일방적으로 상대 오른을 밀어냈다. 초반부터 벌어졌던 CS 격차는 경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벌어졌다. 이미 11분경에 양 탑 라이너 간 CS 격차는 30개 이상이었다.

초반부터 유의미한 성장세를 보였던 '제우스'의 피오라는 경기 내내 날아다녔다. 조합상 피오라가 상대 본대를 헤집기에도 좋았다. 같이 뛰어들 아군 챔피언도 많았고 '케리아' 류민석은 유미를 플레이하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제우스'의 피오라는 한타에서도 오른보다 빼어난 활약을 보이며 팀의 승리에 힘을 보탰다.

더욱 재밌는 건 피오라의 아이템 빌드였다. 보통 사이드 운영보다 한타를 생각하면 피오라는 선혈포식자나 발걸음 분쇄기를 가곤 한다. 하지만 '제우스'의 피오라는 신성한 파괴자였다. 아무래도 아군 리 신과 아칼리, 유미를 믿고 플레이한 듯했다.

이번 롤드컵 중에 '제우스'의 진가가 가장 잘 드러났던 건 또 한 번의 EDG전이었다. 이때 '제우스'는 갱플랭크를 꺼냈고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인터뷰에서도 '제우스'가 이번 롤드컵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경기는 갱플랭크를 꺼냈던 EDG와의 대결이었다.

사실 갱플랭크와 함께 했던 경기에서 '제우스'는 고통받았다. 상대가 탑에 턴을 세 번이나 사용했다. 초반 무난하게 성장해야 하는 갱플랭크 입장에서는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제우스'는 이를 두 번이나 흘려냈다. 상대 다수가 몰려들었던 세 번 중에 단 한 번만 데스를 기록했다. 이 자체로도 대단한 플레이를 한 것이었다.

'제우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말도 안되는 플레이로 성장세를 이어갔다. 3연속 갱킹에도 상대 탑 마오카이를 솔로킬하더니 CS 격차를 있는대로 벌렸다.

▲ 화약통을 끝까지 아끼는 '제우스'(출처 : 롤드컵 공식 중계)

그렇게 고통을 이겨내고 성장한 갱플랭크는 한타마다 맹활약했다. 협곡의 전령 둥지에서 열렸던 18분경 한타에서 '제우스'의 갱플랭크 숙련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상대의 스킬이나 소환사 주문이 활용될 때까지 화약통을 아끼며 적절한 시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상대 진영이 크게 갈리자마자 딜러 쪽으로 화약통 콤보를 연달아 성공시켰다.

보통 상대가 한타 중에 뭉치자마자 화약통을 급하게 소모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제우스'는 더 좋은 때를 기다렸고 이를 성공시켰다. 게다가 EDG 입장에선 화약통을 계속 들고만 있는 '제우스'의 갱플랭크 때문에 딜러진이 한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RNG와의 8강 2세트에도 '제우스'는 제이스를 골라 초반에 큰 고통을 경험했다. 연속해서 6데스를 기록했던 것. 하지만 그 역시도 경기 승리 이후, 대미지 그래프를 봤을 때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초반에 '제우스'를 망하게 만들어도 그 결과값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걸 '제우스'가 직접 알려준 두 번의 예시였다.

물론, 제이스를 다시 꺼낼 것인지는 T1 입장에선 고민해볼 만한 문제다. 제이스 파훼법이야 워낙 유명하다. 초반부터 집요하게 제이스 쪽을 노려 연속 데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제우스'가 말린 이후에 극복을 잘하긴 했지만, 리스크가 큰 선택이었음은 변함없다. 4강에서도 '제우스'가 초반 상대 턴을 모조리 흡수하고 중반 이후에 또 활약할 거란 보장은 없다.

▲ 아칼리는 주도권을 잡기 힘든 픽이다

만약, 제이스를 또 염두에 두고 있다면 미드에서 아칼리처럼 주도권을 잡기 힘든 챔피언이 아닌, 다른 것을 해줄 필요가 있다. 미드가 주도권을 잡기 어려우면, 그 영향이 정글과 탑으로 향한다. '페이커' 이상혁도 적절한 챔피언을 쥐여줬을 때 라인 주도권을 잘 잡으니 제이스를 또 꺼낼 거라면 미드 주도권 챔피언을 고려해봄직 하다.

'제우스'와 비슷한 듯 다른 JDG의 탑 라이너 '369'도 빼어난 탑 라이너다. '제우스' 역시 '369'를 평가할 때 똑똑하고 모든 면에서 뛰어난 육각형 탑 라이너라고 생각한다 전한 바 있다. 말 그대로 진검승부가 될 예정이다.

양 팀의 탑 전력차는 거의 나지 않는다. 개인 지표에서 '제우스'와 '369' 중 서로에게 크게 밀리는 것이 없다. 두 탑 라이너 모두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탑 라이너인 만큼, 어떤 챔피언을 들고 어떤 식으로 플레이할지 기대된다.

챔피언 폭은 '제우스'가 좀 더 칼 쪽으로 치우쳤다. '제우스'는 이번 대회 들어 한 번도 탱커 챔피언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는 '369'가 좀 더 유동적이다. '369'는 탱커 챔피언과 브루져 챔피언을 번갈아 기용해 높은 승률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