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가 첫 태동을 시작한 지 벌써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미 강산이 한 번쯤은 변하고 남을 세월, e스포츠 시장에도 그간 큰 변화가 있었다. 스타크래프트로 시작된 e스포츠는 현재 스타크래프트2와 리그 오브 레전드의 두 종목으로 양분되어 굵직하게 자리 잡았고, 국내 위주의 트랜드도 바뀌어 해외시장의 수요도 국내시장 못지 않게 부각되는 시대다.

격동의 시기를 겪는 동안, 프로게이머가 경기를 치르는 경기장도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경기장은 프로게이머가 경기 할 수 있는 공간이자, 관중이 직접 e스포츠 무대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고, 동시에 방송사들의 멋진 리그 연출을 위한 스튜디오를 겸한다. 그러다 보니 각 리그 주최사들은 경기장의 규모와 운영에 큰 노력을 기울이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e스포츠 경기장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e스포츠 첫 경기장, 메가스테이션의 개장. 그렇다면 그전에는?

[ ▲ '메가웹스테이션'에서 베르트랑과 임요환이 경기를 위해 준비하는 모습. ]
※ 위 사진의 출처는 '나를 알다'님의 블로그(http://shadowneo.net)입니다.

역사적으로 첫 경기장으로 기록된 경기장은 온게임넷의 '메가웹스테이션'이다. 2000년 5월 12일, 온게임넷의 세 번째 스타리그였던 '프리챌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개막전이 메가웹스테이션에서의 첫 공식전이었다. 삼성동 코엑스내 멀티플렉스 영화관 옆에 자리한 경기장은 지금처럼 넓은 공간에서 멋지게 영상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경기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아니, e스포츠라는 단어 자체가 불모지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이 시절은 게임방송의 시장성을 믿고 투니버스에서 분사한 온게임넷이 분투를 벌일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히 소싯적 시절이다.

그렇다면 이 전에는 어떻게 경기를 치뤘을까? 온게임넷과 MBC게임 모두 자사의 스튜디오를 활용해서 리그를 진행했다. 현재도 방송국 내 스튜디오는 리그를 제외한 오락, 정보 프로그램 제작에 쓰이곤 한다. MBC게임의 간판 오락 프로그램인 '스타 무한도전'이 'A스튜디오'에서 녹화가 진행이 되었다.

[ ▲ '스타무한도전'이 촬영된 A스튜디오는 본 건물 2층이다. (사진출처 : 다음 로드뷰) ]

당시 MBC게임의 KPGA를 비롯한 초기 MSL리그들은 MBC 경영센터 내에 위치한 'A스튜디오'에서 진행이 되었다. 온게임넷도 자사의 스튜디오에서 초창기 스타리그를 진행했었다. 하지만 스튜디오는 보안이 엄격한 방송사 내에 있기 때문에 애당초 관중이 접근할 수 없는 시설이다.

아직 '리그'라는 개념이 채 잡히기도 전에 관중 친화적인 경기장을 구상했다는 점에서 당시 스텝들의 선견지명은 지금 생각해봐도 놀랄만한 수준이었다.


세중 게임월드 개장! 코엑스 양대 리그의 시대

2002년 12월 21일, 같은 코엑스에서 '세중 게임월드'의 기공식이 열렸다. 세중 게임월드는 Xbox를 구심점으로 한 본격적인 게임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인근에 PC방을 포함하여 전용면적만 818평에 달하는 굉장한 규모로 구성된 세중 게임월드는 MBC게임과 리그 제작을 위한 MOU를 체결함으로써 두 개의 방송사, 두 개의 경기장 체제가 비로소 갖추어지게 되었다.

[ ▲ '세중게임월드'는 정면과 좌/우에서 다양한 각도로 선수를 지켜볼 수 있었다. ]

2003년 4월 15일 완공된 세중 게임월드는 사방이 열려있는 공간에서 선수들의 모습을 원하는 대로 관전할 수 있는 특징이 있는 경기장이었다. 물론, 메가웹스테이션 보다는 훨씬 넓어서 관객의 편의성도 좋았다. 메가웹스테이션에서 임진록이라도 열리는 날에는 한겨울이라도 땀이 흥건했다. 그래도 팬들은 그 열기가 좋았다.

코엑스 시대에서 눈여겨볼 점은 접근성이 매우 훌륭했다는 점이다. 지하철 삼성역과 바로 연결되어 직장인과 학생 모두 접근이 용이했다. 온게임넷은 '질레트배 스타리그', MBC게임은 'CYON MSL'부터 본격적인 양대리그의 부흥이 시작되었다. 경기장 인프라가 갖춰지고 난 결실이다.

실제로 온게임넷에서는 임요환과 최연성, 박성준이 맹활약하며 많은 이슈를 남겼고, MBC게임도 이에 질세라 이윤열, 강민, 마재윤 같은 프랜차이즈 스타를 배출하며 e스포츠의 신화를 써내려갔다. 두 리그의 성향은 확연히도 달랐고, 팬들도 이에 질세라 서로 갑론을박하며 매일 이슈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Xbox가 국내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세중게임월드가 철수하는 상황에 놓였고, MBC게임은 인근에 'MBC 히어로 센터'를 개장하여 명맥을 유지했다. 온게임넷도 관중 편의를 위해 메가웹스테이션을 확장 리뉴얼하면서 '메가스튜디오'로 이름을 바꿔달았다.



양적 확장의 상징! 용산과 문래동 시대


이 시기에는 많은 선수들과 스탭들의 노력으로 e스포츠 시장의 저변이 나날이 확대되고 있었다. 한국 e스포츠 협회는 용산 아이파크몰과 MOU를 체결하고 9층에 전용 상설경기장 건립을 추진했다. 이렇게 해서 출범한 '용산 e스포츠 경기장'은 2005년 12월 29일 정식 개장하였지만, 정작 방송시설이 없어서 리그 진행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방송시설이 없었으므로 중계를 위해 각 방송사는 중계차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비용이 일반적인 리그에도 동원하기에는 너무나 비싼 비용이었다. 이후 온게임넷과 사용계약을 체결한 이후 e스포츠 경기장은 방송시설 설치 공사에 돌입, 2006년 8월 18일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2 조지명식을 진행하면서 정식으로 온게임넷의 리그 스튜디오가 된다.

[ ▲ 용산 e스포츠 경기장에서는 지금까지 수 많은 경기가 진행 되었다. ]

용산 e스포츠 경기장은 지금까지와의 경기장에서 궤를 달리했다. 우선 기존의 경기장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는 일단 제쳐두고, 삼성동 코엑스를 벗어난 첫 경기장이 되었다. 접근성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경기장이 도심지에 있는 것과는 또 차이가 있었다. 실제로 경기장을 옮길 때 관중 문제를 걱정한 일부 관계자도 있었다는 풍문이다.

그러나 일각의 우려와 달리 용산 e스포츠 경기장은 무리 없이 잘 자리 잡았고, 현재 e스포츠의 메카로 통하고 있다. 리그의 권위에 맞는 규모의 경기장으로 수많은 리그를 진행하고, 걸출한 우승자를 배출했다. 반면 MBC게임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경기장을 확장 이전하게 되었다. 문래동에 있는 쇼핑몰에 자리잡고 이름도 '룩스 히어로 센터'로 개명했다.

그러나 경기장은 커졌을지언정 관중에 대한 배려는 부족했다. 일단 경기를 관전하기에 앞서 커다란 두 개의 기둥이 전방의 시야를 차단했다. 경기장 위치도 좋지 않았다. 유동인구가 적은 곳에 세워진 쇼핑몰에 입점한 룩스 히어로 센터는 비록 경기장의 규모가 크더라도 관중 편의적인 요소가 어째서 중요한지 여실 없이 증명한 계기가 되었다.

[ ▲ '룩스 히어로 센터'는 단점이 적지 않았지만, MBC게임 폐국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
※ 위 사진의 출처는 '음주가무의 뮤직캠핑' 블로그(http://blog.naver.com/pcn1970)입니다.


이 룩스 히어로 센터에서 MBC게임이 폐국되기 전까지 MSL과 프로리그 경기가 진행되었다. 이 두 경기장은 e스포츠의 양적 성장 상징과도 같다. 경기장의 규모가 e스포츠의 규모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적어도 리그의 권위를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점은 자명하다.

방송사가 경기장을 키우면, 유지비용은 갑절로 증가하지만, 경기장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방송사의 수익 구조는 광고수익과 리그 진행에 따른 후원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기장에 지출한다는 것은 수익성과는 하등의 관련없이 벌어들인 수익을 순수하게 지출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팬과 리그의 권위를 위해서다. 그렇기에 마냥 큰 경기장을 선택하는 것이 방송사 입장에서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후발주자 곰TV의 등장! 피자의 땅 목동의 시대

그런 점에서 가장 늦게 e스포츠 시장에 참여한 곰TV의 경기장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곰TV의 경기장인 '목동 곰TV 스튜디오'는 서울 영상고 내에 있었다. 지리적 여건은 최악에 가깝다. 도심지도, 교통 결절지도 아닌 주택가에 있는 한 고등학교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곰TV의 첫 행보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곰플레이어로 성공을 거둔 곰TV는 콘텐츠 확보를 위해 e스포츠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리그를 연출하는 주관사가 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경기장으로 삼을 장소를 물색하기도 마땅치 않았고, 리그를 처음 시작하는 처지에서 너무 큰 경기장을 구하기도 어려웠을 터였다. 그렇게 해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선정된 경기장이 '목동 곰TV 스튜디오'다.

[ ▲ 예전 곰TV 스튜디오. 서울 영상고 2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


하지만, 관중 편의는 그 어떤 경기장과도 차원이 다르게 제공되었다. 관중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티백과 커피가 제공되었고, 외국 관중을 위해 영어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이어폰까지 대여할 수 있었다. 양적 성장을 대변한다던 용산과 문래동과는 또 다른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또한, 관중 친화적인 목동만의 문화가 있다. 인근에 피자 전문점이 위치했기 때문이었을까, 경기 중 관중석에 느닷없이 피자가 돌아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좋은 일이 있는 선수, 또는 관계자들이 관중에게 피자를 비롯한 다양한 먹거리를 나누는 목동만의 문화가 있었고 경기를 떠나서 경기장을 찾을만한 또 다른 재미였다.

그 밖에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찾아가기 즐거운 목동 경기장'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주었고, 자연히 관중을 이끌게 하는 마법 같은 효과를 발휘했다.

[ ▲ 생각지도 못한 피자 이벤트. 관중은 오늘의 기억을 영원히 가져갈 것이다. ]

성경 구절에 보면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란 구절이 있다. 그래서였을까, 목동 곰TV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스타2 리그인 GSL은 나날이 성장을 거듭했고, 결국 국내보다 세계에서 더욱 권위를 인정받는 리그가 되었다. 실제로 GSL에서 외국인 관중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이 용산에서 진행되는 프로리그에도 찾아가 경기를 관전하게 되었으니 e스포츠의 세계화에 목동 경기장이 기여한 바는 명백하다.

목동 경기장이 경기장 규모는 작았을지 몰라도, 그 안에서 펼쳐진 경기들은 내실 있었고 치열했으며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선수들의 전율적인 경기력과 관중 편의적인 배려 모두에 만족할 수 있었다.



다시 재림하는 삼성동 시대! 그리고...

권위의 상징 용산 경기장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e스포츠의 역사를 계속 써내려가는 중이다. 새로운 e스포츠의 성장동력으로 주목을 받는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리그가 높은 인기 덕분에 그 넓은 용산 경기장도 연신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가 꾸준히 지속한다면, 온게임넷이 지금보다도 더욱 큰 경기장을 찾겠다며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 ▲ 프로스트와 블레이즈의 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관객. 지금은 한겨울이다. ]

반면, 관중 편의적인 세심한 배려로 특유의 정감 가는 이미지를 구축한 목동 경기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더욱 넓은 곳에 새로운 자리를 튼다고 한다. 그것도, 지금까지 양대리그가 운영되며 치열한 이슈를 생산해 냈던 삼성동으로 이전한다.

과거 부족한 기술과 인프라, 지원등 열악한 상황에도 임요환과 최연성, 박성준, 이윤열, 홍진호, 강민같은 선수들의 경기에 열광하고 환호했었다. 당시의 코엑스몰 그 장소는 아니지만, 삼성동에서 잉태되었던 수많은 전설들을 생각해본다면, 이미 상징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곰TV 특유의 세심한 관중 배려에 넓어진 경기장, 뛰어난 접근성이 어우러지면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낼까? 기자이기 전에 한 명의 e스포츠 팬으로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 감출 길이 없다. 많은 관계자와 팬들의 염원을 담은 '곰TV 강남 스튜디오'는 그렇게 탄생할 예정이다.

[ ▲ '곰TV 강남 스튜디오'의 간판. 이제 새로운 역사의 시작도 얼마 남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