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레미 강 킹 선임 디자이너

플레이 할 때만큼은 재미있다는 말 외에 설명할 길이 없는 게임이 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쉽다면 어떨까? 순식간에 게임을 깨버려 다시 플레이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너무 어렵다면 제 풀에 지쳐 게임의 재미에 눈을 뜨기도 전에 떠나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깰 수 있을 듯 말듯한 난이도로 게임에 도전 욕구와 적당한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 흔히들 그것을 레벨 디자인이라고 일컫는다. 그래픽이나 사운드처럼 직접 눈과 귀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유저들을 잡아두는 요소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이미 많은 개발자와 게이머들이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캔디크러쉬 시리즈로 캐쥬얼 게임사에 한 획을 그은 킹의 선임 디자이너 '제레미 강'은 강단에 올라 레벨 디자인을 단순히 난이도를 구분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계했다. 그는 레벨 디자인을 아트와 코드, 디자인을 엮어 하나의 게임으로 구성하는 지휘자라고 이야기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레벨 디자인의 구성은 '콘셉트 구상', '레이아웃', '제작', '밸런스 조절', 그리고 '테스트' 등 크게 5가지 순서로 진행된다. 각각이 다음 요소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만큼 그 순서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벨 디자인의 초석이 되는 게임 콘셉트 구상은 이름 그대로 게임에 사용될 개념을 정리하는 일이다. 작게는 캔디크러시 시리즈에서 말랑거리는 젤리, 혹은 소다가 블록에 사용되는 따위를 정하는 것도 이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더 많은 구성 요소도 함께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게임에 존재하는 부분을 여러 개로 나누고 그 하위 요소를 하나씩 추가해나가며 내용을 더해나간다면 콘셉트 구상 단계를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다.

강 선임 디자이너는 '인식 구성 블록'을 만들면 더 쉽게 이를 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캔디 크러쉬 사가의 인식 구성 블록은 '게임 메카닉'과 '게임 모드', '블록 형태' 등의 거대 요소를 정하고 '스왑 방식의 플레이', '터지고 합쳐지는 블록', '물고기나 컵케이크 등의 블록 모양' 등을 세부 요소로 적어 작업했음을 그 예로 들었다.


게임 레이아웃을 구성하는 단계는 이론적으로는 간단하다. 앞서 만든 콘셉트를 종이 등에 옮겨 적어 보기 좋게 배치하면 된다. 단, 구성 요소가 많을 수록 조합의 요소가 많아져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후에 필요한 과정은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과정인 제작단계다. 이 단계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유저들이 게임에 질리지 않고 더 오래 플레이할 수 있는 4가지 이론을 기억하는 것이다.



4가지 이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난이도다. 앞서 언급했듯 게임의 난이도는 레벨 디자인의 상징적인 것으로 게이머들이 게임을 계속 즐기고자 하게 만드는 도전 욕구를 만들어내는 요소다.

실제로 난이도가 높을 수록 게이머들은 더 많은 도전을 반복하고 이를 통해 게임 수명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게임이 너무 어려우면 도전 욕구를 채 느끼기도 전에 게임에 질려버려 손을 놓게 된다는 위험이 존재한다.

강 선임 디자이너는 높은 난이도를 유지하면서도 도전 욕구 감소를 효과적으로 억제한 게임으로 '다크소울' 시리즈를 꼽았다. 다크소울은 매우 어렵지만 클리어가 반복과 실력 향상을 통해 이를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정선을 유지했다. 슈퍼마리오 시리즈나 포탈도 플랫폼, 퍼즐 장르에서 적정 난이도를 잡은 게임이다.


하지만 단순히 높은 난이도만으로는 팬들을 꾀어낼 수 없다. 여기에 더 필요한 것이 게임 흐름(flow)과 난이도에 강약을 더하는 리듬(Rhythm)이다.

게임 흐름은 유저가 목표로 향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게임 임무와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힌트를 주는 과정 모두가 여기 포함된다. 이 과정에 따라 유저는 자신이 플레이하는 게임이 앞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유저는 이를 통해 높을 난이도를 클리어할 때와는 또 다른 성취감을 얻는다.

강 선임 디자이너는 게임 흐름을 '재미를 찾아가는 길을 팬들에게 알려주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으며 높은 난이도로 유저를 유지시키는 비율이 70이라면 나머지 30은 여기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했다.



게임 흐름이 난이도와 다른 방법으로 유저를 자극하는 방법이라면 리듬은 난이도를 더 효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난이도에 강약을 줘 덜 쉬운 구간도 더 쉽게 느끼게 하고 비슷한 난이도로도 더 어렵게 느끼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롤러코스터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높고 평평한 구간을 달리는 롤러코스터보다는 조금은 낮아도 오르락내리락하는 구간이 많고 그 강도가 심한 롤러코스터가 더 큰 쾌감을 주는 것과 같다.

실례로 게임에서 매우 어려운 레벨을 제시한 후 조금 쉬운 레벨을 배치하면 쉼 없이 바로 다음 구간에 도전하게 된다. 또한, 갑자기 어려워지는 구간이 생기면 클리어에 대한 도전 욕구는 더 커져 유저들의 재시도 횟수가 높은 난이도를 연달아 배치하는 것보다 더 많아진다.

한편, 이를 이용하면 유저들에게 게임의 레벨 구성이 유기적이라고 느낄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레벨 디자인의 4가지 이론 중 마지막은 유저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색다름(hook)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게임과는 다른 고유 요소를 이야기 하는데 특정 레벨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능력이나 전혀 다른 형태의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제공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콜오브듀티의 싱글 스토리에는 한 스테이지만 특정 무기를 사용해 적을 제압하는 미션을 추가하고는 하는데 이를 통해 점점 높아지는 게임 난이도와 반복 플레이의 피로도를 줄이고 신선함을 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게임 속 미니게임 외에도 완다와 거상이나 베요네타처럼 스테이지별로 색다름을 부여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앞서 언급한 4가지 이론을 통해 제작 단계를 마쳤다면 남은 것은 레벨 밸런스를 다잡는 일이 남아있다. 레벨 밸런싱은 난이도 설정과 비슷한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오브젝트의 개수나 아이템 종류, 장애물 요소를 적당히 배치하는 것이 모두 포함된다.

다만 앞서 진행하는 난이도 설정과 달리 레벨 밸런스는 게임을 마지막으로 다잡는 과정으로 레벨 디자인의 5가지 순서 중 마지막인 테스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이루어진다.

테스트는 설정한 레벨 디자인이 효과적으로 적용됐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수많은 반복 플레이를 통해 개선해나가야 한다. 테스트는 개발진 내부 테스트, 외부 개발진 테스트, 특정 유저 테스트, 그리고 일반 유저를 대상으로 하는 플레이 테스트 순서로 진행해야 한다. 이처럼 테스트 대상의 범위를 서서히 넓혀가면 큰 오류부터 세부적인 오류까지 순차적으로 잡아낼 수 있게 된다.



강 선임 디자이너는 마지막으로 캔디 크러쉬 사가의 65레벨의 난이도를 언급하며 밸런스 작업과 테스트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해당 레벨은 지나치게 높은 난이도로 고작 18%만이 클리어할 수 있었던 이 스테이지는 많은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클리어를 위해 꾸준히 재도전하며 일정 기간 유저 잔존률은 유지되었다. 하지만 끝내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한 유저는 복귀하지 않았고 이는 지나치게 높은 난이도가 유저 손실을 가져올 수 있음을 방증한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킹은 65레벨 디자인의 실패를 인정하고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강 선임 디자이너는 결국 꾸준한 밸런스 작업과 유저들의 실 플레이에 기반한 테스팅이 게임의 수명을 늘리는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하며 강단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