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G 혹은 CCG 장르의 게임은 특유의 손맛과 느낌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카드 게임에서 파생된 하스스톤 역시 컴퓨터 혹은 모바일로 즐길 수 있지만, 카드 게임 고유의 느낌과 분위기를 맛볼 수 있죠.

아트 디렉터 벤 톰슨은 하스스톤 아트팀의 수장으로 이런 매력적이고 생생한 하스스톤만의 느낌을 살려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존재하는 카드는 아니지만, 테마나 분위기가 잘 녹아들어 있도록 만드는 것부터 해서 데스윙으로 명치를 치는 짜릿한 '손맛'을 유저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기까지. 이 모든 것은 그와 팀의 노력이 깃든 작업물인 셈이죠.

특히, 아트 디렉터라는 직급을 넘어 마케팅과 사용자 경험에도 관심을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면 하스스톤이라는 게임이 어떠한 애정과 열정으로 태어났는지 느낄 수 있는데요. 한때 카드 아트를 그리던 예술가에서 노련한 디렉터로 변신한 주인공, 벤 톰슨을 만나봤습니다


▲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인 하스스톤 아트 디렉터 벤 톰슨(Ben Thompson)


Q. 우선, 인터뷰에 앞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하스스톤의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는 벤 톰슨입니다.


Q. 아트 팀이 한국을 찾은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 방문 목적을 여쭤봐도 될까요?

이번 방문은 한국을 비롯하여 하스스톤이 출시된 여러 나라를 둘러보는 것으로 현지의 팬들과 직접 만나서 어떻게 게임을 즐기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Q. 아트 디렉터의 자세한 업무가 궁금합니다.

카드의 원화와 뒷면, 게임판, 그리고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 하스스톤의 다양한 요소들이 확장팩을 거쳐 가면서도 '하스스톤'이라는 하나의 게임에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카드 원화나 시네마틱 영상을 비롯하여 마케팅에 활용되는 작업물을 검토하고 조율하는 것이죠.




Q. 그렇다면 직접 그린 일러스트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하스스톤 초창기의 카드 뒷면과 렉사르, 동전, 그리고 아이디스 다크베인의 카드 원화와 하스스톤의 첫 게임판들이 있습니다.

하스스톤을 처음 개발하던 시기에는 게임 아트를 담당하는 인원이 저 혼자여서 게임판을 배치하고 카드의 모양이나 '하스스톤 박스'(하스스톤의 시작 인터페이스의 틀인 나무 상자) 등 시각적인 콘셉트를 잡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실제로 그리는 작업을 많이 했죠. 최근에는 아트 팀의 규모가 꽤 커지면서 예전보다 그림을 덜 그리지만, 영문 확장팩의 로고는 직접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Q. 가장 좋아하는 카드 원화가 궁금합니다.

대마법사 안토니다스입니다. 안두인 린을 그린 웨인 레이날드(Wayne Reynolds)가 원화를 담당했는데 카드 자체의 성능이나 그림도 좋지만,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는데요.

당시 와우에서는 스톰윈드 밖에 서 있는 대리석상 이외에 시각적인 자료가 없었고 대마법사이며 제이나의 스승이라는 게임 내 설정 자료가 전부였어요. 그래서 일단 자료를 다 보내본 후에 "석상이 아닌 본인을 그려야 하니 멋지게 뽑아줘"했더니 "잘 해보겠다"는 답변이 왔죠. 그렇게 초안이 몇 장 왔는데, 정말 고르기 힘들었어요. 그중에서 가장 잘 그려진 한 장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오리지널 원화를 구입해서 매일 들여다봤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안토니다스 원화를 의뢰할 때에는 '하스스톤'이라는 이름도 없이 그냥 카드 게임을 개발하고 있던 상황이었죠. 그런데 안토니다스의 허리춤을 보면 귀환석이 새겨져 있는 소용돌이 모양의 문양이 있어요. 나중에 하스스톤이라는 이름과 로고를 정하고 나서 안토니다스 일러스트를 봤을 때, 꽤 많이 놀랐었던 기억이 나요.


▲ 대마법사 안토니다스의 일러스트


Q. 원화를 그리는 작가들은 배경이 되는 워크래프트 세계관에 대해 잘 알고 있나요?

그런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죠. 일반적인 게이머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와우를 즐겼던 작가도 있지만, 하스스톤이 아제로스를 접하는 계기가 된 작가들도 많아요.


Q.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는 게임판은 무엇인가요?

두 개입니다. 하나는 제가 처음으로 만든 스톰윈드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게임판이고 앞으로 게임판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기에 애착이 가요.

이런 이유 말고 그냥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게임판이라면 고블린과 노움의 게임판인데, 이때부터 우리 개발팀이 게임판에 있는 상호 작용에 대해 더 실험적으로 접근해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게임판의 상호 작용은 워크래프트3나 스타크래프트처럼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같은 유닛을 여러 번 클릭하면 나오는 이스터에그처럼 하스스톤에서도 그런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개발된 요소에요.


▲ 게임판의 상호 작용 요소가 대폭 강화된 '고블린과 노움' 게임판


Q. 현지화 작업에도 참여하시나요?

이제는 다른 언어로 현지화되는 것을 감안하고 확장팩 로고를 디자인할 때부터 특정 문자에 구애받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현지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의사소통과 조율을 거치고요.

현지화는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으로 저를 비롯하여 원화가들도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입니다. 폭력적인 내용이나 뼈, 유혈을 묘사하는 것이 현지화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원화가 관리 담당인 제레미 크랜포드(Jeremy Cranford)에게 최대한 관련한 내용을 공유해주고 있죠.

모든 지역에서 같은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고 특정 지역에서 문제가 되는 표현으로 변형된 카드를 만들고 싶진 않습니다. 어떤 지역에서 누가 즐겨도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중요하기에 원화 작업을 맡기거나 검수할 때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Q. 하스스톤 게임 내에 '만든 사람들'을 보면 본인의 이름을 딴 카드가 등장합니다. 이 카드에도 숨겨진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그리고 카드의 능력치는 마음에 드시는지?

벤 브로드(Ben Brode)를 비롯한 기획팀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카드인데, 저같은 경우는 제 카드에 평소에 마음에 들었던 그림을 넣어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6마나에 4/7이라는 능력치는 제가 고른 게 아니고 피해량도 좀 별로인 것 같네요. 그래도 튼튼하니 마음에 듭니다. 제가 전장에 나서면 제거하기 까다롭잖아요? (웃음) 이것도 우리 개발진이 하스스톤에 뭔가 색다른 느낌을 주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 인게임 '만든 사람들' 탭에 등장하는 '벤 톰슨' 카드


Q. 하스스톤은 온라인 카드 게임 중에서 실물 보드게임 같은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특별히 더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하스스톤이라는 게임을 기획할 때, 가장 처음 나왔던 아이디어는 '실제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실제로 카드를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위해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나 화면이 흔들리는 등 일반적인 온라인 카드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효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네마틱 팀이나 마케팅팀에도 이러한 요소를 빠뜨리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Q. 그런 느낌을 살리기 위해 다른 팀과 협력하는 부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모든 부서가 공통적으로 염두하는 요소를 'Core of Pillar', 'Stake in the Ground', 'Pillar for the Team' 등 여러 이름으로 부릅니다. 예를 들자면 음향을 담당하는 앤디 브록(Andy Brock)이 아트 팀에서 고안한 8/8하수인이 공격을 하면 큰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린다는 부분이나 3D 모델링을 담당하는 존 지커(John Zwicker)가 게임판에 넣은 상호 작용, 그리고 카드를 사용하면 들리는 음향 효과가 BGM과 잘 어울리도록 하는 등 하스스톤 개발에 참여한 72명의 인원 모두가 공통적으로 신경 쓰는 요소들을 통해 통일성을 부여합니다.




Q. 카드 원화를 맡길 때, 얼마나 많은 정보를 주고 어떤 부분까지 작가 재량으로 맡기는지 궁금합니다. 미적인 부분 외에도 이름이나 능력치, 특수 효과에 관련한 내용을 전달하여 작업에 참고하게 하는지, 혹은 확장팩의 테마에 맞는 일러스트를 어느 정도 확보한 후에 카드를 만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보통 제레미 크랜포드(Jeremy Cranford)가 담당하는 일인데, 99% 정도 확정된 카드 텍스트 목록을 받은 후 원화가들에게 줄 2~3줄짜리 요구사항을 작성하죠. 마나 코스트나 능력치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하스스톤을 플레이하는 원화가가 물어보면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전달하기도 하죠.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원화가들이 요구사항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본인의 스타일대로 자유롭게 그리는 것입니다.


Q. 원화가들에게 일러스트를 맡겼을 떄, 예상치 못한 그림이 돌아온 경우는 없었나요?

꽤 자주 있는 일이고, 정확히 어떤 카드가 그렇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제레미 크랜포드(Jeremy Cranford)가 저한테 와서 "이걸 시킨 게 아닌데 이게 나을 것 같아!"라며 이야기했던 기억도 있고, 두 장의 카드 원화를 서로 바꿔서 내보낸 적도 있죠. 아트에 맞춰서 남자가 여자로, 노움 대신 드워프로 카드 이름이 바뀐 적도 있어요. 물론, 어느 정도 유명한 캐릭터는 정해진 종족이나 성별을 바꿀 수 없죠.


▲ 이런 아름다운 카드도 초창기 콘셉트는 우람한 남케였을지도...?


Q. 카드 일러스트를 그리던 경험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직접 카드를 그리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지는 않으신지?

다른 작가에게 맡길 원화의 설정을 보면서 종종 "내가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죠. 하지만 다른 업무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고 카드 원화에 투자할 시간이 없어요. 또, 로고 작업만큼 하스스톤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일은 드물죠. 다른 사람에게 이런 업무를 맡기기도 힘들고요. 이왕이면 저보다 다른 작가들이 카드를 그려볼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양보할 생각입니다.


Q. 하스스톤 아트팀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아트 관련 업무는 저 혼자 2D 작업과 컨셉아트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3D 담당인 존 지커(John Zwicker)가 합류했고, 테크니컬 아티스트인 카일 해리슨(Kyle Harrison)이 황금 카드 애니메이션을 담당하면서 조금씩 커졌죠. 현재 아트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은 저를 포함하여 총 11명이고 외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를 포함하면 70~80명 정도, 혹은 그 이상이 한 확장팩에서 아트를 담당합니다.


Q. 이번 확장팩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공룡은 너무 흔한 소재여서 각각의 카드에 고유한 느낌을 주기가 어렵진 않았나요?

내부적이나 외부적으로나 아트 디렉션에 있어서 각 카드에 고유한 느낌을 살리는 것이 최우선 사항입니다. 눈의 흉터나 이빨이 깨져있다는 등의 설정을 추가한다면 다른 공룡이라는 느낌을 쉽게 살릴 수 있어요. 또, 운고로의 공룡들은 실존하던 공룡들도 아니여서 조금은 더 자유롭게 그릴 수 있도록 지도했습니다.


▲ 각자의 매력을 지닌 운고로의 공룡 카드들


Q. 다른 확장팩보다 운고로를 향한 여정에서 특수 효과가 늘어난 기분입니다.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유저들의 시선을 끌어야 합니다. 물론, 시각적으로 과부하가 걸리진 않을지도 감안해야 하죠. 하지만 너무 오래 시선을 빼앗을 수도 없어요. 한 턴의 시간은 제한적이니까요. 물론, 새로운 요소를 강조해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죠. 어려운 줄타기라고 생각합니다.


Q. 하스스톤을 자주 플레이하시는지?

잘한다고는 못하지만 꾸준히 플레이하고 있어요. 아무리 적게 하더라도 매달 카드 뒷면은 받고 있고, 새로운 확장팩이 나오면 모든 콘텐츠를 체험해보려고 노력하죠. 이번에 운고로에서 추가된 신규 요소를 활용해서 20급 이상 올라갈 수 있을지는 해봐야 알 것 같네요.


Q. 하스스톤의 모바일 버전을 보면 UI 적인 부분에서도 최적화가 잘 되어있는데, 특별히 더 신경을 쓴 부분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하스스톤을 처음 기획할 때부터 테스크탑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태블릿이나 모바일 기기로 진출할 게임이기에 UI에 관련한 부분은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죠. 처음부터 게임판 구석구석의 활용법을 생각했었고, 카드 목록을 출력하는 방식을 비롯하여 UI에 신경을 많이 썼고 일정 부분에서는 타협이 필요했어요. 이렇게 조정을 거치면서 발전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블리자드는 사용자 편의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스스톤에서도 이러한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유저들이 몰라주는 부분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합니다.

우선은 제가 좀 특이한 케이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보통 카드 게임에서 아트 디렉터는 일러스트에 집중하는 편이지만, 전 UI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죠. 하스스톤 팀에서 제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했던 작업은 모바일 이식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마치 퍼즐 게임을 깨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스스톤은 블리자드의 게임 중에서 가장 다양한 플랫폼으로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입니다. 이 말만으로도 우리 개발팀의 성과가 자랑스럽지만,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나올 새로운 플랫폼까지 하스스톤을 출시하는 것이 앞으로 남아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못다한 말이나 한국의 하스스톤 유저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한국에서 한국 팬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좋았고, 핸드폰 버전과 UI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특히, 북미보다 핸드폰 버전이 더 인기가 좋다는 사실은 놀라웠습니다. 와글와글 하스스톤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던 팬분들의 반응과 다양한 이야기들, 책상 앞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무한한 가치를 지닌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던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