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크래프톤의 행보는 '숨고르기'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럭저럭 잘 나가던 중견 기업이던 블루홀에서 배틀그라운드로 초대박을 터뜨려 크래프톤으로 변하기까지는 참 드라마틱한 성장 과정을 겪었지만, 정작 그 이후로는 배틀그라운드 IP의 확장만 조금씩 해나갈 뿐 차세대 먹거리가 되어줄 신작 IP를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크래프톤이 원 히트 원더의 전철을 밟고 있는 건 아니다. 꾸준히 새로운 게임을 발표하고, 여러 모바일 게임을 출시하고 있지만, 그저 인지도와 입지가 크래프톤이라는 이름값에 적당하지 않을 뿐이다. 배틀그라운드로 쌓은 탄탄한 개발비를 어떤 형태로 소모해야 할지에 대해 각을 재고 있는 분위기라 해야 할까?


지난 8일 출시된 '썬더 티어 원'은 그 고민의 일부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썬더 티어 원은 명확한 셀링 포인트라 할 게 없다. 탑 뷰(혹은 쿼터뷰) 시점의 슈터는 인디 게임씬에서야 여러 차례 등장했지만, 조작의 난해함과 표현의 한계 때문에 AAA급 게임에서는 사실상 찾아볼 수 없다. 캐주얼을 넘어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수준의 택티컬 요소 또한 디테일만큼이나 복잡함을 안고 있기에 대중적 흥행을 노리는 게임에선 선호되는 요소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썬더 티어 원'은 밥줄보다는 실험에 가까운 개념의 게임이다. 출시를 한 달도 남기지 않았던 지난 지스타 2021 당시, 크래프톤은 꽤 큰 규모의 부스를 준비했지만 오로지 배틀그라운드: 뉴스테이트에만 집중했을 뿐 썬더 티어 원은 흔적조차 볼 수 없었다. 크래프톤 입장에서도 딱히 대중적 흥행을 노리진 않았다는 뜻이며, 푸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썬더 티어 원은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으며 스팀 내에서 소기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크게 기대하지 않은 것 치고는 꽤나 성공적인 실험인 셈이다.


게임명: 썬더 티어 원
장르명: 슈터, 협동
출시일: 2021. 12. 8.
개발사: 크래프톤
서비스: 크래프톤
플랫폼: PC



신중함과 과감함 그 사이

앞서 말했듯, 탑 뷰 시점의 슈터들은 그리 표본이 넉넉치 않은 편이지만, 어느 정도의 공통점은 있다.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 '헬다이버스'나 '엔터 더 건전' 모두 택티컬보다는 쏘고 달리는 런앤건 베이스의 게임이라는 것이다.

탑 뷰는 일반적인 3D시점(1인칭, 3인칭)에 비해 모든 적들의 위치를 일괄적으로 확인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고, 숨어서 엄폐물의 틈을 노리거나 Z축을 이용하는 디테일한 플레이가 불가능하기에 다분히 아케이드적인 재미 요소를 추구한다. 쉽게 말하면, 오락실의 탄막 슈팅마냥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적의 공격과 범위 공격을 피하며 총알을 쏟아붓는 스타일의 게임 플레이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디자인은, 굉장히 단순명쾌한 재미를 준다.

▲ 흔히 생각하는 '탑 뷰(탑 다운) 슈터'의 느낌

반면, '썬더 티어 원'은 디테일을 챙길 수 없는 시점에서 디테일을 강점으로 삼는 괴상함을 지녔다. 재장전을 하면 잔탄이 자동 편입되지 않고 소모량만큼 빈 탄창이 인벤토리에 남는다던가, 챙겨 온 탄창도 여유가 있을 때 전술 조끼로 옮겨 주어야 재장전이 가능하다거나, 수류탄을 던졌는데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건물 천장에 튕겨 팀킬을 유발하는 등, 일반적인 탑다운 런앤건 게임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게임에 쓰이는 장비들 또한 마찬가지. 다른 탑 뷰 슈터들이 화염방사기와 로켓 런처를 쏠 때, 썬더 티어 원의 대원들은 와이어 카메라와 철조망 절단기, 브리칭 폭약을 챙겨야 한다. 출격 비용이 한정되어 있고, 각 장비가 비용을 잡아먹는 시스템 상 수류탄을 수십 발 챙겨 임무에 나설 수도 없으며, 짐을 많이 휴대하면 그만큼 캐릭터가 굼떠지기에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점도 나름의 디테일이다.

▲ 수틀리면 망하기 십상

무엇보다,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없으며 최대 세 방, 재수 없으면 한 방에 뻗어버리는 게임 특성 상 런앤건 플레이는 상당히 제한된다. 난이도가 비교적 쉬운 초기 미션의 경우 우르르 달려가 죄다 쓸어버리는 플레이가 가능하기에 '생각보다 쉽네?'라는 생각이 들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군대 훈련소에서 배웠던 전술 이동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본인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다양한 장비의 특색을 게임 상에서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과 시대상이 살짝 맞지 않다는 점 '썬더 티어 원'에는 꽤 다양한 총기가 준비되어 있지만, 장탄량과 총기 소음 정도를 제외하면 시점의 한계 때문에 차이가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9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함에도 초도 생산이 97년에 이뤄진 'QBU-88'이 존재하는 것과 아무리 유명하다지만 그 시절 특수부대가 쓸리 없는 'Kar98k'와 '모신 나강'의 등장은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다. 배틀그라운드 등장 총기이다 보니 그냥 기념 삼아 넣어 둔 정도로 이해하면 크게 문제될 부분은 아니지만 디테일을 중시하는 게임 컨셉과는 다소 맞지 않는다.

▲ 아무리 그래도 90년대 특수부대인데 이건 좀

이쯤 되면 탑 뷰 시점의 전설인 '코만도스' 시리즈가 생각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썬더 티어 원의 게임 플레이는 코만도스와 꽤 유사한 부분이 많은데, 배율 조준경을 쓸 때의 조준 연출이라던가, 소음이 중요한 게임 요소라던가 하는 점이 그렇다.

다만, 비슷한 점이 있을 뿐, 추구하는 방향은 분명 다른 게임이다. 전술적 사고 없이 게임을 진행하면 금방 막히지만 섀도우 택틱스나 코만도스만큼의 신중한 전술은 요하지 않으며, 탑 뷰 런앤건 게임만큼 시원하게 총질을 할 수는 없지만, 적절한 전술을 가미한다면 충분히 적을 갈아버릴 수 있는 게임이니 두 장르의 중간 지점이라 하면 딱 적당한 표현이 될 것 같다.


▲ 조건만 맞추면 '킬 존' 생성도 충분히 가능

그리고, 이 애매한 중간점은 꽤 그럴싸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걱정 없는 게임과 걱정밖에 없는 게임의 중간에 선 입장이다 보니, 과감한 플레이와 신중한 플레이를 균형 있게 섞어 플레이하게 되며, 두 방향 모두의 재미를 모두 느낄 수 있다. 적이 얼마나 있을지 모를 건물의 문을 발로 차면서 돌입하는 스릴과 적의 진입로를 봉쇄한 채 가늠좌에 눈을 고정시켰을 때의 짜릿함은 과정만 다를 뿐 둘 다 훌륭하다. 그리고 썬더 티어 원은 이 재미를 모두 느낄 수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서버를 직접 만드는 경우 난이도 조절을 꽤 디테일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팀 킬 유무를 지정하는 사실주의와 아케이드 지정을 제외하고도 적들의 수나 피해 배율, 기절 여부 등을 지정할 수 있으며, UAV의 열화상 센서 감지 범위와 무장 점수 제한, 심지어 날씨와 작전 시간까지 조절이 가능하다. 전술 슈터와 런앤건의 딱 중간이 아닌, 넓은 중간 영역에서 본인이 원하는 수준을 지정할 수 있는 셈이다.

▲ 난이도 설정은 꽤 넉넉한 편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다만, 신중함과 과감함을 모두 안았다는 점이 곧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뜻은 또 아니다. 썬더 티어 원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택티컬한 게임이며, 이를 시뮬레이션 수준까지 끌어올린 디테일을 지니고 있으며 앞서 말한 모든 재미도 이 컨셉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재미다. 결과적으로, 게이머 본인이 전술 지휘나 특수 임무 등에 하등 관심이 없다면 게임의 재미를 느끼긴 참 어렵다.

예를 들어,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리마스터의 잠입 임무는 온갖 잡일을 주변 NPC들이 전부 다 해준다. 문도 열어 주고, 통로 개척도 해 주며, 혹시 모를 위험 요소들을 미리 경고해준다. 게이머는 그저 프라이스 대위가 시키는 대로 방에 진입해 동료 A가 말한 대로 구석구석을 수색하고, 총을 겨누는 악당들을 쏘면서 잘 차려진 밥상을 먹으면 그만이다.

▲ 명령 한 번 삐끗하면 죽는 대원들

반면, 썬더 티어 원은 받아먹는 입장이 아닌, 밥상을 차리는 입장이 된다. 건물 진입에 앞서 와이어 카메라로 내부를 살피고, 문의 재질에 따라 관통 사격을 할 지, 브리칭 폭약을 쓸지 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 동료들의 위치를 지정하고, 경계나 공격 임무를 하달해야 한다. 싱글 플레이의 경우 동료 대원들의 무장과 장비도 하나하나 다 지정해줘야 하며, 코만도스처럼 각 대원을 돌아가며 플레이하는 것이 아닌, 주인공 하나에 NPC 동료 셋이 붙는 형태이다 보니 대원이 삽질을 하기 시작하면 게임이 답도 없이 꼬인다.

게임의 디테일한 부분을 즐기며 느긋하게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에게는 선호될 만한 요소이지만, 반대로 빠른 템포의 현대 게임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꽤 피곤하게 다가올 수 있는 부분이다. 이를 상쇄해주는 요소가 바로 협동 멀티플레이인데, 이 또한 생각처럼 편하지는 않다. 우리는 오랜 세월 협동 멀티플레이나 팀 단위 경쟁 게임을 플레이해왔고, 상식 밖의 아군이 때로는 적보다 더 위험한 존재라는걸 잘 알고 있다.


▲ 두려움 없는 아군이 때론 적보다 무섭다

결국, 번거로움을 줄이면서 게임의 재미를 최대한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친구 셋과 함께 4인 파티를 짜서 진행하는 것이며, 이렇게 조건이 갖춰졌을 때, '썬더 티어 원'은 웬만한 협동 게임들 못지 않은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함께 게임을 할 친구를 셋이나 영업하는게 굉장히 어렵다는 현실적인 단점만 극복한다면 말이다.

결국, '썬더 티어 원'은 게이머 개개인이 게임을 판단함에 있어 어떤 가치를 가장 중시하냐에 따라 굉장히 재미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친구들과의 빈틈없는 협동과 합을 맞춘 전술 구축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썬더 티어 원은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지만 높은 반사신경을 중시하는 기존의 슈터 팬들에게는 딱히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줄여 말하면, 호불호가 굉장히 명확하게 갈리는 게임이란 뜻이다.

▲ 연결이 잘 안 되는게 문제긴 한데

다만, 호불호의 영역을 떠나 게임 자체의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딱히 찾아보기 어렵다. 게임 내에서 내가 파악한 문제는 대부분 조작이나 편의성과 관련된 부분이었는데, 벽이 트여 있는 건물임에도 천장 표현의 변화가 자연스럽지 못해 건물 외부에서 내부를 살피기 어렵다는 점이 대표적이며, 탑 뷰 방식임에도 지형 고저차가 존재하는 경우(예를 들어 2층 창문의 적을 노려야 하는 상황) 조준점이 흩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정도였다. 그 밖의 문제라면 가끔 인물이 벽에 끼는 버그가 보이는 정도일까?

스팀 평가가 굉장히 좋은 이유 또한, 게임이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게임 자체로서 문제 되는 부분은 많지 않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멀티플레이 매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서버의 표기 핑에 비해 게임 중 핑이 매우 높은 경우가 있어 PVP 멀티플레이가 꽤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서버 자체는 안정되어 있어 일단 게임에 참여한 한다면 게임 중 튕기거나 팀이 갈리는 문제도 없었다.

▲ 일단 방에만 들어가면 멀티플레이도 꽤 재미있는 편



'썬더 티어 원'의 미래는 어떨까?

결론을 내자면, '썬더 티어 원'은 탑 뷰 런앤건과 코만도스로 대표되는 전술 액션의 중간자적 위치에서 적정선을 유지하면서도, 양측의 재미를 어느정도 살려낸 크래프톤의 성공적인 실험작이라 정의할 수 있다. 자유로운 난이도 조절이 가능해 팀의 평균 실력에 따라 적절한 선의 게임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며, 게임의 디테일과 훌륭한 완성도 덕분에 게임 도중 의도치 않게 인상을 쓰게 될 일도 드문 좋은 작품이다.

다만, 이 게임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다. '썬더 티어 원'은 총 9개의 협동 캠페인과 4개의 점령전(맵은 재활용이지만 게임 목표는 다른 모드)을 지원하며, 각각의 미션은 짧게는 10분 안쪽, 길게는 15~20분 가량이 소요된다. PVP라는 콘텐츠 무안단물이 있긴 하지만, 딱 2만 원에 적당한 콘텐츠 볼륨밖에 없다는 뜻이다.

▲ 미션 하나하나는 괜찮은데 수가 적다

이를 보조하기 위함인지, 크래프톤 측에서는 게임 모드를 편집할 수 있는 모딩 툴의 배포를 예고했고, 개발자가 직접 좀비 모드를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UCC의 제작을 통해 부족한 콘텐츠를 보충하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UCC가 자연발생하기 위해서는 큰 규모의 팬덤이 요구된다는 것이며, '썬더 티어 원'의 경우 UCC로 콘텐츠를 채워넣을 정도의 팬덤을 유지하기엔 신규 IP인데다 장르적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보다 더 걸리는 건 크래프톤 입장에서 이 게임을 끌어안고 갈 이유가 딱히 없다는 것이다. 변변찮은 홍보 없이 게임을 출시한 것만 봐도 '썬더 티어 원'은 생업보단 취미에 가까운 개념의 물건이며, 게임 가격 이외에 BM이라 할 것도 없으니 추가 수익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도 명확하다.

▲ 콘텐츠는 모딩 툴을 통한 UCC로 잡겠다는 것

게다가 출시 시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음으로서 크래프톤은 이미 필요한 데이터와 '작은 스케일이라도 꾸준히 좋은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라는 이미지까지 확실히 챙겼다. 냉정하게 말해, 크래프톤으로서는 손익분기점만 넘기면 게임을 이대로 방치해도 딱히 손해가 아니라는 뜻이다.

모르는 일이지만, 그렇게 된다면 다소 아쉬울 것 같긴 하다. '레인보우식스: 시즈'가 이세계 배틀물이 되어버리고 메탈기어솔리드와 스플린터 셀이 사실상 접혀버린 지금 택티컬 게임의 팬으로서 만족할 만한 게임성을 지닌 게임을 참 보기 힘든 지금이다. 그리고 '썬더 티어 원'은 적절한 사후 관리만 이뤄진다면, 탑 뷰 슈터로서 굉장히 훌륭한 콘텐츠 플랫폼으로 거듭나기에 충분한 게임성을 지니고 있다.

▲ 이런 택티컬의 매력이 참 찾기 드문데

물론, 크래프톤이 딱히 게임을 관리하지 않겠다 해도 조금 아쉬울 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썬더 티어 원'의 콘텐츠는 분명 많다고 할 수 없지만, 게임 가격을 고려하면 충분히 합리적인 수준이며, 크래프톤이 부족한 게임을 가지고 돈벌이를 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하튼, 크래프톤의 실험은 성공했다. 그들이 이 게임의 출시에 정확히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바일의 시대를 지나 콘솔과 PC게임으로 진출하고 있는 국내 게임업계의 여정 속에서 꽤 그럴싸한 발자국 하나를 새겼다는 건 분명하다. '썬더 티어 원'이라는 게임의 미래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족적이 국내 게임 산업의 발전 과정에 작은 이정표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